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99화 (199/425)

199화

절대고수의 대결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간단하게 휘두르고 내리치는 동작 하나에 검의 무리가 얼마나 숨어 있는지, 하수들은 몰랐다.

“커어억.”

서로 부딪친 두 사람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사형…….”

금하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종택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복부에서 피를 흘린 건 혈광검 규비인이었다.

“이런…… 씨…… 벌…….”

천검궁의 흑사마검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그는 뒤로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금하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공자 종택은 무뚝뚝하게 금하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평소에도 사형제들을 그리 살갑게 대하지 않는 편이었다.

“괜찮나?”

“네. 이 사형, 고마워요.”

“그게 황금지도인가?”

금하희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금지도.

스윽.

종택은 손을 뻗었다.

그의 눈빛은 무심했다.

“…….”

그는 예전부터 이랬다.

항상 무뚝뚝하게 자신을 대했다.

그래서 그의 행동과 목소리를 대수롭게 않게 생각했다.

“사형, 제가 끝까지 맡아 사부님께 드릴게요.”

번쩍.

종택의 눈동자가 빛났다.

“내가 가지고 가는 게 위험하지 않다.”

“어차피 제가 사형과 함께 천검궁으로…….”

“아니. 넌 여기에서 죽는다.”

“……!”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사, 사형. 그게 무슨…….”

금하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강에 뛰어들지 않은 이상 갈 수 없을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거죠?”

“네가 죽어야 혈사천과 천검궁이 피를 흘리며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지.”

“……!!!”

그녀는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죽는 것보다 더 슬픈 건 믿었던 둘째 사형의 배신이었다.

“이…… 사형,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만하자. 그동안의 정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해주겠다.”

종택은 마종검에 마기를 밀어 넣으며 한 번에 그녀의 목숨을 끊기 위해 내리쳤다.

하지만 그때, 바닥에 쓰러졌던 혈광검 규비인이 몸을 날리며 종택의 뒤를 잡았다.

그는 마지막 힘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망할 새끼가…… 더러운 놈이군.”

“죽고 싶은 모양이지?”

“이…… 놈…… 나하고 같이 죽자!!!”

혈광검은 혈폭공을 일으키며 종택과 동귀어진을 택했다.

“쯧, 가만히 있으면 살았을 것을……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여주마.”

슈우우욱.

종택은 마기를 흡수하면서 혈광검 규비인에게 잡힌 팔에 힘을 주었다.

“이런 짓은 멍청한 놈들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파앗-!!

마기가 단전에서 뻗어 나가며 혈광검 규비인을 밀어냈다.

퍼어어엉!!

천화신장이 혈광검의 가슴을 때렸다.

붉게 타올랐던 혈광검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친 뒤 터졌다.

종택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휘이이익!

바람 소리가 들렸다.

‘……?!’

종택은 옆으로 지나가는 인영을 따라 뒤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놈이지?’

그는 곧바로 신법을 펼쳤지만, 사내는 이미 금하희의 눈앞에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사내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정말…… 잘…… 생겼다. 누구지?’

휘익!

그는 한 손으로 뻗어 금하희의 허리를 가볍게 감쌌다.

“소저, 잠시 실례하겠소이다. 본인을 꼭 잡으십시오.”

“예? 이, 이게 무슨……!”

“소저, 우리 시원하게 날아가 봅시다.”

타앗!

금하희를 끌어안은 사내, 묵경은 그녀를 안은 채 신형을 날리며 강을 향해 뛰었다.

‘미, 미쳤어!!’

금하희는 놀라 묵경의 세게 껴안았다.

종택은 빠르게 따라붙었지만 묵경을 따라 강물 위로 뛰어내리지 못했다.

“완전히 미친놈이군.”

강물에 떨어진 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두 사람을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헤엄을 쳐서 건너편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유속이 빠르기에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강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저놈들이…… 미리 계획을?”

종택은 배에 올라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저 새끼들은 누구지?’

* * *

범유는 금맹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일군사 사마추의 명을 전했지만 거절당했다.

‘어이가 없어서…….’

더 큰 문제는 사마추에게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느냐였다.

‘휴우…….’

