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북소연은 주위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앞으로 나왔다.
“소저는 누구시오?”
“제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요?”
“흠…… 제법 강단이 있는 젊은 여인이군. 내력을 보니 사파 출신 같은데 어디에서 왔는가?”
“묵혈풍도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지옥혈림의 북소연이라 합니다.”
“북소연? 혹시 북조궁과는 어떤 사이인가?”
“그분을 잘 아시는 모양이시네요.”
“훗. 당연히. 어릴 때 본인에게 많이이 맞았지. 크하하하하!”
“제가 듣기로는 반대라고 하던데요?”
“크크크. 역시…… 그때 꼬맹이 계집이 소저였군.”
“기억하시는군요.”
많은 이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북 소저,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겠나?”
“지금 밖에 화산도협께서 계세요.”
웅성웅성.
“화산도협이?”
“정말 그가 밖에 있다면 살 수 있어!”
조용했던 황금무동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황보우명이 다가왔다.
마침 화산도협을 의심하던 찰나에 그의 이름이 나오자 혼란스러웠다.
“북 소저, 그가 밖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소?”
“그분께서는 이미 이곳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어요.”
“…….”
“다만 출입구가 막힐 줄은 몰랐던 모양이지만요.”
만일 출입구가 폭발할 거라는 사실을 고진유가 알았다면, 자신이 황금무동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막았을 게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조혈상이 나서며 물었다.
“북 소저.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는 왜 말리지 않았지? 설마 사파인들을 모두 죽이고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인가?”
“혈중오검님, 여기를 둘러보시죠. 사파보다 정파의 무인들이 더 많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분은 정사마에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걸…… 네가 그를 어떻게 안다 말이더냐?”
“하아…… 참…… 할 말 없게 만드시는군요. 그분께서는 며칠 동안 고심하셨어요. 여러분들을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리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분이 함정이라며 말렸다 해도, 이곳에 정말 들어오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혼자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걸요?”
“…….”
그녀의 말에 한 명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분은 혹시나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있었던 겁니다.”
“그가 지키고 있었다면 왜 출입구가 무너졌지?”
“그게 그분의 잘못인가요? 여기 함정을 만들었던 자들의 원래 계획은 제방을 직접 무너뜨리는 것이었어요. 저기를 보세요. 다행히 아직 무너지지 않았잖아요? 만약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우린 벌써 수장됐을 겁니다. 아마도 그분은 다행히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은 막아냈지만, 출입구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틀림없어요.”
북소연의 말에 황금무동에 들어온 인물들이 조용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울렸다.
“여러분들은 마음 편하게 기다리면 됩니다. 분명 그분이 우리를 구해내실 테니까.”
“……맞소이다. 화산도협은 분명 우리를 구해줄 것이외다.”
순간이나마 그를 의심한 게 미안했던 황보우명은 그녀를 따라나서며 무림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 * *
초연루로 들어섰다.
황금무동으로 들어서는 비상구.
문처용을 따라 지하로 내려서자 막혀 있는 벽이 보였다.
덜컹.
곧 지하 아래로 내려가는 복도가 나타났다.
“이곳을 지나면 증제 아래 광장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지만 극일천이 대단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당연하다. 수백 년 동안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이니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겠지.”
도제도 당연하게 인정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죠. 안내하시오.”
“알…… 겠습니다.”
문처용은 앞장서며 복도의 끝으로 움직였다.
번쩍.
복도 끝에서 빛이 나는 물건들이 보였다.
“저건 무엇이오?”
“황금무동에 일부 남아 있던 보물들입니다.”
“여기가 정말 황금무동이 맞았소?”
“그건…… 아닙니다. 원래는 증제의 뒤편 산속에 황금무동이 있었지요. 진짜 글귀는 용수가 아니라 ‘용산(容山)’이었습니다…… 원래의 황금무동은 지반이 약해, 무너지기 전 이곳을 새롭게 만들어 옮겨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물을 두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보아하니 겸사겸사 만든 모양이군요. 나중에 이렇게 사용할 생각으로.”
“…….”
“그래도 보물까지 사라지면 안 되니 이런 장치를 만들어 놓았고.”
고진유는 돌아서며 그와 마주쳤다.
“약속했으니 원하는 만큼 주겠소. 일단 이것들을 따로 옮길 장소가 있소?”
“이 건물 위에 옮겨놓으면 됩니다.”
“좋소. 우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전에 모두 옮겨놓는 게 좋겠군요.”
“이것들을 먼저?”
