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33화 (233/425)

233화

녹림대군 소소경은 폐관을 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녹림대존이 독향으로 중독당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중독된 그를 해독시킨 인물이 무림맹주 화산도협이라 했다.

소소경은 배신자들 가운데 녹위대주 신위반을 용서할 수 없었다.

신의반은 녹정당주 만금원과 달랐다.

녹림대존의 생명을 호위하는 녹위대주의 신분이었다.

그런 인물이 상대의 꾐에 넘어가 녹림대존을 죽이고자 했다.

위이이이잉-

소소경의 귀혼소음기가 휘몰아치면서 폭풍을 일으켰다.

“신의반, 당장 앞으로 나오너라!!”

타앗!

그는 잔백검을 뽑으며 신의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우웅-

단번에 거리를 좁힌 그가 잔백검을 내리쳤다.

검령의 귀혼령이 울었다.

‘역시…… 귀혼령은 대단해. 예전이었다면 막지 못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차르르르-

신의반의 양쪽 손목에 감겨 있던 검이 풀리면서 목으로 달려드는 귀혼령을 베었다.

번쩍!

귀혼령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소소경은 의외라는 듯 뒤로 물러났다.

“제법이군. 예전과 달라졌는데?”

“언제까지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한 거냐?”

“어쭈. 이것 봐라. 말이 상당히 짧아졌는데? 그러다가 맞으면 안 아플 줄 아는 모양이지?”

“…….”

신의반은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신무신단의 내력을 완전히 개방했다.

“이거 참……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짓을 많이 했군.”

스윽.

독영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적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녹정당주 만금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분명 중독이…… 됐을 텐데……?’

적광기는 중독되기 전 그대로였다.

“만금원, 독향 따위로 본존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다, 당신은 분명 중독이 되었어! 어떻게 해독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독이 된 사실을 몰랐을 텐데?”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고. 본존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모양이지.”

“……!”

만금원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보이지 않기 위해 감추었다.

“녹림대존, 질긴 목숨 하나는 인정해주겠다. 하지만 당신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야!”

“네놈이 본존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군.”

“당연히 죽이고도 남지. 나를 아직도 녹정당주 만금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 실수라고 알려주고 싶군.”

“흐으음. 녹정당주 만금원이 아니라…… 원래의 신분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크크. 맞다. 내 신분은 극일천 육십사괘무장의 특무괘장 소축이다.”

만금원, 아니, 소축은 전신의 내력을 완전히 개방했다.

슈우우우욱-

그의 신형에서 커다란 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녹림대존은 유심히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무시할 수 없는 내력이 소용돌이치면서 주위에서 파동을 치며 흐르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군…….’

제대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소축의 무력은 높아 보였다.

“크크크. 녹림대존, 조금 놀란 표정이군.”

“…….”

소축의 눈가에 실소가 나타났다.

신무신단을 복용한 이상 녹림대존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녹림대존, 네놈은 너무 자만했다. 겨우 세 명으로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인가?”

“…….”

“하긴 당신이 알고 있는 녹위대와 녹정당 수준이라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당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그렇군. 그 부분은 본존이 실수했음을 인정하지.”

“녹림대존. 어차피 인정하나 안 하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편하게 죽고 싶다면 도를 버리고 무릎을 꿇는 게 어떨까?”

“만금원, 지금 본존을 모욕하는 것인가?”

“허어, 아직도 기운이 남아나? 목소리가 큰 걸로 봐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

소축은 손을 들었다.

그의 뒤로 수백 명의 인물이 도검을 꺼낸 뒤 살기를 뿜어냈다.

그들은 소축의 명이 떨어지면 앞으로 무작정 달려가서 상대를 죽일 것이었다.

“크크크…….”

괴성을 흘리는 모습.

이성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독영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때가 늦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소축은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이제 알겠는가. 여기에서 죽는 건 당신이라는 것을! 조용히 중독된 채 죽었다면 녹림은 멸문당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 이놈들이 폭주한 이상 녹림에서 살아남을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극일천…… 네놈들이 원하는 게 무림의 말살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었군.”

