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97화 (197/425)

197화

무림대전의 분위기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중원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던 세력과 싸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고진유가 말을 이었다.

“극일천. 중원 무림의 멸문을 노리는 세력입니다.”

웅성.

대전에 모인 대부분의 무림맹 인사들은 극일천이란 이름을 되새겼다.

“태상장로님, 고 특사가 한 말이 맞습니까?”

공요대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고 특사의 말이 맞다네.”

제갈문은 짧게 머리를 한 번 끄덕였다.

“공요, 우린 그동안 무림에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인지한 뒤 조심스럽게 그들을 찾았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네. 어떤 존재들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네. 이 모든 것이 고 특사 덕분일세.”

무림대전에 모인 그들은 제갈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갈문이었으니까.

제갈문의 인정에 무림대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고진유에게로 향했다.

‘망할…… 무림맹을 완전히 장악했어.’

사마추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진유 쪽으로 흐르는 무림맹의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극일천의 목표는 중원무림을 혼란스럽게 한 뒤 멸하는 것입니다. 새외무림에 왜 동시에 중원 무림에 들어왔는지, 의심을 해보셨습니까?”

“고 특사! 그 말은…… 맹주님을 살해한 극일천이란 곳에서 새외무림까지 조종했다는 것이오?”

청룡군장 황보성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모든 것들이 극일천의 소행입니다.”

“어허…… 그래서…… 극일천도 복수를 하고자 맹주님을 죽인 것이오?”

“군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극일천은 새외무림의 실패에 대한 보복으로 중원 무림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맹주님을 급습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죽일 놈의 새끼들……!!”

황보성은 노기를 토해냈다.

새외무림과 극일천이 연관이 있을 줄 누가 믿을 수 있었겠는가.

고진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극일천에서 맹주님을 죽이고자 살수를 보냈다고 해도, 맹주전에 계신 그분을 쉽게 죽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맹주님의 무공이 고강하셨고, 맹주전 주위에는 친군호위대뿐만 아니라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기관이 숨겨져 있었으니까요.”

스윽.

이번에는 제갈양이 앞으로 나섰다.

“변절자인 집법당주 반검형. 그가 대전에서 한 가지 청을 올렸다고 하더이다. 혹시 기억들 하십니까?”

“아! 그가 맹주님을 위해 친위호위대를 늘리도록 했소이다.”

“맞소이다. 대전에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집법당의 무인들이 친위호위대가 되었지요. 반검형의 계획은 성공했습니다. 맹주님께서 돌아가신 그날 호위를 섰던 친위호위대가 그가 보낸 무인들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집법당주의 의견에 동의했던 인물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나 괜한 오해를 받을지 몰랐다.

제갈양이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고진유가 앞으로 나섰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맹주님을 죽인 범인은 살수가 아니라 본 맹에 숨어든 변절자들입니다. 집법당주를 잡았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고 특사, 다른 인물이 있다는 것이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누군가에 의해 고독에 중독되어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림대전은 조용해졌다.

누구도 이에 대해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무림대전의 회의는 오직 한 명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무림맹주를 죽인 극일천의 세력.

앞으로 무림특사 고진유가 해야 할 일은 무림맹에 숨어든 변절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집법당주가 사라진 집법당은 당분간 태상장로인 제갈문이 관리하기로 정했다.

사마추는 아래를 보던 도중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전방에서 노려보는 시선.

‘저…… 녀석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미소를 짓다가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군.’

사마추는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 * *

금맹전으로 들어서는 사마추는 기운이 빠진 듯했다.

드륵.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칫거렸다.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앉아 있는 인물.

금맹전으로 들어오면서 전혀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구시오?”

“영사, 오랜만이네.”

의자에 앉은 채 돌아서는 인물을 보는 사마추의 눈빛이 흔들렸다.

흑화전주 배조경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척.

사마추는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소신 영사. 흑화전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나게.”

“감사합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당황스러웠다.

흑화전주가 무림맹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흑화전주가 왜?’

그가 무림맹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못 올 곳을 온 모양이지?”

“아닙니다. 다만…… 느닷없이 오셔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후후후, 그렇긴 하지. 나도 무림맹까지 들어오게 되어 놀라워.”

