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채마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녹위대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존원으로 들어서자 그의 뒤로 네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하다.’
네 사람은 그가 신의반 앞에서 투기를 내뿜는 순간, 녹위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다.
“녹림대존께 우리가 왔음을 알려주세요.”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채마현은 홀로 그의 침실로 다가섰다.
독영한은 이미 깨어 있었다.
대존원 안은 호위조차 세우지 않았다.
녹천에 들어올 정도면 호위를 세운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그는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다섯 명. 그중 한 명은 녹검당주군. 설마…….’
독영한은 그가 늦은 시간에 찾아온 이유에 대해 오해했다.
‘나를 죽이기 위해 외부인을 데리고 온 것인가?’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침상 옆에 두었던 천녹도를 찾았다.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채마현입니다. 귀빈들께서 오셨습니다.”
‘귀빈들?’
독영한은 손에 들었던 천녹도를 내려놓았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알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닌가? 그럼 이 시간에 왜?’
대체 누구이기에 늦은 시간에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인지 궁금했다.
술시부터 인시까지는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채마현이 아니던가.
드르륵.
그는 장포를 대충 두른 채 문을 열었다.
채마현과 함께 들어선 네 명의 인물들. 그들 중 한 명은 안면이 있었다.
“녹림야검?”
척.
녹림야검은 한 걸음 다가서며 자리에서 부복을 했다.
“녹림대존님을 뵙습니다.”
“맞군.”
녹림야검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다만 예전의 그와 너무 달라져 녹림야검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일어나라.”
“네.”
독영한은 그와 함께 온 세 명의 사내들을 보며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가장 잘생긴 사내.
어린 친구 한 명.
마지막으로 무한의 내기를 보여주는 젊은 청년.
“이거…… 참. 무림맹주와 친협이 녹림에 오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어쨌든 반갑소. 잘 오셨소이다.”
그는 입가에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고진유는 포권을 했다.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오.”
독영한은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누추한 곳이지만 자리에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는 세 명을 유심히 보았다.
채마현과 함께 선 녹림야검을 가리켰다.
“자네도 앉지?”
“아닙니다. 서 있겠습니다.”
“편할 대로 하게.”
독영한은 다시 고진유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체 무슨 일로 무림맹주께서 먼 녹림까지 왕래하셨소이까?”
“소문에 중독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그 소문이 무림맹주의 귀에 들어갔소이까?”
그는 옆에 선 채마현을 보았다. 눈빛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듯했다.
“그게…….”
“본도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진유는 녹림에 오게 된 이유, 이릉채에 들른 후 일어난 사건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주었다.
피식.
“멍청한 놈들이 결국 사고를 치는군.”
독영한은 웃음을 짓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채마현이 중간에 나섰다.
“무림맹주께서 도움을 주셔서 다행입니다. 오늘 또한 주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고마운 일이군. 하지만 본인은 사파의 지존이오. 정파에서 관여할 일이 아닐 텐데. 맹주, 그렇지 않소?”
“녹림의 일이라면 관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방금 하신 말대로 사파의 지존이기에 관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무엇이오?”
“사파의 분열을 막고 싶을 뿐입니다.”
“…….”
고진유가 말한 사파의 분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녹림대존은 여전히 관계가 없다는 듯 말했다.
“사파가 분열된다고 한들 정파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지 않소? 오히려 더 좋아할 일이 아니오?”
“……녹림대존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귀찮긴 해도 사파가 뿔뿔이 흩어진다면 본도에게도 좋습니다.”
“그대에게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이오?”
“무림맹의 힘으로 쉽게 정리할 수 있겠지요.”
“사파를 공격하겠다는 것이오?”
“녹림대존께서는 사파가 분열되어도 방조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정파에 불이익을 주는 곳이라면 본도가 직접 나설 것입니다. 맹주가 되어보니 사파의 수도 생각보다 많더군요.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정리하는 것도 좋을 듯싶기도 합니다.”
“…….”
무림맹주 고진유가 직접 나서겠다는 말에 독영한은 황당했다.
“처음부터 사파와 별로 공존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아니오?”
“공존이란 서로의 뜻이 비슷해야 가능한 게 아닙니까. 사파지존의 뜻이 다른데 정파에서 따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맹주, 이거 무서워서 살겠소이까. 알겠소이다. 본인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오?”
“채 당주의 말을 들으니 아직도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렇소. 녹의당에서도 전혀 모르고 있소.”
“녹의당?”
