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북안궁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언니라…….’
얼마나 친한지 정문까지 직접 맞이하러 나왔다.
“혼자 오셨어요?”
“동생은 안 왔어?”
무혼신녀는 아직 고진유의 소식에 대해 듣지 못했다.
북소연도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줄 알았다.
“그분과 같이 계시지 않으셨어요?”
“내가 볼일이 있어 화산파에서 먼저 내려왔거든.”
“아…… 그렇군요. 그럼 그분의 일은 안에 들어가서 알려 드릴게요.”
“알겠다.”
서흑신왕 북안궁은 그녀들 곁으로 다가섰다.
“소연아, 이…… 분은 누구…… 시지?”
“숙부님, 그분의 누님이세요.”
‘그분?’
조카가 그분이라고 하는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혹시 무림맹주를 말하는 것이냐?”
“네에. 맞아요.”
무림맹주 고진유는 중원에 고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는 혼자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에요. 고진하 언니라고, 얼마 전에 중원에서 언니를 만났다고 했어요. 인사하세요.”
“……그렇…… 구나.”
북안궁은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작정 추궁하는 실수를 했다.
“고 소저,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미안한 걸 알았으면 됐어.”
“…….”
그녀는 여전히 말이 짧았다.
‘허어……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리 맹주의 누나라고 해도…… 이거 참…….’
“언니, 안으로 들어가요.”
“알았다. 가자.”
북소연은 그녀와 팔짱을 끼고 안으로 움직였다.
그녀들이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북안궁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아…….”
북안궁은 정문 앞에서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흑귀들을 노려보았다.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했지?”
“저어…… 그게……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이냐?”
“처음부터 무림맹주의 누나라서면서 반말을 하기에 계집이 건방지다고…… 그,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무림맹주께 누나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해서…….”
이들이 대충 어떤 말을 했는지 알 듯했다.
북안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멍청한 놈들. 그녀는 무공으로도 흑신왕인 나를 밀어낼 정도였다. 정문 위사라는 놈들이 상대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조심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죄송합니다! 소인들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됐다. 정문 위사는 문파의 얼굴이거늘 함부로 말을 하다니…… 앞으로는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는가?”
“넵, 알겠습니다. 꼭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안궁은 정문 위사의 흑귀들에게 충고를 한 뒤 돌아서면서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
정확히 심장 부위에 충격이 가해진 흔적이 보였다.
‘허어…… 이런. 건방지긴 해도 무공만큼은 강하군. 대체 저들의 집안은 어떻게 된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녀가 만일 자신을 죽이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지옥혈림을 나서고자 했던 걸음을 돌렸다.
어떤 여인인지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 * *
무혼신녀는 그녀를 따라 혈화전으로 들어섰다.
“여기에 앉으세요.”
“고마워.”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음. 술이나 한잔 마실까? 예전 그 사람과 완전히 정리하고 왔거든.”
“알겠어요.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어요.”
북소연은 밖에 대기한 명주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그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무혼신녀를 슬쩍 보았다.
무림맹주의 누나라고 알려진 여인.
정문에서 서흑신왕과 싸웠던 소문이 벌써 나돌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술 한 상 준비해 줘.”
“아직…… 날이…….”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지?”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소연의 눈빛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지옥혈림의 혈미호.
최근에 변한 그녀의 모습에 명주는 순간 방심했다.
‘이런…… 내가 미쳤구나.’
그는 빠르게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요즘 조금 풀어줬더니 한 번에 말을 잘 안 듣네요. 그래도 일은 잘 처리하거든요. 금방 준비해 올 거예요.”
“동생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다시 봤어.”
“호호호. 언니, 좋게 봐주세요.”
북소연도 그녀의 옆에 바로 앉았다.
“아 참. 그분은 여기로 오는 도중에 녹림으로 갔었어요.”
“녹림에? 산적 소굴에 무슨 일이지?”
현 사파의 지존은 녹림이라 들었다.
그녀가 활동할 당시 녹림은 사파에서도 무시당하는 곳이었다.
“녹림대존에게 문제가 생긴 모양인가 봐요.”
“그래도 녹림을 사파의 지존으로 만들 정도라면 제법일 텐데. 산적 두목이 동생에게 딴 짓을 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고, 극일천의 간자에게 그가 중독을 당한 것 같아요.”
