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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89화 (189/425)

189화

황보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최근 친위호위대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추가 인원으로 친위호위대를 받아들였다.

한 달에 두 번 근무 교대에서 세 번으로 바뀌면서 추가 인원을 받은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친위호위대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놈들을 추천한 인물이…… 극일천의 인물이었군.’

집법당 반검형이 급박한 무림 상황을 들며 친위호위대를 좀 더 늘리도록 대전회의에 상정했다.

그의 뜻대로 새롭게 한 개조의 호위대를 집법당 소속의 무인들로 채웠다.

“훗. 망할 새끼가…… 잔머리를 엄청나게 굴렸어.”

전각 아래로 모여 있는 친위호위대.

이제는 맹주를 지키는 호위가 아니라 그를 죽이려는 살수였다.

스윽.

황보강의 앞에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무의를 입은 사내.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황보강은 단번에 상대의 무공을 알아보았다.

“강하군. 나보다 더…….”

농담이 아니었다.

천하오무 권왕인 황보강이 스스로 인정하며 내뱉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보는 눈은 있군.”

“극일천이란 곳에서 온 모양이지?”

“맞다.”

맹주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황보강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도움을 주고자 했거늘…….’

아쉽고 미안했다.

‘그 아이에게 큰 짐을 맡겨놓고 가는군.’

살기를 내뿜는 사내를 보면서 극일천의 무서움이 느껴졌다.

“한 번은 만날 것이라 생각했지. 극일천의 무공이 어떠한지 보고 싶군.”

“원한다면…….”

그들은 서로 내뿜는 기세를 마주치자마자 알아차렸다.

‘한 번의 움직임에 생사가 정해지겠군.’

눈빛과 숨소리를 느끼며 상대를 살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선수필승이다.’

파아아앙-!

먼저 움직인 건 황보강의 일권이었다.

세상조차 부술 것 같았다.

천하오무와 싸우기 위해 창안한 무공.

오직 일초식으로 된 그의 절대무공 천무벽권(天武霹拳).

쉬이이익--!!

황보강의 일권에 대항하기 위해 일직선으로 세운 사내의 손끝이 천무벽권이 만들어낸 권강을 뚫고 들어왔다.

푸욱!

황보강의 심장에 박힌 사내의 손.

“……그건…… 만혈…… 수…….”

“과연. 권왕이라 본인의 무공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는군.”

사내는 천천히 손을 빼며 뒤로 물러났다.

털썩.

황보강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하…… 하하…….”

황보강의 웃음에 사내는 기분이 나빠졌다.

“왜 웃는 것이지?”

“무인…… 이라면…… 강자에게…… 죽는 건 두렵지 않다. 그리고…… 조만간…… 네놈들도…… 본인을 따라올 것이기에…….”

툭.

황보강은 미소를 띤 채 숨이 끊어졌다.

그의 나이 쉰둘.

무림맹주이자 파천신권 황보강이 맹주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 * *

장각의 초입에 들어서기 전.

흑귀가 북소연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목소리가 굳었다.

“무슨 일이지?”

그들에게 따로 명령을 내린 일은 없었다.

또한 고진유와 함께 있기에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도록 사전에 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큰일이 났습니다.”

흑귀의 표정만으로도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흑귀는 고개를 돌린 고진유의 눈치를 보았다.

“본 림의 일인가?”

“아닙니다. 그게…… 무림맹주가 살수에게 당해……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휘익!

북소연은 바로 고진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고진유도 고개가 돌아와 있었다.

“…….”

단번에 흥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무림에 이보다 큰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진유는 차분하여 심지어 그와 상관이 없어 보였다.

반면 묵경이 걱정이 되었다.

“아우, 맹주가 당했다면 바로 무림맹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닙니다. 무림맹에 제가 간다고 해서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극일천이 쳐들어왔다면 모를까. 우린 당 숙부의 몸부터 치료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어.”

묵경은 혼자 앞서가는 고진유의 뒷모습을 보았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을 것이었다.

