238화
끼이이익-
석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사내의 눈동자와 전신에 흐르는 황금빛이 퍼져 나갔다.
사내는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마셨다.
“탁한 밀동과는 확실히 공기가 다르군.”
남궁무명은 창천황신공을 완전히 깨우치기 위해 남궁밀동에 스스로를 폐관했다.
이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가의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별일은 없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극일천과 혈사천의 움직임에 세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
남궁밀동은 서해협곡의 중앙에 위치했다. 그곳에 남궁세가의 밀동이 있을 거라 생각한 인물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남궁무명은 협곡에서 빠져나온 뒤 남궁세가를 향해 올랐다.
그의 보폭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연화봉 위로 흐르는 운무와 닮아 있었다.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오르는 바윗길, 등천제일계(登天齊一階)가 나타났다.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서며 끝에 다다랐다.
휘이익!
그때, 남궁무명의 열 명의 남궁무인들이 내려섰다.
그들은 마치 남궁무명을 기다렸다는 듯 부복을 했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그들 중 앞으로 나온 한 사내, 호천수호대 부대주 반의중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궁무명을 보던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부대주,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소신은 대주님을 항상 믿고 있었습니다.”
“고맙군.”
남궁무명은 그들 앞으로 다가선 뒤 한 명씩 손을 잡았다.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폐관에 들어섰다고 들은 그날부터 대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못난 본인을 무엇이 좋다고 기다렸나?”
“대주님께서는 소인의 영원한 주군이십니다.”
“나를 주군으로 모시다니 멍청하군.”
“멍청해도 좋습니다.”
남궁무명은 그들에게 다짐했다.
“본인을 기다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세.”
“알겠습니다. 세가에는 소신이 앞장을 서겠습니다.”
“부탁하지.”
반의중은 한 걸음 앞에서 움직였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남궁무명이 궁금한 사실들을 물었다.
“세가는 누가 이끌고 있는가?”
“부가주이신 창연검인(蒼然劍人)께서 임시로 비대위를 맡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대위에서 세가를 지탱한다는 말이군.”
“네. 그렇습니다.”
남궁무명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비대위처럼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곳에선 때론 독단적으로 밀어붙여 결정짓는 일이 어려운 법이었다.
“후진이 잘할 줄 알았거늘. 그 녀석은 세가에서 뭘 하고 있지?”
“……그게, 특별히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여튼 도움이 안 될 놈이군.”
남궁무명은 피식 웃었다.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세가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뜻이니까.
“혈사천은?”
“최근에 극일천의 문제 때문인지 혈사천도 크게 날뛰고 있지 않습니다.”
“극일천이라…….”
“최근에 극일천에 관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많아서 이야기하기 곤란하다는 것인가.”
“특검단주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알겠네.”
남궁무명은 점점 남궁세가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멀리 남궁세가의 정문이 보였다.
* * *
남궁무명은 세가 안으로 들어선 뒤 곧바로 남궁후진에게 연락을 보냈다.
일각 뒤.
손을 흔들며 그가 정문으로 나타났다.
“어이, 아우. 이제 왔는가?”
“…….”
두 살 차이도 아니고 두 달 차이.
선친이신 검황께서 남궁후진을 형이라 정해 주셨다.
남궁후진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며 앞에 섰다.
“오호, 기운이 좋아졌어.”
그는 한마디 말을 한 뒤 덥석 안았다.
“아우, 그렇지 않아도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거든. 딱 내 예상대로 맞았구만.”
“……그냥 하는 말 같은데.”
“어허. 형님의 말을 의심하면 안 되지.”
그는 바로 떨어지면서 남궁무명의 전신을 살폈다.
“아우 성격에 폐관을 하고 세가에 온 것을 보면 창천황신공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봐야겠지?”
“보여줄까?”
“됐어. 그건 다른 놈에게 보여주면 돼. 우형이 당연히 아우의 말을 믿지 안 그런가?”
“진짜로 형으로 대접받고 싶은 모양이군.”
“야아, 아버님의 유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비록 우리가 이복형제라 하지만, 그분의 아들로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언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만일 내가 두 달 먼저 태어났다면?”
“내가 형님으로 모셔야지. 근데 안타깝게도 그 반대라는 것이네. 아우님.”
“…….”
남궁무명은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그를 보았다.
