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작전 계획 낙화(落花).
극일천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했다.
황보강이 존재했을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무림맹에 도움을 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근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황보강의 죽음.
그가 없는 무림맹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갈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고진유는 무림맹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함을 느꼈다.
무림맹을 접수하기 위해 제거해야 할 일순위는 일군사 사마추.
그를 잡을 미끼로써 집법당주 반검형부터 잡아들이기로 했다.
죄명은 맹주 황보강을 죽인 살수를 도운 반역죄.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 * *
집법당.
중원 무림맹 삼당 중 한 곳으로 법을 집행하는 막중한 권한을 지닌 곳.
당주 반검형은 입이 무거워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평소에 부릅뜬 눈 때문인지 그를 마주 보는 인물들은 늘 주눅이 들었다.
다다다다-
당주실로 빠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달려오는 그림자를 본 반검형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덜컹!
이번에는 보고도 없이 문이 강하게 열렸다.
“당, 당주님!”
다급하게 들어선 집법일대주 정일도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슨 일이냐?”
“친위…… 아니, 특사정화단이 쳐들어왔습니다!”
“……!”
반검형의 양쪽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아아악!!
당주실 밖에서 집법당 수하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가자.”
반검형은 당주실을 박차고 밖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저놈들이 왜?’
밖으로 나가보니 일천 명의 특사정화단 전체가 몰려온 것이 확실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수하들을 본 반검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특사정화단의 기습에 완벽하게 당했다.
상황은 이미 거의 마무리가 된 듯 싸우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단장 독전호가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반 당주,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지금 나에게 한 말인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잘 알 텐데. 그렇지 않나?”
집법당주 반검형은 노기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독전호,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감히 집법당의 당주인 본인에게 포박을 받으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
“반 당주, 미친 짓은 당신이 했다. 당신을 맹주님을 살인한 죄인으로 포박하겠다.”
“뭣이? 지금 무슨 망발을 하는 것이더냐? 누가 누구를 살인했다는 말이지? 내가 누군지 알고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 없다.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조용히 따라와라. 조사를 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난 죄가 없으니 네놈들에게 조사를 받을 수 없다.”
“따라오지 못하겠다는 말은 죄를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
“대체 무슨 이유로 본인을 끌고 가는지 모르겠군! 증거는 있나? 이런 누명을 씌우다니. 증거가 없는 이상 난 가지 않는다.”
“스스로 포박을 받지 않겠다면 본인이 직접 힘을 써서 연행해 주지.”
“……!!”
반검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법당 소속의 무인들은 이미 처리되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노려보는 특사정화단의 시선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번 일에 대해 일군사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반검형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본인은 특사님의 명을 따를 뿐. 반 당주, 스스로 포박을 받겠소. 아니면 강제로 포박을 받겠소?”
“…….”
수백 명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젠장…….’
그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물러날 수밖에. 일군사가 제대로 처리할 것이다.’
반검형은 여전히 눈에 힘을 준 채 아래로 내려왔다.
‘흥. 망할 새끼. 아직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군.’
독전호는 그를 보며 실소를 짓고는 앞으로 내려온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반검형.”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왜…….”
반검형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다.
독전호는 전력을 다해 반검형의 얼굴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퍼어억!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반검형의 이빨이 부서지면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퍽! 퍽퍽!
독전호는 바닥에 쓰러진 그를 향해 무차별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반검형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 *
콰아아앙!!!
사마추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쨍그랑!!!
책상 위에 있던 화병이 바닥에 굴러 깨졌다.
집법당에서 올라온 소식을 받았다.
“그 새끼가…… 감히……!!”
특사정화단이 집법당을 급습하여 당주 반검형을 잡아갔다.
빠드득.
그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을 수 없었다.
집법당주를 잡아간 건 자신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집법당주는 어디에 있지?”
범유가 빠르게 대답했다.
“반 당주는 맹주전에 감금되어 있다고 합니다.”
“혼자 잡혀갔는가?”
“친위호위대에서 복귀한 점 대주와 같이 잡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
사마추는 머리가 아팠다.
점복성까지 잡았다는 건 이미 증거를 확보했음이 틀림없었다.
‘실수했어. 그 일에 연관된 놈들을 미리 제거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큰 실수는 고진유가 특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알았어. 나가봐.”
