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06화 (206/425)

206화

산서성으로 빠르게 들어선 마차는 곧장 상원현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검문을 받았지만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금하희는 비표를 통해 검비에게 비밀리에 소식을 전했다.

곧바로 검비에서 연락이 왔다.

검비에서 나온 수하들과 합류할 지점은 피사대.

그녀는 천검궁에 알리지 말고 검비만이 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천검궁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수하들을 믿긴 하지만, 이공자 종택의 배신을 보면서 확신하지 않은 이상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그녀는 무엇이든 의심해야 하는 검비의 수장이기도 했다.

“풍류옥협님,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검비들이 제대로 피사대에 나올까요?”

“두고 봐야지요. 여기서부터 천검궁의 관할입니다.”

피사대에는 이각 전에 도착했다.

두두두두-

곧,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면서 한 무리의 기마들이 피사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았다.

“묵경 형, 천검궁의 백색 깃발입니다. 천검봉 누님의 수하들입니다.”

“인양과 녹검 씨는 혹시 모르니 저들 뒤를 잘 살펴봐. 이상한 게 있을지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휘이익!

파아앗!

인양과 녹림야검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인양의 말처럼 백색의 천검궁기를 펄럭이며 기마대가 다가왔다.

천검봉 금하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백색…… 검비가 맞습니다.”

“잘됐군요.”

“내려가서 저들을 만나야겠어요.”

그녀는 몸을 숨겼던 장소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처억.

그때, 묵경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빠르게 잡았다.

“잠깐만.”

“네?”

“저들을 자세히 보세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금하희는 고개를 돌려 묵경이 가리키는 수하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쫓기는 듯한 표정에, 검비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는 그들의 표정으로서는 확실히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소? 뭔가 두려운 표정들이군요.”

“…….”

두려움이라고?

그녀 또한 수하들의 표정에서 묵경의 말처럼 두려움을 읽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는데 왜 두려운 것일까?’

이유는 늘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수하들이 두려운 이유.

‘나를 죽이지 못하게 될까 봐? 아니면 내가 죽을까 싶어서……?’

첫 번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수하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제기랄…….”

금하희는 당장에라도 나가서 수하들을 구하고 싶었다.

묵경은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금 소저, 흥분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저들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입니다.”

“…….”

묵경이 그녀를 안심시키자, 금하희는 심호흡을 하며 피사대를 내려다보았다.

히이이잉!

피사대에 도착한 기마들이 멈췄다.

그들은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검비 소속의 무인들 사이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변장을 한 사내, 이공자 종택이 고개를 들어 검비 부단주를 노려보았다.

“처구성. 그년에게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게 맞는가?”

“……그렇습니다.”

“만일 이것이 거짓이라면 검비 소속의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버릴 것이다.”

“알…… 알겠습니다.”

검비 부단주 처구성은 고개를 숙였다.

검비 수장인 금하희의 연락을 받았다.

비밀리에 피사대로 오라는 명.

하지만 이공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이공자 종택을 이길 수 없었다.

무신의 둘째 제자인 그의 무공은 대단했다.

검비 소속의 무인들도 용검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처구성은 수하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그는 금하희와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안내한다면 살려줄 것이라 했다.

처음에는 설마 이공자가 사매를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피사대에 도착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공자 종택.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큰일이다. 단주님께서 오시면 안 된다.’

다행히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자신들이 살기 위해 그녀가 죽게 된다면 불충이 아닐 수 없었다.

처구성은 결심을 내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척했다.

“이공자님, 그분을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여기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지?”

종택의 눈매가 예기를 띠며 날카롭게 변했다.

“만일 이곳에서 제 시간에 만나지 못한다면 두 번째 장소인 구항소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

“아마 제 시간에 오지 못할 것 같아서 구항소로 바로 움직이신 듯합니다.”

휘익!

종택은 손을 뻗어냈다. 날카로운 예기가 처구성의 목에 닿았다.

“만일 그게 거짓이라면 그곳에서 네놈들의 목을 벨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맞습니다.”

휘익.

이공자 종택은 신형을 먼저 돌렸다.

‘쯧, 망할 년이 제때 안 오고…… 어디서 딴 짓을 하고 있는지.’