다른 형제라면 몰라도 하필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를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아우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쁜 모양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버지께 따지고 싶지만 이제 안 계시지 않은가.”
“…….”
“이게 내 운명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지. 가자. 아우가 왔다고 하면 모두 좋아할 거라고.”
남궁무명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만은 알 듯했다.
‘하아…… 내가 죽을 때까지 편하게 지낼 것 같진 않군.’
* * *
남궁무영은 그를 따라 다른 네 명의 비대위를 만났다.
부가주 남궁형소.
남궁무적검 남궁허.
남궁창천검 남궁도.
일장로 남궁삼과, 마지막으로 이공자 남궁후진까지 포함한 다섯 명의 비대위였다.
남궁무명은 전면 자리에 앉은 네 명의 비대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남궁무명, 인사드리겠습니다.”
“무명, 폐관을 마친 모양인가 보군.”
남궁형소가 예전과 달리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네. 폐관을 마쳤습니다.”
이번에는 남궁허가 물었다.
“창천황신공은 어느 수준인가?”
그는 긴장이 되었다.
폐관을 한 목적.
비대위뿐만 아니라 남궁세가의 전체가 궁금해하고 있는 문제였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남궁무명은 고개를 돌려 옆으로 물러난 남궁후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뭐…… 하려고?”
남궁후진은 그의 입가에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진 미소를 찝찝하게 바라보았다.
“후진 형과 내력을 겨루어 보면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네.”
“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남궁허가 고개를 끄덕인 동시에 남궁후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 분께서 알고 싶다고 하지 않소. 투덜거리지 말고 바로 시작합시다.”
“이거 무명 아우는 폐관하는 동안 성격이 급하게 변했군.”
“후진 형님께서는 손바닥을 올리십시오.”
“쩝…….”
남궁후진과 남궁무명은 손바닥을 마주 댔다.
“동시에 내력을 쏟아내는 겁니다.”
“내가 먼저 하면 안 될까?”
“맘대로 하시지요.”
“좋아. 그럼…… 간다.”
우우우우웅.
남궁후진은 칠성신기를 단번에 뻗어냈다.
남궁세가의 심법 비전 중의 비전 내공이었다.
파아아앙-!!!
그와 동시에 남궁무명의 손바닥 앞에서 거대한 황금기막이 나타나며 밀어냈다.
부우우웅-
“으악!!”
남궁무명의 힘에 떠밀려 삼 장 뒤로 날아오른 뒤 엉덩방아를 찍었다.
“오…… 창천황신기……!!”
“드디어…… 드디어 본 세가에도 창천황신공을 완벽하게 익힌 인물이 나타났구나!”
네 명의 비대위들은 남궁무명을 바라보다 감격에 잠겼다.
바닥에 넘어진 남궁후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고고…… 완전 찬밥 신세구만.”
그는 투덜거리며 일어나면서도 미소를 띠었다.
다시 남궁의 시대가 올 것이었다.
* * *
남궁무명은 비위대에서 물러나온 뒤 남궁후진과 단둘이 앉았다.
“안 피곤해?”
“피곤할 게 뭐라고. 괜찮아.”
또르르륵.
남궁후진은 이미 준비한 술을 부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 세워놓은 게 있어?”
“혈사천을 쳐야지.”
남궁무명은 너무 가볍게 대답을 했다.
남궁세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혈사천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검황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남궁세가의 그동안 쌓아올렸던 위명이 무너지는 것이니까.
“맞아, 치긴 쳐야겠지. 근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 않겠어?”
“단체라면 그렇겠지. 난 남궁세가가 아닌 개인으로 그에게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다.”
“혈사천주에게?”
“천살지인.”
“…….”
남궁후진은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의 현시점에서는 차라리 혈사천과 붙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이길 자신은 있는 거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해야만 싸우는 건가?”
“……하긴.”
남궁무명의 말이 맞았다.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싸운다면 상대는 싸우지 않겠지.
남궁무명이 물었다.
“하나만 부탁하겠네.”
“형님이라고 부르면.”
“……형님, 부탁하겠소이다.”
“후후…… 아우님, 좋아. 부탁이 뭐지?”
“본인의 이름으로 혈사천에 도전장을 보내주시오. 그리고 중원 무림의 모두가 알게 되도록 소문을 내주면 좋겠소이다.”