“음…… 극일천이라. 어떻게 됐어?”
“소문에 의하면 잘 정리가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녹림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조만간 여기로 올라올 것 같아요.”
“무슨 정파의 무림맹주가 사파의 일까지 나서고 있다니. 바쁘구나.”
“녹림이 사파지존이다 보니 혼란스러움을 막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살협이 녹림 출신이라 그런 것도 있고요.”
“그렇긴 하네. 동생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네.”
“네, 언니. 이곳에서 저와 편하게 지내면 돼요.”
“고마워.”
후다닥.
혈화전을 빠르게 나갔던 명주가 술항아리를 들고 나타났다.
“대, 대주님, 술을 준비했습니다.”
무혼신녀의 눈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소연아, 이 사람 진짜 일을 잘하는군. 어떻게 술 항아리를 들고 올 생각을 했을까?”
“후훗, 제가 일은 잘 처리한다고 했잖아요. 명 부대주, 잘했어요.”
“고맙습니다……!”
명주는 술 창고에 간 뒤 담당자가 없어 기다리지 못하고 술 항아리를 들었다.
‘후우. 다행이네. 항아리채로 들고 왔다고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명주는 그녀의 칭찬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 * *
고진유는 성심원장 주국에게 소개장을 준 뒤 무림맹으로 묵경과 함께 보냈다.
그들은 형주에 들른 후 무림맹에서 만나기로 했다.
세 사람은 형주로 들어섰다.
지옥혈림의 관할지에 들어서자 마을 사방으로 흑귀들이 많았다.
고진유는 갑자기 궁금한 게 있었다. 같은 사파 출신이기에 지옥혈림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녹검 씨. 북명신가인 그들이 왜 지옥혈림으로 개명을 했죠?”
“저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북명신가의 무공과 연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녹림야검은 지옥혈림의 전신이었던 북명신가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했다.
“혹시 북명신공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화산파에 있을 때 들어봤어요.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데 가장 뛰어난 심공이라고 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북명신공은 엄청난 내공심법이라 했습니다. 중원 최고의 무공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정도인가요?”
“진정한 북명신공을 익힌다면 내공에 있어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 알려진 최강의 신공입니다.”
“음…… 그렇다면 천하제일가문은 그들이지 않나요?”
“그게…… 또 그렇지는 않는 듯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신공이 있다고 해도, 똑바로 익히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공이 뛰어난 만큼 극성으로 익히기에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북명신가에서는 극성으로 익힌 인물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했으니까요.”
“아쉽군. 북명신공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면 천하유아독존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왜 그게 문제가 되었지?”
“그게…… 북명신공을 무당파에서 오래전부터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북명신공은 상대의 기를 흡수하여 내공을 늘릴 수 있습니다. 정파의 입장에서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겁니다.”
“음…… 그런 시선도 있겠네요.”
고진유는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었다. 흡성대법의 경우 주로 사파나 마도에서 사용하는 내공법이었다.
정사의 중간이긴 하나 북명신가에서 그런 방법으로 내공을 늘린다는 사실이 못마땅하게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북명신가의 젊은 가주와 무당파 장로가 부딪히면서, 북명신공에 의해 내공을 잃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무당파에서는 가만히 두지 않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눈에 가시일 텐데.”
“네. 맞습니다. 북명신가는 무당파에 의해 사파로 완전히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그때 가주였던 그가 사파로 전향을 하면서 지옥혈림으로 개명한 것입니다.”
“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네. 사실 지금도 무당파와 지옥혈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현재 지옥혈림의 혈성존은 그때 그분의 자식입니다.”
“고마워요. 녹검 씨, 덕분에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몇 가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라서…….”
녹림야검은 도움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하튼 잘 전향했네요. 북명신가였을 때보다 지옥혈림으로 바뀐 뒤 사업이 더 잘되잖아요.”
“…….”
무림맹주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고진유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고진유의 말에 두 사람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따를 뿐이었다.
일각 뒤 지옥혈림의 정문에 놓인 입혈교에 도착했다.
척척.
입혈교 앞으로 두 명의 흑귀가 막아섰다.
