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91화 (191/425)

191화

고진유를 향한 시선들.

네 사람은 고진유가 무엇을 알아냈는지 기다렸다.

고진유는 일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르쳐 줄까요?”

“…….”

심각할 때 꼭 김빠지게 허탈한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뭐냐? 빨리 말해봐. 궁금해 미치겠다.”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똑똑해요.”

“이게 진짜…… 알고 있거든!”

“천령약의께서는 그들이 원한 완벽한 신단을 만들 제조법을 완성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신단을 완성했다니?”

묵경은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극일천은 분명 천령약의뿐만 아니라 중원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다른 의원들에게도 신단 제조법을 줬을 거예요. 천령약의가 제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을 테니까요.”

고진유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제조법을 받을 의원들 중, 천령약의께서 성공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를 옆에서 감시할 겸 무림맹으로 데리고 갔을 거고요.”

“그놈들답게 치밀하군. 결국 신단을 완성시켰단 말이네. 근데…… 지금까지 극일천의 인물들을 만나봤잖아. 정상적인 놈들이 없지 않았어?”

“그렇죠.”

“신단을 먹고 난 뒤 정상적인 놈들을 없었다는 건…… 아…… 하아, 그렇구나.”

“맞아요. 완성은 되었으나, 완성된 신단의 제조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죠.”

“손에 넣지 못했다면 그분을 죽일 이유가 없잖아.”

“아뇨. 그들은 신단의 제조법을 손에 넣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불완전한 신단이 나온다는 것은…….”

“아! 하하하! 천령약의께 받은 신단 제조법을 잃어버렸구나. 멍청하게.”

묵경도 사건의 전말을 알았다. 극일천에서 여기에 온 이유를 알 듯했다.

신단 제조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마 진작 이 의원을 찾아왔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그들이 지금 여기에 온 것은, 제조법을 잃어버린 후 실험을 많이 했지만 결국 계속 실패했다는 뜻이겠죠.”

“그렇군. 천령약의만이 제조할 수 있었다는 말이구만. 음…… 그럼 제조법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중요한 것을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지? 우리가 먼저 찾아야지 않을까? 저들의 손에 넘어가면 너무 위험하잖아.”

“음, 그건 우리가 가지고 있을 겁니다.”

“뭐?”

“인양아. 잠깐만 철갑을.”

“서, 설마!”

“네. 여기 있습니다.”

인양은 가죽과 철로 만들어진 요대에서 철갑을 풀었다.

잠을 자거나 목욕할 때에도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철갑을 지키기 위해 파숙의 목숨까지 잃었던 물건이었다.

고진유는 철갑을 받은 뒤 내려놓았다.

“여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어요. 그날 그들은 천령약의에게 받은 신단 제조법을 여기 안에 넣어둔 게 확실해요.”

“……여기에?”

“거의 확실할 겁니다.”

“아, 하하하하!!”

묵경은 대소를 터뜨렸다.

고진유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실수를 한 게 틀림없었다.

“그날 아우의 사부님께서 그들과 부딪치지 않으셨다면 무림은 단번에 끝장났겠어. 화산도협은 물론 우리들 모두…… 이 자리에서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묵경은 조용히 그들 사이에 있던 북소연을 보았다.

“어찌 보면 지옥혈림의 존재도 극일천이 최악의 실수를 하게 만들었군. 그들이 스스로 처리했어야 했는데 지옥혈림이 그분과 아우의 인연을 닿게 만들었으니.”

“흐음, 그렇군요. 각자 다른 연(緣)이 만나 새로운 연으로 이어지는 게 하늘의 연(緣)인가 봅니다.”

고진유는 북소연을 바라보았다.

“지옥혈림이 사부님과의 연을 이어줬지만 사부님을 돌아가시게 했으니 당장은 내려놓기가 힘듭니다.”

“…….”

“하지만 이제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고마워요.”

“그렇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니 오해 마시오.”

“알아요.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당신은 항상 말끝에 여운을 두잖아요.”

“본도가 그렇소?”

“설마 시치미 떠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북소연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를 해준 그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 * *

아침이 밝았다.

