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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27화 (227/425)

227화

‘왜?’

시도정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혼자밖에 없는데?

분명 계획은 완벽했다.

무영칠금진도 제대로 펼쳐진 뒤 거추장스러운 세 명을 가두었다.

게다가 우문전에서 양강무인을 삼백 명이나 데리고 왔다.

그들은 중원 무림의 일반 무인들과 수준이 달랐다.

협공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정상이다.

“당신을 잡으면 끝이 나는가?”

화산도협의 목소리.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아…….’

시도정은 그 순간 알았다.

왜 이길 수 없는 것인지.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다.

화산도협, 그는 강했다.

그 단순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니.

상대가 강하기에 지는 것이었다.

화산도협보다 강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중원 무림을 얕잡아 보았던 극일천의 착각이기도 했다.

화산도협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 또한 승기에 방심한 듯 보였다.

‘네놈도 마찬가지군!!’

시도정은 전력으로 홍살기를 날렸다.

슈우우욱-

일 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 쏟아진 홍살기는 단숨에 고진유의 가슴을 뚫고 나갈 듯 보였다.

하지만,

샤르르르.

고진유가 손을 들어 올리자 가슴 앞에서 홍살기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대체…… 이건……?’

시도정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연이어 홍살기를 뻗어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고진유의 앞에서 막힌 홍살기는 계속해서 사라졌다.

스팟.

이번에는 고진유의 사의검이 움직이고, 시도정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호신강기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두부가 잘려 나가듯 사의검이 지나갔다.

“커억.”

시도정은 뒷걸음을 치면서 손을 앞으로 들었다.

“그렇…… 군. 내가…… 약한 것이었어.”

쿵!

바닥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우문전주 시도정의 죽음은 한순간으로 끝이 났다.

양강무인들은 제자리에서 멈춘 채 쓰러진 시신을 보았다.

“지금 당장 물러가지 않는다면 본도와 계속해서 싸울 것으로 판단하겠다.”

번쩍.

사의검에서 검광이 폭발했다.

후다다닥!

우문전의 양강무인들은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 * *

스르르르-

진법이 파훼되며 주위에서 혈향이 퍼져 나왔다.

진법에 갇히면서 예상했던 일이었다.

“한바탕 했구나. 몸은 괜찮아?”

“별일 없습니다.”

묵경은 죽은 시신들 사이에서 시도정의 시신을 찾았다.

“저번에 그 녀석들이군. 저자가 수장인가?”

“네.”

“극일천도 고집이 강한 곳이군. 아직도 모르는 놈도 있고. 다수로는 너를 상대할 수 없을 텐데.”

고진유의 무공은 이미 일반 무인의 범주에서 넘어섰음을 묵경은 알고 있었다.

“맞아요. 진유 형은 우리와는 다른 분이잖아요.”

인양도 덩달아 말을 했다.

“하하, 인양아. 내가 뭐가 다르다는 거냐? 너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느낌이 그래요.”

고진유만 스스로 모를 뿐 그를 아는 인물들은 느끼고 있었다.

묵경은 시신들을 보며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극일천 내부도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 싸운 것만 봐도 이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저도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 알겠지.”

“네, 우선 여기를 정리하고 가죠.”

* * *

섬서성을 넘어 호북 이릉까지 곧장 달렸다.

그들의 목적지는 형주 석수였다.

호북으로 들어오는 동안 문제는 딱히 없었다.

인양이 앞장을 섰다.

“진유 형, 저기 마을에 들어가면 이릉대원이 있다고 했어요. 오늘은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됩니다.”

“수고했어.”

다각다각.

네 명은 말을 몰며 마을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잠시 뒤, 이릉대원의 깃발이 펄럭이는 객루에 도착했다.

웅성웅성.

묵경의 얼굴 때문인지 안으로 들어서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진유는 매화도의 대신 경장 차림의 무복을 입었다.

화산도협의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 함부로 매화도의를 입고 다닐 수 없었다.

인양이 점원에게 은자 한 냥을 손에 쥐여 주자 평소에 닫아놓았던 자리로 안내를 했다.

“음식은 알아서 준비해 주시오.”

“네에.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점원은 주방으로 달려갔다. 오늘 제대로 돈신을 맞이한 듯 표정이 밝았다.

장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

녹림야검은 밖을 내다보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놈들은……!’

