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03화 (203/425)

203화

두두두두-

사두마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내달렸다.

마부석에 올라탄 두 사람.

인양과 녹림야검이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마차 안에 탄 일남일녀.

묵경과 금하희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아래위로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이 강했지만, 좌석이 두꺼운 가죽으로 푹신하게 만들어져 있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편했다.

어색할 것 같았던 두 남녀는 예상과 달리,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오미화 중 청미화와 한미화를 만났다는 건가요?”

“그렇소이다. 소문대로 그녀들의 미모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풍류옥협께서는 좋으셨겠습니다. 오미화 중 두 명을 벌써 만났군요.”

“후후후, 본인의 소원이 오미화와 중원십봉을 만나서 차나 술을 같이 마시는 것이지요.”

“혹시 중원십봉도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천검봉 금 소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중원십봉 중 세 명의 여인을 만났소이다.”

“누구를 만났나요?”

“백화봉 진허란과 금소봉 용여미, 은자봉 경소령을 만났지요.”

“대단하시네요. 남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한다는 그녀들을…… 풍류옥협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 같아요.”

“고맙소이다.”

금하희는 마치 사내들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풍류옥협의 시선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여인은 누군가요?”

“음…….”

묵경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되지.’

지금까지 만났던 여인들 중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믿어줄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들과 만나는 자체만으로 끝이었다.

“본인은 그녀들과 만나면서 누가 예쁘고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흐음…….”

금하희가 보기에는 한 발짝 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다시 물었다.

“청미화와 한미화를 보셨다고 했잖아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든 분이 계시지 않았을까요?”

“그녀들 나름대로 뛰어난 점들이 있기에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소이다.”

“아하, 그렇다면 제가 보기엔 좋아하는 여인이 따로 있으신가 봅니다.”

“후후, 천검봉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본인도 좋아하는 여인이 있으면 좋겠군요.”

“원하신다면 충분히 사귈 수 있지 않겠어요?”

“…….”

묵경은 생각을 하는 듯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만난 여인들 중 성격으로는 천검봉 금 소저께서 제일 마음에 드는군요.”

“…….”

금하희의 입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분명 기쁜 표정이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자 참는 게 보였다.

“풍류옥협께서는 제가 앞에 있어 예의상 말씀하시는군요.”

“어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겠소이까. 천검봉께서 앞에 계신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외다. 본인이 느낀 그대로 말을 한 것뿐이지요.”

“그런가요? 여하튼 기분은 좋습니다.”

두 명의 오미화와 네 명의 중원십봉을 만났던 묵경에게 들은 말이라 그런지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사실 저도 풍류옥협님을 보기 전에는 오로지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호색한이 아닐까 여겼는데, 단번에 잘못된 생각인 줄 알았어요.”

“흠, 본인을 모르는 사람들이 난봉꾼이다 호색한이다, 하고 부르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지 않습니까?”

“뭐,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관하지 않소이다. 어쨌든 본인의 잘생긴 얼굴 덕에 그들보다 중원 여인들의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습니까.”

금하히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일반 사내와는 다른 것 같아.’

묵경에 대한 호감이 생겨났다.

똑똑.

그때, 마부석에서 안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묵경 형.”

“인양, 무슨 일이야?”

“앞에서 검문을 하는 것 같아요.”

묵경은 금하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시 인양에게 물었다.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 보여?”

“잠깐만요오오오오…….”

인양의 목소리가 재차 이어졌다.

“천검궁기가 보여요.”

천검궁기라면 극일천의 무인들이었다.

이번에는 금하희가 물었다.

“혹시 천검궁기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청색입니다.”

“아아…….”

천검궁기는 각자 신분에 따라 색상과 모양이 서로 달랐다.

청색의 천검궁기는 이공자 종택을 가리켰다.

“묵경 형,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는 없겠지?”

“늦은 듯해요. 저들이 우릴 봤어요. 어떻게 하죠?”

“천천히 마차를 몰아. 어차피 저들은 우릴 알아보지 못해.”

“알겠어요.”

천검궁으로 가는 길에 이번 경우처럼 분명 검문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이 숨어서 움직이지 않고 마차로 천검궁에 가는 것을 선택한 이유.

그들 네 명은 변용을 했다.

