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툭.
그때, 열 명의 사내들이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인양의 어깨를 건드렸다.
피하고자 해도 피할 틈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화를 내려는 순간, 상대가 먼저 소리를 높였다.
“뭐야?”
그들 중 한 명이 인상을 쓰며 인양을 노려보았다.
‘어휴, 내가 참아야지.’
인양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린놈이…… 똑바로 해!”
“네에…… 알겠습니다.”
인양은 고개를 숙이는 사이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아, 녹림도들 같은데…… 녹정당 소속인가?”
녹림에서 향을 구매하는 부서가 녹정당이라 들었다.
‘우선 묵경 형을 만나서 향에 대해 알려줘야겠네.’
가게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는 주인장을 보았다.
“어허. 무엇이 즐겁소?”
“아, 오셨습니까?”
주인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떤 멍청한 녀석에게 덤터기를 씌웠습니다.”
“잘했구려.”
“젊은 놈이라 제대로 가격도 모르더군요.”
“허? 혹시 우리들에게도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오?”
“아, 아닙니다요! 제가 어떻게 단골손님들께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는 손을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우리 물건이나 가지고 오쇼.”
“넵.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기다리는 동안 차 한잔들 하고 계십시오. 조만간 물건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차는 됐고 술이나 있으면 주게.”
“이른 시간인데…… 괜찮겠습니까?”
“어허, 또 그런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가지고 오게.”
“알겠습니다.”
사내들은 물건보다는 술자리를 더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술이 준비되자, 모두 빠르게 술잔을 채운 뒤 한 잔씩 마셨다.
“커억. 역시 술은 낮술이 최고지.”
“삼조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근무 중에 걸치는 술맛도 최고이지 않습니까?”
“크크크. 그 말이 맞다.”
사내들은 한 잔씩 비운 뒤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기 시작했다.
삼조장 둔유가 술을 따르는 주인장을 보며 물었다.
“아까 덤터기를 씌웠다고 했는데 우리가 오기 전에 나간 놈이 맞소?”
“네. 그렇습니다. 우리 가게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도 당한 모양이더군요.”
“진짜 멍청한 놈이군.”
“바보 같은 놈이 인회석이 든 향을 아무것도 모르고 가지고 오더니, 좋은 물건이라면서 같은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몸에 얼마나 나쁜 것인지 모르는 멍청한 놈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
삼조장 둔유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인회석이 든 향이라 했소?”
“그렇습니다.”
“그 물건을 어디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 했소?”
주인장은 점점 심각하게 물어보는 그를 보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게…… 그것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삼조장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잠시 다녀오겠다.”
“에…… 알겠습니다요…….”
사내들이 밖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 * *
묵경은 성심원의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완전 생각 이상인데?’
의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건물이 컸다.
‘마을 주민들이 의술은 정말 뛰어나다고 했었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특히 성심원의 원장 주국의 의술에 관해서는 인정했다.
멀리서도 제법 명성이 높은 의원이라면서.
다만 그럼에도 그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돈을 상당히 밝히기 때문이라고.
성심원으로 들어서자 성심원 총관 백의중년인이 묵경의 앞으로 다가섰다.
“어떻게 오셨소이까?”
“의원을 만나고자 왔소.”
“성심원에 의원이 한두 명밖에 없는 줄 아오? 정확히 열두 명의 의원이 있소이다.”
“그렇게 많소?”
“허허. 젊은 사람이 얼굴은 잘생겼는데 멍청하구려. 성심원에 왔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큰 의원인지 미리 확인부터 하고 오는 게 아니오? 어떻게 왔소이까?”
“아, 그러니까 의원을 만나고자…….”
“어허, 그렇게 말을 했건만 또. 어디가 아파서 온 것이냐고 묻는 것이외다.”
“난 또. 본인은 아파서 온 게 아니라 이곳 성심원의 원장을 뵙고자 왔소이다.”
“크흠, 원장님을 직접 뵙고자 한다면…….”
백의중년인의 목소리의 끝이 흐려졌다. 노골적으로 무언가 바라는 모습에 묵경은 속으로 픽 웃었다.
“손바닥을 펴 보시오.”
“…….”
스윽.
백의중년인이 고개를 숙여 손바닥을 보았다. 묵경이 올려다 놓은 금전 한 냥이 있었다.
