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사마추는 벽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덜컹.
안으로 들어선 인물을 보았다.
“…….”
“깨어났소?”
고진유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사마추는 얼굴 전체에 인상을 썼다.
“이러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줄 아는 모양이지?”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습니까?”
“당연하다. 금맹군의 수장인 본인을 이렇게 잡아놓았는데 무림맹에서 가만히 있을 것이라 보는가?”
“음……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
“그것보단, 당신 책상에 이상한 물건이 숨겨져 있더군요.”
사마추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을 어떻게…… 했지?”
“징그러워서 모두 불에 태워서 버렸소이다.”
“……!!”
사마추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태워 죽였다고?’
고독이 죽었다면 무림맹에 있던 모두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 게…… 사실인가?”
“푸훗, 놀라기는. 그냥 해본 말이었소.”
“……망할 새끼.”
사마추는 욕이 튀어나왔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되겠소?”
“…….”
“당신 목갑에는 없던데. 당신은 어떻게 자결을 할 생각이오?”
고진유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사마추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아니면 당신을 누군가 구해줄 것이라 믿는 거려나? 하지만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어제저녁 식재소에서 다섯 명을 찾았소이다. 전부 대단한 인물들이더군요. 당신처럼.”
“그들을 어떻게 했지?”
“죽을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았소. 지금쯤이면 대전에서 그들을 심문하고 있겠지요. 나머지 세 명도 조만간 찾을 겁니다. 정 안 되면 고독을 죽이면 되고요.”
“크크크…… 대단하군. 완벽할 정도로 당했다. 내가 어떻게 죽을 건지 궁금한가?”
“죽고자 하는 것이오? 그럼 내 앞에서 해보시오.”
사마추는 당황했다.
그는 중요한 정보원이 될 수 있다.
보통이라면 말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한데 고진유는 마치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로 시선이 마주친 채 침묵이 지나갔다.
“내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당신이 극일천이라는 증거는 한두 개가 아니오. 이미 그들의 증언도 나왔을 테고.”
“그래서 내가 죽어도 된다는 말이군. 내게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
“복수.”
“…….”
“당신을 직접 죽이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외다.”
“왜……? 이유가 뭐지?”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허리를 숙였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으로 생각하겠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지?”
“당신같이 똑똑한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지 않겠소?”
그는 사마추의 손등를 가리켰다.
“당신의 손등에 새겨진 국화. 그 손으로 사부님의 사지를 끊었지 않소?”
“……어…… 떻게?”
“인정하는군. 난 돌아가신 사부님의 영정 아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복수를 다짐했소. 드디어 오늘이 그날인 것 같군.”
“……난…… 그를 죽이지 않았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맙시다.”
스윽.
사마추의 목을 향해 사의검을 겨누었다.
“이 검은 사조님께서 사부님께 드리기 위해 만드신 검. 오늘 제자의 도리를 다하고, 사부님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미……미 안하다. 한…… 번만…… 나를 살려주면 모든 것을…….”
패왕명안의 눈빛을 보는 사마추의 몸이 떨렸다.
하지만 고진유는 절대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스걱.
사의검이 휘둘러지고, 사마추의 가슴에 차가운 검기가 지나갔다.
“커어어억.”
사마추는 죽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점점 몸에 힘이 빠지면서 몸이 축 늘어나기 시작했다.
“살…… 살…… 려…….”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시오.”
푸우욱.
고진유는 손을 뻗어 그의 심장에 사의검을 찔렀다.
“악.”
사마추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숨이 끊어졌다.
고진유는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죽어 있는 사마추의 시신.
“후우우…….”
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사부님. 원수를 갚았습니다.’
짧은 순간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사부님, 시작일 뿐입니다. 이젠 그들 차례입니다. 무림을 죽이고자 하는 그들. 이 또한 사부님의 원수들입니다. 제자가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고진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무림대전에서는 제갈문의 주도하에 잡혀온 삼인에 대한 심문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고독까지 손에 들어온 이상, 그들의 정체는 밝혀질 게 틀림없었다.
무림맹은 빠르게 진행이 되어졌다.
청룡군과 특사정화단에 의해 무림팔군은 완벽하게 장악됐다.
무림맹이 새롭게 정리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여기는 정리가 되었고…….’