묵경의 변용술은 바로 앞에서 뚫어지게 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인양은 그대로 마차를 몰았다.

처어억!

사내가 길 가운데로 나온 뒤 소리쳤다.

“멈춰라!”

히이이잉!

찢어진 눈매는 상대방을 단번에 주눅 들게 만들었다.

“왜 그러시오?”

녹림야검은 앞을 막아선 사내를 보며 물었다.

“어딜 가는 중이냐?”

“그걸 당신들이 왜 묻는 것이오?”

녹림야검은 허리에 찬 검이 보이도록 슬쩍 몸을 돌렸다.

사내는 상대를 보면서 비웃었다.

“하, 보아하니 삼류 지방 무인 같은데 죽고 싶지 않다면 똑바로 말을 해라.”

살기가 흘러나왔다.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오?”

녹림야검은 일부러 꼬리를 내리며 겁이 나는 척했다.

“마차에 누가 있지?”

“저어…… 신향묵가의 새로운 가주 내외분이오.”

“신향묵가? 하남성에 그런 곳도 있었나?”

사내는 또다시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그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가(小家)들이 중원 무림에 수없이 많았다.

신향묵가도 그들 중 한 곳이라 여겼다.

“그대의 주인에게 밖으로 나와서 얼굴을 보이도록 하라.”

“당신들이 누구이기에 함부로 본 가의 가주 내외분을 내리라고 하는 게요?”

“크크크, 네놈의 눈에는 이 깃발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펄럭!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천검궁기를 가리켰다.

녹림야검은 좌우로 흔들거리는 깃발을 힘들게 보는 척했다.

“천…… 기?”

“에라이, 멍청한 놈! 이 깃발이 바로 천검궁기다!”

“허어어억!! 정말…… 이십니까?!”

녹림야검의 놀란 표정을 보자 그는 단번에 만족스러웠다.

‘어휴. 좋단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녹림야검은 마부석에서 뛰어내려 마차 옆으로 다가섰다.

“저어…… 가주님. 잠시 밖으로 나와봐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더냐?”

“천검궁에서 검문…… 하기를 원하십니다.”

“천검궁? 알겠다.”

덜컹.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먼저 내렸다.

스윽.

그는 손을 올려 바로 따라 내리는 여인에게 내밀었다.

“부인, 손을 잡으시오.”

“……고마워요.”

사내는 마차 아래로 내려선 부부를 유심히 살폈다.

‘쳇. 아니군.’

천검궁에서 찾는 인물이 아니었다.

“잠시 물러나시오.”

사내는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이 따로 숨을 수 있는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금하희는 주위를 보다가 몸이 움찔거렸다.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노려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 사형.’

그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었다.

이공자 종택이 예리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몸이 움츠러들면서 떨렸다.

스윽.

그때, 묵경이 한쪽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자연스레 감쌌다.

마치 금슬이 좋은 부부처럼 다정하게.

“부인, 보아하니 이분들이 누군가를 찾는 듯하군요.”

“아…… 네에.”

묵경은 여전히 그녀를 안은 채 사내에게 물었다.

“그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어디를 가는 것이오?”

“태행산의 경관이 좋다고 해서 유람차 가는 길이외다.”

“그곳의 경치가 좋긴 하지. 들어가도 좋소.”

“고맙습니다. 저어, 근데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누구를 찾습니까?”

“알 필요 없소. 왜 묻는 것이오?”

“혹시나 저희들이 가는 길에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당신들과는 상관없으니 그만 가시오.”

“아, 예에…… 수고들 하십시오.”

묵경은 여전히 그녀를 감싼 채 마차로 돌아섰다.

멀리서 두 사람을 주시하던 종택도 이제는 시선을 돌린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부인, 오르시지요.”

묵경은 금하희가 편하게 오르도록 손을 잡아준 뒤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게.”

녹림야검이 마차를 천천히 몰며 임시 검문소를 지나쳤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녹검 형, 앞을 보세요.”

인양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녹림야검은 실수할 뻔한 것을 알아차리고 뻣뻣이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쯧…… 아니군.”

종택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마차에서 시선을 뗐다.

“이 새끼들이 어디로 숨은 거지? 천검궁으로 가려면 무조건 여기를 지나가야 하거늘.”

