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맹주전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어제까지 기운이 빠져 있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건 한 명의 존재.
화산도협 고진유 때문이었다.
전각 밖은 친위호위대가 둘러싼 채 누구도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독전호는 맹주전의 전각 앞에 선 채 정문을 노려보았다.
반시진 전까지, 그는 맹주 황보강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오명을 쓰고 친위전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다.
자숙하던 친군장 독전호는 무림맹으로 들어온 고진유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맹주전으로 찾아온 고진유를 만났다.
“화산도협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황보강과 만날 때 항상 주위를 따랐기에 서로 안면이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듯합니다.”
예전과 달리 그의 얼굴은 수척했다.
친군장이기에 맹주를 지켜야 했건만, 그는 실패했다.
임무 실패로 친군장의 직위 또한 잃어야 했다.
하지만 맹주의 자리가 아직 공석이었기에, 전 맹주의 위패를 모신 맹주전의 호위는 당분간 그대로 맡게 되었다.
“소인은 그분을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분을 따라 죽고자 했지만…… 원수를 갚지 않고서는 도저히 죽을 수 없었습니다.”
“친군장의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독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친군장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그분과 함께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수상한 자들이 금맹군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친군장은 그분의 곁에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분 곁을 지켜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한데, 그때 수상한 자들을 미행하던 수하들이 함정에 빠져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몰랐군요.”
“네, 맞습니다. 맹주전을 비우도록 함정을 팔 줄 몰랐습니다. 그때 나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친군장께서는 수하들의 목숨을 위해 최선을 했을 뿐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척.
독전호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왜 이러십니까? 일어나세요.”
“그분께서 가끔씩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화산도협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아셨던 것 같습니다.”
“…….”
“맹주님의 명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친군장께서는 맹주님의 명을 따르는 것입니까? 그분의 수하이기에 맹주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면, 굳이 본도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화산…… 도협님.”
고진유가 말한 의미.
독전호는 바로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아닙니다. 제가 화산도협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분의 명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화산도협께서는 그분을 죽인 원수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소인은 그놈들과 싸울 것입니다.”
“맹주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본도를 따르는 것이군요.”
“죄송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본도는 친군장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타인의 명이 아닌 자기 뜻으로 따르겠다는 그의 의지를 확인했다.
“화산도협님……!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그대는 맹주전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세요. 며칠 동안 맹주님께 조용하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맹주전 밖으로 돌아서 나오는 독전호의 눈빛이 살아났다.
동시에, 친위호위대의 기세 또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화산도협은 무림맹에 들어온 뒤 곧바로 맹주전으로 향했다.
그 후 하루가 지났는데도 위패를 모신 맹주전에서 나오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서 머물렀다.
“풋. 골 때리는 녀석이군. 누가 보면 그의 자식인 줄 알겠어.”
사마추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톡. 톡.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의자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철갑을 찾기 위해 무림맹을 나섰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분명 철갑도 가지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군.’
그는 철갑을 풀기 위해 결국 천공공의 존재까지 알아냈다.
‘이제는 철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철갑 때문에 무림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새외무림까지 화산도협에 의해 정리가 되었다.
‘여하튼 대단한 인물이야.’
사마추는 화산도협을 잡기 위해 극일천에서 움직였던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철갑도 얻지 못한 채 당했다.
특히 십전 중 흑화전은 완벽하게 와해가 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상부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극일천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선 그를 상대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무림맹주 황보강을 죽였다.
그의 존재에 들뜬 중원 무림의 분위기를 단번에 가라앉히기 위해.
상부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황보강의 죽음으로 달아올랐던 정파 무림의 분위기는 단번에 가라앉았다.
“범 총관.”
비맹전의 총관이었던 범유는 자연스럽게 금맹전의 총관이 되었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네. 군사님.”
“그는 여전히 맹주전에 있는 모양이지?”
“맹주의 위패 아래서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고 합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군.’
하루 정도라면 보고 있을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맹주전에 그가 머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무림맹은 당분간 비상위에서 이끌어가야 했다.
그가 마치 맹주라도 된 것처럼, 무림맹 무인들에게 보일 수 있었다.
