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종택은 당황했다.
풍류옥협의 무공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는 방심한 게 아니었다.
전력을 다했는데, 어떻게 이겨야 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흔들어야 한다.’
싸움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야 했다.
종택은 용검단 수하들에게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넵. 알겠습니다!”
채애앵-! 채앵!
용검단의 무인들이 검을 뽑으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후후후.’
인양은 미소를 지었다.
무공을 익힌 뒤부턴 싸우는 게 즐거웠다.
“녹검 형, 우리 차례네요.”
“조심해라.”
녹림야검도 마찬가지.
살인무경을 완성해 나가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파앗-!!
인양과 녹림야검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스으으으-
녹림야검의 주위로 살무가 퍼져 나갔다.
살무에 숨겨진 살성.
상대가 천검궁이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살성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지 두려움을 받는 게 아닙니다.”
“두려움을 주는 살성을 깨우친다면 살인무경은 극성으로 변할 것이외다.”
용검단 사이로 흐르는 살무.
스걱-
용검단의 무인들은 살무에 갇힌 채 어떻게 목이 잘려 나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으으으아아아악……!”
살무가 흐르는 사이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검단의 무인들이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휙휙휙.
호충신법을 펼친 인양의 신형은 점점 빨라졌다.
소리조차 인양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퍽퍽퍽.
화산복호권의 파괴력은 속도가 빠를수록 강했다.
가볍게 부딪친 것 같았지만 용검단의 무인들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좌우에서 퍼져 나왔다.
녹림야검과 인양의 공격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살무와,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일권에 달려오던 용검단의 무인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금하희는 그 찰나를 이용했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다. 검비들은 반격하라!!”
“와아아-!!!”
용검단의 무력에 움츠러들었던 처구성은 그녀와 함께 나타난 세 사람의 무공을 보며 힘이 솟구쳤다.
친협들의 무공은 너무나 강했다.
“와아아아!!!!”
처구성이 앞장을 서자 검비의 무인들은 용검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채애애앵!
마종검과 연화연검이 부딪쳤다.
검의 무게와 휘두르는 속도로 인해 가벼운 연화연검은 언제라도 마종검에 잘려 나갈 것 같았다.
‘대체…… 왜……!!’
십여 초의 공방이 이어지고, 종택은 점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가 아는 연화검법은 이렇게 무겁고 강하지 않았다.
한데 묵경이 펼친 연화연검의 변화는 갈수록 막기 어려워졌다.
휘리리릭-
연화연검이 마종검을 타고 올라와 손을 지나 팔을 휘감았다.
“아악.”
날카로운 검기는 손목과 팔뚝을 스치며 멈추지 않고 어깨를 향했다.
종택은 어깨를 타고 올라가는 연화연검의 끝을 빠르게 잡았다.
찌이이잉-
그의 손끝에서 검기가 흔들거렸다.
“크윽.”
짧은 비명이 나오며 검을 잡은 손을 통해 검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휘청.
종택은 뒤로 흔들거리며 물러났다.
결정적인 빈틈.
푹!
묵경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방비가 된 가슴을 향해 연화연검이 쏟아졌다.
“커어억……!!”
종택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종택의 눈은 도저히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내가……?’
“허…… 억…… 헉…….”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크…… 큭…….”
얼마나 허탈했는지 죽는 순간에도 웃음이 나왔다.
“기생…… 오라…… 비…… 같은…… 놈에게…… 당…… 하…….”
툭.
이공자 종택의 목이 힘없이 떨어지며 몸이 천천히 아래로 쓰러졌다.
* * *
대명호에 이보다 많은 무인이 모여든 적이 있을까.
고진유와 북소연은 멀리서 몰려드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황보세가에 들른 고진유는 세가주와 인사를 한 뒤 한 시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가에서 나왔다.
세가의 인물들이 황보세가에서 지내도록 권했지만, 역시 쉽게 움직이려면 산동루에서 지내는 게 편했다.
둘의 시선은 여전히 마차 밖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확실하지 않소?”
“그러게요. 황금무동이 대명호에 있다는 소문이 이번에도 난 모양이에요.”