중원 무림은 여전히 황금지도로 소란스러웠다.
“묵경 형이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
* * *
금하희는 커다란 수건을 덮은 채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배에 올라탄 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이공자 종택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아…… 사부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실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강했다.
계속해서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슬픔은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아. 빨리 본 궁으로 돌아가야 해. 극일천의 세력이 본 궁에도 퍼져 있을 줄은 몰랐어.’
금하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구해준 이들을 보았다.
세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
그들 중 자신을 안고 강물에 뛰어든 사내가 누구인지 알 듯했다.
“혹시…… 풍류옥협이 맞습니까?”
그녀는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맞소. 본인이외다. 여기 두 사람은 인양 의제와 녹검 씨.”
세간에 알려진 묵경의 의제는 두 명, 화산도협과 의제권협이 있었다.
“의제권협과 녹검살협이군요. 고맙습니다. 저어…… 그리고 그대는?”
“난…….”
북소연은 어떻게 설명을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결심한 듯 사실대로 소개했다.
“지옥혈림의 북소연이라 해요. 반가워요. 천하의 천검봉 금하희 언니를 이렇게 뵙네요.”
“혈미호(血美狐) 북소연.”
“저를 아시는가 봐요?”
“당연하죠. 지옥혈림 혈성존의 독녀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요? 안 그래요?”
“천검봉 언니가 검비(劍秘)의 수장이라고 하더니…… 대단하네요. 본 림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을 보았다.
처음 듣는 내용들.
천검궁 검비의 수장이 금하희이며 북소연의 신분이 혈성존의 독녀일 줄은 몰랐다.
‘혈림에서 꽤 높은 신분인 것 같았는데 그의 딸이었군. 하긴 그 정도 신분이 되어야 혈림을 맘대로 할 수 있었겠지.’
그녀가 그동안 했던 행동들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금하희는 북소연과 다른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당신이 이분들과 어떻게 같이 있나요?”
“그건 비밀이에요. 아직 무림에 밝히기에는 너무 이른 일이라서요 이해해 주세요.”
“…….”
묵경은 북소연의 대답이 들으며 의외라 여겼다.
화산도협과 사귄다고 중원 무림에 당장에라도 소문을 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무거웠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저를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금하희는 포권을 했다.
“아니외다. 천검봉께서 어려움에 빠졌는데 당연히 본인이 나서야지 않겠소이까?”
“풍류옥협님의 위명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본인도 마찬가지외다.”
그녀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황금지도를 만지작거렸다.
“여러분들도 이것 때문에 저를 구하신 게 맞습니까?”
“맞소이다. 황금지도를 가진 당신을 쫓던 중이었지요.”
“무림맹에서도 황금지도를 가지고 싶은 모양입니다.”
금하희는 그들을 보며 실망한 표정이 지었다.
묵경이 나섰다.
“천검봉께서는 그 황금지도가 진짜라고 보십니까?”
“……!”
금하희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게 가짜라는 말인가요?”
“물론 우리들도 그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한 번도 보지 않았기에 확신할 순 없습니다.”
“…….”
“하지만 그 물건이 왜 그대의 손에 들어갔으며 혈사천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나왔고, 당신의 사형이 왜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묵경이 말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설마 극일천에서 본 궁과 혈사천이 싸우도록 했다는 것인가?’
검비의 수장인 그녀는 극일천의 존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고진유가 극일천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극일천의 간자인 이공자 종택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설명되었다.
“왜…… 본 궁을 혈사천이 싸우도록 계략을 꾸민 이유가 있습니까? 혈사천이 강하다고 해도 본 궁을 이길 수 없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 텐데.”
“혈사천에는 천살지인이 있소이다. 혈사천주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천살지인이 강하다고 하나 본 궁에는 사부님이신 무신이 존재합니다!”
“그건 모를 일이지요. 천살지인은 검황을 이겼소이다.”
“……그래도 그는 사부님을 이길 수는 없어요.”
금하희는 확신했다.
중원 무림에서 그분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것이다.
묵경은 설명을 이었다.
“무신의 무공은 당연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든지 결과는 똑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극일천에서 노리는 건 천검궁입니다. 천살지인이 운이 좋게도 그를 이길 수 있다면, 극일천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요.”