“그가 내일 오전까지 맹주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비상위 회의를 할 것이다. 내일 오시까지 금맹전으로 모이도록 전해라.”
“알겠습니다. 연락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범유는 금맹전을 물러났다.
‘흐음. 그가 비상위의 말을 따를지 모르겠군.’
화산도협이라 하나 무림맹에서 그의 세력은 없다.
팔군은 현재 비상위의 명을 따르고 있었다.
나머지 규율당이나 집법당은 무림맹에서 큰 힘을 낼 수 없었다.
더구나 집법당은 자신의 사람이었다.
“후후후.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한 번 보면서 반응을 해주는 게 좋겠군.”
사마추는 웃음이 나왔다.
현 상황이 앞으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 * *
고진유는 무림맹 무인들에게 맹주전에서 이유 없이 이틀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화산도협이라 하나 맹주전에서 지낼 지위가 아니었다.
나쁜 시선으로 본다면 마치 무림맹을 무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에 의해 화산도협은 무림 특사의 신분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고진유는 여전히 황보강의 위패 앞에 부복을 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스윽.
그의 뒤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잠영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화산도협님의 말씀처럼 집법당주의 침실에서 신단을 찾았습니다.”
“다른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딱히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영께서 준 명단을 보았습니다. 의심이 되는 인물들이라면 무조건 확인을 해야겠지요.”
“알겠습니다.”
“명단에 적힌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해서 한 번에 끝을 낼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세요.”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잠영은 고개를 숙인 뒤 신형이 사라졌다.
스윽.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위패를 올려다보았다.
명단에 이름이 너무 많았다.
언제부터 모여들었는지 제대로 무림맹에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을 처리할 때는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최우선으로 상대할 목표.
‘잔챙이들은 일단 그대로 둔다. 가장 먼저 잡을 놈은…… 사마추, 당신이야.’
고진유의 결심이 선 두 눈이 번쩍거렸다.
스윽.
독전호가 뒤로 다가섰다.
“화산도협님, 친군호위대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가볼까요?”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뒤를 따라 맹주전 광장에 모인 친위호위대가 내려다보이는 앞으로 나섰다.
일천 오백 명의 친위호위대를 보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본도가 친군호위대를 이곳에 모이도록 한 이유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그대들의 임무는 맹주님의 안전을 위한 호위였소만, 맹주님의 목숨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요. 여러분들은 죄인들이오.”
광장에 모인 친위호위대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해 누가 잘못을 논한다면, 친위호위대는 분명히 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모두 똑바로 들으시오. 맹주님께서 돌아가신 이상 친위호위대의 존재는 무림맹에서 유명무실하게 됐소이다. 그래서 본도는 친군호위대를 해산시키고자 하는 바입니다.”
웅성웅성.
고진유의 목소리에 친위호위대가 술렁거렸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맹주전 앞에 선 고진유를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독전호가 고진유의 옆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조용히 하지 못할까!”
“…….”
그의 외침에 광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고맙소.”
고진유는 독전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광장에 모인 친군호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친위호위대가 해산되었다고 해도 그대들은 여전히 무림맹의 무인들이오. 언제든지 무림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이제 친군호위대가 아니기에, 그대들은 친군호위대로서 맹주전에 있을 필요가 없소. 우선, 집법당에서 파견된 무인들이 있다고 들었소. 그대들은 옆으로 나오시오.”
한 무리가 옆으로 빠져나왔다.
거의 오백 명 정도의 무인들.
“그대들은 지금 이 시간부로 근무했던 집법당으로 복귀하시오.”
“화산도협님, 삼대주 점복성입니다.”
옆으로 빠져나온 무리 사이에서 한 명의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본도에게 무슨 할 말이 있소이까?”
“화산도협께서는 친위호위대를 함부로 해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집법당으로 복귀하라고 하시는데, 집법당주님과 사전에 합의가 되었는지 묻고자 합니다.”
스윽.
고진유는 붉은빛의 특사조 신패를 꺼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오?”
“…….”
“특사의 자격으로 친위호위대를 해산시키는 것이외다. 이번 결정은 이미 알아본바 합당하다. 그대가 친위호위대에 뜻이 있다면, 차기 무림맹주가 새롭게 선출될 때 지원하기 바란다. 본도의 말을 알아들었는가?”
