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08화 (208/425)

208화

고진유를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도제에게서 흐르는 기운의 느낌.

한번 경험했던 고독기검 유하랑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과 닮아 보이는 듯한 기운이었으니까요.”

“고독기검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도제는 몸을 뒤로 빼면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내가 어디에서 온 줄 안다면 무엇을 말할 것인지도 알겠군.”

“그렇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겠네. 철갑을 본 무구천에 건네줄 수 있겠는가?”

“그 물건은 비록 제가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제가 함부로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게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철갑을 주지 않기 위한 변명이라 확신했다.

“철갑은 여기 북 소저에게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

도제는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철갑이 화산도협만의 물건이 아니니 줄 수 없다는 뜻.

“화산도협, 본인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네. 서로 좋게 대화로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

도제의 찻잔이 비워졌다.

쪼르르르.

고진유는 다시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

도제는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한 잔 더 드시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지.”

스윽.

고진유는 찻잔을 앞으로 내밀면서 기운을 은근히 올렸다.

‘어쭈…… 지금 나에게 내기를 뿜어내고 있군.’

유하랑에게 화산도협의 무공에 대해 들었다.

‘강하다고 들었지. 하나…… 나에게는 안 돼.’

도제 또한 상대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도제를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움이 없어. 오히려 먼저 도발을 하다니…….’

둘 사이에서 한바탕 일이 벌어질 것처럼 보이자 북소연은 긴장했다.

“도제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습니다.”

“내가 이긴다면 철갑을 줄 수 있나?”

“흠. 조건이라는 것은 일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이긴다면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맹랑하군.’

자신이 누구인가.

천하오무 도제이다.

“사내라면 분명 호기는 가져야 하지.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상대가 누구인지 똑바로 파악해야 하는 법이다.”

“제가 도제님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

고진유의 대답은 명백한 도전이 분명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며,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대로 표출했다.

“정말 본인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싸우지 않았으니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요. 하지만 전 처음부터 피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의 패기라. 하지만 그것만으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전에 말씀하시지요. 만일 제게 진다면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

그는 고진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한 가지 물건을 요구해도 되겠습니까?”

“뭐지?”

“철갑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주시지요.”

도제는 한 번 더 인상을 찡그렸다.

극일천 천주의 피.

철갑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건 나 또한 함부로 정할 수 없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도제께서 저를 이기셔도 철갑을 줄 수 없습니다.”

“교묘하게 넘어가는군. 상당히 약은 사람일세.”

철갑을 얻을 수 없다면 힘들게 굳이 싸울 이유가 없었다.

“제가 약았다면 도제께서는 도둑놈의 심보를 지녔군요.”

고진유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도제를 앞에 두고 도둑놈이라고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인물이 중원에 누가 있을까?

타앙!

도제는 앉은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이 위로 떠올랐다.

도제의 눈앞까지 올라온 찻잔.

타앗!

도제가 순간 손을 뻗자,

피이이잉-

찻잔이 강하게 회전하며 고진유를 향해 날아갔다.

탓!

고진유는 가볍게 손을 뻗어 날아오는 찻잔을 잡았다.

“……이거 참.”

너무나 쉽게 잡아내는 모습을 보니 허탈할 정도.

“그렇다면 이것도 한 번 받아보게.”

도제는 연이어 발을 굴렀다. 한 번에 끝을 낼 생각이 아니었다.

타아아앙!!

이번에는 탁자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띄우고자 했다.

하지만,

짜악!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고진유가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탁자에 놓여 있던 물건들은 흔들거릴 뿐 그대로 멈춰 섰다.

‘내 기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방금 고진유가 보여준 한 수로 내력의 우위조차 느낄 수 없었다.

“자네를 천하오무에 당당히 올린 이유를 알 만하군.”

도제는 고진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렵군.’

철갑을 쉽게 가져가기는 힘들 듯했다.

고독기검 유하랑이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 한편으로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게 아니군. 나도 이 녀석과 싸운다면 그처럼 될지도 모른다.’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됐다. 주기 싫다고 하는데 방법이 없군.”

“무구천도 생각보다 강한 곳이군요.”

“어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무구천이 극일천을 상대한다고 할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처럼 중원에 많은 인물들을 몰래 심어 놓은 것도 아니고, 큰 세력도 없어 보였으니까요. 근데 도제님을 보니 충분히 그들을 견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 하나 우리를 잘 알았다고 해서 철갑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

“그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냥 해본 말이다.”

도제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고진유의 성격이 어떠한지 알았다.

‘언뜻 보면 고집스러워 보이는 성격은 강한 자신감이겠군.’

도제는 중원에서 많은 무인들을 만났고, 그들 중 고진유와 비슷한 유형의 성격을 지닌 인물들도 만났다.

그러면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이런 성격은 대부분 가만히…… 묵묵하게 곁에 있다 보면 인정해 주지. 동료나 친한 사이로 관계가 발전하면 어렵거나 힘든 부탁도 잘 들어주는 이로 변한다.’

도제는 깨끗하게 한발 물러났다.

“그 문제는 없던 걸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스윽.

도제는 편안하게 앉은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같은 마차에서 타고 내리는 일은 남녀 사이에 흔한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정말로 어떤 사이인가?”

“우리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상당히 친하거나, 연인처럼 보일 수도 있겠군.”

