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90화 (190/425)

190화

장고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

사부인 편휴에 대한 소문을 인정했다.

“사부님께서 처음부터 사파를 위해 환단을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

장고의 표정을 보니 그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사파를 위한 게 아니라면 환단을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부님께서 처음 만든 환단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정확히 말씀을 해주세요.”

“사부님께서 환단을 만드신 이유는 긴병을 이기기 위해 환자들의 약해진 기력을 보충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용도로 만든 환단이었다면…… 왜 내력을 끌어 올리는 데 사용된 것입니까?”

“누군가 우연히 사부님께서 만든 환단을 복용한 모양입니다. 그때 무인의 기력을 올려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지요.”

“무인에게도 효과가 있었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만든 환단은 내력이 아니라 신체의 기력에 도움이 된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은 침술도 훌륭하셨지만 환단을 제조하는 데 특히 뛰어나셨으니까요.”

묵경은 그의 말을 인정했다.

무림맹에서도 약의전주의 공진단은 중원 최고라 할 만큼 효과가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사부님께 환단 제조법을 던져주었고요. 제조법대로 만들어 준다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많은 수고비를 주겠다면서…… 사부님께서는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어 제조법에 적힌 환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설마 그게…….”

“맞습니다. 그게 사파인들 사이에 퍼진 환단이었습니다. 그가 사부님께서 제조법으로 만든 환단을 사파인들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아니. 그건 아닐 겁니다.”

고진유의 생각은 달랐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라는 게?”

“그는 사파인이 아닐 겁니다.”

“사파인이 아니라면…… 다른 세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천령약의께서 환단을 잘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환자들을 위해 만드신 환단을 직접 복용해서 알아봤을 겁니다.”

묵경이 물었다.

“그 후 신단 제조법을 줘서 만들도록 했다는 말이지?”

“네. 그들은 천령약의가 만든 환단이 어떠한지 사파인들에게 줘서 실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약점으로 잡은 뒤 계속해서 신단을 만들도록 협박했을 거고요.”

고진유의 생각이 정확하게 맞았다.

천령약의는 그날 이후 신무신단과 공마신단을 연구하면서 극일천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묵경은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럼, 그들이 그분을 왜 죽였지?”

“신무신단에 대한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천령약의입니다.”

인양이 빠르게 대답했다.

“흠, 죽여서 입을 막을 생각이었군. 그렇다면 그분이 입을 열면 극일천에게 불리한 게 있다는 거잖아?”

“아마도…… 그렇다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진유 아우, 그게 무엇일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장고에 집중되었다.

극일천에서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

“……죄송합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고민에 잠겨 있는 듯 보였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저에게 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늘 혼자 안고 가는 문제라 하시면서 저에게는 관여하지 말도록 하셨지요.”

“……혹시 이곳에서 의원을 여신 이유가 있습니까?”

고진유의 물음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부님께선 언젠가 그들에 의해 돌아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곁에서 제가 떠나도록 했던 것이입니다. 하지만 제자인 제가…… 어떻게 사부님을 떠나겠습니까?”

“그렇군요.”

스윽.

장고는 허리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책자를 꺼냈다.

“혹시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을 받으십시오.”

“이게 무엇입니까?”

“사부님께서는 예전부터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마다 일지처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장 명의께는 중요한 사부님의 유품이 아닙니까?”

“저에게도 중요한 물건이지만 화산도협께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루다가 돌려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당 대사님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당하정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 * *

밤이 깊었다.

탁자 위에 놓인 천령약의 편휴의 일지.

스윽.

고진유는 일지를 넘기며 편휴가 보냈던 일상이 어떠했는지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의 일지 내용은 환자들을 만난 뒤 치료를 시도할 때 새롭게 사용했던 방법들과,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던 약재들이 적혀 있었다.

“대단한 분이셨군.”

늘 연구하면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것이 일지에서 보였다.

슥슥.

일지의 내용을 보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멈칫.

그때, 일지를 넘기려던 고진유의 손이 멈추었다.