“…….”

“흠, 내가 자네 자리에 앉아 계속 서 있는 겐가?”

“아닙니다.”

“아니라면 서 있지 말고 앉도록 하게. 부담되니깐.”

흑화전주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덜컹.

그러더니 멋대로 비밀 서랍을 열어 목갑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서 하나를 폐기했더군.”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살려 두었다면 모든 것을 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흠……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니. 안전이 제일 우선이니까. 그런데 자네 목갑을 보니 안이 비어 있더군?”

“…….”

배조경이 열 개의 상자 중 숫자 일(一)이 적혀 있는 상자를 열었다.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원래부터? 이유가 있는가?”

“제가 책임자이기에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자만 만들어놓았을 뿐입니다.”

“만일 자네가 잡힌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너무 자신만만하군. 나도 그렇게 하다가 그 녀석에게 당했지.”

“만일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좋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가 하는 말이라면 믿지.”

스윽.

배조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에게 간단하게 부탁할 일이 있어 왔네.”

“무슨 일이십니까?”

“그 녀석과 조용히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군.”

“……!”

사마추는 의외의 말에 놀랐다.

“그와 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조용히 그놈이 혼자 있을 때를 기다렸다.”

“…….”

“한데 상당히 약은 놈이더군. 전혀 기회를 만들지 못했지. 더구나 지금은 무림맹에 들어온 뒤라, 무작정 기다리는 건 힘들 것 같더군.”

“그는 육십사괘무장을 이겼습니다.”

파앗!!!

배조경의 기가 뻗어 나오며 사마추의 목을 찔렀다.

“영사, 당장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것이라면 한 번 더 그따위 소리를 내뱉어라.”

“죄…… 송합니다…… 소신이 잠시…… 정신이 나간 듯합니다.”

사마추는 짧은 순간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극일천의 십전 중 흑화전의 수장이었다.

“내가 네놈에게까지 무시당할 인물이었나?”

“죽을죄를 졌습니다.”

“됐다. 한 번은 봐주지.”

“고맙습니다.”

사마추는 허리를 숙였다.

“그래서, 그 녀석과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사마추의 표정이 밝아졌다.

흑화전주의 무공이 어떠한지 한 번 더 알게 되었다.

그의 무공은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육십사괘무장 판진모가 어떻게 당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흑화전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후후후. 기대하마.”

* * *

제갈문은 집법당 소속의 무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조사했다.

무림맹은 이내 조사 결과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집법당주 반검형의 명만을 따랐을 뿐이라 밝혔다.

수하라면 당연히 상관의 명을 따라야 하는 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상관의 명을 따른다고 해서 맹주를 죽이고자 하는 계획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검형을 따른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동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집법당 소속이지만 동시에 무림맹 소속이기에, 맹주를 해치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알려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제갈문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무공을 두 번 다시 익힐 수 없도록 단전을 파괴한 뒤 무림옥에 가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진유는 그들에겐 무림맹의 물조차도 주는 것이 아깝다며 무림옥에 가두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무림맹 무인들은 그들을 여지없이 모두 죽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림맹 무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무림맹 정문에 지옥혈림의 흑귀들이 도착했다.

독전호는 죄인들을 끌고 나온 뒤 흑귀들에게 인도했다.

“특사께서 이들을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소이다.”

“알겠소이다.”

독전호는 가슴에서 한 장의 전표를 꺼내 주었다.

“확인한 후 모자라면 말씀하시오.”

흑명군 이독은 봉투 속에 든 전표를 확인했다.

‘이게…… 대체 얼마야?’

금액을 확인한 그는 얼른 전표를 가슴에 밀어 넣었다.

“사전에 말한 것보다 좀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크흠, 이건…… 좀 더가 아닌 듯합니다만.”

“그동안 신세 진 것도 많아서 섭섭하지 않도록 챙겼다고 했으니 가지고 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상부에 그대로 보고를 하겠습니다.”

그는 고진유를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무림맹을 물러났다.

지옥혈림이 떠난 후 무림맹은 그 일로 시끄러웠다.

한쪽에선 어떻게 사파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느냐면서 말들이 나왔지만, 공론화시키지는 못했다.

