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대존원 주위로 일백 명의 녹위대가 지키고 있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인영을 잡아내지 못했다.
녹검당주 채마현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진유의 기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륵.
대존원으로 들어서자 뒤에 나타난 기척을 느낀 그가 돌아섰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못하겠군.’
주군인 녹림대존 독영한도 얼마나 대단한가.
하지만 고진유는 달랐다.
그에게는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다.
볼 때마다 감탄만 나올 뿐, 당분간 무림맹주를 능가할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거라 확신할 정도였다.
“들어가시지요.”
“알…… 겠소이다.”
채마현이 앞장서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독영한은 기다린 듯 일어나 있었다.
“맹주, 어서 오시오.”
“기다리신 모양입니다.”
“후후, 당연하지 않겠소? 자리에 앉으시오.”
“고맙습니다.”
독영한과 고진유는 나란히 앉았다.
스윽.
고진유는 가지고 온 옥병을 그에게 내밀었다.
“해독제입니다.”
“이것이? 정말이오?”
독영한은 믿기지 않았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옥병.
그가 해독제를 가지고 오기를 기대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옥병 안에 들어 있는 다섯 개의 환단을 들여다보았다.
“다섯 알이군요.”
“하루에 세 번 복용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두 개는 예비용으로 넣었소이다.”
“지금 복용을 해도 되는 것이오?”
독영한은 해독제를 보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한 번 드셔 보십시오.”
“알겠소이다.”
독영한은 운기행공은 하기 위해 바로 바닥에 앉았다.
다른 인물이라면 몰라도 고진유라면 믿음이 갔다.
이미 고진유에게 몸을 맡기지 않았던가.
옥병에서 환단 한 알을 꺼낸 뒤 입에 넣고는 곧바로 운기를 시작했다.
쏴아아아-
해독제에서 나온 약효의 성분이 기항지부의 여덟 경맥을 따라 나누어 흩어졌다.
‘허어…… 엄청나다.’
독영한은 운기를 하면서 자신의 몸에 약효가 느껴지는 경우를 처음 경험했다.
온몸에 퍼져 있는 독기를 찾아내기 위해 전신의 몸을 샅샅이 뒤지는 환단의 약효에 대해 감탄이 나왔다.
약효가 팔맥을 따라 흐르면서 독기를 몰아낸 뒤 풍부혈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 안으로 들어간 뒤 최종적으로 독기를 하나씩 흡수하며 사라지게 만들었다.
슈우우우-
남아 있던 독기의 잔해들은 두정혈에서 회음을 지나 천문혈로 움직이면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고진유는 그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약효의 위력이 뛰어나.’
묵경의 말처럼 해독제를 만든 의원의 의술은 뛰어났다.
‘한번 만나보고 제갈 형님께 추천해 봐야겠어.’
약의전주의 자리에도 괜찮을지 몰랐다.
고진유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운기행공을 마친 독영한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후후.”
오랜만에 짓는 웃음.
예전처럼 몸이 가벼웠다.
몸이 가뿐해진 그는 기분이 좋았다.
굳이 나머지 두 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했다.
“맹주, 큰 도움을 받았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약효가 다행히 있는 듯하군요.”
“다행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외다.”
“잘됐습니다. 나중에 이것도 따로 포함해서 청구할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무림맹에서 귀한 약초들과 약재들을 가지고 왔거든요.”
“하하하! 맹주는 너무 밝히는 게 아니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알겠소이다. 충분히 만족할 정도로 보답하겠소이다.”
독영한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받은 만큼 주면 되는 일.
서로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진유의 뜻을 알았다.
“주군,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채 당주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
“다행이십니다.”
채마현도 마음이 놓였다.
중독된 그를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만일 그가 이대로 독살을 당한다면 녹림은 물론, 사파 무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었다.
“맹주, 녹림의 일은 이젠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겠소이다. 괜찮겠소이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고진유는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을 했다.
이제 무림맹주가 녹림에서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녹림에 온 목적은 해결이 되었으니, 나머지 마무리는 그들이 직접 해결해야 될 문제였다.
“그동안 알아낸 사실에 대해서는 채 당주께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알겠소이다.”
