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황금지도가 중원에 퍼져 나갔다.
보물에 눈이 먼 인물들은 탐욕으로 인해 황금지도를 구했다.
기련곡의 비밀이 담겨 있는 황금지도가 풀리면서, 중원은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하지만 황금지도에 대한 뜨거운 바람도 얼마 가지 않아 식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원인들은 황금지도의 비밀을 풀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 가짜를 보여준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모두 막상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무림맹을 상대로 이길 수도 없겠지만, 황금지도를 중원에 푼 인물이 바로 그 화산도협이 아닌가.
그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 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전전긍긍하던 중원인들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 같은 소문이 급속도로 나돌기 시작했다.
-황금지도가 가리키는 기련곡은 대칸의 무덤이 아니라 황금충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황금무동을 말함이다.
탐욕에 물든 중원인들은 어디서 그 소문이 퍼져 나왔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았다.
재차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직 그들에게는 황금충의 기련곡만이 눈에 보이며 귀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던 중, 중원에 몇 명 인물이 황금충의 신상에 대해 알아냈다.
-황금충이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장이 있는 곳은 산동성의 제남이다.
황금충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중원으로 퍼져 나갔고, 중원의 모든 시선은 산동성 제남으로 향했다.
산동루의 일 층 객잔은 중원 각지에서 몰려온 중원인들에 의해 시끌벅적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제남에 묻혀 있다는 황금무동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일 층 객잔과 달리 이 층은 귀빈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관리가 된 장소였다.
반시진 전, 고진유가 일행과 함께 도착한 곳이었다.
사전에 예약이 되어 이 층은 한 명도 없이 깨끗했다.
고진유와 북소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중원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고?’
이렇게 많은 중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수는 없었다.
“이상하네요. 이건 누군가 개입하고 있는 거예요.”
북소연은 확신했다.
물론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간혹 있으니, 황금지도를 보고 황금충의 기련곡임을 알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중원에 알릴 이유는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떤 바보 같은 작자가 이걸 풀었다고 해서 얼씨구나 무림에 알리겠어요. 안 그래요?”
“결론은 극일천의 짓이겠지요.”
“천검궁과 혈사천을 싸우게 하려는 계획이 실패한 것 때문에 이런 짓을 한 모양인가 보네요.”
황금지도의 비밀을 스스로 밝힌 극일천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림을 위해 나서는 게 더 이상했다.
‘아니야. 이건 미리 계획된 것이었어.’
황금지도를 이용해 동시에 두 개의 계획을 세운 것이 확실했다.
“누가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정말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번 일도 이미 그의 계획에 들어 있었다고 봅니다.”
“극일천 짓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그들이 왜 황금무동을 알려주는 걸까요?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일 텐데. 이를 통해 분명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요?”
“극일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 답이 나옵니다.”
극일천이 원하는 건 하나.
중원 무림의 멸문.
전에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할 것이라 여겨졌다.
“설마…… 황금지도를 풀고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준 것 자체가 함정이라는 건가요?”
“나쁜 일을 맞이할 때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라는 말이 있더군요.”
“큰일이네요.”
그녀는 물론 고진유의 얼굴도 굳어져 갔다.
“힘들게 되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물을 찾기 위해 몰려올지…….”
그녀는 아래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화산도협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함정이라고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과연 저들이 본도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까요?”
고진유는 아래 일 층 객잔을 내려다보았다.
술을 마시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욕심과 탐욕의 그림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앞에 황금무동을 두고 물러날 인물들은 없을 것이었다.
“없겠네요.”
“맞습니다. 현재 저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도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겠지만, 억지로 따라다니면서 도와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그들 앞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건 저들이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죠.”
고진유의 말은 단호했다.
고진유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표면적으로 현재 무림맹 최고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맹목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
“알겠어요. 당신 말씀처럼 저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 책임도 져야겠지요.”
북소연은 황금무동을 찾기 위해 저들과 함께 다녀야 할지 망설였다.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우린 어떻게 하죠?”
“저들이 황금무동을 찾는지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들이 찾는다면요?”