“구항소로 간다. 처구성,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두두두두-

검비 소속 무인들은 처구성을 따라 돌아선 뒤 빠르게 피사대를 빠져나갔다.

묵경은 피사대에서 갑자기 물러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이 왜 갑자기 떠나는 것입니까?”

금하희는 수하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상황이 나빠졌음을 알았다.

“그건…… 저를 살리기 위해서 가는 듯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공자에게 다른 장소에서 저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했을 겁니다.”

“거짓말을 했다는 건 이공자에게 협박을 받았다는 뜻이 확실하군요.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네요.”

“맞아요.”

그녀의 얼굴은 침울했다.

처구성이 배신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공자 종택을 데리고 떠난 건 그가 죽음을 택했다는 뜻이었다.

수장으로서 수하들이 죽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을 살려야 하지만, 당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갑시다.”

“…….”

“저들을 구해내야 할 게 아닙니까?”

금하희는 손을 내민 묵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공자는…… 정말로 강해요.”

“물론 그렇겠지요. 상대는 무신의 이공자 흑사마검 종택이지 않소이까. 내 아우도 항상 절대로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원래라면 아우의 말대로 애매한 상황에서는 나서지 않아야 하겠지만. 근데 말이외다. 가끔은 멍청한 짓을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하하, 그게 오늘인 듯하군요.”

“왜…… 오늘…… 입니까?”

“사내들은 여인의 곤란한 상황을 보면서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 여자에게나 그러지는 않죠. 사내가 목숨을 거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이기 때문입니다.”

“…….”

“제 일방적인 생각이니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

“안 갈 겁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내가 얼굴과 화려한 언변으로 여인들을 홀리는 사내죠. 예전에는 그대도 마찬가지라 생각했고요. 하지만…… 정말 전혀 다른 분이시군요.”

스윽.

금하희는 그의 손을 잡았다.

휘익!

그 순간, 인양과 녹림야검이 내려서다 손을 잡고 서 있는 두 남녀를 보았다.

‘무슨 상황이지? 왜 손을?’

“음…… 음…… 묵경 형, 지금 저들이 모두 떠났어요.”

“……인양아. 내가 목숨 걸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할 테냐?”

“저들을 따라가시려고요?”

“위험하면 빠져도 돼.”

“……알겠어요. 일단은 싸우다가 정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도망갈게요.”

“좋아. 그럼 녹검 씨는?”

“저야……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앞으로 천검궁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둘 다 괜찮다고 하니 됐어. 그럼 이공자에게 잡혀 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가보자고.”

* * *

수하들의 뒤를 밟던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구항소로 가고 있어요. 좁은 장소여서 대인원이 들어올 수 없는 곳…… 부단주는 그곳에서 이공자와 싸우려고 하는 거예요.”

금하희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알겠소이다.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면 되겠군요.”

“…….”

“그대의 수하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 없지 않소? 그대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의 수하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까. 당연히 살려야죠.”

“아…… 네에!”

“최대한 빨리 움직입시다.”

금하희는 의지할 수 있는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강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진정성이 있는 마음을 지닌 사내.

천검궁에서는 항상 자신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형제들만을 보아왔다.

그는 분명 사형제들과 달라 보였다.

그리고 잘생겼다.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여심이 돌아오고 있었다.

* * *

구항소로 들어서는 처구성의 표정이 단호했다.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낼 것이다.’

이공자 종택이 이끄는 용검단을 무력으로 이길 수 없었다.

수하들의 무력도 강하지만, 처음부터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용검단을 이기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흑사마검 종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검비 소속 무인은 천검봉 금하희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그때, 처구성의 뒤에서 따라오던 종택의 대소가 터져 나왔다.

구항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금하희를 발견한 것이다.

“단…… 단주님…….”

처구성은 믿을 수 없었다. 설마 구항소에 그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분명 피사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부단주는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다.”

“단주님…… 어찌…….”

“알고 있다.”

금하희의 표정을 보면서 알았다.

‘단주님은 피사대에서 우리를 보고 계셨다.’

먼저 피사대서 도착한 후 이공자와 함께 온 것을 보고 나타나지 않았던 게 확실했다.

“죄송합니다.”

“검비들은 옆으로 물러나라. 사형과 할 이야기가 있다.”