‘이건…….’

-어느 날 저녁, 사내가 다가왔다.

손등에 국화가 새겨진 사내가 신단 이라 칭한 제조법을 건네주었다.)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환단을 만드는 제조법이었다.

‘찾았다.’

손등에 국화 문신을 한 인물.

무림맹의 일군사 사마추가 확실했다.

‘아냐. 흥분하지 말고…… 이건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손등에 국화 문신을 한 인물이 중원 무림에 그 혼자 있는 건 아니다.’

고진유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가 준 제조법으로 만든 신단은 무인들의 내력을 증진시키는 데 효과가 확실했다.

하지만 신단은 중독성과 함께 이성을 잃게 만드는 큰 단점이 있었다.

그는 이성을 잃지 않도록 신단을 보완하길 원했다.

그는 내력을 증진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난 그의 뜻대로 신단을 제조했다.

개량된 신단은 그가 가지고 갔다.

미완성이었기에 염려가 되었지만, 그가 무림에 신단을 풀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그가 지닌 증표를 주었다.

‘증표라…….’

사마추의 신분을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는 증표라면…….

아쉬운 건 천령약의가 돌아가신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었다.

그의 유품들이 무림맹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음…… 혹시 모르니 내일 명의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분의 유품을 받은 게 있는지.’

슥슥슥.

고진유는 일지를 계속해서 넘겼다.

-그는 완벽한 신단 제조법을 요구했지만 수많은 약재가 필요했다. 그런 약재를 한꺼번에 구하기에는 어려웠다.

필요한 약초들과 독초들.

그는 그것들을 필요할 때마다 구해서 가지고 왔지만, 필요한 시점에 사용할 때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결국 그는 약재가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했고, 난 그를 따라갔다.

이곳이 무림맹일 줄은 몰랐다.

일지가 끝이 났다.

천령약의가 무림맹에 들어가기 전까지 쓴 일지였다.

그 뒤의 일지들은 무림맹에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명의께서 이것만을 준 것을 보면, 이것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게 없다는 것이겠지. 하긴, 극일천이 그의 물건들을 가만히 놓아두었을 리 없겠지만.’

편휴가 쓴 일지에는 중요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사마추가 극일천이라는 증거도 있었다.

‘사마추, 철두철미한 그도 설마 이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고진유는 일지를 조심스럽게 덮은 뒤 품 안으로 넣었다.

편휴가 약의전으로 들어온 계기를 알게 되었다.

분명 그를 무림맹에 추천한 인물은 사마추가 맞을 것이었다.

‘직접 옆에서 관리하는 게 편했겠지.’

천인의원에 잘 온 듯했다.

뜻하지 않게 사마추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내일 명의를 다시 만나봐야겠어.’

그리고 이미 잠에 빠진 묵경의 옆으로 누우려는 순간,

‘흠…… 이건.’

고진유는 다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천인의원으로 들어선 인영.

그는 바람의 반대편에서 움직였다.

전형적인 살수의 움직임이 틀림없었다.

‘저곳이다.’

살수는 목표를 정확히 확인했다.

불이 꺼져 있지만 안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는 무공을 모르는 의원.

단번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납치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의원(醫院)이라 하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다가섰다.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휙.

‘이 기운은…….’

누군가 노려보고 있다는 신호.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서며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위에는 전혀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내가 잘못 알았나?’

그가 다시 돌아선 순간,

“안녕하시오.”

파아앗!

눈앞에 나타난 사내를 본 살수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누…… 구냐?”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인데.”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뒤를 세 명의 사내들이 막아섰다.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들킨 이상 물러나야 했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사내는 바로 신형을 날리고자 했다.

스르륵.

하지만 그의 뒤에서 바짝 다가온 손이 어깨를 잡았다.

“이봐, 살수 씨. 어딜 도망가려고?”

“……!!”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꿰뚫고 읽는 듯했다.

‘내가 움직일 것을 어떻게 알았지?’

휘익!