휘리릭.
그의 동작은 빨랐다. 손바닥에 있던 금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하하! 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님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이다.”
묵경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황금이 좋았다.
적당히 밝히는 것도 좋았다.
세상은 너무 깨끗하게 지내도 피곤하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듯 적당하게 더러워야 잘살 수 있었다.
‘저 사람도 적당한 선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 중이구먼.’
킥킥 웃으며 묵경은 백의중년인을 따라 성심원의 가장 깊은 건물로 들어갔다.
원장실에 들어서자, 성심원의 주인이자 원장인 주국이 그를 맞이했다.
마른 몸매에 얼굴도 야윈 듯 가냘프게 보였다.
“공자께서는 무슨 일로 본 의원을 찾아오셨소이까? 보아하니 어디 아픈 곳은 없어 보이는군요.”
“맞습니다.”
“진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공짜는 아니외다.”
“알고 있소이다.”
“안다니 다행이군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시구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한번 봐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물건이라…… 어디 보여주시오.”
묵경은 품 안에 있는 향을 꺼냈다.
“그건 향이 아니오?”
“맞소이다.”
의원에게 물을 정도의 향이라면 일반 물건은 아닐 것이었다.
주국은 향을 받은 뒤 냄새를 맡았다.
바로 인상이 바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좋은 물건이 아니군요.”
“무엇인지 아시겠소이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소이다. 말해보시오.”
“돈이 문제가 아니오.”
“음……? 돈을 좀 밝히신다고 하던데.”
“후후, 그건 보통 치료에 관한 일이오. 돈이 많거나 적은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 조금 부담이 되도록 받고 있소. 그렇게 해야 몸을 헤프게 사용하지 않을 게 아니오? 하지만 이번 일은 치료가 아니지 않소이까?”
‘들은 소문과는 다른 인물이군.’
묵경은 오호라? 하는 표정을 짓고는 그에게 물었다.
“본인에게 무엇이 궁금하시오?”
“그대는 무림인이오?”
“그렇소이다.”
주국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눈앞에 찾아온 사내가 보여준 향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단번에 독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의원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들 중 하나가 무림인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일에 휩쓸리는 것이었다.
스윽.
그는 다시 향을 묵경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미안하지만 본인은 관여하지 않겠소이다.”
“하하, 실력이 뛰어나군요. 알겠소이다. 괜히 위험을 무릅쓰고 관여할 필요가 없지요. 이해합니다. 의원이라도 목숨은 하나가 아닙니까.”
“…….”
주국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를 보았다.
협박이나 무력으로 윽박지르는 여느 무림인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아, 소개를 안 했군요. 묵경이라 하외다.”
“……!”
그는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중원에서 최근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임을 알아보았다.
“그대가 풍류옥협이시오?”
“그렇소이다. 본인이외다.”
무림맹주이자 화산도협의 의형이 바로 그였다.
정말 보통의 무림인이 아니었다.
만일 이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다면 어려운 일도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잠깐만. 잠깐 앉으시지요.”
묵경은 다시 그의 앞으로 앉았다.
“방금 그 물건이 중요한 일입니까?”
“그렇소이다. 상당히 심각한 일이라 할 수 있지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독향에 중독이 된 상태겠군요.”
“맞소이다.”
“본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해독할 수 있겠소이까?”
“음…….”
“어렵다는 것이오?”
주국은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독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한데 본원에는 해독할 수 있는 중요한 약재들이 없지요. 귀한 것들이라 바로 구하기가 힘듭니다.”
“혹시 필요하거나 모자란 약초, 약재들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세요. 그건 우리가 구해보도록 하겠소이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충분히 해독제를 만들 수 있소이다.”
“알겠소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본인이 누구인지 비밀로 하면 좋겠소이다.”
“그렇게 하지요.”
주국은 종이 위에 해독제에 필요한 약초와 약재들을 적어 내려갔다.
* * *
묵경은 대둔객잔으로 들어섰다.
휙휙!
인양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묵경이 그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떻게 됐어?”
“우선 향을 파는 곳은 제가 보기에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독향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했어요. 근데…….”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밖으로 나오다가 녹정당 소속의 인물들을 만났어요.”
“향을 구매하려고 온 모양이군?”
“그런 것 같아요.”