‘휴우…… 진짜 큰일이군. 무림맹마저 난장판이 된다면…….’

묵경은 사방으로 걱정이 밀려왔다.

북소연이 다가섰다.

“앞으로 저분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겠어요.”

“그런 것 같소이다.”

* * *

마을에 들어서는 동안 고진유는 여전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의 밝은 얼굴이 떠올랐다.

‘맹주님이…….’

무림맹주 황보강의 죽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새외무림이 당한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나?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밖에서부터 잠입해 맹주전까지 들어가서 죽일 수는 없어.’

친위호위대가 맹주전 주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서, 무림맹주와 싸워 그를 죽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맹주님이 방심하셨을까? 분명 친위호위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맹주의 죽음은 앞으로 무림맹에 많은 변화를 야기시킬 것이었다.

* * *

마을로 들어온 그들이 천인명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각에서 사는 주민들 중 천인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보이는 길로 계속 가면 천인의원이 보일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인양이 앞을 가리켰다.

“진유 형, 앞으로 가면 된다고 해요.”

“일단 가보자.”

“알겠습니다.”

인양은 다시 마부석에 올라타며 마차를 몰았다.

반각 정도 움직이자 전방에 천인의원이란 현판이 나타났다.

고진유와 묵경은 말에서 내린 뒤 정문 옆에 놓여 있는 접수대에 다가섰다.

흠칫.

접수대에 앉아 있던 여인이 앞으로 다가선 묵경을 보며 놀랐다.

‘자, 잘생겼다.’

잠시 정신이 멍할 정도로 묵경의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아…… 네에!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환자가 있소이다. 천인명의께 보이고자 하오.”

“네네! 우선 환자분의 성함과 병명을 기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묵경은 접수대에 환자 이름과 병명을 적었다.

그녀는 슬쩍 묵경과 고진유를 올려다보았다.

“저어…… 환자분이신 당하정이란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저기 마차 안에 있소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접수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어디서 기다리면 되겠소이까?”

“안으로 들어가면 환자들 대기실이 있습니다.”

“흠…… 혹시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겠소이까?”

“네에. 순서가 되면 바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묵경과 고진유는 마차로 돌아온 뒤 상황을 설명했다.

당하정 또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북소연은 일반 사람들처럼 기다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진유 아우가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했소이다.”

“…….”

북소연은 조용히 마차 옆에 기다리고 있는 고진유를 보았다.

세상에 그보다 강한 사람이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인성은 출신 성분과는 상관이 없구나. 늘 퉁명스럽게 대답하지만 착해. 그래서 지옥혈림인 내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잖아.’

만일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지옥혈림인 자신을 끝까지 무시했을 것이다.

그동안 고진유의 행동들을 보면 그는 상대를 대할 때 오직 사람만으로 판단했다.

그가 어디 소속인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중원무림의 철천지원수인 마교 출신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화산도협이었다.

‘그래서…… 난…… 좋아.’

반시진이 지났다.

접수대에 있던 여인이 정문으로 나왔다.

“당하정 씨 보호자분.”

묵경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섰다.

“우리 차례입니까?”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소이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마차에서 당하정을 부축하며 내렸다.

진료실은 한 방에 다섯 개씩 병상이 놓여 있었고, 그들 중간중간엔 침상이 보이지 않도록 천을 내려 막아놓았다.

“잠시 기다리시면 의원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알겠소이다.”

스윽.

당하정을 병상에 눕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의사내가 앞을 가린 천을 옆으로 밀어내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천인명의 장고.

하남성에서 많은 환자들에게 최고의 명의라 명성이 높은 자였다.

접수대에 올라온 접수장을 보았다.

환자의 이름이 당하정, 병명은 중독이라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접수인의 이름은 묵경.

“……!”

혹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고개를 들어 병상과 그 옆에 선 인물들을 보았다.

매화도의를 입은 사내와 송옥의 사내 얼굴.

‘맙소사…… 화산도협과 풍류옥협…… 그리고 이들은…… 친협들.’