“정말로 그렇게 보입니까?”

“한 마차에 같이 타는 사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보지 않겠나?”

“그렇군요.”

고진유는 대답한 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끝인가?”

“따로 들을 말이 있습니까?”

“어떤 사이인지 말하지 않았네.”

“아…… 그렇군요.”

“…….”

도제는 입이 실룩거렸다.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물론 북소연도 고진유가 어떻게 대답을 할지 궁금해졌다.

고진유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남녀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남녀 사이라…… 혹시 연인 사이라는 것인가?”

“남녀 사이는 제삼자가 나설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일이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긴 하지.”

그들 사이가 잠시 조용해졌다.

“아 참.”

침묵을 깨고 도제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고독기검, 그 친구와 싸워 이겼다고 들었는데 맞는가?”

“비무를 했을 뿐입니다. 누가 승자고 패자고는 없습니다.”

‘고독기검을 이겼다는 말이군. 본 천의 오무천자를 이길 정도의 실력이라니…….’

고진유가 다시 한 번 새롭게 보였다.

“황금지도를 중원에 풀었으니 어떻게 끝을 낼 생각인가?”

“사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극일천의 계획인 혈사천과 천검궁을 막고자 했던 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야 그들이 노리는 게 이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흠. 극일천에서 왜 황금무동을 가르쳐 주었다고 보는가?”

“중원을 혼란스럽게 만들 생각이겠지요.”

“그게 정답이겠군. 하지만 어떻게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일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황금무동을 찾는 중원의 무림인들을 죽이는 것. 극일천은 충분히 그 짓을 하고도 남을 인물들입니다.”

도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그놈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는다.”

“무서운 곳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발밑에 지나가는 개미보다 못한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여기에 황금무동은 없다는 뜻인가?”

“있다고 해도 극일천에서 이미 정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함정이 있을 수도…….”

고진유와 도제의 생각이 같았다.

“그렇다면, 중원인들을 위해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

그의 말에 고진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말한 모양이군. 극일천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자들을 구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겠지?”

“저들이 제 말을 따를 거라 보십니까? 황금무동에 들어가면 죽을 수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흠.”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어느 누가 와서 그 말을 한다고 해도 따르지 않을 겁니다. 이미 그들은 정상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허어…… 그렇다고 해서 지켜보기만 한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요. 혹시 천하오무의 일인이신 도제님께서 나선다면 어떻겠습니까?”

“…….”

도제도 자신이 없었다.

대명호에 모여든 중원 각지의 무인들은 오직 황금무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그들의 공동의 적이 될 수 있었다.

“자네는 그들 모두가 죽어도 나설 생각이 없군.”

“너무 극단적으로 보시는군요. 저는 할 수 없는 것을 안 할 뿐, 할 수 있는 건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위해 제 목숨까지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도제님은 목숨을 걸고 저들을 위해 죽을 자신이 있습니까?”

고진유는 마지막 말을 도제에게도 물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난…… 자네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다를 줄 알았네.”

“전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그들 또한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능력이 맞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게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그리고 그 허망한 짓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진유의 표정은 단호했다.

‘이 녀석을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고진유가 원하는 정의는 달랐다.

무구천의 뜻대로 그를 움직일 수 없을 것이었다.

‘흠…… 피곤한 녀석이군.’

* * *

완전히 어둠이 오기까지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특실 침상에 누워 잠을 자는 듯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자는 건 아니겠지?’

북소연은 의자에 앉아 그를 보았다.

배에 두 손을 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침실은 아니지만 같은 방에서 사내와 단둘이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꿀꺽.

침을 삼키는 것도 괜히 신경이 쓰인 탓인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자는 거야?’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진유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침상에 처음 그 자세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

그가 자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스윽.

그녀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정말로 자고 있는지 살피면서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침상으로 다가섰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그의 옆에 선 순간,

스윽.

고진유가 고개만 움직여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북 소저, 본도에게 볼 일이 있소이까?”

“그, 그, 그게 아니라…….”

“시간이 됐소?”

“아, 네에! 맞아요. 날이 어두워졌어요.”

“그렇구려.”

고진유는 침상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모르는 그녀를 보았다.

“잠시 쉬었소이까?”

“네에…….”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워지긴 했지만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

“반시진 뒤에 나갈 수 있도록 하죠.”

“네, 알겠어요.”

북소연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휴우…… 다행이네.’

* * *

밤이 깊었다.

드륵.

고진유와 북소연이 특실 밖으로 나오자 도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 있었다.

도제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고진유와 북소연을 번갈아 보았다.

“여태까지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낸 모양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괜한 오해는 마십시오.”

“건강한 성인남녀가 한 방에서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북 소저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개인적 일입니다. 굳이 도제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흐음……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후후,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어딜 가느냐?”

“황금무동을 찾으러 갑니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저들이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친절하게도 대명호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명호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곳에 가서 찾아보면 나오겠지요. 시간도 많은데 급할 게 없습니다.”

“나도 함께하세나.”

“음…… 그렇게 하죠.”

“마차를 타고 가는가?”

“조용히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태워주기 싫은 것은 아니겠지?”

“그럼, 혼자 편히 타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

휘이익!

고진유와 북소연 신형을 날렸다.

“흐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군.”

파아앗!

도제는 투덜거리며 앞서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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