단애절벽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내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장강수로십팔채 중 한 곳인 이릉채가 있는 곳이었다.

일반인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상해 보였지만, 녹림야검의 시선에 저들은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자님, 저기 보이는 자들은 이릉채의 수적들입니다.”

“수적이라면 장강수로채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녹림에서 장강수로채를 거두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녹림대존께서 제압을 하긴 했지만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라면?”

“녹림에 속해 있다고 하나 서로 활동하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그분의 명이 똑바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산적과 수적.

예전부터 녹림과 장강수로채는 쉽게 통합되기 어려운 조직이었다.

때에 따라서 녹림이 강한 시기가 있었고, 장강수로채가 강한 시기가 있었다.

현재 그들은 녹림에 의해 억지로 통합되었지만, 수적이기에 녹림에서 관리하기가 상당히 힘든 부분이었다.

“저어…… 저놈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편할 대로 하세요. 아, 음식들이 식기 전에 돌아오세요.”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적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인양은 그를 혼자 보낸 게 염려가 되었다.

“진유 형, 제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괜찮을 거야. 녹검 씨의 실력을 잘 알잖아. 바로 돌아올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 * *

쉬이이익!

녹림야검은 수적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소리를 죽이면서 따랐다.

단애절벽의 중간 부분에 성인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보였다.

‘이곳인가?’

다른 곳으로 갈 길은 없었다.

그는 몸을 숨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짧은 거리의 틈을 지나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지낼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음…….’

안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 거친 목소리가 누군가를 다그치듯 물었다.

“이릉채주는 어떻게 하겠는가?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것이네.”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오? 생각 좀 하고 결정하는 게…….”

수채에서 만나지 않고 밖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를 알 듯했다.

녹림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었다.

“허어.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인가? 이미 다른 채주들도 동참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네!”

“알고 있네. 하지만…… 녹림대존이 어떤 사람인지 만주채주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자네는 장강수로채가 녹림에게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그건…… 아니지만.”

이릉채주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만주채주가 원하는 것은 장강수로채의 반기였다.

이번에 녹림대존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고수를 초빙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만주채주, 녹림대존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네. 누구를 초빙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자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야겠어.”

“허어. 똑바로 듣게. 그분은 극일천에서 나온 인물이라네.”

“……방금 뭐라고 했는가? 극일천에서 나왔다고?”

“맞네. 특별히 장강수로채를 위해 녹림대존을 죽이겠다고 하더군. 그분의 무공을 보면 알게 될 것이네. 그렇지 않아도 내일 도착한다고 하니 확인을 해보게.”

스르르르-

녹림야검은 단애절벽에서 물러났다.

‘이것들 봐라.’

장강수로채에서 녹림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을 알았지만, 극일천의 인물까지 끌어당길 줄은 몰랐다.

‘화산도협님께 상의를 해봐야겠어.’

혼자서 상대하려고 했건만, 장강수로채의 반기에 극일천이 연관되어 있었다.

녹림야검은 빠르게 이릉대원으로 돌아갔다.

* * *

휘익!

녹림야검은 세 명의 곁으로 내려섰다.

식탁 위에는 빈 공간이 없을 만큼 음식이 가득했다.

“허기가 질 텐데 우선 먹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자리에 앉은 뒤 남은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걱우걱.

그러고는 방금 있었던 일은 잊어버린 듯 먹는 일에 한껏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 먹는 속도가 느려졌을 쯤 고진유는 기다렸다가 물었다.

“잘 다녀왔나요?”

“네, 공자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녹림야검은 단애절벽에서 들었던 내용을 알려주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장강수로채에서 녹림에 반기를 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극일천이 이간질을 한 게 틀림없었다.

“극일천에서 나온 인물이 내일 온다고 했나요?”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고진유는 생각에 잠겼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 전에 녹림야검의 뜻을 알아야 했다.

“녹검 씨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처리하고 싶습니다.”

“음, 녹검 씨의 뜻을 알았으니 우리도 당연히 동료로서 도와야겠군요.”

“고맙습니다.”

“녹검 씨도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열심히 싸우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녹검 씨와 함께 싸워야지요.”

“맞습니다. 녹검 형, 저도 열심히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인양, 고맙다.”

녹림야검은 눈물이 글썽거렸다.