녹림대존의 적광기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 * *
녹정당주 만금원의 표정이 심각했다.
향을 구매하기 위해 내려갔던 수하들의 전서를 받았다.
‘젊은 놈이 독향을 구하러 다닌다고?’
그는 머리가 아팠다.
독향의 존재는 자신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미치겠군. 대체 어디서 독향일이 알려졌는지 모르겠어.’
정확한 사실을 알려면 최대한 빨리 독향을 구하러 다닌다는 젊은 사내를 잡아야 했다.
만일 그 소문이 녹림대존에게까지 흘러간다면 피곤해질 수 있었다.
녹정당 소속의 녹림도들을 마을로 내려 보냈다.
‘조만간…… 연락이 오겠지.’
만금원은 머리가 찌근거리는 탓에 검미에 손가락을 대며 눈을 감았다.
걱정 때문에 어제저녁 잠을 자지 못했다.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쳐들어와서 잡혀가는 꿈을 꾼 탓도 있었다.
‘젠장, 기분 나쁜 꿈이었어.’
다행히 꿈은 실제와 반대라고 하니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나았다.
그때, 문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주님, 녹의당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녹의당주가?’
그가 찾아온 것을 봐서는 같은 이유인 듯 보았다.
“안으로 모시게.”
드르르륵.
문을 열고 녹의당주 한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시구려.”
한초는 조용히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었소이까?”
“그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소이다.”
“여러 가지라는 게 향에 관한 문제가 아니오?”
“맞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상의할 게 있어 왔소이다.”
“음…… 잠시만…….”
만금원은 서로 말을 꺼내기 전에 주위를 살폈다.
비록 녹정당이라고 하나 주위에 어떠한 시선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했다.
만금원은 그를 보며 물었다.
“한 당주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그자를 찾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소이다.”
“더 시급한 일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우리의 목표.”
“…….”
두 사람의 목표.
그건 녹림대존 독영한의 죽음이었다.
만금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그를 치자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혹시나 때를 놓치게 된다면 긴 시간 동안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지 않겠소이까?”
“……”
한초의 말이 맞았다.
다른 일에 신경을 쓰다가 잘못된다면 지금까지의 긴 시간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었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소이다. 만일 독향을 찾던 사내가 녹림대존이 보낸 인물이라면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당할지도 모를 일이외다.”
“음…… 알겠소이다. 당주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한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에 들어온 목적을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언제 움직일 것이오?”
“만 당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끝을 내는 게 좋겠소이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쿵쿵.
만금원은 그의 말을 들은 뒤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녹림대존을 치는 일이었다.
‘그를 죽인다라…….’
“녹정당과 녹위대에서 오늘 야밤에 대존원으로 가 그를 칠 것이외다. 당주께서 그들을 이끌고 가야겠소이다.”
“……당연한 일이지 않소. 역사적인 날에 어찌 보고만 있겠소이까. 본인이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지요.”
“후후후. 드디어 때가 왔군요. 녹림에서 보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이다.”
한초의 눈가에 살기가 올라왔다.
* * *
천자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짙어졌다.
샷샷샷샷-
녹정당 밖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무리들.
비밀스러운 그들의 움직임이 녹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윽.
녹림야검이 그들이 사라진 뒤 모습을 드러냈다.
‘똥줄이 탄 모양이군.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어. 하긴 어쩔 수 없었겠지.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잘못될 수 있다고 여겼을 테니깐.’
“그렇다면 나도 정리를 해볼까?”
휘이익!
녹림야검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녹의당은 불이 켜져 있었다.
한초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렸다.
반시진이 지나면 녹림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었다.
녹림대존의 무공은 강하다.
하지만 녹천 대존원으로 가는 그들의 무공 정도면, 독향에 중독된 녹림대존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녹천에서 그를 도와줄 세력은 없다.
오직 당사자인 그밖에 없을 테니까.
녹림대존을 호위하는 녹위대 또한 이미 완벽하게 포섭했다.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드르르륵-
그때, 당주실의 문이 열렸다.
‘기척이 없었다. 누구지?’
한초는 다급히 뒤를 돌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목옆으로 검상이 보였다.
“혹시…….”