도제는 사람들을 구하기 전 먼저 보물부터 챙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제님, 여기에 이것들을 그대로 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흠.”
“이건 제 것이 아니고 무림맹의 것도 아닙니다. 중원인들의 것입니다. 그들에게 돌려줘야지요. 혹시 도제님도 이것들이 필요하십니까?”
“난 필요 없네. 그저…… 자네가 이것을 꿀꺽하는 줄 알았지.”
“전 이런 게 없어도 돈 많습니다. 제 제자가 누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과연 그렇군.”
열 명의 신공각원의 무인들과 특사정화단이 쌓여 있는 보물들을 빠르게 옮겼다.
초연루의 이 층과 삼 층이 황금과 보물들로 가득해졌다.
반 시진이 되기도 전에 보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옮겼다.
“수고들 했소. 약속했으니 원하는 대로 가지고 가시오.”
“저, 정말입니까?”
“어차피 당신들도 소문을 내지 못할 게 아니오. 오늘 일은 서로 조용하게 끝을 내는 걸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도협님.”
그들 열 명은 쌓여 있는 보물들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챙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초연루를 떠나갔다.
고진유는 다시 지하로 움직였다.
“이젠 저들을 구해볼까요?”
* * *
황금무동은 어느새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수면이 점점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말이 사라지고 고요함에 잠겼다.
그들은 오직 외부에 있는 화산도협이 구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여러 동굴 중 한 곳에서 굉음이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저기에서 소리가 들렸소이다!”
쿠우우웅-
콰아아앙-!!
연이어 굉음이 들려왔다.
동굴로 향해 달려갔던 사내가 밖으로 황급히 나오면서 소리쳤다.
“화산도협께서 오셨다!!!”
“와아아아아-!!! 화산도협이다!!”
황금무동에 있는 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무인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북 소저의 말이 맞았소이다!”
“당연하잖아요. 그분은 화산도협이잖아요. 우릴 죽게 내버릴 사람이 아니에요.”
북소연은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허리까지 물이 찼을 때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분명히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하며 참았다.
이윽고, 오만의 무림인들이 황금무동에서 모두 빠져나왔다.
“하하하!! 살았다!!”
“그렇소이다. 두 번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할 듯싶었소이다!”
“괜히 보물에 눈이 멀었다가 수장 당할 뻔했소.”
밖으로 나온 무인들은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보물도 좋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척.
묵혈풍도는 포권을 하였다.
“화산도협, 은혜를 입었다.”
“아닙니다. 괘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소문 그대로이군. 정파에 두기는 아까운 인물이다.”
“후후후,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꼭 은혜는 갚도록 하겠다.”
휘익.
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북소연은 도복을 걸친 채 한곳에 앉아 그를 보았다.
싫은 기색조차 없이 한 명씩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혈중오검 조혈상도 밝은 표정으로 고진유와 인사를 나누었다.
대명호는 어느덧 조용해졌다.
고진유가 북소연의 곁으로 다가섰다.
“괜찮소?”
“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신세 진 것을 갚았다고 생각하시오.”
“그렇게 하죠.”
북소연은 초연루를 보면서 물었다.
“이곳에 비상통로가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요?”
“음…… 경험이오. 대부분 숨기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 짓는 건물들은 비상구가 있더군요. 그래서 그들에게 물어봤소이다.”
“가르쳐 주던가요?”
“가르쳐 주더군요.”
“…….”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쉽게 알려줄 리 없지 않은가.
“물론 공짜는 아니지요. 그들의 목숨을 살려줬으니까. 그리고 약간의 보물도.”
“보물?”
고진유는 초연루를 가리켰다.
“같이 올라가겠소?”
“좋아요.”
북소연은 그를 따라서 초연루에 들어섰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은 특사정화단이 지키고 있었다.
‘여기 위에 무엇가 있어.’
한 계단씩 오르며 이 층으로 올라섰다.
뚝.
이 층에 올라선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황금들과 보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것들은…….”
“맞소. 황금무동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오. 예전에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는데 극일천에서 거의 옮겼다고 하더군요.”
북소연이 놀란 눈으로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중원인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오.”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을 텐데요.”
“우선 중원상국에 보내서 돈으로 환전할 것이오.”
“도제께서 허락하실까요?”
“다른 곳이 아니라 중원상국이라면 찬성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사람은 돈을 앞에 두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소저도 그렇소?”
“난 돈에는 관심 없어요.”
“다행이군요. 사실 난 무척 관심이 많소이다. 조금 나눠줘야 하는지 고민을 했지요. 흐음…… 그리고 소저에게 부탁이 있소.”