“한데 이 주위를 맴도는 걸 보니 향을 구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 본데?”
“독향에 대해서 가게 주인장이 이야기를 꺼냈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는 곧바로 나를 따라올 리 없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저놈들이 수상하다는 뜻이구만.”
“일단 여기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저놈들의 배후가 누구인지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독제를 만들 동안은 조용히 지내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숨도록 하죠.”
휘익!
인양과 묵경의 신형이 객잔에서 사라졌다.
객잔 밖에서 인양을 주시하던 삼조장 둔유는 아직 그들이 사라진 줄 모르고 있었다.
안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던 수하가 나왔다.
“삼조장님, 그놈이 사라졌습니다.”
“뭣이라고?”
객잔의 입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입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체 이놈이 언제 사라졌지?’
자신들이 숨어 있는 걸 알아차렸을 리가 없는데.
둔유는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며 일어났다.
독향의 존재를 아는 인물.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당주님께 빨리 보고를 해야겠군.”
둔유는 수하들을 부른 뒤 녹림으로 보낼 전서를 급하게 띄웠다.
* * *
제갈양에게 전서를 보낸 묵경과 인양은 마을에서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약초와 약재들을 기다렸다.
삼 일째 되는 아침 일찍 물건이 비밀리에 도착했다.
앞뒤 내용도 없이 필요한 약재만 적어 보낸 전서였지만, 충분한 양이었다.
두 사람은 무림맹에서 도착한 약초와 약재를 가지고 성심원으로 향했다.
스르륵.
어둠이 짙은 시간에 원장실로 향하는 두 명의 그림자가 바람을 스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일어나시오.”
묵경은 침상에서 자고 있는 주국을 깨웠다.
“허억!”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놀랐소이까?”
“…….”
또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국은 겨우 안정을 취하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방에는 그뿐만 아니라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본인의 의동생이오.”
“인양입니다.”
“의제…… 권협이시군요.”
무림맹주 고진유의 형제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었다.
이들과 친분을 가진다는 것은 무림맹주와 친분을 지닌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의원을 하면서 무인 때문에 걸림돌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주국은 상의를 걸치며 인양에게도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주 원장,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비밀을 유지해야 해서 말이외다.”
“괜찮소이다. 언제든지 찾아와도 됩니다.”
“자, 이것을 받으시오. 주 원장께서 해독제를 제조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던 약초와 약재들이외다.”
인양이 탁자 위에서 천을 풀었다.
‘이 약향은…… 천년하수오?’
겨우 삼 일 만에 찾아서 가지고 올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것들을…… 어디에서 가지고 오셨습니까?”
천년하수오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도 개인적으로 구하고 싶었다.
“무림맹에서 가지고 왔소이다.”
“…….”
무림맹 약의전에 가면 세상에서 보기 힘든 귀한 약재들이 많다는 소문을 그도 들었다.
“이것들이라면 충분히 해독제를 만들 수 있겠소이다.”
“언제쯤 되겠소이까?”
“급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시작해서……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는 만들 수 있겠습니다.”
“오호, 꼭 좀 부탁하겠소이다.”
* * *
녹림야검과 함께 묵경이 녹검당으로 들어섰다.
묵경은 녹림을 내려간 지 사흘 만에 혼자 돌아왔다.
인양은 마을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형, 수고했어요.”
“내가 한 건 없어. 성심원장 실력이 좋더라.”
“그런가요?”
“향을 단번에 보더니 독향이라는 것을 알아내던걸. 그리고 바로 필요한 약재와 약초들이 있으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무림맹에 부탁해서 바로 받았어.”
“잘했어요.”
묵경은 옥병을 꺼냈다.
“해독제인가요?”
고진유는 그에게서 해독제를 받았다.
옥병 안에 다섯 개의 환단이 들어 있었다.
“하루에 세 개를 복용하면 완전히 나을 거라고 했어. 두 개는 혹시나 해서 더 만들었다고 하더군.”
“수고하셨어요.”
“아, 그리고 인양은 아직 녹정당의 그 녀석들을 감시하고 있어. 나도 내일 일찍 내려가 보도록 할게.”
“네. 녹림대존께서 해독이 되면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채 당주님, 가시지요.”
“아, 알겠소이다!”
채마현은 고진유와 함께 급히 대존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