범유는 집무실 앞에 섰다.

“……범유입니다.”

“들어오게.”

황색 손잡이를 옆으로 잡아당겼다.

드르륵.

사마추가 고개를 들어 들어선 범유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되었지?”

“…….”

범유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타악.

사마추는 동작을 멈춘 채 책상을 내리쳤다.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똑바로 대답하게.”

“죄송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지금 많이 바빠서 만날 시간이…….”

바쁘다고 한 건 거짓이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사마추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라고? 바쁘다고?”

“…….”

사마추는 손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일군사가 만나고자 한다는데도 거절한 게 어이가 없었다.

범유가 똑바로 말을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망할 녀석…… 금맹전에 오기 싫다고 했으렸다?’

“범유, 다시 가서 금관정에서 만나고자 한다고, 본인의 말을 똑바로 전해라.”

“아, 알겠습니다.”

범유는 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만일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맹전을 나선 그는 다시 맹주전으로 걸었다.

‘아 씨……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범유는 맹주전에 재차 들어섰다.

특사정화단의 안내를 받아 고진유의 다시 만났다.

“또 오셨소? 자주 오는 것 같습니다만…….”

“죄…… 송합니다.”

범유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본도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

“일군사께서…… 금관정에서 만나고자 하십니다.”

“흐음. 금맹전이 아니라 금관정이라…….”

고진유는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또 싫다고 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겠지요?”

“……아니…… 저어…… 일군사께 무례를 하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범유는 눈치를 보면서 대답을 했다.

“좋소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만나보도록 하지요.”

“시간은 특사님께서 원하는 시간으로 정하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소? 음…… 그럼 바로 만납시다.”

“네에? 지금 말입니까?”

“바쁘다면 다음에 보고. 본도는 바로 금관정으로 갈 테니 돌아가거든 일군사께 기다린다고 전해주시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일어납시다.”

고진유와 범유는 함께 일어났다.

고진유는 금관정이라 불린 황와정에 먼저 도착했다.

금관정 주위로 특사정화단이 모습을 숨긴 채 호위를 섰다.

슥슥.

고진유는 정자에 올라선 채 손으로 난간을 어루만졌다.

금관정이 아니라면 나올 생각이 없었다.

사부와 연관된 장소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당신이 먼저 움직였어. 당신이 나를 죽이겠다고 하니 나 또한 오늘 사마추, 당신을 칠 것이오.’

고진유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금관정에서 기다린 지 반각이 지날 무렵,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일군사 사마추와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진유는 그들을 슬쩍 본 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일군사 사마추가 금관정으로 올라섰다.

“만나보기 힘들군.”

“맹주전으로 오시면 됩니다.”

“무림맹의 일군사가 그대를 보고 싶으면 직접 움직이라는 것인가? 마치 특사가 맹주가 된 듯한 말이군.”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사람을 보냈는데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가?”

“조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금 무림맹에 극일천의 세력이 숨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함부로 나다니다가 곤란한 일을 겪지 않을까 싶어 미리 대비한 것입니다.”

사마추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고맙게도 그가 먼저 극일천을 언급했다.

“그대의 말은 본인이 극일천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아닙니까?”

“…….”

고진유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바로 면전에 두고 말을 할 줄 몰랐다.

그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고진유도 당분간 모른 척 지나가고자 했었다.

“대단하군.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놓칠 정도였네.”

“사실대로 알려주면 됩니다.”

“후후후. 사실대로라…… 하긴 내가 있는 그대로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은 믿지 않겠지.”

“금관정에 본도 혼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

사마추는 흠칫거렸다.

금관정으로 오는 길에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특사정화단 외 다른 인물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본도밖에 없습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해본 말입니다.”

“…….”

“그럼 편히 말해보시지요. 누가 우리말을 들을 수 없으니 걱정 안 해도 괜찮소이다.”

“크크크…… 지금 본인을 염려해서 하는 말인가? 웃기는군.”

“일단 앉지요. 계속 서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앉기 싫네. 난 자네와 별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이야기를 하고 싫다면서 만나고자 두 번이나 사람을 보냈군요. 그건…… 본도와 만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 같은데.”

