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19화 (219/425)

219화

이곳이 무신전이구나.

세 사람은 금하희를 따서 무신전으로 들어갔다.

정문 주위로 무신전을 지키는 호위군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게다가 무신전에 숨어 있는 인영들의 기운들까지 더해져 사방이 무거웠다.

하지만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은 걸음은 그들의 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가볍게 움직였다.

대전을 지나 안으로 좀 더 들어서자, 금하희가 살짝 들뜬 목소리로 설명했다.

“여기부터서는 사부님의 개인 공간입니다. 세 분을 여기까지 부르는 것을 보니 인정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무신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무인에게 영광일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무거웠던 분위기와는 달리 평온했다.

“이곳을 나가시면 후원에 사부님께서 계실 것입니다.”

드르르륵-

금하희는 문을 열고 후원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말처럼 후원에 놓여 있는 정자에 천검궁 최고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사부님, 하희입니다.”

“올라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금하희는 세 사람을 정자로 안내했다.

“세 분은 오르시면 됩니다.”

묵경은 그녀를 따라 정자로 올라섰다.

‘우욱.’

순간 무거운 기운이 발걸음을 잡는 듯했다.

왜 그가 무신인지,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 알 듯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런 압박이라니…….’

강한 압박을 이겨내며 무신의 곁으로 다가섰다.

무신 초일군.

중원 무림의 최상위에 올라선 인물.

육십을 넘은 나이이지만 겉모습은 사십 대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앞선 묵경이 허리를 숙였다.

“무신님을 뵙습니다.”

“풍류옥협, 어서 오시게. 만나게 되어 반갑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그렇네.”

무신은 이어 인양과 녹림야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들은 의제권협과 녹검살협이겠군. 잘 왔네.”

“초대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는 했으니 자리에 앉도록 하게.”

초일군은 자리를 권했다.

세 사람은 그의 앞으로 나란히 앉았다.

“하희가 그대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네. 고맙게 생각하네.”

“괜찮습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아니네. 이번 일로 인해 본 궁의 일까지 정리할 수 있었어. 그대들의 덕분이라네.”

“잘됐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초일군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금하희에게 일어난 상황을 빠르게 이용했다.

둘째 제자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숨은 자들을 철저하게 찾아내며 하나씩 철저하게 정리해 나갔다.

“자네들 같은 인물들을 이끄는 화산도협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멋진 아우입니다.”

“후후후. 멋진 아우를 둔 그대가 부럽군.”

“저도 그가 제 아우라는 게 가끔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여튼 대단한 인물이네. 황금지도를 중원에 풀어 버릴 줄은 몰랐지.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그가 한 일 덕에 혈사천과 본 궁 사이의 일은 흐지부지하게 지나가 버렸지.”

“맞습니다. 다행이지 않습니까? 결국 그들이 황금지도를 이용해서 노린 것은 진유 아우를 무신님과 싸우도록 만들기 위함이라 하더군요.”

“그들이라는 게 극일천을 말함이겠지?”

“맞습니다. 무신님께서도 극일천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중원인들 중 본인만이 유일하게 극일천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 것 같군.”

“그를 만나보셨습니까?”

“그와 직접 비무를 해보았다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끄럽게도 일방적으로 본인이 깨졌지. 그 결과로 봉문도 당했다네.”

“천검궁이…… 봉문을 당했단 말입니까? 무림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그가 극일천의 존재에 대해 중원에 소문을 내면 모두 죽인다고 했거든.”

무신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할 만큼 극일천주의 무공이 강하다니.

묵경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그가 왜 무신님을 죽이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글쎄, 왜 본인을 살려줬는지는 모르네. 어쩌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제가 듣기로는…… 극일천에게 천검궁의 존재가 필요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진유 아우가 말했습니다. 극일천에서 왜 천검궁을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을까.”

“그랬던가?”

“얼마 뒤 결론을 내리더군요. 천검궁의 존재는 이상하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상하다?”

“천검궁이 있어 중원 무림이 하나의 힘으로 모이지 않는다고 헀습니다.”

“그가 그러던가?”

