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맹주전 집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열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맹주십천문이라 부르는 이곳에서는, 하나의 문을 지나갈 때마다 친군호위대의 검문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열 개의 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제갈양은 곧바로 열 개의 문을 통과해 집무실로 들어섰다.
탁자 위에 놓인 화병 하나에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제갈 형님, 오셨소?”
묵경이 먼저 그를 반겼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특사는 어디 갔어?”
집무실에는 묵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 볼일 보러 갔소.”
“볼일? 벌써 움직인 거야? 혼자서?”
“그 볼일 말고.”
“아…….”
제갈양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스윽.
그때, 그의 뒤편에서 불쑥 인기척이 나타났다.
“이군사님, 오셨습니까?”
“허억!”
제갈양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그는 곧바로 뒤에서 몰래 나타난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보아하니 일부러 그러는 거 맞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유치한 장난은 안 합니다.”
“크윽,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다음부턴 삼 장 근처에 오면 무조건 기척을 내. 또 그러면 상당히 의심스러워. 알겠지?”
“푸흐,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 의자를 뺀 뒤 자리에 앉았다.
제갈양은 탁자를 슥슥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촉감마저도 달라 보였다.
“좋구만. 내 방에 있는 물건과 다르네.”
“맹주님이 사용하시던 물건이니까요. 당연하죠.”
고진유는 차를 가리켰다.
“한잔 마시겠습니까?”
“주면 좋고.”
고진유는 찻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은 뒤 차를 따랐다.
“급하게 오신 걸 보면 놀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안 좋은 소식이 올라온 모양인가 봅니다.”
“왜 급하게 왔다고 생각했지?”
“지금 신고 계신 신발은 전각용이지 않습니까?”
“급한 일이 맞다. 눈썰미가 좋군.”
“이런 건 기본이죠. 무슨 일이십니까?”
“상당히 안 좋은 일이 터졌다.”
“그게 뭡니까?”
제갈양은 안휘성에서 올라온 보고 내용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그냥 봐도 너를 목표로 잡은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모양입니다. 심각하네요.”
‘이게…… 진유 아우를 노린 것이라고?’
묵경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딜 봐도 혈사천과 천검궁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진유와 연관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제갈 형님, 내가 이해가 되도록 설명 좀 해주시오.”
“모르겠어? 이상하네.”
“뭐가 이상합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잖아! 이걸 보고 누가 알겠습니까. 두 사람만 제외하고.”
“그런가? 이걸 이해한 진유 아우가 이상한 거였나?”
제갈양은 묵경을 살살 놀리더니 이해가 되도록 설명했다.
“잘 들어. 황금지도를 얻은 천검궁을 혈사천에서 공격했어. 묵경 아우가 천검궁이라면 어떻게 할까?”
“황금지도라면 도로 찾아야지 않겠소?”
“맞아. 당연히 빼앗긴 황금지도를 찾아야지. 게다가 황금지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 누구냐면, 중원십봉 중 천검봉 금하희야.”
“천검봉이라면…… 무신의 다섯 번째 제자?”
“맞아. 여자 문제는 단번에 맞히는군.”
“…….”
“혈사천에서 황금지도를 빼앗기 위해 혈광검을 보냈어.”
스윽.
고진유가 손을 가볍게 올렸다.
“황금지도가 뭡니까?”
“기련곡에 숨어 있는 황금무동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라는 소문이 있어.”
“아하…… 황금무동.”
고진유는 어릴 적 꿈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황궁무고를 들어가는 것.
그리고 두 번째 꿈은 황금무동에 들어가 보는 것.
사실 들어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터는 게 목적이었지만.
어쨌든 황금무동을 모르는 중원인은 없었다.
묵경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난리 났군.”
천검봉이 아무리 중원십봉이라 하나 혈광검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행방불명이야. 그녀가 가지고 있던 황금지도도 같이.”
묵경은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진유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진유 아우와 연관이 없지 않소?”
“지금까지는 상관관계가 안 보이지? 계속해 볼까? 만일 혈사천에서 오공녀 천검봉을 찾아 황금지도를 빼앗은 뒤 죽인다면, 천검궁이 가만히 있을까?”
“혈사천에게 당했다면 그들도 합당한 보복을 하겠지요.”
“맞아. 천검궁은 보복을 하겠지. 그럼 혈사천은 그들의 보복을 그냥 당하고만 있을까? 천검궁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 결국 천살지인이 나서게 될 거야. 그러게 되면 천검궁에서도 맞상대가 되는 무인이 나올 게 확실하지.”
