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25화 (225/425)

225화

퍼어억!

중순형은 얼굴에 부딪히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 부딪힌 충격 때문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휙휙휙!

그는 고진유가 다가서지 못하도록 양손을 좌우 앞으로 휘둘렀지만 허공을 헤맬 뿐이었다.

‘제기랄……!’

가장 자신이 있던 신법이 따라잡혔다.

중순형은 도망가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그는 재빨리 신단을 꺼냈다.

“그건 안 되죠.”

하지만 그보다 고진유의 움직임이 빨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신단을 든 손등을 향해 사의검을 찔렀다.

“악!”

손바닥에 들고 있던 신단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픽픽픽.

고진유는 이어 사의검을 통해 매화진기를 그의 몸에 찔렀다.

털썩.

중순형의 전신에 내력이 갑자기 사라지며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지금부터 당신을 극일천의 간자로 처리하겠습니다.”

* * *

상궁당 당주 허종 중순형.

청매단 부단주 허식 수근재.

노군전 부전주 허문 정하륜.

장서원 허천 전유만.

무극전 일대주 허령 최요상.

호위당 부당주 허명 정일호.

여가전 전주 허청 방진우.

사장로 도영 손천장.

구장로 도경 음장서.

매화검수대주 도향 이동남.

화산파가 술렁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림맹주가 된 고진유 덕분에 화산파의 분위기는 최고였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극일천에서 보낸 열 명의 간자들.

화산파에서 그들 개인의 신분은 대단했다.

장문인의 명에 밀화가 간자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수십 년이나 함께했던 그들이 배신자라는 사실에, 그들과 친했던 화산파의 제자들은 충격에 잠겼다.

그리고 그만큼 극일천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그 시각, 집법전으로 들어선 고진유는 양군경과 마주 보며 앉았다.

“무사히 잘 처리했더구나. 수고했다.”

“네. 사조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진유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자신들의 손으로 그들을 처리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양군경의 그를 다독거려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더냐. 본 문을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

“네. 마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그들 열 명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지 대전 회의가 열릴 것이었다.

“사조님, 저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음…….”

양군경은 집법전주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법규에 의하면 본 문의 배신자는 화산파의 단전을 부순 뒤 내공을 거두며, 사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절맥을 시킨 뒤 화산을 내려 보낸다.”

“…….”

“이번 일은 역모에 해당하는 중죄에 해당하는 일이니라. 어쩌면 대전회의에서는 목숨을 거두자고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목숨을 거둔다면 저들에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착한 녀석…….’

양군경은 고진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다.

모든 것을 잃고 쫓겨 내려간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네 사부를 죽인 놈들과 한패이다. 본 문에서 함께 한 정도 좋지만 그렇다고 살려줄 수는 없느니라.”

“사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허허. 내 말이 맞다면서 표정은 그러하지 않구나. 속에 있는 말을 꺼내어 보아라.”

“……송구합니다. 사조님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더냐?”

“그냥 제 생각일 뿐입니다.”

“알겠다. 말해보아라.”

“그들의 단전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만일 죽이지 않는다면, 사지의 맥을 잘라 본산 아래로 쫓아내는 것보다 내력만을 거둔 채 지옥혈림에 의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옥혈림에?”

화산파에서도 이미 지옥혈림과의 은원 사이를 정리했다.

게다가 고진유가 혈성존의 독녀 북소연과 좋아하는 사이라 들었다.

“음…… 지옥혈림이라.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구나.”

양군경 또한 열 명의 간자들 중 친하게 지낸 인물들이 많았다.

특히 도향 도인과는 형제와도 같은 사형제 사이였다.

그의 사지를 자르고 내력을 거두며 밖으로 쫓아낸 뒤 중원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알겠다. 내가 회의에서 그렇게 말해보도록 하마.”

“고맙습니다. 사조님.”

“후후후. 아니다. 오히려 내가 고마울 따름이지.”

양군경은 늘 변함이 없는 고진유를 보며 흐뭇했다.

때로는 냉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한 녀석이다.