제갈양은 그 소식을 듣고 맹주전으로 찾아온 뒤 고진유 앞에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저놈들을 지옥혈림에 맡길 줄은 몰랐다.”

제갈양은 속이 시원했다.

변절자들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지만, 정파인이라는 허물 좋은 탈을 쓴 탓인지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런 마당이었는데 지옥혈림에서 그들을 끌고 가버렸다.

그곳에서 죽든지 살든지는 그들의 운명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옥혈림에 맡기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아서요. 잘 하지 않았습니까?”

“후후후, 잘했어. 그러고 보면 지옥혈림도 장단점은 있군.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어.”

제갈양은 시원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일군사가 이제 움직이려고 할까?”

“그는 움직일 것입니다. 저번에 저와 눈이 마주치면서 분명히 느꼈을 테니까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했습니다. 그는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려고 할 겁니다.”

“조심하게.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몰라.”

“알겠습니다.”

이어 고진유는 무림으로 나간 세 사람,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을 떠올렸다.

“그들의 소식은 아직 없습니까?”

“안휘성에 들어간 뒤 지옥혈림의 추혼대주를 만났다고 연락이 왔더군. 그들과 함께 천검봉의 뒤를 쫓아간다고 했네.”

“무림맹에서는 천검봉의 위치를 확인했습니까?”

“회북으로 움직인다는 연락을 받은 후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어.”

“개방에서도 못 찾는 것을 보면 변장을 했거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 같네요. 우리가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무림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고진유의 걱정은 이미 사실로 되어갔다.

천검봉 금하희를 찾고자 전 중원인들이 안휘성으로 몰려들었다.

황금지도를 가지기만 한다면 중원 최고의 기연을 얻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안 그래도 황금지도 때문에 벌써 두 문파가 붙었어. 상산지부에서 중재를 나섰다고 했지만 잘 안 된 모양이더군.”

“극일천의 의도는 확실하네요. 무림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하튼 성공은 한 듯해. 무림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빨리 묵경 아우가 무림맹의 이름으로 황금지도를 찾는 수밖에 없겠어.”

휘이익.

두 사람 곁으로 독전호가 다가섰다.

“특사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정문에 금맹전의 범 총관이 찾아왔습니다.”

제갈양은 피식 웃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움직이는군.”

“무슨 말을 하는지 볼까요?”

“내가 자리를 비켜줄 테니 무슨 말을 하는지 만나보게.”

“알겠습니다. 나중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제갈양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옆방으로 움직였다.

잠시 뒤 범유가 들어섰다.

“특사를 뵙소이다.”

“범 총관께서 오셨군요. 먼 길을 오셨습니다.”

“빠르게 오면 일각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가요? 마음이 멀어서 그런가 많이 멀게 느껴지는군요.”

“…….”

“범 총관께서는 찾아온 용건이 무엇입니까?”

“일군사님께서 무림맹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술자리에 초대하셨습니다.”

“본도를?”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도 오시는 것이오?”

“아닙니다. 두 분만 자리를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고진유는 고민도 필요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음. 본도는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초대를 해줘서 고맙지만 참석을 못한다고 전해주시지요.”

“……!”

범유는 당황하면서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단번에 거절할 줄은 몰랐다.

‘뭐…… 이런 녀석이 있지?’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어…… 특사께서는 일군사님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

고진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당황한 나머지 하지 말아야 말을 했다.

“범 총관께서는 무슨 말을 하시는지요? 본도가 믿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닙니다. 그냥…… 생각 없이 나온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생각 없이 나온 말이 진심이라고 들었소이다만, 넘어가도록 하죠. 그리고 이것 한 가지는 꼭 알아두세요. 본도는 일군사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세상을 믿지 않았습니다.”

“…….”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습니까? 다른 할 말이 없으면 그만 가보도록 하세요.”

범유는 자리에서 힘없이 맹주전을 떠나갔다.

스윽.

잠시 자리를 비켜난 제갈양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세상을 믿지 않는다는 뜻. 저 녀석이 어떤 성격인지 모른다면 당황할 수밖에.’

고진유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필요했다.

신뢰(信賴).

마음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고진유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사마추는 아니지. 만나면 짜증 나는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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