“무림맹의 약의전과 같은 곳이오.”
“녹의당에 의원이 없는 모양이군요.”
“흐음. 정파는 늘 사파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더이다. 무림맹의 약의전 못지않소.”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중독이 된 상태라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녹의당주가 말하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이라 했소.”
“그렇군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이라면…… 녹의당주가 그런 말을 했다면 찾아내기 힘들겠군요.”
고진유는 믿기지 않았다.
사파의 지존이라는 녹림에서 당주급의 의원이라면 실력도 뛰어날 게 분명했다.
그런 의원이 일반인도 아닌 사파지존의 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정말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독이라면 모를 수 있다.
정말로 녹의당주의 말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제가 한번 몸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
무인의 경우 상대에게 몸을 맡기는 건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았다.
더구나 내력이 강한 인물에게는 더욱더 위험한 행동.
“……알겠소. 맹주가 알아서 하시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손을 주십시오.”
“여기 있네.”
그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진유는 그의 손을 통해 미세한 진기를 밀어 넣은 뒤 혈맥을 따라 몸속의 독기를 살폈다.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나갔다.
몸 내부에는 독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안 보이는데? 정말로 중독된 거 맞아?’
고진유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고독이 생각났다.
‘아…… 머릿속에 독이 있을 수도.’
진기를 조심하게 움직이며 백회혈로 올라섰다.
그때였다.
‘찾았다.’
숨을 죽인 채 모여 있는 탁한 기.
그건 독기가 분명했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머리 한편에 모여 뭉쳐 있었다.
그런데 독기의 성질이 가벼웠다.
‘이 정도면…… 액체는 아닌데?’
액체보다 가볍다는 것은 독의 성질이 기체라는 뜻.
스윽.
고진유는 손을 놓고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채마현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물었다.
“무림맹주님, 어떻습니까?”
“찾아냈습니다.”
그의 눈이 커지면서 고진유를 다급히 불렀다.
“맹주님! 정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범인이 녹림대존을 어떻게 중독시켰는지 알아냈소이다.”
‘정말로 알았단 말인가?’
독영한은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누구도 중독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다.
‘대단하군. 겨우 한 번 만에 내 몸에서 중독된 원인을 알아내다니.’
그에 관해 중원에서 들려온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대단한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맹주, 본인이 어떻게 중독이 된 것이오?”
“녹림대존의 몸에 중독을 시킨 독의 성질은 기(氣)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독영한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독약은 액(液)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독가루는 고(固)라 할 수 있습니다.”
“맹주의 말은 독약과 독가루가 아니라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녹림대존을 중독시킨 것은…… 연기와 같은 가벼운 기체라 할 수 있지요. 독향 같은 것입니다.”
“……!”
독영한은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맹주, 본인을 잠시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 침실을 나선 뒤 위패가 모신 사당으로 들어갔다.
독영한은 곧장 향을 피웠다.
어두운 사당에 작은 불꽃이 일어나며 향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혹시 독향이라는 게 이것이오?”
고진유는 향을 맡았다.
매화진기가 코 안으로 들어온 향을 밀어냈다.
‘이 정도의 향을 맡는다고 해도 몸에는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아. 하지만 아주 긴 세월이라면…… 다르다.’
스윽.
고진유는 향의 끝을 누르며 껐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예를 지냈습니까?”
“본인이 녹림대존으로 올라선 뒤부터요.”
“답은 나왔습니다. 여기 향을 누가 가져다 놓았습니까?”
“녹위대에서 향을 받아 오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설마 녹위대에서?”
“그건 확신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정확히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 것인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척.
독영한은 돌아서며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맹주, 고맙소이다. 이제야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것 같소.”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따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혹시 황금을 요구하는 게요?”
“녹림대존께서 눈치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이미 녹림야검을 가지고 한밑천 뽑고자 하지 않았소이까? 이번에는 본인의 생명을 가졌으니 녹림을 기둥째 뽑고자 하는 것 같소이다.”
“하하, 녹림대존의 목숨값이 녹림의 기둥 정도로 되겠습니까? 통째로 얻어야지요.”
“…….”
독영한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눈빛을 봐서는 농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허어. 이 녀석…… 통이 엄청나구나.’
약관을 넘어선 나이에 이 정도의 그릇을 지닌 인물이 무림사에 누가 있었던가.
기억에 없었다.
“맹주, 그건 나중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시지요. 우선 완벽하게 치료는 하지 못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완화하도록 조치를 하겠습니다. 돌아서서 앉으시지요.”