살수는 잡힌 어깨에서 상대의 손을 치우기 위해 반대편 손으로 내리쳤다.

타악!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상대의 손이 먼저 움직이며 사내의 손을 중간에 막았다.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이익!!”

“그건 안 될걸? 나를 피한다고 해도 저분들을 벗어날 수 있을까?”

녹림야검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어깨를 잡아챘다.

피이이잉-!!

사내의 몸이 회전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사내는 정신이 없었다.

‘대, 대체 이놈들은 뭐야?!’

마치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 대하지 않는가.

타앗!

그가 세 명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인양을 향해 달렸다.

“내가 제일 만만하게 보이는가 보죠?”

슈우우욱-

사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아가고,

퍼어어억!!

곧 그의 눈앞에 수많은 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으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묵경은 사내의 곁으로 다가선 뒤 툭툭 건드렸다.

“완전히 뻗었어. 인양아, 너무 세게 때린 게 아니냐?”

“살살 했는데…… 저쪽이 너무 약한 게 아닌가요?”

인양은 오 성의 내력에 상대가 떨어져 나갈 줄 몰랐다.

“녹검 씨, 우선 점혈부터 시켜놓고 누군지 알아보는 게 좋겠어.”

“넵. 알겠습니다.”

푹푹푹.

녹림야검은 쓰러진 사내의 혈을 눌렀다.

* * *

털썩!

녹림야검은 어깨에 메고 온 그를 별관 마당에 던져 놓았다.

“끄으으응…….”

사내는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눈을 뜨자 앞에 네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알았다.

‘점혈을 당했어.’

다행인지 아혈은 막혀 있지 않았다.

“누, 누구요?”

“우리가 묻고 싶은데 먼저 물어보는군.”

그들 중 매화도의를 입은 청년.

‘이런. 화, 화산도협?’

이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사내는 현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천령약의와 연관된 물건들을 조사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알고 천령약의의 제자가 있는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보아하니 당신은 극일천의 인물 같은데,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오?”

“그것을 내가 말할 것 같은가?”

“그대가 말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소.”

“큭, 여전히 모르고 있군. 극일천이 이 정도로 허술한 곳인 줄 아느냐?”

“…….”

“내가 잡힌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다. 본 극일천은…… 커어억!”

울컥.

사내가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

“어? 왜, 왜 이래?”

그를 보면서 녹림야검은 당황했다.

분명 그의 입안에 숨겨 두었던 독약을 꺼냈다.

근데 사내의 피부색이 점점 검게 변하면서 순식간에 목숨이 끊어졌다.

“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전 분명 이자의 이빨 사이에서 독약을 꺼냈습니다……!”

“흐음…… 녹검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기 오기 전 독을 먹고 나온 게 틀림없어요. 혹시나 자신이 실패한 뒤 잡혔을 경우를 염두에 두었겠죠.”

“아…… 하…… 휴우.”

녹림야검은 가슴을 쓸어 담았다.

일순, 자신이 혹시나 독약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진유 아우, 이들은 언제 봐도 대단한 놈들이네.”

“그러게요. 웬만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극일천에서 이자를 보낸 걸 보니 천령약의에게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그런가?”

“저자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몰랐어요. 알았다면 쉽게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명의를 노린 것을 봐선, 극일천도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신단이 아닐까?”

“신단은 아닐 겁니다. 신단과 연관이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계속해서 신단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아하…… 맞네. 난 천령약의만 신단을 만드는 줄 알았어. 제조법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을.”

“……!”

‘제조법…… 이다.’

고진유는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이 계속 원했던 것은 완벽한 신단이었어. 이미 천령약의께서도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겠지. 신약음의란 것을 밝히겠단 협박을 받았을 게 분명해.’

고진유는 그날을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사부님이 야밤에 극일천의 인물을 만나기 전, 그들이 천령약의를 죽었어. 그건…… 더는 필요 없다는 말이지. 완벽한 신단을 요구했던 극일천에서 그 분을 죽였다는 것은…….’

“알았다……!”

고진유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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