금하희를 놓친 후 천검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목마다 수하들을 대기시켜 놓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녀의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천검궁으로 갈 생각이 없는 건가? 음…… 아니야. 그년의 성격으로는 무조건 돌아가려고 할 게 틀림없다.”

스윽.

종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개미 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게 똑바로 검문하도록.”

“넵. 알겠습니다.”

* * *

중원 무림이 난리가 났다.

무림맹에서 흘러나온 소문이 사실이었다.

천검봉이 가졌던 황금지도는 화산도협에게 전해졌다고 했다.

중원 무림인들은 아무리 황금지도를 가지고 싶어도, 무림맹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없었다.

더구나 천하제일인으로 발돋움하는 화산도협의 수중에서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

무림맹에서 소문이 흘러나왔다.

-화산도협께서 황금지도를 중원에 풀고자 하신다.

그 소문에는 ‘중원의 보물은 먼저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가지는 게 맞다’는 첨언이 붙어 있었다.

다만 황금지도를 이용해 황금무동을 먼저 찾게 되는 문파나 인물은 무림맹이 인정을 해주는 조건으로 절반을 나눠야 한다는 내용까지 말이다.

중원인들은 모두 찬성했다.

정파 무림뿐만 아니라 사파와 마도에서도 무림맹의 뜻을 받아들였다.

웅성웅성.

개봉성이 울렸다.

수많은 인물들.

정사마의 구분이 필요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개봉성의 성문 앞 대광장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

황금무동을 찾을 수 있는 황금지도였다.

개봉성의 성문 위 누각으로 고진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도협님이시다!!”

“와아아아아-!!!”

성문이 떠나갈 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스윽.

고진유는 앞으로 최대한 나간 뒤 손을 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또 한 번의 함성이 울렸다.

‘대단하신 분이다.’

독전호는 감탄이 나왔다.

권왕 황보강을 곁에서 모셨지만 이 정도의 함성을 들은 적은 없었다.

‘겨우 약관의 중반도 되지 않는 나이이지 않은가.’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여기에서 얼마나 더 뛰어나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고 있었다.

이는 북소연도 같은 마음이었다.

“여러분, 반갑소이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란스러웠던 대광장은 마치 쥐 죽은 듯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고진유는 시선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모여 있는 수많은 군중들을 보았다.

그리고 손에 든 물건, 황금지도를 아래로 펼치며 앞으로 내밀었다.

“본도는 얼마 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소이다. 황금지도 때문에 아까운 목숨들이 잃어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림맹은 다급히 황금지도를 가진 천검봉을 찾아가 부탁했소이다.

황금지도는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중원인들의 물건이라고 말입니다.

천검봉 또한 같은 생각을 하여 본도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본도는 황금지도를 중원에 돌려주고자 하는 바이외다!”

휘이이익!

성벽 위에서 대형의 지도가 펼쳐지며 아래로 내려왔다.

“이것이 바로 황금지도를 그대로 베낀 것이외다. 만일 누군가 의심이 든다면 본도가 들고 있는 황금지도와 비교할 수 있도록 해주겠소!”

웅성웅성.

대광장에 모여 있는 중원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황금지도를 걸어놓겠소이다. 그리고 중원에 흩어져 있는 무림맹 지부에도 이와 같은 황금지도가 걸려 있을 것이외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와아아아!! 화산도협 만세!!”

“황금지도 만세……!!”

중원인들은 함성을 지르면서도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북소연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걱정이 앞섰다.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요?”

“북 소저,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문파들끼리 싸움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황금지도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서로 황금무동에 가려고 하지 않겠어요?”

“북 소저도 풀지 못하는 장소를 과연 저들이 어디인 줄 알고 움직이겠소이까?”

“아…… 그렇네요. 서로 눈치만 보고 있겠어요.”

“맞소. 지도가 가리키는 기련곡이 어디인지 모르는 이상 황금지도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 저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당신, 정말 약았어요.”

“후후후, 똑똑한 것이겠죠.”

“맞아요. 얄밉게 똑똑하죠.”

고진유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젠 어떻게 할 건가요?”

“보물찾기를 할 겁니다.”

“네에……? 설마…… 그곳이 어디인지 풀었나요?”

“글쎄요. 일단은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곳이 있소.”

고진유는 황금무동에 들어가 보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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