육 척의 장신 사내와 사 척의 단신 사내는 어깨에 힘을 주며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온 세 명의 전신을 살폈다.
젊은 사내 두 명과 목에 긴 상처가 보인 사내.
얼핏 봐서 지옥혈림에 들어오기 위해 찾아온 신입처럼 보였다.
“여기가 어딘 줄 아는가?”
첫마디부터 반말이었다.
녹림야검은 그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지옥혈림에서는 정문 위사의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지?”
녹림야검의 목소리가 커졌다.
중원 무림 문파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무조건 정중한 태도로 맞이하도록 정문 위사를 교육했다.
후다다닥!
녹림야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입혈교 너머 정문에서 흑나찰이 빠르게 달려왔다.
“잠깐만……!!”
흑나찰 오중기는 다가오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이놈들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놈들이라 무례한 것 같습니다.”
“흠…….”
오중기는 두 명의 수하를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다.
“며칠 전 일을 잊었나? 네놈들이 무림맹주의 누님을 건드리는 바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도 또 이 짓을 한다고? 분명 누구든지 간에 본 문에 찾아온 사람에게는 공손하게 하라고 했을 텐데.”
“죄송…… 합니다. 잠시 잊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들을 왜 나한테 보내? 내당부 놈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는 고개를 숙인 그들을 보며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죄송하게 됐소이다. 귀하들께서는 본 문에는 무슨 일로 왔소이까?”
“난 녹림야검이라 하오. 저분은 무림맹주이시오.”
“……!!”
오중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미치겠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제때 나오지 않았다면 또 한 번 엄청난 일이 벌어질 뻔했다.
덜덜덜.
입혈교 옆에서 두 사내는 떨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와 등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 림맹…… 주님이…… 십니까?”
“맞소이다.”
스윽.
고진유는 허리에서 정파 무림의 맹주령패를 보여 주었다.
“…….”
오중기는 처음 보는 물건이기에 맹주령패가 맞는지 몰랐다.
하지만 어떤 미친놈이 지옥혈림에 들어오기 위해 맹주령패를 사칭하겠는가.
그는 자신이 사파인이라는 사실도 잊고 넙죽 부복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 * *
오중기는 안절부절못하며 곧바로 혈화전으로 앞장서 안내했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님이 오셨다고 했소?”
“아…… 네에…… 그렇습니다.”
“아까 오 위사의 말을 듣다 보니 누님께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
“대답하기 곤란한가요?”
“그게 아니라…… 제가 없는 사이에 수하들이…… 그분께 큰 실례를 하시는 바람에 야단을 맞았습니다. 근데 그때…….”
오중기는 그때 정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알려주었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괜히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보다 위사장인 자신이 미리 알리는 게 좋을 듯했다.
“북 숙부께서 누님께 당하셨군요.”
“아…… 네에…….”
그는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북안궁을 숙부라 불렀다.
‘역시 그 말이 사실이었어.’
무림맹주 고진유와 아가씨의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말들이 많았다.
고진유의 누님이 찾아오면서 사귀는 것으로 기울어졌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젠 완벽하게 진위가 가려졌다.
씨익.
오중기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림맹주 고진유는 지옥혈림의 사위였다!
‘누굴 데리고 오는 거지?’
그때, 명주가 고개를 내밀었다.
혈하전으로 다가오는 오중기 뒤로 세 명의 사내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내들이었다.
오중기가 직접 혈화전으로 안내할 정도라면 중요한 인물임에 확실했다.
‘설마…….’
어렴풋이 누구인지 알 듯했다.
명주는 자리에서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에게 달려 나갔다.
“오 위사장……!”
오중기는 명주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표정을 봐서 뒤에 함께 오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눈치를 차린 듯 보였다.
“명 부대주, 나오셨소이까?”
“이분들께서는…….”
둘은 눈빛은 마주쳤다. 서로 눈빛으로 묻고 대답을 끝마쳤다.
“무림맹주이시오. 아가씨를 뵈려고 왔소이다.”
“수고했소이다. 여기부터는 내가 모시겠소이다.”
오중기는 뒤를 돌아섰다.
“맹주님, 전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오 위사장이라고 했소?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편안하게 보내십시오.”
그는 고진유와 일행이 혈화전으로 들어갈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