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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21화 (221/425)

221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뜬 뒤 거짓말처럼 차례대로 한 명씩 맹주전으로 찾아왔다.

맹주전이 이리도 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곳이었던가.

새롭게 바뀐 십문십가의 대사들과 각 당의 당주들부터 시작해서 무림맹의 장로들를 끝으로, 무력군인 사천군의 총군장 황보성과 세 명의 수장들까지 다녀가고서야 하루의 끝이 찾아왔다.

고진유는 텅 빈 접객실에 홀로 앉았다.

“배불러.”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보았다.

찾아온 손님들과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자님.”

북소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빠진 그의 얼굴이 보였다.

“힘드신가 봐요?”

“사람 상대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전부 다녀갔군요.”

이제 맹주전 밖에서 대기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북 소저는 따분하지 않소이까?”

“괜찮아요.”

“잠시 나가서 걸을까요?”

“좋아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북소연도 건물 안에 있는 것보다 외부에 나가는 게 더 좋았다.

맹주전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뒤편후원으로 움직였다.

“내일쯤이나 섬서의 본산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아…… 네에.”

“함께 가고 싶지만 순서가 아닌 것 같아서, 본산에 계신 분들께는 다음에 인사를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북 소저의 아버님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공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어요.”

“돌아오는 즉시 제일 먼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젠 무림맹의 맹주이신데 처리할 일도 많잖아요.”

“제갈 형님이 말씀하시기를, 맹주가 되면 일은 적절하게 잘 시키면 된다고 하더군요. 굵직한 일만 처리하면 문제가 없다고요. 무조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후훗, 공자님은 잘하실 것 같아요.”

스윽.

고진유는 걸음을 그녀와 나란히 걷기 위해 늦추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

북소연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으로 그가 먼저 손을 잡아주었다. 그의 손은 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후원을 걸었다.

멈칫.

고진유는 순간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었다.

“근데…… 누님은 어디에 있소이까?”

* * *

독전호는 안절부절못한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맹주전에 있던 그녀가 갑자기 제갈문을 만나고 싶다고 하기에, 그녀를 데리고 태상장로전에 찾아왔다.

태상장로 제갈문과 앉은 채 차를 마시는 그녀.

첫 만남에서 느닷없이 제갈문에게 하대를 했다.

만일 그들 주위에 무림맹의 다른 인물이 있었다면 노발대발 난리가 났을 것이다.

화산도협의 친누이라 해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웃긴 건 제갈문이 그녀를 대할 때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잘 살다가 가셨나?”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

무혼신녀의 눈동자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제갈문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눈앞에 앉은 무혼신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마치 생전의 어머니를 보는 듯했으니까.

당연했다.

어머니의 언니.

그녀는 예전에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던 이모님이었다.

“그 녀석이 정말로 제갈가에 시집을 갈 줄은 몰랐지. 사귄다고 들었을 내가 엄청 말렸는데 고집이 세서 말이야. 결국 칠동이 녀석과 결혼을 했군.”

깨어난 뒤 무구천주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생사였다.

‘칠동이…….’

아버지 제갈동의 젊은 시절 지인들이 부르던 별명이었다.

제갈가의 어르신들만이 알고 있던 내용.

‘정말…… 이모님이 맞으시구나. 어머니께 듣기로 이모님께서 아버지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뜯어말렸다고 하셨지.’

오래전 어머니에게 들었던 내용과 같았다.

그러니 자신의 나이와는 상관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젊어 보여도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이모였다.

제갈문의 늙은 이마에 천진난만한 웃음이 그려졌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런 일이 생길지 몰랐지.”

중원 무림에는 기이한 일들이 많다.

“백 년 동안 깨어나지 못한 나를 그 녀석이 살린 게야.”

“나중에 따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모른 체해라. 아니, 계속…… 모르고 있는 게 나을지도? 사람들이 알면 피곤해지잖아. 안 그러냐?”

“알겠습니다.”

“독 대주.”

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밖에서 안의 상황을 살피는 독전호를 불렀다.

특사정화단에서 호위대로 이름을 바꿔 독 단장은 다시 독 대주가 되었다.

“그만 가야겠다. 준비하게나.”

독전호가 얼른 들어서자, 제갈문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를 챙겼다.

“이보시게, 독 대주.”

“네. 말씀하십시오.”

“이분을 잘 모시게. 부탁하네.”

“알…… 겠습니다.”

바로 그녀의 꾸중이 나왔다.