“개봉성에서 말한 것처럼 황금무동을 찾아 그곳에서 나온 보물들이 있다면 무림맹의 몫을 가지고 오면 됩니다.”
“무림맹은 가만히 앉아서 코를 풀겠다는 뜻이군요.”
“모두 사전에 했던 약속입니다. 그리고 무림맹의 이름으로 황금지도를 알려줬지요. 극일천에서 글귀에 대해 가르쳐 줬다고 해도, 황금지도가 없었다면 기련곡을 찾지 못했을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주는 건 포기하지 않고 날로 먹겠다는 고진유의 설명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
‘참…… 가늠하기 힘든 사람이야.’
그렇게 고진유와 북소연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콰아아앙!!!
산동루의 일 층 객잔의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빠르게 들어섰다.
그들의 복장은 한 번 대충 보아도 어느 문파의 무인들인지 알 수 있었다.
벽화의(劈化衣).
황보세가의 무복이었다.
“감히 산동성 제남이 어딘 줄도 모르고 지옥혈림에서 오다니…… 아니면 죽고 싶은 모양이군.”
황보우명은 큰 소리를 지르며 일 층 객잔을 살폈다.
눈을 부릅뜨며 살폈지만 사방에 혈림마거를 몰고 온 흑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들이…… 어디에 숨었어?”
그는 주방 앞에서 떨고 있는 점소이를 보며 손짓했다.
“이봐. 잠깐 볼까?”
“네넵, 무사님.”
그는 최대한 빠르게 황보우명의 앞에 다가섰다.
“밖에 마차를 타고 온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저…… 저기에서…… 쉬고 계십니다.”
“어디라고?”
점소이는 몸이 떨렸다.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겼다.
스…… 으윽.
그는 겨우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이 층에 있단 말이지?”
“저어…… 근데…… 올라가시지 않은 게 좋을 듯합니다.”
“무슨 말이지?”
“그, 그게…… 아…… 닙니다.”
점소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말하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휴우…… 큰일 날 뻔했어.’
황보우명이 올라가서 당한다고 해도 자신의 책임은 아니었다.
일 층 객잔은 조용해졌다.
제남 땅에서는 황보세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권왕 황보강이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황보세가의 힘은 강했다.
쿵쿵쿵!
황보우명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랐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지옥혈림은 제남에 들어올 수 없다.’
완전히 계단에 올라서자, 정면에 젊은 여인과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어떤 연놈들이 감히 제남에 들어오는 것이더냐?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그의 목소리가 이 층을 울렸다.
일 층보다 좁은 이 층의 객잔.
두 남녀와 떨어진 곳에 앉아서 쉬고 있던 무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그들 사이에서 중년 사내가 황보우명을 향해 다가왔다.
‘저…… 자는……!’
권왕 황보강의 호위 책임자.
독전호가 이 층에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자가…… 여기는 왜?’
황보우명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볼 때였다.
뒤돌아 앉아 있던 사내가 일어나며 돌아섰다.
젊은 사내.
의자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그의 도복이 먼저 눈에 띄었다.
‘도사인데…….’
황보우명의 몸이 멈칫거리며 순간 굳어졌다.
도복 자락에 수를 놓은 매화 문양들이 마치 살아 있는 꽃처럼 피어올랐다.
“화…… 산파.”
황보우명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 큰일 났다.’
황보우명과 함께 들어섰던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스스로 자책했다.
황보우명은 나란히 앉은 두 남녀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모르고 한 말이긴 하나…… 지옥혈림이라고 해서 무작정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외다.”
“…….”
“물론 황보세가의 입장에서는 예전에 많이 싸웠던 지옥혈림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대명문의 세가라면 아량이 넓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신 맹주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을 지녔던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고진유와 그는 나이차가 거의 두 배 정도 났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고진유의 모습은 마치 큰 어른이 가르치는 듯했다.
고진유에게서 흐르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황보우명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됐습니다. 그만 내려가도 됩니다. 아래에는 본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어…… 본 가에 들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뵙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던 것이지요.”
“제가 내일 다시 모시러 와도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황보세가에서 본도가 제남에 온 걸 아는데 그냥 가는 것도 실례가 되겠군요. 내일 오전 중으로 들르겠습니다.”