북소연은 특유의 감으로 이번 일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린 어떻게 하죠?”
“우선 산동루에 돌아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쉬도록 하죠.”
“알겠어요.”
다각.
혈림대거는 대명호를 지나치며 산동루로 향했다.
그때, 관로를 따라 천천히 지나가던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북소연은 마차 밖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인가요?”
“길 한복판에서 누군가 혈림대거를 막고 있습니다.”
흑귀들은 제남에서 함부로 싸울 수 없었다.
“독 단장께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진유의 말에 독전호가 신형을 날리며 관로 한복판에 선 중년 사내를 향해 내려섰다.
‘……기합이 보통이 아니다.’
오십을 넘어선 나이의 중년 사내.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카락과 강인한 눈매.
그의 등 뒤로 매인 도가 보였다.
손잡이 끝에 도천(刀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설마…….’
독전호는 맹주 권왕 황보강을 곁에서 모시면서 수많은 무인을 보았다.
천하오무 또한 곁에서 뵌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인물은 단 한 명.
‘도제(刀帝) 시남구…….’
천하오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절대무인.
‘그분이 틀림없으시다.’
척.
“소인, 도제님을 뵙습니다.”
“클클클…… 무림에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거늘. 본인을 아는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군.”
“어찌 도제님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네놈은 누구냐? 내력을 보니 사파 놈은 아닌 것 같은데.”
“호창검가 독전호라 합니다.”
“호창검가라면 만추검과는 어떤 사이더냐?”
“제 조부가 되십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지옥혈림의 마차에 타고 있느냐?”
“제가 모시는 분이 안에 계십니다.”
그는 독전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도제 시남구는 중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사파를 싫어했다.
“만추검의 자손이 사파인을 모신다고?”
“…….”
덜컹.
그때, 마차의 문이 열렸다.
고진유는 밖으로 나와 도제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도제님의 성정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매화도의.’
도제는 다가오는 젊은 도사를 유심히 보았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내력에 기품이 느껴졌다.
현재 중원에서 이보다 더한 화산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젊은 도사는 한 명밖에 없었다.
“화산도협. 그대가 화산도협이군.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 생각했거늘. 오히려 소문이 못하다는 경우를 보게 될 줄이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 또한 도제님의 대한 무용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클클클. 반갑네.”
도제는 가까이 다가온 고진유를 살폈다.
‘멋지군. 천하오무에 올라온 이유를 알겠어.’
도제의 콧등이 실룩거렸다.
호승심을 보일 때의 반응이었다.
“도제님께서는 앞을 가로막으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혈림대거. 지옥혈림의 마차가 아닌가.”
“맞습니다.”
“그대가 왜 혈림대거에서 나오는지 모르겠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진유는 독전호에게 눈짓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후다닥!
독전호는 빠르게 마차로 다가선 뒤 문을 열었다.
이어 북소연이 마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소녀, 북소연이 도제님을 처음 뵙습니다.”
도제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고진유를 보았다.
그녀의 내력을 읽었기 때문.
“어떻게 된 일이냐? 이 아이는 사파인이 아니더냐?”
“사람을 사귀는 데 정사마의 구별이 따로 있겠습니까.”
“사파인은 믿을 게 안 된다. 항상 뒤통수를 치는 종족들이다.”
“도제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파인이라 해서 모두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나 사파인이라고 해서 모두 믿지 못하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너그러운 아량으로 북 소저를 좋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허허, 무공과 함께 언변 또한 보통이 아니로구나.”
도제는 다소곳하게 선 북소연을 보며 물었다.
“북소연이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북씨라…… 혹시 혈성존과 어떻게 되느냐?”
“그분은 가친이십니다.”
“그렇군. 혈림대거를 탈 수 있는 인물은 그가 아니면 그와 연관된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지.”
도제는 대명호로 들어오는 길에 혈림대거의 존재를 알았다.
따끔하게 혼을 내서 쫓아내고자 했건만.
“화산도협, 그대도 황금무동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군. 여기에 온 것을 보니.”
