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푸우욱.
금당소 주위가 폭발에 인해 늪이 깊어졌다.
이제 정상적인 길이 아닌 늪으로 함부로 들어섰다가는 빠져나오기 힘들 수 있었다.
굳이 무리해서 늪을 지나갈 이유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귀찮더라도 금수천으로 가는 수밖에.’
혈승존은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금당소에 들어간 혈장불과 수하 혈승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라면 충분히 폭탄을 터뜨린 놈들을 처리할 것이다.
금당소를 뒤로한 채 금수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혈장불과 혈승들은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정리한 뒤, 금당소 반대편을 통해 당문의 정문 앞에서 합류하면 된다.
혈장불이 빠진 선봉은 혈인불이 대신 나섰다.
한편, 금당소에 남은 혈장불과 혈승들은 전방에 나타난 상대를 노려보았다.
‘도사 놈이 왜 이리 냉기가 강해?’
혈장불은 차가운 기를 내뿜는 혁자영과 마주 섰다.
‘청성파의 도의가 아닌 듯한데…….’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사의 도의를 한 번 더 자세히 보았다.
‘매화 문양인가?’
“네놈은…… 화산파에서 왔는가?”
“맞다.”
퉁명스럽게 내뱉는 상대의 대답에 혈장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젊은 놈이 상당히 건방지군.”
“서로 죽일 사람끼리 나이를 따지다니. 웃기는군.”
“무림에 대한 예가 없군. 화산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을 텐데?”
“대뢰음사가 언제부터 예의를 따지는 문파였지?”
혁자영의 말에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맞아. 예의는 무슨,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잘됐어. 사천성 다음에 섬서로 넘어갈 생각이었거든. 미리 화산파에게 인사를 하는 셈 치도록 하지.”
“글쎄. 대뢰음사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상대는 두려움은커녕 그를 상대로 오히려 호승심을 보였다.
혈장불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려 나갔을 것이었다.
혁자영의 도발은 계속 이어졌다.
“서장의 혈승들은 피에 굶주린 늑대 새끼라 들었는데. 그냥 겁에 질린 개새끼였군.”
“이노오오오오옴. 네놈의 입을 당장 찢어 버릴 것이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모두 죽여라!!!”
결국 혈장불은 치밀어 오른 노기에 전 내력을 끄집어냈다.
동시에 혈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다다다닷!
일백 명의 혈승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달렸다.
“후후, 오랜만에 몸을 풀어보겠네.”
호화 연자련이 달려오는 혈승들을 향해 난화일지를 펼쳤다.
픽픽픽픽픽.
지공은 권법이나 검법과는 또 달랐다.
화산파의 화려한 검공과 달리 지공은 간단하면서도 단순했다.
지공은 암영의 살인공이라는 악명을 지녔을 만큼, 내력이 적어도 충분히 상대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극강의 무공이라도, 여전히 큰 파괴력을 내기엔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공을 오로지 독문무공으로 익히는 무인들은 거의 없을 정도.
하지만 호화 연자련은 달랐다.
그녀에게 파괴력은 필요 없었기에 오직 난화일지만을 독문 무공으로 펼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고진유는 그녀의 뜻에 따라 지공의 장점인 연사력에 초점을 맞추도록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사저, 굳이 한 번에 부술 필요가 있을까요?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네 번…….”
연화련은 고진유의 말을 따랐다.
홍화오광지(紅花五光指)의 초식.
그녀의 손가락에서 한 번이 아닌 세 번의 지공이 연이어 펼쳐졌다.
퍽퍽퍽퍽퍽.
열 명의 혈승들이 그 자리에서 지공을 세 번씩 연사로 맞은 뒤 쓰러졌다.
혈승들은 지공이 어떻게 날아오는지 보지 못했다.
“호정 사제의 말이 맞았어. 호신강기가 강해도 세 방씩 쏘면 바로 끝이 나는구나.”
“저, 저년을 포위하라!!”
위협을 느낀 혈승들이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했지만 연자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엔 이것도 한번 해볼까?”
슈우우욱-
홍화오광지의 초식에 난화환영지의 초식이 더해졌다.
일백 개의 지강(指罡)이 혈승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으악……!!!”
“커억!!”
혈승들은 신음과 비명을 쏟아냈다.
“이, 이게 지공의 위력이라니…….”
사천당문에도 지공법이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많은 무공 중 하나로 여길 뿐이었다.
“허어, 지공이 저렇게 강한지 몰랐어…….”
“대단…… 해. 지화여협이 강한 거야!!”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호화 연자련의 무공을 보며 힘을 냈다.
‘이길 수 있어.’
화산육협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봤다.
핏핏핏핏핏!
수천 발의 독침들과 비검들을 쏟아내며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밀어붙였다.
꿀꺽.
혈승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혈장불은 움직일 수 없었다.
혁자영의 눈빛.