고진유는 홀로 장고를 찾았다.

“어제저녁에 수상한 자가 찾아왔습니다.”

“…….”

“그자는 천령약의를 죽였던 그들의 사람이었습니다.”

“모, 몰랐습니다. 본인을…… 죽이려고 온 것입니까?”

“무림인도 아닌 의원을 죽이기 위해 살수를 보낼 만큼 한가한 세력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면 죽일 겁니다.”

장고의 표정은 굳었다.

“그들이 찾는 게 무엇입니까?”

“아마도 장 명의의 사부께서 남기신 물건일 것입니다.”

“전…… 사부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전해 받은 유품이 전혀 없습니다. 그분의 시신조차 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명의의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협박이나 고문을 하겠지요. 그래도 나온 게 없다면…….”

“본인을 죽이는 것이군요.”

“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떠날 것입니다.”

“…….”

“잠시 명의께서도 이곳을 떠나시면 어떻겠습니까?”

“이곳을요?”

“당분간 몸을 숨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 물건을 찾을 때까지 찾아올 것입니다.”

“본인이 어디를 간다는 말입니까? 아는 곳도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스로 나오지 않는 이상 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언제 여기를 떠나면 됩니까?”

“지금 바로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휴우…… 그렇군요.”

장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돌아오실 때까지 그대로 두겠습니다. 중요한 물건만 챙기시면 됩니다.”

“본인을 도와줘서 고맙소이다.”

장고는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굳이 챙겨야 할 귀중한 물건은 없었다.

드륵.

그는 서랍 안쪽에서 은색 침통을 꺼내었다.

사부가 무림맹으로 들어가기 전 하사했던 침통이었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물건이자, 유일한 사부님의 유품이기도 했다.

“아 참…….”

장고는 침통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딸깍.

은색 침통을 열자 은침들 사이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을 받으십시오.”

“무슨 반지입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림맹으로 사부님을 데리고 갔던 인물이 준 증표라 했습니다.”

‘그의 증표라면…… 사마추의 반지?’

고진유는 반지를 받아 들었다.

‘이건…….’

예전에 한 번 보았던 기억이 났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마추 군사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와 비슷한 것 같다.’

“혹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군요.”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장고는 한동안 떠나야만 하는 천인의원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반시진 뒤.

당하정을 태운 마차와 함께 고진유와 세 명은 정주로 향했다.

“진유 아우, 어떻게 그 생각을 했지?”

“중원에서 사람을 가장 잘 숨기는 곳은 지옥혈림밖에 없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그건 맞아. 이번에도 북 소저의 도움을 받았어. 보통 여인이 아니야. 성심성의껏 도와주잖아. 안 그래?”

“내게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훗, 혹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냐? 아니면 정말로 모르고 있는 건지 궁금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어? 그래, 그걸 너에게 묻는 내가 멍청한 놈이다.”

“푸흐, 세상에 누가 묵경 형을 보고 멍청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가만히 있는 게 그녀가 더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 거였어?”

씨익.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 * *

‘이거 참…… 어떻게 하지?’

급보가 날아왔다.

하남성 장각으로 천인명의를 잡기 위해 수하를 보냈다.

고작 의원일 뿐이니 간단히 처리될 줄 알았다.

-천문인 실패.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음.

수곡자는 천인의원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곧바로 조사를 지시했다.

“전주님께 보고해야 하긴 하는데…… 한바탕 난리 치시겠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천문전으로 향했다.

* * *

‘오랜만이야.’

정주로 가까이 다가서자 맹주 황보강이 생각났다.

철갑을 찾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무림맹을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설미 소저도 잘 지내고 있는지…….’

설강을 구하기 위해 그녀와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점점 정주에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정주성 앞 무림관문이 멀리 보였다.

대부분 말을 타고 온 무림인들은 성문 앞에서는 내린 채 들어섰다.

맹주 황보강의 죽음 이후 무림관문의 경비는 한층 더 삼엄하게 변했다.

자유로웠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관문이 보이기 전부터 무림인들은 거의 대부분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무림맹의 인물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다각. 다각.