무공이 강해져도 늘 겸손하며 사형제들과 윗사람들에게 공손했다.

‘허어…… 내가 이렇게 큰 복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 * *

태청전에 화산파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던 그곳에서 장문인 주명진은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선 이들을 보았다.

겨우 열 명이 빠졌지만 평소와 다르게 대전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현재 본인의 마음은 너무나 착잡하기 이루어 말할 수 없소이다.”

“장문인,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본 문을 배신한 죽일 놈들이외다.”

노군전주 도기 도인은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가장 믿었던 부전주 허문이 극일천의 간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잘못 알았을 것이라 여겼다.

곧바로 허문을 만나러 갔다.

옥에 갇힌 그를 보았을 때 알았다.

시선이 마주친 허문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망할 놈……!’

얼마나 그를 믿었던가.

그를 아들처럼 여기며 차후 노군전주의 자리를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모든 꿈이 무너졌다.

노군전주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돌아섰다.

배신감을 느낀 인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열 명의 인물들은 화산파 내에서도 인망이 깊었다.

친절하며 늘 마음이 좋은 인물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배신은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여러분들께서 가슴이 아픈 것을 알고 있소. 본 장문인도 여러분들과 같은 심정이외다. 하지만 어쩌겠소이까. 그들은 극일천의 간자이외다.”

대전은 조용해졌다.

열 명의 간자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친한 그들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죽이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스윽.

집법전주 양군경이 앞으로 나섰다.

“장문인, 본인이 말을 해도 되겠소이까?”

“집법전주, 말씀하시지요.”

“그들은 우리의 친구들이며 제자들이었소이다. 정말로 가슴이 아픈 일이지요. 분명 그들은 본 문을 반역한 죄를 지었소이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이미 법전에 나와 있지요.”

양군경은 잠시 말을 멈추고 쉬었다.

그러고는 대전에 모인 화산파의 인물들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법전에 의하면 죄의 경중에 따라 처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소이다. 그중 본 문의 반역자는 즉시 파문을 시켜야 하며 단전을 거두고 사지를 자른 뒤 쫓아 보내지요.”

“…….”

태청전에 모인 모든 인물들이 집법전주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은 반역죄에 해당하는 인물들이기에, 도움을 주고자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도, 조용히 집법전주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

장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법전의 뜻을 따라야겠지요. 혹시 다른 뜻을 지닌 분이 계시다면 말씀해 보시지요.”

“…….”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도 괜히 나서서 집법전주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현재 화산파의 최고 실세는 집법전주 양군경이었다.

스윽.

그때, 다시금 양군경이 나섰다.

“장문인과 여러분께 하고자 하는 말이 있소이다.”

“무엇이오?”

“그들은 분명 본 문의 간자가 맞소이다. 제자를 잃은 본인 또한 이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한때 가족이었던 그들에게 반역자로서의 벌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싶소이다. 물론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언정 본인은……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잊고 싶지는 않소이다.”

“그럼…… 집법전주의 생각이 무엇이오?”

“장문인께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가엽게 여긴다면, 그들의 내력은 파괴하되 사지를 절맥하는 대신 지옥혈림에 의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웅성.

태청전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장문인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집법전주, 지옥혈림에 의뢰한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극일천이 멸하는 순간까지 그들을 지옥혈림에서 맡도록 하는 것입니다.”

“음…… 좋은 생각입니다만…….”

결정은 비록 장문인이 내리지만 대전에 모인 그들의 뜻도 중요했다.

노군전주가 얼른 나섰다.

“장문인, 본인 또한 집법전주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외다. 파문을 당했다고 하나 그들이 중원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봅니다.”

“저 또한 찬성합니다.”

지옥혈림에서의 생활은 죽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다.

반역죄에 대한 벌은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대전에 모인 그들의 뜻이 같았다.

장문인 주명진은 결정을 내렸다.

“여러분들의 뜻을 알겠소이다. 그렇다면 집법전주의 의견대로 그들을 처리하도록 하겠소이다.”

태청전의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회의의 결정은 빠르게 화산파 전체로 퍼져 나갔다.

