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천검궁의 관할에 들어서기 전 마지막 마을에 도착했다.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 또한 멀리 산동성에서브타 들려온 중원의 소문을 들었다.
소문은 중원 무림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인양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진유 형입니다.”
“인양아, 그건 당연한 거다. 난 놀랍지도 않아. 난 그것보다 황금무동이 가짜일 줄은 몰랐다.”
묵경은 황금무동에 대한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죽일 망할…… 개호랑말코 같은 놈들.”
금하희가 없었다면 시원하게 욕을 갈겨 버렸을 것이다.
고진유가 나서지 않았다면 오만의 무림인들이 극일천에 의해 수장당했을 터.
“그 새끼들은 사람 목숨을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이 투덜거리는 사이,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두두두두-
거대한 모래폭풍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들은……!’
금하희가 먼저 그들을 알아보았다.
천검사단(天劍四團) 중 동천단.
그녀는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저들이 이공자 종택처럼 변절자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으니까.
‘다행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이유는…….’
동천단의 수장 단주.
그는 무신의 첫 번째 제자이자 아들인 초정이었다.
묵경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금 소저, 괜찮겠소이까?”
“동천단은…… 괜찮을 듯합니다. 대사형이 오시는 것 같아요.”
“알겠소이다.”
묵경은 그녀의 앞으로 슬쩍 나왔다.
빠르게 달려오던 동천단이 일행 가까이 다가오면서 속도를 줄였다.
다가닥.
백마를 탄 인물이 앞으로 나오며 묵경의 뒤에 선 금하희를 보았다.
“오 사매, 무사히 잘 왔다.”
“대사형.”
금하희는 안심한 얼굴로 묵경의 옆을 빠져나왔다.
철의 여인이라 부릴 정도인 그녀조차 눈물이 흐를 뻔했다.
휘익!
초정은 백마에서 아래로 내려서 두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다. 그놈이…… 그럴 줄은 몰랐구나.”
“…….”
“그놈과 연관된 인물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사부님께서…… 직접 움직이시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나에게 전권을 주시면서 명을 내렸으니까.”
“사형께서……!”
천검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밖에 없었다.
만일 그조차도 믿지 못한다면 천검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을 게 분명했다.
일공자 초정. 그는 무신 초일군의 뒤를 이을 인물이었다.
이공자 종택을 조사할 수 있는 인물은 초정밖에 없었다.
“일사형, 이사형을 친다는 건…….”
“이부인이 그와 친척이라 해도, 이건 명백한 반역에 해당하는 일이지. 동천단에서 현무국 또한 조사하는 중이다.”
동천단은 이부인 수명궁의 압박도 개의치 않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현무국주를 조사한다면 이부인이 가만히 있을까요?”
“이부인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그러기엔 사인이 너무 커.”
“그렇긴 하네요.”
초정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뒤편에 선 세 명의 인물들을 보았다.
“저들인가? 친협이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네. 저기 앞에 선 분이…….”
“소개를 안 해도 누구인지 알겠군. 소문처럼 정말 잘생겼어. 네가 충분히 반할 정도로.”
“…….”
“하하, 오 사매가 지금까지 사내를 소개할 때 분이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초정이 금하희를 지나쳐 묵경의 앞에 다가섰다.
“풍류옥협, 소문을 많이 들었네. 드디어 만나보게 되는군. 내가 한참 나이가 위인 것 같은데, 괜찮다면 말을 놓아도 되겠는가?”
“그렇게 하시지요.”
스윽.
초정은 포권을 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도록 하지. 난 오 사매의 첫 번째 사형 초정이라 한다.”
“저 또한 영광입니다. 말로만 듣던 신천수검(神天修劍)을 뵙습니다. 워낙 무림에 나오지 않으셔서 그런가, 괴물이라고 소문이 나돌더군요.”
“괴물? 하하, 재미있는 친구이군. 자네 뒤에 두 친구는?”
인양과 녹림야검이 포권을 했다.
“인양이라 합니다.”