묵경은 여기부서는 어떻게 전개가 될지 이해했다.
천살지인과 고진유는 연관이 있었다.
“아직 무림맹의 일도 처리하지 못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어. 어떻게 생각해?”
“음…….”
고진유는 생각에 잠겼다.
당장 급하게 일어날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은 천살지인과 자신을 겨냥한 일임에는 확실했다.
‘움직이긴 해야 하는데…… 무림맹을 비워두고 떠날 수 없고…….’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할지 망설였다.
“진유 아우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 더 말할 게 있다.”
제갈양은 점점 더 심각하게 표정이 변해갔다.
“또 문제가 있습니까?”
“음…… 같은 문제이긴 한데 황금지도에 대한 소문이 중원 전체에 퍼져 나갔다. 개나 소나 달라붙을 게 틀림없어.”
“…….”
고진유는 혈사천과 천검궁이 싸웠다는 내용보다 이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황금지도를 가지기 위해 중원인들이 너도나도 나선다면…….
“황금지도를 빨리 거두지 않는다면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게 될 거야.”
제갈양의 생각이 맞았다.
세상은 탐욕만큼 큰일이 없었다.
고진유는 결정을 내렸다.
“이 짓도 극일천에서 꾸민 일이라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겠습니다. 무림맹에서 해결할 문제네요.”
“그렇다고 황금지도를 찾기 위해 무림맹을 나서는 일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에게 시간을 주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무림맹은 그대로 진행할 겁니다.”
“……동시에 어떻게 한다는 말이지?”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황금지도를 찾는 일은 묵경 형이 맡아서 하면 돼요.”
“내가? 맡아서 하라고?”
“네. 묵경 형이라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
묵경은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거렸다.
설마 자신에게 맡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하! 좋은 방법이구만. 묵경 아우가 처리하면 되겠어.”
‘아…… 진짜 내가 한다고?’
지금까지 고진유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일들을 처리했지만, 혼자서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 처음이었다.
“풍류옥협의 전설을 이어나가야죠. 형이 찾아야 할 사람은 그냥 여인이 아니잖아요. 중원십봉의 천검봉 아닙니까? 중원 무림에서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분은 내가 알기로 오직 한 명밖에 없을 겁니다. 풍류옥협 묵경대협.”
묵경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퍼져 나갔다.
“알았어. 내가 꼭 그녀를 찾아서 구해 오겠다.”
“……형, 황금지도가 먼저입니다.”
“그녀를 구하면 그냥 따라오는 거잖아.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수하마.”
“하하, 형이라면 걱정하지 않습니다.”
“음…… 근데 혼자 가는 건 심심하기도 하고,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인양이라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인양과 녹검 씨도 함께 가세요.”
“녹검 씨도 가면 그들 감시는 어떻게 하려고?”
“그건 걱정 마세요. 내 곁에 한 명 더 있잖아요.”
묵경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
“알겠다. 고마워. 두 사람과 같이 가도록 하지.”
“묵경 형, 제가 항상 말하던 게 있잖아요.”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물러나라는 말?”
“맞아요. 절대로 무리하지 마세요. 저에게는 황금지도보다 세 사람이 더 중요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너도 세상에서 제일 잘난 동생인 것은 알지만, 조심할 건 조심해.”
“전 확률이 반반이라면 무조건 도망갑니다.”
“역시…… 최고다.”
묵경은 엄지를 펴며 웃었다.
* * *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은 무림맹을 급히 나섰다.
무림맹에서는 그들이 밖으로 나갔는지도 몰랐다.
두두두두-
두 필의 흑마와 한 필의 백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렸다.
세 사람은 똑바로 안휘성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안휘성 부양현에 들어섰을 때, 전방에는 흑의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익숙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천검봉 금하희를 찾기 위해 비맹군 정후조가 움직였다.
물론 이들도 뛰어났지만, 사람 찾는 데는 꽤 능력이 좋은 곳이 있었다.
지옥혈림.
히이이잉!
흑귀들 앞에 세 필의 말이 멈췄다.
북소연은 살짝 코를 찡그렸다.
그녀가 찾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도협께서는 안 보이네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실망한 듯한 느낌이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한 방에 그녀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말이 있었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일.
“제수씨, 진유 아우는 무림맹에 있소이다.”
“……!”
북소연의 눈이 반짝거렸다.
“풍류옥협께서는 방금 저를 어떻게 부르셨나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변했다.
‘통했어.’
북소연은 고진유를 좋아하는 게 맞았다.