화산파 도사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옥혈림으로 보내겠다는 의견은 집법전주가 냈지만, 화산파 제자들은 그것이 고진유의 뜻임을 알았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 * *

“넌 마음이 너무 여려.”

무혼신녀는 이번 일을 처리한 고진유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따르는 것 같기도 하군.”

“좋게 봐줘서 고맙습니다.”

“사실대로 말을 했을 뿐이다.”

고진유에게 일부러 좋게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고진유를 보며 느낀 그대로였다.

“지옥혈림에 보내려는 것은 일석이조인가?”

“…….”

“맞군. 여하튼 또 잔머리는 뛰어나. 이번 기회로 화산파와 지옥혈림 사이에 있었던 일을 깨끗하게 정리했구나.”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극일천보다 네가 한 수 위다.”

“하하.”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느냐?”

“거짓말이 아닌 것을 압니다.”

“어라? 그럼 왜 웃었지?”

“너무 당연한 말을 한 것 같아서요. 제가 당연히 더 뛰어나지 않습니까?”

“어쭈. 누구 앞에서 잘난 체를 하는 게지?”

“누구 앞이겠습니까? 누님 앞이지요.”

주위에는 그들 둘밖에 없었다.

둘만 있을 때는 무혼신녀라 불렀던 그였다.

피식.

그녀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봐도 너도 나처럼 특이한 성격을 지닌 것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봐도 닮은 것 같습니다.”

“네놈, 부모님을 모른다고 했지?”

“맞습니다. 태어나 보니 저하고 비슷한 놈들만 있더군요.”

“고진유란 이름은 누가 지은 거지?”

스윽.

고진유는 목에 걸린 목패를 꺼냈다.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목패 안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릴 때 아기였던 제 목에 이름이 적힌 이게 걸려 있었습니다.”

“고진유라…… 아이는 버렸어도 그래도 이름은 제대로 알려준 모양이군.”

“제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죠.”

고진유는 목패를 다시 안으로 넣었다.

“부모님을 찾을 생각은 안 해봤느냐?”

“굳이 버린 부모를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음…… 부득이한 사정에 어쩔 수 없이 버렸을지도 모르잖아.”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건 그분들의 사정이죠. 제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았잖아요.”

“그렇군. 만일 네 부모가 살아 있다면 네 이름을 알고 찾아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많이 유명하잖아. 안 그러냐?”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살아 계시면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제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죠.”

고진유는 어느 정도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었다.

만일 찾아온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정도는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내일 화산파를 내려갈 것입니다.”

“벌써? 여기에 온 지 며칠 됐다고 가려고 하느냐?”

“무림맹으로 가는 도중 지옥혈림에 들렀다가 갈 생각입니다.”

“허, 그렇구나. 그럼 무림맹에서 보도록 하자.”

“어딜 가실 모양이신가 보네요.”

“만나볼 사람이 있다.”

“…….”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듯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머릿속에 있는 놈을 없애주면 좋겠구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알겠습니다. 손을 내밀어보세요.”

“여기서 바로 하려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무혼신녀는 손을 내밀었다.

척.

고진유는 그녀의 손을 잡은 뒤 매화진기를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곧장 팔을 통해 들어간 진기는 고독을 향해 찾아갔다.

매화진기에 갇혀 있던 고독을 한 번 더 감싼 뒤 점점 압박을 하며 조였다.

픽.

고독이 순간 쪼그라들자 주위를 감쌌던 매화진기가 끌어당기며 흡수했다.

슈우욱.

고진유는 그녀의 손을 떼며 손바닥 위에서 고독을 흡수한 진기를 태웠다.

화르르르!

빠르게 탄 진기가 사라졌다.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끝났습니다.”

“……간단하군.”

“이건 운이 좋았습니다. 동면에 빠졌던 고독이 늦게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잘 가두어 놓았던 게 다행이었죠.”

“고맙다. 그는 이젠 이걸로 협박을 하진 않겠군.”

“원래도 협박은 당하지 않은 걸로 압니다만…….”

“그렇지. 다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거든.”

무혼신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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