“뭔가요?”
“이것들을 중원상국으로 운송하는 일은 지옥혈림에서 맡아서 하는 게 어떻겠소?”
“본 림에서요?”
“당연히 비용은 책임지고 주겠소이다.”
“우린 비싸요.”
“하하, 그럼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합시다.”
“알겠어요.”
* * *
황금무동에서 일어난 사건은 산동성을 넘어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이번에도 화산도협의 위명이 중원의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중원 무림에 처음으로 극일천이란 세력에 대해 알려졌다.
무림의 멸망을 노리는 세력.
황금무동이란 함정을 파서 수만의 무림인들을 수장시키려고 했던 그들의 악행이 퍼져 나갔다.
중원 무림은 광분했다.
당장에라도 극일천을 찾아서 따끔한 혼을 내주려는 인물들이 많았지만, 중원 어디에도 그들의 존재를 찾아낼 수 없었다.
다각다각.
마지막 황금과 보물을 실은 마차가 초연루를 떠났다.
초특급 임무인 만큼, 지옥혈림 사대흑신왕 중 서흑신왕이 직접 일을 맡았다.
북소연과 나란히 선 중년 사내의 눈매가 서로 닮아 보였다.
서흑신왕은 떠나기 전 고진유의 곁으로 다가왔다.
“화산도협, 모두 출발했다.”
“수고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무사히 배달할 테니.”
“고맙습니다. 중원상국에는 미리 연락했습니다. 물건들이 도착하는 즉시 지불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받도록 하겠네. 그리고…….”
“본도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계십니까?”
“구 형과 싸웠던 이야기는 들었네. 잘했더군.”
“구 형이시라면……?”
“구종부라고…… 지옥수를 박살 내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가?”
“아, 북흑신왕을 말씀하시는군요. 그의 이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내 이름은 아는가?”
“북 소저에게 서흑신왕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맞다. 본인이 사대흑신왕 중 한 명이지. 근데…… 그게 전부인가?”
북소연이 얼른 그를 말리듯 나왔다.
“안 바쁘세요? 그만 가시는 게…….”
“이 녀석이. 바쁘더라도 내 이름은 알려줘야지 않겠느냐?”
고진유는 굳이 이름을 알려주겠다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북안궁이다.”
“아하, 그렇지 않아도 두 분이 눈매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굳이 놀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둘이 사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 누구냐? 자네의 의형과 의제가 질녀를 보며 형수와 제수씨라고 불렀다고 하더군.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하아, 형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북소연을 만난 두 사람은 편하게 부탁을 하기 위해 가장 잘 먹히는 말을 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맞습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크하하하!”
툭툭.
북안궁은 기분이 좋은 듯 고진유을 껴안으면서 등을 두드렸다.
“이해하네. 아직 밝히기에는 때가 아니겠지. 걱정 말게나. 비밀을 지켜주겠네.”
“고맙습니다.”
“크크. 녀석…… 다음에 한잔했으면 하네.”
북안궁은 떨어지면서 고진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가슴을 툭 쳤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카사위, 다음에 보세나.”
“…….”
서흑신왕 북안궁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음을 지으며 떠났다.
‘하아아아…….’
고진유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어…….”
북소연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난 묵경 형과 인양 아우가 실없는 사람이 안 되었으면 합니다.”
“…….”
스윽.
고진유는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북 소저는 나를 좋아합니까?”
“네. 좋아해요.”
그녀는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옆에서 봤으니 알 겁니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을 누가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저도……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그들 두 분 때문에 마음에 없는 저를 억지로 염려하신다면 사실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북소연은 혼자서 일방적인 사랑을 하더라도 구차하게 사랑을 갈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니오. 여인에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한 번도 표현해본 적이 없기에 말을 못 할 뿐입니다.”
“간단해요. 저처럼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고진유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좋아합니다.”
북소연은 그의 말 한마디에 그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신분을 속인 채 혈림관에 들어간 뒤 추혼대 소속으로 활동했다.
흑귀를 죽이고 달아난 인물을 쫓기 시작한 그날부터 그와 인연이 시작됐다.
그를 쫓는 과정에서 죽을 뻔한 사건도 있었다.
그 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만나게 됐고, 지금의 감정으로 흘러왔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른다고 했던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지요?”
“당신이 먼저 웃었잖아요.”
“그렇소? 우리가 그냥 웃겨서 웃었소이다.”
“저도요.”
두 사람과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던 시선.
“잘들 논다.”
도제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젊음이 부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