“도제님, 황금지도를 중원에 푼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
도제는 순간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군. 내가 그걸 미처 생각 못 했군. 황금지도를 중원에 푼 사람이 자네였지. 그럼 자네는 어디에 가는 길인가?”
“황보세가에 다녀오는 길이라서 산동루에서 잠시 쉬고자 합니다.”
“호오…… 대명호에는 가지 않고? 황금무공의 첫 번째 글귀가 가리키는 장소가 대명호라고 하더군. 아니 그런가?”
“저 또한 모르는 일인지라 정확히 맞다고 대답할 수가 없군요. 첫 번째 글귀의 장소가 대명호라 해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용할 때 올 생각입니다.”
“좋아. 호깃 나도 산동루에 함께할 수 있겠는가?”
“함께 자리를 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마차에 오르시겠습니까?”
“됐네. 난 걸어갈 테니 자네는 타고 오게. 산동루가 어디인지 알고 있으니 먼저 가게. 그곳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산동루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공손히 인사를 한 후 그녀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
도제는 그를 스쳐 멀리 사라지는 혈림대거를 보았다.
“어허, 한 번 더 타고 가는 게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타고 가겠다고 할 걸 그랬군.”
스윽.
도제는 클클 웃으며 대명호로 가던 발길을 돌려 마을로 천천히 걸었다.
* * *
도제는 산동루를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황금무동의 소문을 들은 도제는 궁금했다.
황금충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두 눈으로 구경하고 싶었다.
굳이 황금지도를 구하지 않아도, 소문만으로도 황금무동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많은 중원인들이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재물의 욕심은 없었다.
그 안에 있을 물건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정말로 황금무동이 소문처럼 있을까 궁금했을 뿐이었다.
드디더 멀리 산동루의 높은 지붕 아래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의는 있는 편이군.’
입구에 홀로 서 있는 고진유가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기다려 주니 고맙군.”
“도제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나와서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진유의 행동은 전형적인 정파의 무인이었다.
“훌륭해. 정파 무림의 등불이 될 수 있겠어.”
소문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다.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부탁하겠네.”
두 사람은 곧장 이 층으로 올라섰다.
탁자 위에는 차와 함께 가벼운 다과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북소연이 살짝 허리를 숙였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차를 준비했습니다. 앉으시면 됩니다.”
“북 소저. 고맙군.”
도제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대들도 앉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고진유와 북소연 또한 그의 앞에 앉았다.
“제가 한 잔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가 도제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일각 정도 말없이 세 사람은 차를 음미했다.
도제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네.”
“저를 만나고 싶으셨던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까?”
도제는 주위를 살폈다.
이 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북 소저는 잠시만 자리를 피해줄 수 있겠나?”
“…….”
도제의 말을 거부하기에는 중원 무림에서 위명이 너무 컸다.
“알겠습니다.”
북소연은 일어나려고 했다.
스윽.
그대, 고진유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
북소연은 멈칫거렸다.
“도제께서는 무엇을 물어보시려고 하시는지 제가 먼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흠, 둘 사이가 어떻게 되는가?”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서로 비밀이 없는 사이입니다.”
“……크하하하!”
도제는 대소를 터뜨렸다.
산동루가 터져 나갈 듯 내력이 폭발했다.
“비밀이 없는 사이라 했는가? 화산파의 도사와 지옥혈림의 사파인이 그런 사이인 것을 무림맹은 알고 있는가?”
“아는 분들은 아십니다.”
“누가 안다는 말이지?”
“제갈문 어르신과 제갈양 형님…… 그리고 십문십가의 대부분 대사님들도 알고 계십니다.”
“호오.”
고진유의 대답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알면서 가만히 있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특별히 북 소저와 함께 지내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으신 거로 압니다.”
도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무림맹이 아닌 듯했다.
“무림맹에서는 넘어갔다 해도, 내가 할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이다.”
“도제께서 무구천에서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라면 북 소저가 굳이 자리를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부 알고 있으니까요.”
도제는 순간 뜻밖의 대답에 눈이 커지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허……! 어떻게 알았느냐?”
무구천의 오무천자(五武天者).
고독기검 유하랑에 이어 도제 시남구 또한 무구천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