“아…… 네에. 가주님께 바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황보우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일 층을 내려간 그를 보며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입을 다문 채 상관하지 않고 곧바로 산동루를 빠져나갔다.
일층에 있던 무인들은 빠르게 사라진 황보우명을 보면서 이층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궁금해했다.
“누구지?”
“그러게 말이네. 황보우명이 조용히 나갈 정도면 엄청난 인물일 것 같은데…….”
“우리 한번 올라가 볼까?”
“됐네. 괜히 갔다가 곤란한 상황이라도 된다면 황금무동에도 가지 못할 수 있지 않겠나.”
“그건 자네 말이 맞아. 술이나 더 마시세나. 내일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누구인지 알겠지.”
사내들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마시던 술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 * *
점소이 평동은 조심스럽게 이 층으로 올라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귀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건과 물을 준비하곤 했다.
‘빨리 끝내고 내려가야겠다.’
탁자에 물병을 내려놓을 때였다.
“이른 시간부터 수고가 많군요.”
“……!”
문을 열고 나오는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평동은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고 했다.
“조용히…….”
“아…… 네에.”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는데 잘 올라왔군요.”
고진유는 물을 잔에 따라 마셨다.
“시원하네요. 역시 물의 고장이라 물맛도 다르군요.”
“저어…… 소인은 그만…….”
평동은 몸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혹시 새벽 일찍 구경할 만한 곳이 있소이까?”
“아, 음…… 새벽에 가신다면 대명호가 어떻겠습니까? 조용히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대명호라 했소?”
“그렇습니다.”
“고맙소. 한번 구경 가보도록 하겠소이다.”
평동은 다급히 도망치듯이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음…… 대명이라…….’
고진유는 홀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황금지도에 적힌 글귀.
기련일월(起輦日月).
오월용수(五月容水).
‘멍청하게 이걸 잊고 있었다니…….’
일월의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았다.
일(日)과 월(月).
두 글자는 파자(破子)였다.
일과 월을 합친 글자 명(明).
제남에서 명(明)이란 글자를 쓰는 장소는 한 곳밖에 없다.
‘첫 번째 장소는 대명호(大明湖)였어.’
대명호를 살펴보려면 일찍 나서야 했다.
곧바로 고진유는 북소연과 함께 해가 뜨기 전 일찍 산동루를 떠났다.
혈림대거가 대명호 앞에 멈췄다.
스윽.
북소연은 마차의 창문을 열며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 말 없이 일찍 일어나 고진유가 향하는 곳으로 따라왔다.
“여기가 일월이 가리키는 장소네요.”
“그렇소이다.”
“잠시 내려서 산책이나 할까요?”
“좋습니다.”
고진유와 북소연은 마차에서 내렸다.
호숫가를 구경하며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았다.
“호수의 풍경이 너무 멋지네요.”
대명호는 꼭 한 번 구경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산동성의 패자 황보세가의 본 가인 제남인지라 그녀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성(詩聖)께서 좋아하실 만한 곳이네요. 역하추풍(閾下秋風) 역하정에 부는 가을바람. 명호범주(明湖泛舟) 대명호의 뱃놀이, 회파만조(匯波晩潮) 파도에 비치는 노을. 세 구절을 듣고 나서 한 번쯤 와보고 싶었죠.”
“음…… 좋은 것을 공부했군요. 본도는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많이 아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 공부를 하신다면 잘 배우실 것 같아요.”
“후후후. 고맙소이다. 근데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군요.”
“괜찮다면 제가 가르쳐 줄 수도 있어요.”
“소저가 말입니까?”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부탁하겠소이다.”
“아…… 네에…….”
대명호는 천천히 걷기에는 상당히 넓었다.
두 사람이 걷는 길옆으로 버들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두 번째 글귀인 오월용수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오월이라면 다섯 개의 달.”
이제 대명호에 해가 떠오를 시간이 되었다.
여명이 밝아져 왔다.
“오늘 저녁에 한 번 더 와야겠군요.”
붉은 태양이 길게 그림자를 비추면서 호수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