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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29화 (229/425)

229화

녹림대존이 중독되었을 거란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이건 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여느 사파의 인물과는 달랐다.

녹림대존은 현 사파의 지존이었다.

그의 죽음은 사파 무림의 혼란을 충분히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몇십 년 동안 사파 무림이 조용한 이유는 강력한 녹림대존의 힘 때문이니까.

그런 인물이 죽는다면…….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훤히 보였다.

“묵경 형,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되겠죠?”

“당연히 막아야지. 그가 죽는다면 사파는 무조건 다시 흩어져. 사파인들이 중원 사방으로 날뛰게 될수록 물론 정파도 시끄러워지게 될 거야.”

“극일천에서 이것을 노린 걸지도 모르겠군요.”

“아마도…….”

자신들은 이미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다.

문제는 녹림대존이 중독을 당한 게 맞는지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이 문제는 직접 그의 몸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말이 맞는지 보려면 녹림에 가야 한다는 말이군요.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녹검 씨, 당장 움직이도록 하죠.”

“넵. 알겠습니다.”

형주로 가는 일은 잠시 미뤄야만 했다.

하지만 녹림으로 가기 전에 마무리 지을 일이 있었다.

“녹검 씨, 녹림으로 가기 전에 우리 일이 알려지지 않도록 단속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고개를 숙였다.

비밀리에 녹림으로 움직여야 했다.

만일 녹림대존을 중독시킨 인물의 귀에 들어간다면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이릉채주.”

“넵. 말씀하십시오.”

녹림야검의 살기에 이릉채주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

“똑바로 들어라. 오늘 여기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녹림의 일이 정리되기 전까지 외부로 흘러나가면 안 된다. 만약 수하 중 한 명이라도 내 뜻을 어겨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내가 약속하건대 이곳은 무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알겠나?”

“네엡!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놈도 빠짐없이 똑바로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채주를 믿고 가겠다.”

* * *

이릉채에서 나온 뒤, 녹림야검은 앞장서서 녹림 총본산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비밀리에 움직이려면 기마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일행은 힘들어도 신법을 펼치며 장거리를 움직였다. 자신들이 녹림으로 가는 것을 극일천에서 몰라야 했다.

녹림의 총본산은 호남 장가계의 천자산이라 알려져 있었지만, 누구든 녹림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된 천하의 요새이기에 하늘을 날지 않고서는 비밀리에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녹림교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절대로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녹림궁이었다.

녹림대존의 거처 녹천의 대존원으로 가는 녹검당주 채마현의 걸음은 무거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 발생했다.

범인을 찾고자 했지만 의심스러운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스윽.

녹천녹위대주 신의반은 대존원에 들어선 그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신 대주가 직접 호위를 서고 있군.”

“긴급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긴급한 상황이지. 개미 한 마리조차 대존께 다가서지 못하도록 부탁하겠네.”

“염려 마십시오.”

채마현은 그를 뒤로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복도를 지나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구우우웅-

거대한 문이 좌우로 열리며 녹림대좌에 앉은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아닌 듯하지만…….’

예전이었다면 녹림대존 독영한의 독문 적광기가 녹천을 밝혔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적광기의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스윽.

채마현은 그의 앞으로 다가선 뒤 부복했다.

“녹림대존님을 뵙습니다.”

“채 당주, 왔는가?”

“몸은…… 어떠하십니까?”

“훗. 이 정도 독으로 본존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슈우욱.

녹림대존 독영한은 내력을 끌어 올렸다.

“…….”

채마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적광기가 미세하게 흩어지는 것을 알았다.

“범인은 찾았는가?”

“죄송합니다.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대단하군. 중독의 원인을 아직도 파악할 수 없다니…….”

“송구하옵니다. 계속 알아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독영한은 중독된 사실을 알게 된 뒤 음식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중독이 되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아직 다행이긴 하지만…….’