그가 고진유 앞으로 다가서며 포권을 하려는 순간,

전음이 들렸다.

[조용히 왔다가 갈 생각입니다. 이분의 병세가 어떠한지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진유와 고의 시선이 마주쳤다.

병상에 누워 있는 인물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맞았다.

당하정의 얼굴을 확인한 장고가 손을 잡은 뒤 맥박을 확인했다.

그동안 치료를 잘했는지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습니까?”

“크게 목숨에 문제가 되는 건 없습니다. 다만 독기에 의해 장기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별문제가 없군요.”

“그렇군요.”

“약을 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괜찮은지 한 번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고진유와 일행은 천인의원 뒤 별관으로 안내를 받았다.

별관이라고 해서 건물이 큰 것 아니었다.

환자가 쉴 수 있는 병상이 있는 방과 보호자를 위한 작은 방 두 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별관 앞에는 정원이라고 하기엔 작은 마당이 있었다.

북소연까지 다섯 명은 좁은 방에서 나와 마당에 나와 앉았다.

천인의원이 마칠 때까지는 아직 반시진이 더 남았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던데?”

묵경이 장고를 본 첫 느낌에 대해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나도 그런 것 같아요. 무공도 전혀 모르고.”

고진유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인명의 장고는 전형적인 의원이었다.

“만나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유시까지 환자를 본다고 하더군.”

“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보는 모양인가 봐요.”

지금까지 봤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끝마칠 때까지 기다리죠.”

“알았다. 하, 그동안 쉬어야겠다.”

천인의원은 유시가 지나자 환자들이 모두 돌아갔다.

시끌벅적했던 의원은 조용해지고, 장고는 마지막 환자까지 치료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우.”

경직된 몸을 풀었다.

한 가지 일이 남아 있었다.

“별관으로 가볼까?”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화산도협과 친협들이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당하정과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가 입은 독상은 남방독문과의 싸움에서 입은 것이겠지만…… 정말 그 이유만으로 찾아왔을까?’

오랫동안 비밀로 했던 일을 쫓아 찾아온 것이라면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

‘무림맹에서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사부님이 돌아가시면서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그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화산도협이라면…… 믿을 수 있는 인물이겠지.’

그의 신분이라면,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바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러 환자들을 위해 순번을 기다렸다.

소문처럼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고는 밖으로 나와 별관으로 향했다.

별관에 들어서기까지는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별관 마당 한편에 모여 있었다.

먼저 묵경이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당 대사님께서는 어떻습니까?”

“정말로 명의이십니다. 약 한 첩을 복용했더니 몸이 좋아졌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는 인양이 내민 자리에 앉았다.

스윽.

북소연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 소저, 어딜 갑니까?”

“자리를…….”

“됐습니다. 그냥 앉아 계셔도 됩니다.”

“아…… 네에.”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고진유는 말을 먼저 꺼내려다 이내 그의 눈빛을 보면서 멈췄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화산도협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지요?”

“당 대사의 치료가 아니라 본인을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당 대사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림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장 명의와 잘 아신다고 하셨지요.”

“…….”

“그러는 도중 한 가지 사실을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사부님이 무림맹에서 사라지신 그날, 무림맹 약의전주이신 천령약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분명 그 전날까지도 건강하셨는데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

화산도협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도중, 예전에 돌았던 다른 소문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신약음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천령약의에 관한 예전의 소문이라면 그 일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고진유는 간단히 대답할 뿐 그에게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제자의 도리로 사부를 욕되게 할 수 없을 터.

고진유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나 굳이 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천령약의와 신약음의가 같은 인물이었다고 해서, 현 상황에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맞습니다.”

장고는 짧게 인정했다.

다섯 명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신약음의는 사부님의 또 다른 신분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고진유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화산도협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 무림에는 비밀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본도가 책임지고 약속하겠습니다.”

대답한 고지뉴가 북소연을 보았다.

“알겠어요. 저도 생각보다 입이 무거워요.”

“고맙소이다.”

장고는 수십 년 동안 마음에 담아 놓았던 사실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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