“……그를 그대로 둘 생각이십니까?”
“겨우 그놈을 잡았다고 해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 단정한다면 오산이지.”
“…….”
반유는 밖으로 나갔다.
‘어쩔 수 없군.’
그들을 어설프게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죽이면 될 뿐.
어디에 있든 반검형을 죽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열 개의 작은 목갑들 중 십(十)이라 적힌 목갑을 꺼냈다.
목갑 안에는 붉은빛의 고독(蠱毒)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의 한마디 정도의 크기.
만일을 위해 무림맹에 잠입한 그들에게 금제를 가해 놓았다.
“후후후. 십소, 미안하게 됐군. 이해했으면 하네.”
쿠욱.
사마추는 단검으로 고독을 찍었다.
목갑 안으로 붉은 액체와 함께 독기가 흘러나왔다.
* * *
‘이거 참…….’
반검형을 가둔 창고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았다.
독전호는 걱정이 되었다.
그의 잘못을 밝히기 전에 맹주전에서 집법당주가 죽었다.
무림맹 인물들에게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가서 확인해야겠군요.”
“네, 특사님.”
“독 단주께서는 수하를 보내 약의전에 가서 독상에 밝은 의원을 데리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또 다른 명은 없으십니까?”
“비맹전에 가서 이군사께 상황을 알려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고진유와 독전호는 곧바로 반검형이 죽어 있는 창고에 향했다.
반검형이 갇힌 창고는 부식을 저장하던 건물이었다.
창고 주위를 특사정화단이 둘러싸고 있었다.
일대주 원하상이 도착한 두 사람을 맞이하고는 그가 죽은 상황을 설명했다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안에서 나온 신음 소리에 들어가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들어가 봅시다.”
부식을 위한 용도이기에 반쯤 지하로 된 건물이었다.
고진유는 창고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를 들어오려면 문 외에는 방법이 없겠군요.”
문을 부수지 않고서는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가 확실했다.
고진유는 거적에 덮여 있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열어보세요.”
휘익.
시체에 가장 가깝게 서 있던 수하가 얼른 거적을 치웠다.
‘흠…….’
독기가 시체에서 느껴졌다.
반검형의 몸에 다른 상처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완벽히 중독당해 죽었군요.”
“그는 여기에 들어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아도 중독을 당할 수 있지요.”
“누군가 침입을 했다는 말입니까? 창고 정문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설마 우리들 중에…….”
“아니. 그건 아닐 겁니다. 독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것이지요. 중독을 시키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외부에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
다행이었다.
수하들 중에 혹시나 변절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쳐 지나갔었다.
“잠시 기다리죠. 이자의 죽음에 관해 확인을 해야하니.”
“알겠습니다.”
일각 뒤.
맹주전으로 두 명의 인영이 빠르게 들어섰다.
이군사 제갈양과 약의전 제독부(制毒部) 소속의 송명 의원이었다.
“흐음.”
송명 의원은 시신을 보자마자 코를 살짝 막았다.
독기가 바로 느껴졌다.
제갈양도 독기를 막아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보시는 바처럼 여기에 잡아온 뒤 저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스스로 죽었다는 것인가?”
“독살이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건 의원께서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고진유는 의원과 시선을 마주쳤다.
“의원님, 한번 보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송명 의원은 죽은 시신의 눈을 뒤집어 보았다.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군.’
바로 손을 떼며 일어섰다.
“특사님. 이건 고독에 의한 사망입니다.”
제갈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독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직접 고독에 의해 죽은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의원님, 정말 고독이 맞소이까?”
“네. 확실합니다. 여기 눈을 보십시오.”
송명 의원은 시신의 백색 눈동자에서 실선 같은 것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가리켰다.
“이게 바로 고독의 잔여물입니다. 고독에 의한 독상은 뇌에 독이 퍼져 단번에 죽습니다.”
제갈양도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자세히 쳐다보았다.
“허어…… 실제로 고독을 사용하는 게 가능할 줄 몰랐군.”
“제갈 형, 어떻습니까? 확실한 증거가 아닙니까?”
“난 오히려 그들에게 괜한 빌미를 주가 싶었는데, 고독이라서 더 좋아진 것 같다. 오는 길에 괜히 걱정했군.”