“크큿. 앞으로 세상은 극일천만이 유일한 무림이 될 것이다. 녹림대존, 그만 죽어라.”

“……과연 네놈의 뜻대로 될까?”

이번에는 독영한의 입가에서 실소가 나왔다.

“네놈도 모르고 있군.”

“무엇을 모른다는 것이지?”

“쯧쯧, 아직도 모르고 있군. 뒤에 누가 있는지.”

“……!”

소축은 빠르게 돌아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선 순간, 섬광이 폭발한 듯 강한 내력이 퍼져 나왔다.

‘……이, 이건 대체!’

섬광이 옅어지면서 앞으로 네 명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어허.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본인의 얼굴은 못 알아보기가 힘든데.”

소축의 눈이 커졌다.

‘풍류옥협 묵경? 그렇다면 저기 세 명은…….’

세 명 중 눈에 익은 인물이 보였다.

“녹림야검……!”

“뭐? 이봐, 내가 녹림야검이라고? 세상에, 내 얼굴을 보며 녹림야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묵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하하, 그게 아니고 저를 보고 그런 듯합니다. 저자와 안면이 있거든요.”

“아, 녹검 씨 보고? 그럼 그렇지. 난 또 깜짝 놀랐잖아.”

묵경과 녹림야검의 대화를 듣던 그는 침을 삼켰다.

뒤에 나타난 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녹림대존을 해독시킨 인물이 이들이었어.’

소축은 망설일 수 없었다.

그들이 아직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단숨에 공격하는 게 유리했다.

“이놈들을 모두……!”

소축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

파앗!

그들보다 녹림야검의 검이 더 빨리 움직였다.

스걱-

날카로운 검강이 공마령인이 된 수하들의 몸을 가르며 지나갔다.

“커어억.”

공마령인의 신체는 금강불괴와 같은 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녹수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퍼어엉!!

뒤이어 인양이 움직였다.

그의 신법은 전광석화였다.

신법의 속도를 더한 인양의 일권은 공마령인의 앞에서 폭발했다.

공마령인의 얼굴 반이 무너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소축과 신의반은 당황했다.

공마령인이 너무 쉽게 당하고 있었다.

그 뒤로 수십 명이 한꺼번에 에워싸면서 달려들었지만, 근처에 가기도 전에 검강과 권강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부서졌다.

공마령인이 원래부터 약한 존재인지 헷갈렸다.

고진유와 묵경까지 합세하면서 공마령인들은 대존원에서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다.

‘하아…… 엄청나군.’

녹림대군 소소경은 입이 다물지 못했다. 그는 고진유와 유일하게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쩝…… 폐관을 더 했어도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야.’

그는 마음을 접었다.

“형님,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난 원래부터 걱정 안 했네. 무림맹주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렇긴 합니다.”

“보나마나 앞으로 화산도협의 시대가 열리겠군.”

고진유를 보는 그의 시선은 부러움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우린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고금제일인이 될지도 모르는 무인의 비무를 직접 보고 있을지도.’

스윽.

독영한이 앞으로 나섰다.

“다른 놈은 몰라도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지.”

“…….”

그는 소축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녹림대존, 본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흠, 극일천이 그동안 맹주와 그의 일행들에게 당한 이유를 알겠군.”

“뭐라?”

“너무 자만심이 강해. 극일천이 무림을 수백 년 동안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굳었어.”

독영한의 말이 맞았다.

극일천의 누구든 중원 무림은 약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싸움을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중원 무림을 너무 무시하고 있어. 그런데 이상하군…… 만일 내가 극일천이었다면, 당장에라도 무림을 쓸어 버렸을 텐데. 왜 아직도 몰래 처박혀 있는 거지?”

“…….”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나? 모른다면 내가 말해주지. 간단히 말해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영한의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그에 반해 소축은 인상을 쓰며 반박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우리가 무림에 나오지 않은 건 어차피 본 천에서 한꺼번에 무림을 전멸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천주께서 나서신다면 무림은 극일천의 발아래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런가? 자네 말대로 자신이 있다면 진작 당당하게 나왔어야지. 그대가 쓴 수법은 치사하군.”