“녹림야검…… 입니다.”
화산도협 고진유의 친협이라 불리는 인물들.
초정은 두 사람을 보면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놀랐다.
“의제권협과 녹검살협이군. 두 사람의 무공도 보통이 아니겠어. 자네들을 환영하는 바이네. 천검궁에 잘 왔다.”
묵경은 그를 보면서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쩝. 하긴 일공자를 못 믿는다면 볼 장 다 본 셈이겠지.’
일공자 초정이 나왔다면 그녀의 안전은 책임질 수 있었다.
“금 소저, 우린 그만 돌아가도록 하겠소이다.”
자신들이 맡은 임무는 혈사천과 천검궁이 싸우지 않도록 극일천의 계획을 막는 것이었다.
“함께…… 가시지 않으시고?”
금하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내였다.
이대로 헤어진다면 언제 만나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소저께서 무사히 천검궁에 도착하셨으니, 우린 진유 아우에게 돌아가야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요.”
두 사람을 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이 자못 흥미로웠다.
초정은 특히 금하희의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군.’
사실 그의 사형제들은 금하희가 혼자 늙지 않을까 오랫동안 걱정했었다.
과연 그녀의 마음에 들 사내가 중원에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더구나 금하희는 그동안 사내에게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사매도 천상 여자라는 것인가? 좋아하는 사내를 두고 말도 제대로 말을 못 하는군.’
평소에는 사형제들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쏟아냈다.
“이보게. 묵 아우.”
초정은 점잖게 묵경을 불렀다.
이럴 때 사형이 나서줘야 하는 법이다.
“넵?”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본인이 섭섭할 것 같군.”
“아, 바쁜 일이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소문은 들었지. 자네 의동생인 화산도협이 제대로 일을 마친 것 같더군.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급한 일은 당분간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혹시나 모를 일이라서 말입니다.”
“천하오무에 이름을 올린 그를 누가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정도는 늦게 가도 문제가 없을 것 같군. 본인이 부탁하는 바일세.”
천검궁의 일공자가 직접 하는 부탁.
그를 무시한다면 천검궁에 큰 실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알겠습니다. 일공자께서 직접 부탁하시는데 거절한다면 예가 아니지 않습니까.”
“고맙네. 그리고 일공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편안하게 형님이라고 불러도 좋겠군.”
“형님, 알겠습니다.”
“하하하. 묵경 아우. 가세나.”
그렇게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 세 사람은 천검궁으로 함께 움직였다.
* * *
고진유는 침상에서 눈을 떴다.
침실 밖에 다가온 기척.
‘이 시간에…….’
밖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는가?”
“네. 들어오시지요.”
고진유는 침상에서 내려왔다.
드륵.
그와 동시에 도제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자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미안하게 되었군.”
“앉으시지요.”
고진유가 그에게 의자를 권하고는 도제 앞에 앉았다.
“한참 늦은 시간에 도제께서는 급한 일이 있으신지요?”
“음. 급한 일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일이 있다네.”
“하긴 이 시간에 오실 정도면 중요한 일이겠지요.”
누가 봐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낮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밤늦게 찾아왔다면, 확실하게 볼일이 있다는 의미였다.
“중원 무림에 극일천의 인물이 잠입하지 못한 곳이 없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화산파에도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잡긴 했지만, 또 숨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들의 조직은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하면서도 비밀스러워.”
고진유는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도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극일천에서 오직 한 곳만은 절대로 간자를 잠입시키지 못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무구천이다.”
도제는 말을 하면서도 뿌듯함이 목소리에 느껴졌다.
“그대가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본 천만큼은 절대로 극일천의 인물이 없다네.”
“확실하다면 무구천은 대단하군요.”
“이는 극일천이 무림을 향해 나서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본 천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망설이고 있는 참이었지. 괜히 중원에 나섰다가 그들이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 정도입니까?”
“역시 믿지 않는군. 우린 극일천에 본 천의 사람까지 심어놓았다.”