‘진유 아우, 미안하다. 뒷일을 맡기마.’
여기에서 내뱉은 말을 물릴 수는 없었다.
“하하하! 제수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준 이유가 무엇이겠소이까.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인양과 녹림야검은 묵경의 시선을 받았다.
“아…… 마, 맞습니다, 형수님.”
“호호호.”
북소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묵경과 인양이 누구인가.
그에게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형이자 동생이었다.
두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호호호!”
웃음 외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제수씨,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부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네. 저도 좋습니다, 아주버님.”
그녀는 벌써 한 가족이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세 분을 보니 급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제수씨께서는 혹시 황금지도에 대해서 들었습니까?”
“네. 요즘 시끄럽더군요. 아! 아주버님께서는 말을 낮추어도 됩니다.”
“크흠, 알겠소.”
중원에서 황금지도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
“무림맹에서도 황금지도에 관심이 많은 모양인가 보네요.”
“진유 아우에 대해서 잘 알지 않소이까.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럼 왜 찾고자 하는 것인가요?”
“황금지도를 누가 일부러 풀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소이까?”
북소연의 특유의 감이 빠르게 움직였다.
“설마…… 극일천에서 일부러 무림에 풀었다는 건가요?”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소이다. 한데 진유 아우와 제갈 형님이 황금지도는 진유 아유를 노리는 것이라 알려주더군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천검궁과 혈사천이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두 곳에서 누가 나오게 되겠소?”
“무신과 천살지인?”
“맞소이다. 그들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 같소?”
“무신 초일군이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요?”
“천살지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죠? 진유 아우의 사숙이지요.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을 건드리는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외다.”
“…….”
북소연은 황금지도를 왜 찾아야 하는 지 이해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 그분은 왜 무림맹에 계시나요?”
까닥.
묵경은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다급하게 무림맹에서 잡아야 할 인물이 있소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가 나온 것이오.”
“아, 그렇군요. 제가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겠어요.”
“고맙소이다.”
“호호호. 고맙긴요. 이젠 한 가족이잖아요.”
“아…… 맞소이다. 우린 한…… 가족.”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아 참. 그렇지 않아도 소식을 전하려고 했어요. 그분은 잘 숨겨 놓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진유 아우가 알면 한시름 놓겠군요.”
북소연은 말들을 가리켰다.
“그럼 어서 가죠.”
“음? 어딜……?”
“본 림에서도 황금지도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직 천검봉은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어디로 움직이는지 행적을 찾았죠.”
“역시……! 다행이외다. 혈사천에서 황금지도를 못 찾은 게 맞소?”
“그들도 천검봉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면 그녀가 황금지도를 가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흠…… 그 물건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구려.”
“그러게요. 극일천에서 뿌렸다면 진짜를 내보낼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황금지도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직접 지도를 보며 찾아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겠군.”
휘익!
묵경은 백마에 올라탔다.
그 뒤로 인양과 녹림야검이 흑마에 올라타며 앞장선 그녀의 마차를 따라 달렸다.
* * *
타악!
고진유는 바둑판 위에 흑색의 돌을 툭 던지듯 놓았다.
지금까지 바둑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아하하! 좋았어!”
제갈양은 신이 난 목소리로 백돌을 흑돌 옆으로 내려놓았다.
백돌에 갇힌 흑돌을 한 점도 남김없이 잡았다.
“대승이로구나아아-”
“이거 좀 너무한 건 아닙니까?”
고진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초보에게 내기를 거는 자체가 사기입니다.”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배웠어.”
“제갈세가가 원래 이런가요?”
“이것도 강자존이지. 내기란 원래 뜯기면서 배우는 거야.”
스으윽.
고진유의 손바닥이 바둑판 위를 지나가자 순식간에 백돌과 흑돌이 나누어졌다.
“바둑은 못 두는데 이런 재주는 신기하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한판 더 두죠.”
제갈양은 맹주전 밖을 보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되나?”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지금쯤이면 그놈들을 잡아서 데리고 오겠군요.”
“일군사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구만.”
“미끼를 잘 물었으면 좋겠네요.”
“잘될 거다.”
타악. 타악.
바둑판 위로 흑돌이 여덟 점에 놓였다.
“야아아, 이건 아니잖아.”
“제갈 형님. 있을 때 베푸시죠. 나중에 나한테 돌 깔아달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타악!
백돌이 바둑판 위로 놓였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게다.”
“흐응…… 한번 두고 보자고요.”
따악.
고진유가 흑돌을 바둑판 위로 착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