관문 앞 경비 무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가까이 다가오는 일행이 보였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이 있군. 어디에 왔기에 소문도 못 듣고 있는지.’

관문 위사는 관문 안쪽을 향해 보고를 했다.

“위사장님, 잠시 나와보셔야겠습니다. 정신 나간 놈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뭣이?”

위사장 척소양은 눈에 힘을 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옆에 내려놓았던 검을 잡고 무림관문 앞으로 나섰다.

“어떤 놈이…… 헉……!”

척소양은 소리를 내지르려다가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척 호위가 아닙니까?”

말 위에서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

휘익.

고진유가 말에서 내렸다.

“화산…… 도협님…… 이제 오셨습니까?”

척소양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듯 그렁그렁해졌다.

“맹주…… 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척소양은 물론, 무림맹의 많은 무인들에게 맹주 황보강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무너진 무림맹에서 무인들이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기둥은 중원무림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화산도협 고진유.

척소양의 반응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탁탁.

고진유는 고개를 숙인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맹주님께선 무인으로서 돌아가셨습니다. 애도하는 것은 맞지만, 더는 슬픔에 매몰될 이유도 없소. 여러분들이 웃으면서 보내줘야 그분도 하늘에 올라가셔서 편히 지내지 않겠소이까.”

“화산도협니임…… 잘 알겠습니다.”

“우리 힘을 냅시다. 본도가 여러분들을 도울 것입니다.”

화산도협의 손이 어깨에 닿았을 때 척소양은 가슴속에 무거웠던 걱정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앗……!”

척소양은 앞으로 다가선 세 명의 인물을 보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풍류옥협님과 의제권협, 녹검살협을 뵙습니다.”

이들은 예전에 그가 알던 신분이 아니었다.

“제가 본 맹까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척소양이 앞장을 섰다.

“척 호위, 현재 무림맹은 어떻소이까?”

그와 동행하며 무림맹으로 가는 동안 어떠한 상황인지 정확히 알고자 했다.

“맹주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무림맹의 모든 활동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누가 책임자로 있소이까?”

“일군사이신 사마군사께서 위원장으로 계시면서 비상위를 구성했습니다.”

“비상위라면 어떤 분들이지요?”

“십문십가의 대표로 소림대사이신 공요대사님과 황보대사 황보유, 그리고 일군사와 함께 이군사 제갈양 군사, 태상장로 제갈문 님. 총 다섯 분이 비상위에 계십니다.”

“그렇군요.”

고진유는 몇 걸음 움직이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물었다.

“아 참, 최근에 친위호위대가 바뀌었습니까?”

“바뀐 것은 아니라…….”

척소양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찮소. 우리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소이다.”

“아…… 예, 무림이 심상치 않아 맹주님의 안전을 위해 친위호위대를 늘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 입맹 동기가 집법당에서 근무를 했는데 갑자기 친위호위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도 기분 나쁜 녀석이었는데…….”

“집법당의 무인이 친위호위대가 될 수 있습니까?”

“그건…… 저도 규율당주님께 얼핏 들은 말이지만, 집법당주가 대전회의에서 친위호위대를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꺼냈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본 규율당에서 차출하는 게 맞다고 하시면서 구시렁거렸었죠. 근데 그를 얼마 전에도 만나니 분명 기분 나쁘게 웃고 있더군요. 나쁜 놈 새끼…….”

“……고맙소이다. 방금 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더 이상 그에게 묻지 않고 조용히 무림맹으로 움직였다.

‘집법당주가 수상하군. 한번 알아봐야겠어.’

* * *

조용했던 무림맹이 웅성거렸다.

일각 전 무림맹으로 들어선 인물들.

화산도협과 동료인 친협이 맹주전으로 들어섰다.

무림맹 무인들의 시선들은 맹주전으로 향했다.

황보강의 위패 아래서 고진유는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 오청석과 파숙을 잃었다.

맹주 황보강도 그들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콰악.

고진유는 손에 힘을 주었다.

‘맹주님께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숨을 쉬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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