“…….”

“쯧, 바로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인정하는군. 여하튼 네놈들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끝을 내도록 하자고.”

슈우우우욱-!!

독영한은 단전을 십이 성으로 개방했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해 내력을 개방한 적이 없었다.

적광기가 솟구치며 독영한의 전신을 감쌌다.

찌이이잉-

그의 손에 들린 천녹도의 도신이 흔들거리면서 도명이 울렸다.

“무림을 무시할 만큼 네놈의 무공이 강했으면 좋겠군.”

슈우우우우웅.

천녹도가 움직이자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소축을 향해 쏟아졌다.

펄럭펄럭.

도풍에 의해 그의 머리카락과 옷이 뒤로 바람에 날렸다.

팟팟팟팟-!!!

천녹도가 만들어낸 도풍은 바람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거대한 도강이 함께 다가왔다.

콰아아앙!!

소축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도강을 가볍게 막아냈다.

“제법 하는군.”

독영한은 한 수의 부딪힘으로 소축의 무공을 확인했다.

“강해. 오만할 정도로…….”

소축의 무공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는데 말이야.’

상대는 두 걸음밖에 밀려 나가지 않았다.

“녹림대존, 이게 전력을 다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대도 여전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중원 놈들과 다를 게 없다!”

우우우웅-

소축 또한 전신에 모든 힘을 개방했다. 그를 빠르게 상대한다면 녹림에서 충분히 물러날 수 있을 터.

그때, 독영한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싸움은 내력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거라면 중원은 이미 극일천의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진유의 전음.

‘그렇지. 내력이 높다고 해서 이기는 게 아니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력이 아닌 기세이다.’

녹림대존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수많은 싸움을 했다.

그들 중 자신보다 내력이 강한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들을 꺾고 당당히 녹림대존의 자리에 올라섰다.

“휴우…… 오랜만에 싸움을 하다 보니 예전 감각들을 잊고 있었다.”

독영한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퍼져 나왔다.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소소경과 채마현은 독영한의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보면서 안심이 되었다.

“마현, 오랜만에 형님께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예전 그분의 모습이십니다.”

타아앗-!!

독영한이 순간 앞으로 움직였다.

천녹도의 끝이 바닥을 닿은 채 그대로 밀고 달렸다.

파아앗!!!

소축의 아래에서 도강이 솟구쳤다.

“겨우 이 정도냐?!”

그는 양손을 앞으로 내리누르며 도강을 막아냈다.

휘리리릭!

그 순간, 독영한의 몸이 공중으로 긴 원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이건 어떨까?”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대로 천녹도와 함께 소축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우욱.’

소축은 재빨리 양손을 올려 천녹도을 막았다.

우우우우웅.

마치 내력의 대결인 듯, 두 사람은 그대로 멈춘 것처럼 보였다.

“크크크. 내력이라면 내가 더 강하다!!”

“멍청한 놈. 싸움은 내력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슈우우욱-

소축의 뒤로 도강이 다가왔다.

‘언제?’

달려오기 전에 도강을 먼저 펼쳐 놓은 듯했다.

피하지 않으면 부상을 당할 게 확실했다.

그는 재빨리 천녹도를 밀어냈지만,

“어…… 어…….”

천녹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소축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흡자결이다. 네놈이 너무 자신감이 강해서 상대가 무엇을 펼치는지 똑바로 보지 않았던 것이지.”

“이…… 놈……!!”

소축은 할 수 없이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도강을 막아냈다.

“우욱.”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계속 붙어 있을 수는 없다. 전력을 다해 떨어져야 해!’

그가 내력을 끌어 올린 순간,

휘익.

갑자기 팽팽하던 한쪽에서 힘이 사라지며 소축의 몸이 휘청거렸다.

독영한이 그의 앞에 섰다.

“봤느냐? 내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잠…… 깐…….”

“늦었어. 그만 잘 가라.”

스걱.

천녹도가 그의 목을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