“쯔쯔. 내가 나서지 말라고 했건만.”

‘헉……!’

가슴이 또 한 번 철렁거린 독전호는 조심스럽게 제갈문의 눈치를 보았다.

“죄송합니다.”

“가자.”

그녀의 말이 끝나자 독전호는 앞장을 섰다.

곧바로 태상장로전을 나섰다.

“맹주전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무림맹은 대충 구경을 한 것 같군.”

“알겠습니다.”

무혼신녀는 그의 뒤를 따르며 맹주전으로 걸었다.

경내를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쉽게 말을 걸어오지 못했다.

화산도협의 누님이라는 사실은 궁금증과 함께 한편으론 거리감을 만들어주었다.

“독 대주, 저들은 내가 많이 궁금할 테지?”

“네. 맞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맹주님의 누님이시지 않습니까.”

“흠, 이제 맹주전은 조용한가?”

“지금쯤이면 웬만한 인물들은 전부 다녀갔을 것입니다.”

“소연하고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준비 좀 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맹주전에 도착하는 즉시 준비하도록 명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 * *

무림정자에 모인 세 사람.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아쉽구나.”

“저도요.”

두 여인은 헤어지는 게 아쉬운지 연신 술잔을 부딪쳤다.

“공자님과 함께 화산파에 가십니까?”

“당분간 동생과 같이 다니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물론 같이 다니는 것을 허락한다면.”

무혼신녀와 북소연은 조용히 술잔을 든 고진유를 보았다.

“전 괜찮으니 누님께서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허락을 해줘서 고맙구나. 당분간 신세를 지도록 하지.”

세 사람은 술을 따라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혹시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당연히 있었지. 나도 동생처럼 꽃 같은 나이 때 멋진 사내를 봤다.”

“오……! 그분이 누구신데요? 혹시 제가 아는 분이 아닙니까?”

“글쎄다. 소연, 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어.”

“언니, 궁금해요.”

“말해주고 싶지만 오래된 일이라서 이미 잊었다. 지나간 일이라 다시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구먼.”

무혼신녀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대답을 흘려보냈다.

“언니, 좋은 사람이 다시 나타날 게 분명해요.”

“그럴까? 내가 나이가 많아서…….”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나이와 상관없잖아요. 중원에 나가면 언니를 좋아할 사람이 줄을 서서 따라다닐 거예요.”

“후후. 소연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군.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드시게.”

채애앵!

두 여인은 술잔을 부딪치며 단순에 비웠다.

무혼신녀는 빈 잔을 고진유 앞으로 내밀었다.

“누나 잔 비웠다.”

“…….”

고진유는 두말없이 술을 채웠다. 그녀는 정말로 친누나처럼 보였다.

“동생은 앞으로 지금처럼 소연하고 잘살아야 한다. 헤어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떠나는 것을 염려에 둔 듯 들렸다.

“옆에서 잘 지켜보십시오.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

무혼신녀는 술을 받으면서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연히 잘 봐야지. 잘 보고말고.”

“혹시나 걱정되는 게 있으면 말씀 하세요. 괜히 마음고생하지 마시고요.”

“어허, 내가 무슨 마음고생을 한다고. 난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이다. 동생이 무림맹주인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고진유의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그녀는 믿음직한 동생을 두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명이 뜨기 전.

고진유는 두 여인과 함께 무림맹 후문을 나섰다.

세 사람 뒤로 독전호가 배웅을 했다.

아직 어둠에 잠긴 탓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무림맹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외부로 나가는 중이었다.

“독 대주께 제갈 군사님의 호위를 부탁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가고 싶지만, 당분간 무림맹에서 자리를 비울 때는 제갈양의 호위를 부탁하는 쪽이 나았다.

“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빨리 갔다 올 테니 걱정 마시오.”

무림맹을 나온 뒤 세 사람은 정주를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혈림의 흑귀들이 나타났다.

북소연은 지옥혈림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전에 연락을 보낸 것이었다.

“조만간 빨리 찾아가도록 하겠소.”

“알겠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본 림에 연락하시면 돼요.”

“그렇게 하겠소.”

그녀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두두두-

마차를 호위하며 지옥혈림의 기마무리들이 호북으로 방향을 돌렸다.

고진유는 그녀가 탄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벌써부터 보고 싶은 모양이구먼?”

“…….”

“나도 예전에 그랬는데…….”

고진유는 그녀를 보았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표정에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무혼신녀님께서 좋아하셨던 그분이 누구십니까?”