“맘대로 하시오.”
스윽.
독영한은 등 뒤로 밀려오는 진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 *
녹림야검이 어제 하루 찾아낸 결과에 대해 보고했다.
“위패를 모신 사당까지 향을 가지고 오는 손길은 총 다섯 명입니다.”
“어떤 자들이지요?”
“장가계 무릉원의 상가에서 녹정당 소속의 인물이 향을 매입합니다. 그리고 그 향을 녹의당의 비약부에서 확인한 후 녹의당주가 녹위대주에게 직접 전달을 하는 것으로 알아냈습니다.”
“어디에서 독향을 가지고 오는지 다섯 명을 전부 확인해야겠군요.”
채마현은 고진유의 말에 대답했다.
“그들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붙여 놓겠습니다.”
“너무 다급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그들이 알게 되어 그대로 숨어 버릴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주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고진유는 사당에서 들고 온 향을 묵경에게 건네주었다.
“묵경 형은 인양과 함께 이걸 가지고 마을에 내려갔다 오세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녹림에서 거래하는 가게에 가서 향에 대해 한 번 물어보세요.”
“음…… 알겠어.”
“그리고 의원을 찾아가서 독향의 성분이 무엇인지 알아봐 주세요. 어떤 성분인지 알면 해독할 수 있을 겁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내려갈까?”
“녹검 씨가 길 안내를 해줄 겁니다.”
“넵. 알겠습니다.”
* * *
묵경과 인양은 녹림궁을 내려갔다.
그들의 손에는 사당에 있던 향이 들려 있었다.
마을에 내려온 두 사람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로 했다.
“인양아, 넌 이걸 팔았다는 상가에 가서 향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 난 의원을 만나보마.”
“알겠어요.”
인양과 묵경은 나중에 따로 만날 장소를 정한 뒤 헤어졌다.
무릉상점.
‘여기서 향을 판다고 했지?’
인양은 사람들에게 물어 가게를 찾아왔다.
“어서 오시오!”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중년 사내가 인사를 하고는, 팔자 모양의 콧수염이 꿈틀거리면서 젊은 사내의 모습을 빠르게 살폈다.
“어떻게 왔는가?”
스윽.
인양은 손에 들고 있던 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향이 필요한데 이것과 비슷한 게 있습니까?”
“이리 줘보게.”
중년 사내는 향을 받은 뒤 냄새를 맡았다.
“흥. 완전 쓰레기이구만. 우리 집에서는 이런 걸 사용 안 해.”
“안 좋은 제품입니까?”
“당연하지. 이건 하품 중에서도 하품이다. 이런 걸 어디서 만드는지 몰라.”
“아…… 몰랐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이 이걸로만 사당에서 사용하시기에 좋은 물건인 줄 알았습니다.”
“허어, 미쳤군. 완전히 정신이 돌지 않고서는 이것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안 돼.”
“왜 그렇습니까?”
“…….”
중년 사내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인양을 째려보다 향을 혀에 가져다 댔다.
“퉷, 이건 인회석으로 만든 거야. 물론 한두 번은 몸에 이상이 없을 정도지만.”
“인회석이요? 그게 무엇입니까?”
“불에 타면 인(燐)이 나오게 되지. 인은 뭔지는 알지?”
“아! 네에.”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몰라도 더러운 놈이구만. 이런 놈들 때문에 선량하게 장사하는 우리들이 욕을 들어먹는다니깐.”
“맞습니다.”
“우리 가게에는 좋은 것들이 많아. 어떻게, 보여줄까?”
“네. 최고급으로 보여주세요.”
“그래? 조금 비쌀 텐데?”
“괜찮습니다. 좋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당연히 그냥 갈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맞네. 자네는 예를 잘 아는 친구구만. 잠시만 기다리게나. 안에서 가지고 오겠네.”
가게 주인은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인양은 향을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기다렸다.
잠시 뒤, 사내가 손에 향을 들고 달려 나왔다.
“얼마나 줄까?”
“가지고 온 것 전부 주세요.”
“이걸 모두?”
“얼마인가요?”
“황금…… 한 냥…….”
스윽.
인양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금 한 냥이 놓여 있었다.
“아 참, 그럼 혹시 제가 들고 온 향을 누가 만들었는지도 아십니까?”
“양심이 있는 놈이라면 절대로 만들지 않지.”
“그렇군요. 정말 양심이 없는 놈인 것 같습니다.”
인양은 향을 받은 뒤 유유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