“훗. 언제부터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갔나?”

“기본 아닌가요?”

“…….”

“음…… 저기 저자가 계속 본도를 노려보는군요.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인 것 같소이다.”

“똑똑하군.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이 자리를 만든 것이라네.”

타앗!

범유와 함께 온 사내가 금관정으로 날아올랐다.

흑화전주 배조경은 변용을 풀었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다.

“오랜만이군.”

“오…… 많이 보던 사람이군요.”

“그날 이후 한 번 이런 자리에서 만나고 싶었다.”

“이 주위를 본도의 수하들이 포위하고 있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크크크. 어차피 우리 사이에서는 한 수만에 끝이 날 텐데 주위에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의미가 없지.”

“그렇군요. 그걸 생각하지 못했네요. 뭐, 어쨌든 무림맹에 당신이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고진유와 배조경은 내력을 일으키며 한 수를 펼칠 기회를 노렸다.

두두두.

금관정이 두 사람의 내력에 의해 흔들거렸다.

‘기회다.’

스윽.

사마추는 옆으로 돌아서면서 몰래 내력을 끌어 올렸다.

‘지금…… 흑화전주에 신경을 쓴다고 나를 놓친 것 같다.’

당장 기습을 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배조경의 호통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사마추, 죽고 싶은 것이더냐? 감히 네놈이 본인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것인가?”

“…….”

“네 실력으로 이길 것 같으냐?”

사마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배조경은 집중력이 짧은 순간에 흐트러지면서 허무하게 지나갔다.

타닷.

주위에 호위를 선 특사정화단이 내력의 변화를 읽은 뒤 금관정으로 내려섰다.

“망할 새끼……!”

배조경은 그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화산도협, 오늘은 기회가 아닌 것 같군.”

휘익!

배조경이 움직이자 특사정화단이 그의 앞을 막고자 했다.

“물러나세요.”

고진유는 그가 나갈 수 있도록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특사정화단이 그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사마추는 굳어진 얼굴로 어정쩡하게 자리에 섰다.

고진유는 그의 앞에 다가섰다.

“끝이군요.”

“…….”

“일군사, 당신을 극일천의 간자로 체포하겠소이다.”

“무림맹의 일군사를 체포하는 게 쉬운 줄 아는 모양이지? 극일천의 간자라는 말을 무림맹 인물들이 믿을 것 같으냐?”

“그들이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오. 본도가 알아서 할 것이니.”

사마추는 앞에 선 고진유를 가슴을 보았다.

손만 뻗으면 될 거리.

‘이왕 이렇게 된 일…… 이놈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바로 일장을 뻗었다.

슈우우우욱-!!

‘이놈!!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절대로 막아낼 수 없다.’

음괴장이 고진유의 가슴에 찢어 내려는 듯 회전했다.

그리고,

파아아앙!!

사마추의 일장 앞에서 굉음이 울렸다.

‘뭐지?’

소리만 크게 울릴 뿐 손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좋은 장법이었소.”

“…….”

고진유는 오른 방향에서 팔짱을 낀 채 사마추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너무 위력에만 집중한 듯하군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도 줘야 하지요.”

휘익!

고진유는 다가서면서 화산복호권을 내질렀다.

‘어…… 어…….’

분명 눈에는 그의 주먹이 보였지만, 그가 피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쿠우우웅-!!

“아아악!!”

고진유의 주먹이 정확히 얼굴을 가격했다.

사마추는 휘청거리면서 금관정에서 넘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겠소이까? 이것이 상대의 움직임에 맞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오.”

고진유는 쓰러진 그를 보며 말을 했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십 성의 화산복호권에 이미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단주님, 지금 당장 금맹군을 접수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금맹군을 접수한 후엔, 본도 외에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금맹전에 들어갈 수 없소이다.”

“특사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존명.”

독전호는 수하들과 함께 금맹전으로 향해 움직였다.

툭. 툭툭.

고진유는 바닥에 쓰러진 사마추의 혈을 짚었다.

“잠영. 있습니까?”

스윽.

고진유의 앞으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뒤면 사마추의 소문이 무림맹에 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명단에 든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세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스르륵.

잠영은 다시금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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