“……알겠습니다. 그…… 렇다면 나머지 친위호위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의 질문에 남아 있던 친위호위대들이 고진유에게 집중했다.
“그대들을 제외한 친위호위대는 특사조로 차출될 것이오.”
“……저희는……?”
“특사조에는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 없소이다. 게다가 특사조는 봉급도 무림맹에서 따로 지불할 수 없으니, 극악의 조건. 그대들은 본도가 생각해서 보내주는 것이니 지금 바로 돌아들 가시오.”
“…….”
점복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삼대주라 했나?”
“…….”
하지만 내력이 실린 고진유의 시선을 그는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상대의 무형기에 눌려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
“똑바로 들어라. 그대들에게 본도는 생명을 맡기고 싶지 않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고진유의 한마디에 그의 눈동자가 떨렸다.
점복성은 맹주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독전호는 맹주전을 나서는 삼대주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었구나.’
친위대를 뚫고 들어올 정도로 살수의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았다.
맹주 황보강을 죽인 살수의 무공은 만혈수.
삼백 년 전 만혈의 변이라 일컬을 정도로, 정사마를 통틀어 만 명의 무림인이 죽음에 몰아넣은 희대의 살수 만혈자의 절대무공이었다.
그래서 친위호위대를 뚫고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라던 그의 말을 믿었다.
그게 아니었다.
‘죽일 놈의 새끼들.’
저놈들이 모두 맹주님을 죽인 배신자들이었다.
그는 노기가 끓어오르면서 온몸이 바들거렸다.
그때 앞선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군장님. 기다리면 언젠가는 때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의 목소리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네. 알겠습니다.”
고진유의 뒷모습에서 무형의 기가 피어올랐다.
독전호는 수십 년 동안 항상 뒤에서 황보강을 지켜보았다.
‘그분과 닮은 듯하나 다르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특사조의 임무로 무림맹을 정화시킬 것입니다. 친군장님은 지금부터 특사정화단주로 부르겠소이다. 무림맹에서 본도 외에는 그 어떠한 명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넵, 특사님.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전호는 수하들 앞으로 나서며 손을 번쩍 들었다.
“제군들은 특사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특사정화단이 되어 무림맹을 정화시킬 것이다.”
“와아아-!! 특사님을 따를 것입니다.”
“특사정화단 만세!!”
“만세……!!”
맹주전은 특사정화단의 함성이 가득했다.
* * *
맹주전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무림맹이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맹주전에서 나오지 않던 고진유는 특사의 신분으로 친군호위대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친군호위대의 일부는 집법당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특사인 고진유가 친군호위대를 특사정화단으로 새롭게 임명시킨 일은 여러 곳에서 많은 말들이 나올 게 확실했다.
묵경은 무림맹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맹주전으로 들어섰다.
“이번 일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 괜찮을까?”
“문제가 될 건 없을 텐데요. 있다고 해도 저를 지지해 주는 분이 있으면 괜찮을 듯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리고 맹주전에 들어온 뒤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맹주전은 정리가 되었으니 지금부터 인사를 할 참이었습니다.”
고진유는 우선 무림맹에 들어선 뒤 사마추를 상대하기 위한 힘을 가질 계획을 세웠다.
가장 좋은 방법이 친위호위대였다.
뜻대로 일천 명의 특사정화단을 얻었다.
우선 맹주전을 확실하게 장악한 뒤 팔군 소속의 사룡군과 사호군을 거둘 계획이었다.
다만 문제는 팔군에서 사마추를 누가 따르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특사조의 지위를 이용해 팔군을 상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이 일어나고자 할 때였다.
스윽.
맹주전으로 녹림야검이 들어섰다.
그는 인양과 함께 금맹군 주위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일군사가 금맹전으로 비상위를 오시까지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무림맹에 들어온 뒤 맹주전에서 움직이지 않은 게 신경 쓰이는 모양입니다. 금맹군에서 비밀리에 움직임은 보이던가요?”
“아직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권협과 함께 금맹군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수고했어요. 힘들겠지만 당분간 부탁합니다.”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후후후. 고마워요.”
“다녀오겠습니다.”
녹림야검은 다시 금맹군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