중독된 상태를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이른 시일 내에 해독을 시켜야 했다.

아쉬운 건 녹림 밖의 의원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것.

그가 중독된 상황을 감춰야만 했다.

녹검당뿐만 아니라 녹림비에서도 찾고 있었지만 범인을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독을 뿌린 놈을 계속 찾도록 하게.”

“넵, 알겠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움직임은 없는가?”

“특별히 움직이는 건 없습니다. 다만…… 장강수로채의 채주들이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자주 만난다…… 많이 참긴 했어. 수적 놈들은 믿음이 잘 안 가는 족속들이라서.”

“그래서 녹검당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면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영한은 느낌이 왔다.

그를 중독시킨 놈들과 장강수로채의 반역은 연관이 있을 게 확실했다.

쿨럭.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이런…….’

바닥에 검은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분명 아직은 괜찮았다.

내력을 끌어 올리는 데 문제가 없어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피를 토해 낸 것을 보면서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주군……!”

채마현이 놀라 그의 곁으로 다가서려고 했다.

“괜찮다.”

독영한은 소매로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만 나가보게. 잠시 혼자 있고 싶다.”

“……알겠습니다.”

채마현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존원을 물러났다.

홀로 남은 독영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기랄…….’

뚜렷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독을 치료해야 하건만 무슨 독인지 알지 못하니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답답하군. 좀 더 조심했어야 했어.’

독영한은 다시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대존원에서 나서는 채마현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핏덩어리를 쏟아낸 녹림대존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지만 독상은 절대로 괜찮을 리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강한 내력을 지녔기 때문일 터.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녹검당으로 들어섰다.

흠칫.

당주실의 문을 연 그가 가만히 멈췄다.

녹림대존이 중독당한 순간부터 그 또한 주위를 항상 조심했다.

‘나갔을 때와 달라졌다.’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아는 방법.

스으윽.

그는 오른손에 언제든지 귀혈수를 펼칠 수 있도록 내력을 올렸다.

‘당주실까지 들키지 않고 몰래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라면 극일천이 분명하다.’

온 정신을 집중시키며 당주실을 살폈다.

‘어디에 숨어 있지?’

상대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니까.

그가 뒤로 물러나고자 할 때.

당주실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척이 들렸다.

‘찾았다.’

타앗!

채마현은 순간적으로 바닥을 차며 기척이 들린 방향으로 뛰어 들어갔다.

희미하게 움직이는 복면인.

“이놈……! 누구냐?”

그는 귀혈수를 인영을 향해 뻗었다.

하지만,

탁탁탁!

상대는 귀혈수를 가볍게 옆으로 쳐내며 막아냈다.

‘귀혈수의 파훼법을……!’

스윽.

너무나 완벽하게 막아낸 상대를 의아한 눈빛으로 보는 동안, 복면인이 복면을 잡아당기며 얼굴을 드러냈다.

“…….”

어디선가 많이 본 사내였다.

“지금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얼마나 됐다고. 이거 섭섭합니다.”

“녹림야검……?”

“당주님, 오랜만입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녹림궁의 비문이 바뀌지 않았더군요. 하하.”

“…….”

비문은 그대로였지만 진법과 기관은 예전과 달라졌을 텐데.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녹림야검이 변했다.

예전에는 늘 긴장한 채 자신을 대하던 놈이었다.

‘이 녀석,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능글맞아졌잖아.’

녹림야검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우선 당주님께 소개해 드릴 분이 계십니다.”

스윽.

녹림야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세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분은 고진유 님이십니다.”

“화산……? 아니, 무림맹주.”

채마현은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는…….”

고진유와 묵경, 그리고 인양을 본 그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

“풍류옥협과 의제권협이겠지.”

“맞습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 뒤에도 눈앞에 선 네 명을 보면서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계속 서 있을 것입니까?”

“이런…… 미안하군.”

채마현은 안으로 들어온 뒤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는 녹림야검을 보며 물었다.