“네. 맞습니다.”

고진유가 했던 말.

‘천검궁의 존재가 무림의 힘을 방해한다고?’

그럴 수도 있었다.

초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나 사파에서 보면 천검궁의 존재는 서로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쪽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존재하는 세력.

“화산도협의 생각이 맞다면 극일천의 계획이 성공한 것 같군. 중원 무림의 힘을 흩어지게 했으니까.”

극일천주가 그를 살려준 이유.

그리고 봉문을 원한 이유를 알았다.

무림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본인이 결국 무림의 죄인이 됐군.”

“하지만 천검궁이 있기에 중원 무림이 유지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언제는 천검궁 때문에 무림이 망했다는 말을 하더니, 이번에는 무림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결국 정파나 사파의 중원은 극일천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진 세력이 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 번에 정리하기 위해 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으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극일천이 강하다고 하나 무림을 말살하겠다면 정사 무림은 분명 손을 잡겠지. 그렇게 하나로 통일된 무림의 힘은 극일천에게도 부담이 되겠군.”

화산도협의 추측은 완벽했다.

“정말로 화산도협을 한번 만나보고 싶군.”

“진유 아우를 만나면 무신님의 뜻을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후후후. 고맙네. 그대들과 잘 만난 것 같아.”

초일군은 만족스러웠다.

이들을 만나기 전, 일공자이자 첫째 아들 초정을 만나 금하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웃으며 다섯째 제자 금하희와 묵경을 연이어 보았다.

“그대는 혹시 마음에 담은 여인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대의 무공과 용모로는 많은 여인이 따랐을 텐데. 그중에 마음에 든 여인이 없던가?”

“제가 만인의 연인이 아니겠습니까.”

“흠. 그것도 좋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하, 무신께서 좋은 분을 소개해 주실 모양입니다.”

초일군은 옆에 앉은 금하희를 가리켰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희는 어떠한가?”

묵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무신께서 중매를 해주신다면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어떻게 먼저 말씀을 드릴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그런가? 그대도 하희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군.”

“당연하지 않습니까.”

금하희의 얼굴이 발개졌다.

* * *

무림맹으로 향하던 고진유와 북소연, 그리고 무혼신녀는 혈림대거 대신 이륜마차로 바꿔 탔다.

중원에 이미 고진유와 북소연의 관계에 대해 소문이 났지만, 보란 듯이 혈림대거를 타고 무림맹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둠이 시작될 무렵.

일행은 혜제 초입 마을에 도착했다.

고진유가 마차 옆으로 말을 몰았다.

“오늘은 여기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정주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객루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정주객루의 점원이 빠르게 뛰어나와 고진유를 반겼다.

말과 마차를 점원에게 넘겨주는 사이, 두 여인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북소연과 무혼신녀를 본 객루 사내들의 눈빛이 변했다.

“사파 계집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지?”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소연의 내기를 단번에 알아보고 눈썹에 힘을 준 그의 표정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사파인은 여기 오면 안 되나요?”

“안 된다. 이곳은 무림맹의 있는 곳으로 정파의 성지! 당연히 사파인이 올 수는 없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여기에 있다.”

중년 사내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스윽.

무혼신녀가 손을 들어 북소연을 말렸다.

그녀는 중년 사내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이봐. 당신. 승유문 출신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속이 좁은 건 어쩔 수 없군.”

“허어? 본인을 어떻게 알았지?”

“승유문의 항유심법을 익히면 양쪽 귀 아래로 붉은 점이 생기지.”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흥.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

예사 여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온 중년 사내가 재빨리 무혼신녀의 내력을 살폈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남의 무공에 대해 너무 말을 쉽게 내뱉는군.”

“말을 함부로 하는 건 그대 같은데.”

“젊은 여인이 말도 상당히 짧고…… 안 되겠군.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어.”

중년 사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할 때.

일 층 객루의 문을 열고 젊은 도사가 들어섰다.

중년 사내, 승유문의 총관 여검용은 멈칫했다.

‘화…… 산도협이다.’

그는 고진유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고진유가 주위를 둘러보다 두 여인을 보았다.