“고맙게도 고독을 사용해서 다행입니다.”
“여하튼 특사정화단을 움직인 명분이 만들어졌겠지?”
“네, 맞습니다.”
“후후후. 선제공격은 좋았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지만 대비를 해야 해. 앞으로 저들을 상대로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야?”
“간단합니다. 항상 저들보다 먼저 움직이면 됩니다.”
“먼저 움직인다라…… 그게 유리하긴 하지.”
“사마추가 이번 일을 트집 잡기 전에 움직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려고?”
고진유는 곁에 선 독전호에게 명을 내렸다.
“지금 바로 하나도 빠짐없이 집법당주의 죄명과 그동안 했던 일에 대해서 무림맹 전체에 알리시오.”
“넵. 알겠습니다.”
독전호의 목소리가 밝았다.
그가 죽으면서 오히려 누명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맹주님을 죽인 세력이 무림맹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로 만들어 버렸다.
창고 안에는 죽은 시신 외에 한 명이 더 있었다.
“특사님, 저 녀석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맹주님을 죽인 자들입니다. 우선 저자의 무공을 거두고 그날 호위를 선 모든 인물을 잡아들이세요. 만일 반항을 하면 죽여도 됩니다.”
“존명.”
독전호는 특사정화단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무림정화를 시작하겠다. 집법당 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 오도록.”
“넵. 알겠습니다!”
* * *
무림맹이 들썩거렸다.
집법당주의 죽음이 알려졌다.
사인은 고독에 의한 독살.
약의전에 의한 공식적인 사망 발표였다.
이어 반검형의 정체가 무림맹 전체에 알려졌다.
무림맹에 잠입한 간자.
무림을 전복하기 위한 세력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그리고 황보강이 살해당하던 그날, 맹주전을 호위하던 친군호위대 또한 살수와 같은 세력이라고 밝혀졌다.
무림맹의 무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증거물도 나왔다.
집법당주의 건물에서 찾아낸 증거물들, 즉 신비집단에 속한 신패와 신단이 집법당주실에 숨겨져 있었다.
제대로 심문을 하기 전, 그는 고독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집법당주 반검형의 죽음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무림맹에 또 다른 간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이 알려질까 두려워 미리 제거한 것이 틀림없었다.
무림맹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집법당의 일에 괜히 나섰다가 맹주 황보강을 죽인 세력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이건 반역죄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신분 지위를 떠나 반역죄에 연관이 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집법당 소속의 무인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무공을 펼칠 수 없도록 단전에 금제를 가했다.
특사조에 의해 집법당이 풍비박산 났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 * *
오랜만에 무림대전이 북적거렸다.
맹주의 자리가 공석이 된 후 비상위가 무림맹을 임시적으로 이끌게 되면서 무림대전은 한동안 비워졌다.
고진유는 특사의 자격으로 무림맹의 주요 각 당의 수장들과 주요 인물들이 대전으로 모이도록 했다.
십문십가의 대사들과 팔군의 군장들, 무림맹 장로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였다.
그들은 양옆으로 자리를 잡은 채 두리번거렸다.
태상장로 제갈문이 앞으로 나섰다.
일군사 사마추가 있다고 하나 현재 그가 무림맹에서 가장 연배가 높았다.
“오랜만에 여러분들과 한자리에 있게 되는구려.”
그는 주위 인물들을 보며 간단히 인사를 했다.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보오. 지금부터 맹주를 시해한 범인에 대해서 심문할 것이니 특사의 말을 잘 듣기 바라오.”
제갈문은 물러나면서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했다.
“특사, 시작하도록 하게나.”
“감사합니다.”
고진유의 움직임에 대전에 모인 인물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척.
두 손을 올린 그가 대전의 양옆에 선 무림맹 인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먼저 제가 나서게 된 것에 대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니오. 특사인 그대가 아니면 누가 이 자리에 나설 수 있겠소이까. 괜찮소이다.”
황보대사 황보유가 나섰다.
“황보 대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맹주님의 시해한 세력들에 대해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자 함입니다.”
“고 특사, 그게 사실이오? 맹주님을 시해한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 때가 아니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맹주님과 태상장로님께서 그들을 상대로 싸우고 계셨습니다.”
술렁.
고진유의 대답은 무림대전을 웅성거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