“혈사천이 그들의 세력인가요?”
“아닙니다. 천살지인이 무신을 이긴다고 해도,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두어도 천살지인이 사라진 혈사천은 극일천에게 상대가 되지 않지요.”
“그래서…… 천살지인이 죽기 전에 사부님을 치겠다는 것입니까? 사부님께서 이기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극일천에서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
그녀는 다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극일천이 원하는 것은 천검궁이거늘, 혈사천의 천살지인이 죽는 것을 가장 원한다?
“천검봉께서 검비의 수장이라고 하시니 묻겠소이다. 천살지인이 누구이신지 알고 있습니까?”
“……화산제일검 독소응.”
검비의 수장답게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진유 아우의 사숙이자 또 다른 한 분의 사부가 바로 화산제일검 독소응이외다.”
“아…… 하아…….”
화산파에서 혈사천의 천살지인을 여전히 화산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극일천에서 원하는 건 무림맹과의 원수지간.
천검궁에서 천살지인을 죽인다면, 분명 화산도협이 개인적이라도 나설 게 분명했다.
“그것이 우리가 온 이유입니다.”
금하희는 손에 든 황금지도를 보았다.
한 번도 황금지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생각하지 않았었다.
‘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왜 황금지도를 급하게 찾으러 나와야 했는지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현무국(玄武局)…… 현무국주 저화평, 그가 나섰기 때문에…….’
황금지도를 찾는다면 천검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장을 섰던 인물.
‘그러고 보니…… 둘은…….’
무신 초일군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일부인 주하령과 이부인 저단영.
이공자 종택의 어머니가 저단영의 동생인 저화영이었다.
그리고 저화평은 이공자 종택에게는 외숙부였다.
“망할 새끼들…….”
“…….”
금하희가 뱉은 욕설에, 순간 배 안에 있던 네 사람이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아…… 죄송해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천검봉께서는 성격이 화통하십니다. 하하하!”
“……원래는 조신한데…….”
“흠흠,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었소이다. 십봉 중 가장 조신한 여인이 천검봉이지 않습니까?”
“…….”
묵경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중원십봉 중 가장 성격이 사내답다고 알려진 여인이 천검봉 금하희였다
물론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하지요?”
금하희가 황금지도를 내밀었다.
북소연은 황금지도를 보며 말했다.
“간단하지요. 극일천에서 원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어요?”
“북 소저, 그게 무슨 뜻입니까?”
북소연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뭔가요?”
“극일천이 원하는 건 혈사천과 천검궁이 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양이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호호호. 맞아요. 역시 그분의 의제네요.”
그녀의 칭찬에 인양은 기분이 좋아졌다.
“천검봉께서 황금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소문이 나면 혈사천에서는 어떻게 나올까요?”
“그렇군요.”
중원 무림은 황금지도가 없는 그녀를 쫓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다만…… 여기서 당신은 무사히 천검궁으로 돌아가야 해요.”
“…….”
북소연의 말이 맞았다.
타악.
배가 강변에 닿았다.
이미 연락이 되었는지 마차와 함께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타세요.”
“어디로……?”
금하희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우선 옷도 갈아입고 편하게 쉬는 게 좋겠어요.”
“이공자가 쫓아오지 않을까요?”
“세상에 숨을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네. 고마워요.”
금하희는 마차에 북소연과 함께 올라타며 마음이 편해졌다.
천검궁에서 있을 당시 그녀는 언제나 마음 편하게 지낼 여동생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각다각.
마차 뒤를 따르는 세 필의 말.
“인양아. 이 정도면 우리가 진짜 밀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
“묵경 형 말씀이 맞아요. 저분은 성격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머리도 뛰어나잖아요.”
“녹검 씨는 어떻게 생각해?”
척.
녹림야검이 엄지손가락을 폈다.
“당연히 최고의 신붓감 아닙니까. 인양 아우가 말한 것처럼, 저분처럼 뛰어난 여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옥혈림이 걸리긴 한데, 그분께서는 그런 것에 신경 쓰실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혈성존의 사위가 되신다면 극일천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합니다.”
녹림야검은 사파 출신이기에 약간이나마 사심이 들어간 게 맞았다.
그때였다.
녹림야검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호호호. 고마워요. 제가 꼭 기억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