도제는 무구천이 극일천보다 더 대단하다고 말을 하는 듯했다.
“극일천에 사람을 심어놓았다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건…… 지금 말을 할 수는 없네. 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지.”
“…….”
도제는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듯싶었다.
궁금했지만 그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극일천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지. 과연 얼마만큼의 세력이 있으며 어디에 있는지 말이야.”
“…….”
“만일 그들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바로 움직일 것이 확실하네. 우리가 극일천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저에 대해서는 확실한 모양이군요.”
“현재 중원에서 자네만큼 극일천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긴. 그들에게 전 완전 죽일 놈이겠지요.”
“그래서 하는 말이네. 무구천에 같이 가겠느냐? 천주께서 뵙고 싶다고 하더군.”
“저를…… 말입니까?”
무구천에 함께 가서 그들의 천주를 만나보자는 말이었다.
도제의 말에 고진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지금 가는 것입니까?”
“그렇네.”
“지금 오신 이유가 혼자 가야 하기 때문이군요.”
“맞다.”
고진유는 마음을 정했다.
그를 따라서 무구천에 한 번 가봐도 상관이 없을 듯싶었다.
다만.
“잠시 시간을 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떠나면 모두 당황할 겁니다.”
“그렇게 하게.”
“고맙습니다. 이각 뒤 입구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먼저 특사정화단장 독전호를 불렀다.
“도제님과 둘이서만 잠시 어딘가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위험한 일이십니까?”
독전호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건 아닙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독 단장께서는 곧바로 무림맹에 복귀해서 제갈 군사님께 상황을 그대로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천검궁에 간 묵경 형에게 연락해서 무림맹에서 만나자고 전해주십시오.”
“곧바로 그분들께 연락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요.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나면 됩니다.”
“무사히 뵙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걱정 마세요.”
고진유는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북소연이 자고 있는 객실로 다가섰다.
그녀의 방을 지키고 있던 호위들은 그를 모른 체했다.
그들 또한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똑똑.
고진유는 방문을 두드리며 기다렸다.
“소저.”
안이 밝아지면서 일어나는 기척과 함께 잠시 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고진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게 됐소이다.”
“어디…… 가시는 모양이네요.”
고진유의 복장을 본 북소연이 말했다. 허리에 찬 그의 검이 보였다.
“도제님과 함께 갈 곳이 있습니다.”
“중요한 곳인가 보군요. 밤에 몰래 나갈 정도면.”
무구천에 대해서는 중원에 알려진 것이 없었다.
중원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녀였지만 무구천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소이다.”
“오래 걸리는 일인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서로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이겠지요.”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볼일을 마친 뒤 중원에 나오시면 연락 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고진유는 일어나면서 그녀를 손을 잡았다.
잠시 그대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럼…… 가보도록 하겠소이다.”
“잘 다녀오세요.”
* * *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다가왔다.
“남녀의 이별은 항상 슬픈 법이지.”
“…….”
도제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그만 가시지요.”
“크하하, 그렇게 하지.”
도제와 고진유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스윽.
그들이 사라진 자리 뒤로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음…… 도제. 무구천의 인물이었군.’
달빛이 비치면서 인영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났다.
흑화전주 배조경.
“이거 잘하면 무구천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겠어.”
수백 년 동안 무구천을 찾고자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좋았어. 이번 기회에 무구천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면…….’
만일 자신이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당했던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을 터.
‘후후후, 화산도협을 따라다니니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군.’
타아앗!
배조경은 곧바로 신형을 펼치며 최대한 떨어진 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도제와 고진유는 새벽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도제는 달리면서 시선을 돌려 고진유와 마주쳤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
끄덕.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틀었다.
고진유와 도제의 뒤를 미행하던 배조경은 그들이 양쪽으로 나뉜 장소에서 신형을 멈췄다.
당황한 표정이 바로 나왔다.
“이런…….”
최대한 떨어진 채 미행했지만 그들에게 들켰다.
‘젠장…….’
그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양쪽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과 마주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