“맞다. 녹림야검.”
“……!”
녹림야검이 확실했다.
그는 녹검당 소속이었던 살수였다.
무림맹주가 그를 잡고 녹림에게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녹림대군까지 나섰다가 폐관에 들어서게 만든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했다.
“당신이…… 여기에는……?”
“내가 왜 왔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
한초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내 정체를 알았다고?’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부에 나가 있던 녹림야검이었다.
녹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야 하는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스윽.
한초는 소매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잠깐. 거기까지.”
“…….”
녹림야검의 목소리에 손이 멈췄다. 아니, 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살기 짙은 녹수검이 어느새 목 앞에 닿아 있었다.
“천천히 손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군. 목이 잘리기 전에.”
“…….”
한초는 소매를 잡으려고 했던 손을 내렸다.
“왜…… 이러시오?”
“꼭 내 입으로 극일천의 간자라고 불러줘야 하나?”
“무슨……! 증거가 있소?”
“그건 걱정하지 마라. 얼마든지 찾아내면 있을 테니.”
픽픽픽.
녹림야검은 빠르게 그가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점혈을 했다.
“컥.”
한초는 두 팔이 굳어지면서 의자 아래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쯧, 당신도 참으로 재수가 없군. 하필이면 무림맹주에게 걸릴 게 뭐람.”
‘무림맹주?’
분명 그의 입에서 무림맹주란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녹림에 무림맹주가 있다는 말이오?”
“그렇다고 봐야겠지.”
“허어……!”
극일천 최대의 적.
잡혀 있는 신세임에도 무림맹주 고진유가 녹림을 도와준다는 사실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당신들의 모든 계획은 탄로 났다. 배신의 결과에 대한 죗값은 나중에 받을 테지. 지금은 바쁘니 기절하고 있도록.”
빠아악!
녹림야검은 한초의 뒷덜미를 강하게 내리치고는, 곧바로 바닥에 정신을 잃은 그를 업었다.
한편 녹정당 사내들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녹천으로 들어섰다.
스윽.
대존원을 호위하던 녹위대주 신의반이 안으로 들어선 녹정당주 만금원을 맞이했다.
“오셨소이까?”
“신 대주, 그는 안에 있소?”
“그렇소이다.”
“최대한 빨리 끝을 내는 게 좋겠소.”
“알겠소이다. 이번 일은 본인이 앞장을 서겠소이다.”
구우우웅-
신의반은 녹위대와 함께 문 앞에 섰다.
‘녹림대존, 미안하게 됐소이다. 이게 전부 당신의 잘못이외다.’
독영한이 사파의 수장이 된 후, 신의반은 그가 정파와 중원무림을 두고 호기롭게 싸울 줄 알았다.
하니 녹림대존은 정파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을 택하는 듯 보였다.
신의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녹림대존, 그가 나섰다면 진작 중원은 사파천하가 됐을 수도 있었다.
녹림에서 할 일 없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불만이 쌓여갈 때 그가 찾아왔다.
시간을 보내면서 녹정당주 만금원의 생각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그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 대주, 혹시 극일천이란 곳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곳이 어디입니까?”
“극일천은 조만간 정파 무림을 몰아낼 것이라네.”
“……!”
“그리고 사파와 마도까지. 멋지지 않은가?”
그가 극일천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미 중원 무림의 많은 곳에 그들의 세력이 숨어 있다고 했다.
“어떤가. 함께 하겠는가? 자네가 원한다면 함께하세나.”
척척.
신의반은 선두에서 걸었다.
자신이 죽여야 할 인물은 지금 중독된 상태이니 완벽한 내력을 끌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녹림대존, 마지막은 내 손으로 끝을 내겠소.’
곧 대존원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신의반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추며 크게 호흡을 했다.
스윽.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면 안에 녹림대존이 있을 것이었다.
드르르륵-
“……!”
정면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녹림대존이, 그 옆으로 선 두 명의 중년 사내가 노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 들은…….’
폐관에 들어선 녹림대군 소소경과 녹검당주 채마현이었다.
‘언제…… 나왔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소소경의 노여움이 터져 나왔다.
“신의반, 이노오오오옴!!!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