“소문이라…… 혈사천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뜻이군. 알겠어. 지금 당장 중원 전체가 한 명도 빠짐없이 알게 되도록 소문을 흘리마.”
“고맙소.”
폐관을 나올 때부터 세운 계획이었다.
혈사천에 의해 떨어진 위명을 바로 세우기 위해 혈사천을 이용할 것이다.
‘천살지인.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 * *
‘강…… 하군.’
북진의 양손이 떨렸다.
삼 장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선 사내.
예전까지는 화산도협이었지만 어느새 무림맹주가 된 고진유와 비무를 했다.
가볍게 부딪힌 일격에 손이 부러지는 듯했다.
북명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비무에서 극성의 북명신공을 펼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다.
상대의 내력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북명신공에 큰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진이 어떻게 할지 망설일 때였다.
“비무라고 해서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
그의 말은 무공에 자신감이 강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었다.
“좋아. 맹주, 그대가 원한 것이다.”
슈우우우욱.
북진은 단전을 열었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주위의 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흠. 강하다.’
극성으로 펼치는 북명신공의 위력은 들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내공들보다 훨씬 더.
시전자의 무공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순수하게 내공으로 평가한다면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우-
고진유의 단전에서 흐르는 매화진기가 흔들리면서 북명신공에 의해 끌려 들어갈 것 같았다.
북명신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훨씬 강한 내력으로 우위에서 누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래서…… 극일천에서 북명신공을 원했던 것인가?’
극일천에서 원했던 건 북명신가가 아니라 북명신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북명신공을 완벽하게 익힐 수만 있다면, 누구와 싸워도 내공에서 밀리지는 않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타앗!
‘내공이 강히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지!’
북진의 양손에 원형의 북명기가 흐흐르며 고진유를 향해 북명신장을 펼쳤다.
위이이이잉-
양손으로 암흑의 공간을 만들었다.
고진유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쿠욱.
휘이이이이이-!!!
오른손으로 사의검을 강하게 잡은 그가 눈앞에 펼쳐진 암흑 공간을 노려보았다.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베지 못하는 게 없다.’
고진유의 손과 사의검이 허공을 솟구친 뒤 아래로 떨어지며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들었다.
번쩍.
일자로 뻗어낸 광선이 하나의 점으로 변했다.
파아아앗-
밝은 흰색 점이 세상 전체로 번지면서 터졌다.
“아아아악!”
그리고 사내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공중으로 떠오르며 십여 장 뒤로 넘어진 일공자 북진의 신형이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대자로 뻗어 누운 그의 모습.
이미 그는 기절한 상태이기에 쪽팔림을 알지는 못했다.
후다다닥!
북진의 주위로 흑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함과 놀람. 그리고 고진유를 존경스럽게 보는 표정들이 섞여 있었다.
“공자님, 첫째 오라버니는……?”
“괜찮소이다. 기절만 했을 뿐이오. 첫째 형님은 강하군요.”
“……강하다는 분이 저렇게 날아가나요?”
북소연이 그동안 지옥혈림에서 강하다고 인정한 두 사람은 혈성존 북조궁과 첫째 오빠인 북진이었다.
“날아가는 것은 내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아…… 그렇네요…….”
그녀는 고진유의 엄청난 자신감에 대꾸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첫째 오빠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후다다닥!
그때, 멀리서 명주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대주님……!”
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방금 중원에서 들려온 소식입니다.”
“뭐지?”
명주는 고진유의 눈치를 보았다.
“안휘성에서 올라온 내용입니다.”
“또 혈사천이 사고를 쳤나?”
“이번에는 그들이 아니라 남궁세가에서 혈사천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북소연의 검미에 주름이 잡혔다.
“전면전인가?”
“전면전은 아닙니다. 남궁무명이란 인물이 천살지인에게 생사결을 펼치자고 제안했습니다.”
“천살지인에게?”
북소연은 슬쩍 고진유를 보았다.
그녀도 천살지인과 고진유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공자님. 빨리 가서 말려야 하지 않겠어요?”
“가봐야겠지요. ……하지만 말릴 수는 없습니다.”
고진유는 그들 사이에 일어난 은원에 대해 잘 알았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만…….’
천살지인을 생각하는 고진유의 가슴은 점점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