천검봉 금하희.

천검궁의 철의 여인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후후후, 처구성, 옆으로 빠져 있어라.”

종택은 이곳에서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검비들은 빠르게 그녀의 뒤로 물러났다.

“이사형, 우리 사이에 굳이 할 말이 없을 것 같군요.”

“미안하게 됐군. 아쉽게 됐지만, 이곳에서 죽어 줘야겠다.”

스르릉-

종택의 허리에서 마종검이 뽑혀 나왔다.

“반항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죽여주마.”

휘익!

그 순간,

“누구 맘대로 천검봉을 죽인다는 말이지?”

“네놈들은 누구냐?”

금하희의 뒤에서 나타난 세 명의 사내.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났다.

묵경을 자세히 보았다.

‘저 녀석은…….’

금하희와 함께 강으로 뛰어들었던 인물.

“넌…… 풍류옥협 묵경이군.”

묵경의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나를 정확히 알고 있군. 이 느낌 나쁘지 않은데? 그 천검궁의 이공자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하하.”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왔지?”

“내가 코가 예민해서 말이오. 굉장한 구린내가 나서 와보았더니 이곳이더군.”

“……그러고 보니 네놈들이 이년에게 황금지도를 받아 중원에 풀었군. 천검궁에 가져가야 할 물건을 타인에게 건네주다니 이 또한 배신이다.”

“어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극일천에서 황금지도를 풀어 혈사천과 천검궁을 싸우게 만든 뒤 화산도협까지 중간에 엮으려고 한 사실을 모를 줄 알았소?”

“…….”

“그래서 당신이 혈광검을 죽이고 천검봉을 죽이고자 했던 게 아니오?”

“큭큭큭…….”

종택은 웃음이 나왔다.

“이거 참…… 세상에 머리가 좋은 놈들이 너무 많다니까.”

스으윽.

그는 살기를 뿜으며 묵경을 노려보았다.

“문제는 머리만 좋을 뿐 무공은 대부분 형편없더군.”

“이봐,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소만, 내가 화산도협의 형님이란 사실을 까먹은 모양이오? 쯧쯧, 내가 진유 아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얼마나 노력했는지 평생 모를 거요.”

“…….”

씨익.

“뭐 결론만 말하자면, 내가 강하다는 뜻이지. 최소한 변절자인 당신보다는.”

묵경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쿠우우욱.

종택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잘난 주둥아리가 얼마나 더 움직일지 궁금하군.”

타아앗!

마종검이 먼저 움직였다.

흑사마검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무공은 마공이었다.

짙은 마기가 먼저 묵경의 내력을 누르고자 했다.

‘천검궁에서 마공을 정말로 펼칠 줄은…….’

정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천검궁은 사파와 마도 또한 확실히 아니었다.

‘이래서 중원이 천검궁을 정파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군.’

무신의 제자가 마공을 펼친다면 무신 초일군 또한 마공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건 사파나 마도에서도 같았다.

그들 또한 정문심공을 익힌 천검궁의 제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묵경은 흑마신공에 대항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성녀곡의 심법과 서문세가의 심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완성하는 데 고진유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심법.

그는 연화패공심법이라 새롭게 명명했다.

하지만 종택은 그 사실을 몰랐다.

“겨우 연화심법인가? 그것으로 본인의 흑마신공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가?”

종택은 성녀곡의 독문심법을 알고 있었다.

단번에 묵경의 호신강기를 흑마신공으로 뚫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파아아앙-!!

흑마신공이 호신강기와 부딪히는 동시에 튕겨 나갔다.

“우욱.”

종택은 신음을 내며 뒤로 서너 걸음 미끄러졌다.

‘내가…… 여자들이나 익히는 심법을 뚫지 못한다고?’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듯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지?’

종택은 재차 흑마신공을 뻗어냈다.

처음과 달리 극성으로 끌어낸 흑마신공의 흑기류가 묵경의 가슴을 향했다.

파아아앙!!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묵경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 채 부딪힐 뿐.

“흑사마검. 소문과 다른데? 좀 더 힘을 내보라고.”

“이…… 새끼가…….”

“어허, 입이 더럽군.”

종택이 시커먼 살기를 뻗어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