“그는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한 분이셨지.”

“무림인이 아니셨군요. 말씀을 하시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 유생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많이 배운 사람이었어.”

“그분과 사귀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몰랐겠지. 내가 좋아하는지. 어차피 우린 함께할 사이는 아니었다. 모든 걸 내 결정으로 끝을 냈지.”

“…….”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네. 우리도 출발하겠습니다.”

* * *

섬서성 동관현에 빠르게 들어선 세 사람.

천검궁에서 나온 뒤 무림맹으로 향하던 그들에게 전서가 전해졌다.

-무림맹주 권한 대행.

무림맹주 권한 대행이 누군지 그들도 잘 알았다.

새로운 맹주가 뽑혔다는 무림맹의 소문.

묵경은 물론 인양과 녹림야검 또한 소문의 내용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화산도협 고진유.

그는 무림맹주가 되기에 충분했다.

다만 문제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뿐.

“제갈 형이 머리를 썼구만.”

권한 대행이라 한 것도 제갈양의 뜻이 분명했다.

하지만 권한 대행은 그저 말장난일 터. 맹주는 맹주일 뿐이었다.

서신에는 화산파로 가는 길이니 중간에서 합류하는 게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고진유와 만날 장소는 섬서의 동광현.

초입 입구에 도착한 세 사람은 주위를 살폈다.

묵경이 먼저 앉아서 쉴 만한 장소로 움직였다.

“우리가 빨리 온 것 같군. 저기에 앉아서 기다리자.”

“묵경 형, 서신에 함께 오는 분이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혹시 소문에 듣던 진유 형의 누님이라는 분일까요?”

“그런갑다. 우리들보다 위라고 적혀 있는 걸 봐선 나이에 민감한 모양인가 봐.”

“네. 알겠어요. 조심하도록 하죠.”

“녹검 씨도.”

“나이가 적어도 화산도협님의 누님이시라면 당연히 어른으로 모셔야지 않겠습니까.”

녹림야검도 고개를 끄덕였다.

초입에서 기다린 지 이각 정도가 지났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들리는 소리의 규모를 봤을 때 두세 필 정도의 기마가 분명했다.

인양은 벌떡 일어났다.

앞으로 나가자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두 필의 말이 보였다.

진붉은색을 띤 두 마리의 말들 위에 일남일녀가 타고 있었다.

“진유 형입니다!”

묵경도 그의 옆에서 달려오는 여인을 보았다.

“누님이라는 여인이군.”

묵경과 녹림야검이 인양의 옆으로 다가섰다.

히이이잉!!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세 사람 앞에 멈췄다.

휘익.

고진유가 멈춘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진유 아우, 오랜만이다.”

“그러네요.”

네 사람은 서로 뭉쳐 모여 껴안았다.

그 모습만 봐도 그들의 유대감이 어떠한지 눈에 보였다.

묵경은 환하게 웃었다.

“짜아아시이익. 좋은 소식 들었다. 북 소저와 사귄다고?”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녹검 씨는 아닐 테고. 보아하니 묵경 형이 먼저 했겠죠?”

“……미안하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눈치를 보던 인양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형, 저도…….”

“됐어.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

묵경은 대소를 터뜨리며 고진유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하! 고맙다. 제수씨에게 볼 면목이 생겼구만. 아 참, 그리고 무림맹 맹주가 된 것도 축하해.”

“아닙니다. 권한 대행입니다.”

“어차피 같은 말이잖아. 제갈 형이 머리를 굴렸어. 어차피 맹주는 아우 자리였지만, 난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라서 놀랍기는 했다. 바로 거절 안 한 것을 보면 맹주가 되어서 좋은 것 같은데?”

“맹주가 되어서 좋은 게 아니라 화산파가 천하제일문이 된 증거라고 해서 좋아하는 겁니다.”

“천검궁은?”

“천하제일문은 중원 무림에서 정해주는 것이라더군요.”

“흐응, 지금은 화산파가 천하제일문이라는 것이군?”

“네. 맞습니다.”

“후후후, 맞다. 무신께서도 인정하시던걸. 시간이 나면 아우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더군.”

“바쁘네요. 혈성존을 만나뵈어야 하고 이번에는 무신까지. 나를 만나고 싶다는 분들이 많군요. 여하튼 시간이 되면 한 번 만나 뵙도록 해야겠군요.”

이제 남은 건 고진유와 함께 온 그녀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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