“북 소저, 분위기가 왜 이렇소?”

“저기.”

북소연은 미소를 띠며 일어선 여검용을 가리켰다.

“저자가 화산도협의 누님께서 말이 짧다며 혼을 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이유는요?”

“제가 사파인이라 여기 들어올 수 없거든요.”

“……알겠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하죠.”

고진유는 우선 두 사람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여검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두 명의 여인.

‘화산도협의 누님이라니……? 그럼 저 젊은 사파의 여인은…… 소문에 난…….’

객루는 적막했다.

손님들 모두 승유문의 총관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 확신했다.

함부로 숨을 쉬지도 못했다.

스윽.

고진유는 몸을 돌려 그와 마주 섰다.

“본도는 고진유라 하외다. 누구신지요?”

“스, 승유문의 총관 여검용입니다. 화산도협님을 뵙습니다.”

“본도를 아시는군요.”

“무림맹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 누님께 실례를 한 모양입니다.”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여검용은 곧장 무혼신녀의 앞으로 갔다. 이미 몸은 반으로 접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인이 정말로 몰라뵈었습니다!”

“아. 되었다.”

무혼신녀는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고진유는 다시 옆에 선 북소연을 가리켰다.

“북소연 소저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파 소속이지만 본도가 좋아하는 여인이외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이다.”

여검용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번에는 북소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북 소저, 제가 똑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사파인이 여기에 오지는 않죠. 우리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해합니다.”

“고맙습니다. 북 소저의 큰 아량에 감사합니다.”

여검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확실한 일이 아니면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객루는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무혼신녀는 미소를 지었다.

“훗. 정파인이라서 봐주는 게냐?”

“그건 아닙니다. 적당한 선을 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걸치더군요.”

“그렇군. 하긴 그 부분은 동생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사실 누님께서 한바탕 난리 치실 줄 알아서 의외였습니다.”

“동생 체면도 있지 않은가. 내가 막나간다고 해도 때와 장소는 약간 가린다네.”

“고맙습니다. 누님.”

“그런 의미에서 술 한잔?”

무혼신녀는 환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 * *

밤이 어두워졌다.

무혼신녀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르륵.

곧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객루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강변.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겠군.”

스윽.

그림자에서 불쑥 올라온 인영이 무혼신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은인(銀人)입니다.”

“누가 보냈지?”

“천문전주님께서 보냈습니다.”

“난 천문전주가 누군지 모른다. 그가 누구지?”

“나하중 님이십니다.”

“나하중……! 그놈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망할 놈…….”

백 년이 지났는데도 죽지도 않다니 명도 질긴 놈이었다.

사내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게 뭐냐?”

“나하중 님께서 주셨습니다.”

휘익.

무혼신녀는 그의 손에 든 서신을 낚아챘다.

그녀는 서신을 꺼낸 뒤 읽었다.

화라라라락!

손에 들린 서신이 단숨에 불에 타며 재가 되었다.

“됐다. 가봐라.”

“…….”

“왜 안 가지?”

“나하중 님께 전할 말씀은 없으십니까?”

“일단 알았다고 해.”

“알겠습니다.”

파아앗!

은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거 참…….’

홀로 남은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하중, 백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얼굴짝이나 보고 싶군.’

스윽.

무혼신녀는 객루 방향을 향해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지? 동면이긴 하지만 백 년이나 살았는데 더 살고 싶은 건가? 쳇,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놈을 만났거늘…….”

그녀는 깨어난 뒤 처음으로 심란해졌다.

* * *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느껴진 미세한 기.

무혼신녀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직까지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대단하군.’

굳이 그녀가 움직인 방향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나간 지 반시진도 되기 전에 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빨리 돌아왔군.’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는 보지 않아도 대충 알 듯했다.

야밤에 몰래 만나는데 좋은 사람일 수는 없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그녀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가였다.

무구천에서 나온 뒤 그녀와 계속 함께 있었다. 그녀가 따로 연락을 보내는 것도 보지 못했다.

털썩.

고진유는 다시 침상에 누웠다.

“그분이 알아서 잘 결정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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