천하제일인이 직접 동료라고 하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이제 다들 배가 불렀으면, 가볼까요?”

“어디를?”

묵경이 물었다.

“이릉채에 가서 정확히 상황을 보도록 하죠.”

“당사자에게 묻는 게 좋겠군.”

“녹검 씨, 이릉채로 앞장서세요.”

“넵. 알겠습니다.”

* * *

이릉채는 호야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천하의 요새.

호야산의 절벽으로 내려오지 않는 이상 장강을 통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이릉채주 가효정은 수채에 돌아온 이후 혼자 생각 중이었다.

‘망할 새끼…… 괜히 머리 아프게 만들고 있어.’

그는 현재 생활에 만족했다.

장강수로채가 비록 녹림에 의해 구속되었다고 하나,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녹림의 그늘 아래에 있는 게 정파무림을 상대할 때 더 도움이 되었다.

“괜히 이러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지 몰라.”

극일천에서 누가 나오는지 모르지만 녹림대존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일단 내일 그자의 무공을 보여준다고 하니 그때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쿵쿵쿵.

그때, 채주실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덜컹.

통나무로 길게 엮은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아 씨…….”

문 안으로 들어선 사내.

부채주의 멍청함은 하늘을 치솟을 정도지만, 힘은 하늘에서 내렸을 정도로 장사였다.

그를 보면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살살 문을 열라고 했잖아!”

“어……? 까먹었다. 미안합니다.”

“참 나…… 무슨 일이야?”

“저기 앞에서 채주님을 뵙고자 합니다.”

“앞에서? 어디 앞이라는 건데?”

“장강에서 말입니다.”

“나를? 누가?”

“녹림야검이라고 했습니다.”

“…….”

“어떻게, 그냥 쫓아 보내면 되겠습니까?”

“……너어…… 녹림야검이 누군지 몰라?”

“그거야…… 녹림에서 온 사람입니까?”

“…….”

장강수로채의 인물이 녹림야검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 됐다. 내가 부채주에게 뭘 더 바라겠어. 가자.”

“그리고 세 명이 더 있습니다.”

벌떡.

“뭐라고? 이런 멍청한 놈아!!”

이릉채주는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만약 정말로 그가 맞다면……!’

수채의 강가에는 수적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호통을 쳤다.

“뭣들 하는 거야? 전부 할 일이 없는 모양이지!”

“아닙니다!!”

수하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릉채주와 부채주만이 장강에 떠 있는 배를 보았다.

배 위에 선 사내.

“……당신이 살협 녹림야검입니까?”

“본인이 맞다. 그대가 이릉채주인가?”

“그렇습니다만…… 죄송하지만 그대가 녹림야검이신지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원한다면. 살인무경의 검기를 보여주지.”

녹림야검은 녹수검을 뽑은 뒤 배 위에서 가볍게 내리쳤다.

쏴아아아아-

배 끝에서부터 강물이 좌우로 가르면서 이릉채주 앞까지 살인무경이 만들어낸 기가 뻗어 나갔다.

‘허어억.’

검기가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이릉채주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망할…… 오늘 재수 오지게 없네…….’

하지만 강 위에 녹림야검만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들어…… 오시지요.”

끼이이익.

네 사람을 태운 소선이 수채에 들어오고, 배에서 네 사람이 내렸다.

‘녹검살협과 함께 다니는 이들이라면 분명…….’

세 명 중 가장 먼저 묵경을 알아보았다.

그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장 젊은 청년.

마지막으로 세 사람 뒤에 선 경장 차림의 청년을 보았다.

내릴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은 마치 태산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하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릉채주는 마지막 청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화산…… 도협님을 뵙습니다.”

“반갑소이다. 고진유라 하오. 옷을 갈아입어야겠소이다.”

“예에…….”

이릉채주는 부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무형의 기운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놀란 가운데 문득 생각났다.

‘근데 왜…… 이들이 나타났지?’

이릉채는 지나가다가 그냥 들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머리 회전이 빨랐다.

‘설마…….’

화산도협과 극일천의 관계는 이미 중원 무림에 퍼져 있었다.

‘으아아, 큰일이다. 어떻게 알고 이릉채에 찾아왔지?’

수만 가지의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행이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와, 진짜 다행이야. 난 아직 전혀 잘못한 게 없어!’

이릉채주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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