“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형주로 가는 길에 이릉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주채주 놈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녹림야검은 이릉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만주채주가 극일천의 인물에게 들은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녹림대존이 중독에 당했다는 것을 말이다.

“망할…… 극일천이 맞았군.”

지금까지는 의심만 갔던 그들의 짓이 맞았다.

중독을 시킨 곳이 어디인지 알아냈다고 해서 당장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어느샌가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환하게 나타난 듯했다.

“맞네. 녹림대존께서 독상을 당하셨네.”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밝혀졌습니까?”

“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네.”

“음식은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아닐세. 나도 미치겠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중독시켰는지 알아내 해독을 빨리 해야 하는데…….”

고진유는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꼈다.

“그분의 상태가 좋지 않군요.”

“……맞소이다.”

채마현은 그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심정이었다.

“몸이 많이 상했소이까?”

“독상을 내력으로 막고 있습니다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할 겝니다.”

“그렇겠지요. 내력으로 계속해서 독기를 막아내기는 힘들지요.”

“……좋은 방법이 계십니까?”

“혹시 그분을 뵐 수 있소이까? 직접 봐야 어떻게 중독을 당했는지 알아내지 않겠습니까?”

“네, 한데 지금은 보는 시선이 많아서…… 저녁에 조용할 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크크크…….”

중년인은 기이한 웃음을 내뱉으며 약을 달이는 중이었다.

스윽.

녹의당주 한초가 품 안에서 작은 흑색병을 꺼냈다.

‘후후후. 중독을 시킨 나에게 해독을 부탁하다니…….’

한초는 목청껏 그를 비웃고 싶었지만 참았다.

‘녹림대존, 어떻게 중독됐는지 죽어도 모를 것이다.’

그는 녹림대존을 중독시키기 위해 십 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였다.

방법은 쉬웠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독을 복용시키는 것.

하지만 중독은 알아챈 순간 가장 먼저 음식과 탕약을 의심할 터.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복용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한초는 방법을 바꿨다.

그를 중독시킨 것은 독향이었다.

녹림대존의 하루 일과는 위패를 모신 사당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녹림대존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독향이 십 년 동안 몸에 쌓여갔다.

“절대로 모를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 독이 뭉쳐 있는지 찾지도 못하지.”

스윽.

한초는 달인 약에 흑색병을 열어 한 방울 떨어뜨렸다.

“훗,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겠지.”

그가 자신을 믿게 만들기 위해, 독기를 잠시 밀어낼 수 있는 해독액을 넣어가며 조절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가볼까?”

한초는 탕약을 들고 대존원으로 향했다.

* * *

천자산의 밤은 다른 어느 곳보다 더 깊은 듯했다.

스윽.

녹천으로 들어선 채마현 앞으로 녹위대주가 나서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 시간에 또 무슨 일이십니까?”

“녹림대존님께 긴급히 드릴 말이 있네.”

“…….”

녹위대주 신의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있더라도 야밤에 찾아온 경우는 없었다.

그건 녹림대존의 뜻이기도 했다.

“당주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떠한 일이라도 해가 떨어진 뒤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도 아네. 하지만 이건 녹림의 운명이 걸린 일이야.”

“……!”

슈우욱-

채마현은 투기를 뿜어냈다.

녹림의 투견이라 불리는 그의 모습에 신의반은 당황했다.

“그렇…… 지만…….”

“대주는 녹림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이는군.”

“……그건…… 아닙…… 니다.”

“아니라는 사람이 다른 일도 아니고 녹림의 운명이 걸렸다고 하거늘 안 된다고 하는가? 만일 내일 녹림대존님께 이 일을 알린다면 어떻게 반응하실까? 모든 책임을 그대가 질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고맙네.”

채마현은 재빨리 대존원으로 들어섰다.

‘대체 무슨 일이지?’

신의반은 뒤에 남아서 안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설마…… 들킨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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