‘누가 먼저 빈틈을 보이느냐에…… 달렸다.’
한 수에 생사가 결정될 것을 알았다.
스으윽.
추화검이 먼저 움직이고.
혈장불의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혁자영의 움직임에 빈틈이 보였다.
“내가…… 이겼다.”
그 순간,
무화멸세불(無和滅世佛)의 초식.
세상이 사라진 듯 혁자영의 주위가 고요해졌다.
“나를 벨 수 있어야 세상을 벨 수 있는 법.”
혁자영의 손이 움직이면서 중얼거렸다.
스으으으으윽-
혈장불 앞에 백색의 실선이 그러졌다.
매화절검의 극의.
일장단절에서 무공은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커어어억……!!”
혈장불은 목에서 솟구친 선혈에 온몸에 붉게 변했다.
그리고 눈을 뜬 채로 바닥에 쓰러지며 숨이 끊어졌다.
* * *
금당소를 돌아서 움직인 대뢰음사의 혈승들 앞에 사천당문으로 들어서는 두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금수천을 지나 사천당문으로 들어설 수 있는 길, 다른 하나는 금장벽을 넘어서 들어가는 길이었다.
금수천을 넘어갈 석교가 무너져 내렸다.
‘훗. 이것들이…… 나를 바보로 알고 있는 모양이군. 금장벽으로 유인해서 우리를 매몰시킬 계획이었어.’
혈승존은 금수천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다리가 없다고 해서 건너지 못할 줄 아는 모양이지?”
금수천을 넘어가는 다리가 사라졌다고 하나, 수량이 빠졌는지 물의 깊이는 무릎밖에 오지 않았다.
지나가기 충분했다.
금수천 건너편에선 청성파의 도사들이 긴장한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봉에 나선 혈인불은 주위를 살폈다.
‘우선…… 혹시나 모르니…….’
금당소의 경우처럼 벽력탄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벽력탄이 있는지 찾아라!”
휙.
혈인불의 명에 혈승들이 주위를 살폈고, 잠시 후 혈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수천 주위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청우대는 금수천을 건넌 뒤 자리를 확보하라!!”
“크아아아아아!!”
혈인불의 명이 떨어지자 청우대의 혈승들이 괴성을 지르며 금수천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잘들 넘어오는구만.”
장두총과 당우희는 그들을 바로 상대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자.”
“넵!”
두 사람은 청성파 도사들과 뒤로 물러나면서 하나둘씩 금수천을 넘어오는 혈승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금수천을 넘어온 혈승들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툭.
그들 중 한 명. 혈승의 발목에 줄이 걸렸다.
“……?”
혈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이, 혈승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벽력탄이 터지면서 청우대의 혈승들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건너편에서 금수천을 넘어가고자 기다리고 있던 혈인불의 살기가 터져 나갈 듯했다.
“저…… 놈들을…… 죽인…… 다.”
금수천을 넘었던 혈승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혈인불은 금수천을 건너가기 위해 앞으로 직접 나섰다.
방금 터진 벽력탄은 금당소의 경우보다 위력이 약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터진 벽력탄이 같은 장소에 다시 터질 일은 없을 터.
“크하하하하!!”
혈인불은 대소를 터뜨리고는 곧바로 혈승들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본불을 따르라!!”
혈인불이 앞장서며 금수천으로 달려들었다.
“호청 사매, 준비해.”
“알겠어요.”
혈인불과 함께 혈승들이 금수천을 건너오는 모습을 보며 뒤로 물러났던 장두총과 당우희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모두 앞으로!!”
“와아아아-!! 저놈들을 죽여라!!”
청성파의 도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뒤를 따랐다.
청성파의 전각들을 불태웠던 대뢰음사의 혈승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저자가 혈동삼불이라는 혈승이군.’
혈승들 사이에서 혈인불이 눈에 살기를 띠며 땅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장두총은 달리면서 선두에 선 혈승을 주시했다.
“저놈은 내가 맡는다.”
찌지지직-
류화검에서 뇌전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루루루-
콰아아아아앙!!
‘허억!’
혈인불의 머리 위로 천둥과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벽뇌강을 피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우우우웅-
혈인불은 눈이 커지면서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먼저 전신을 보호했다.
불검혈존.
이어 인혈검을 뻗어 올려 벽뇌강을 막아냈다.
채애애애앵-!!
쿠우우우웅!!
강대한 두 기의 부딪치며 기의 파동이 일어났다.
‘어…… 억…….’
혈인불은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청성파에 이토록 강한 검이 있을 리 없었다.
‘이놈은…… 청성파 도사 놈이 아니다.’
뇌강의 위력에 검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뒤로 물러난 건 자신뿐만 아니었다.
혈승들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청성파의 도사들은 며칠 전과 달랐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금수천을 오르고자 하는 혈승과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청성파 도사들의 싸움이 치열했다.
“뭣들 하느냐? 꾸물대지 말고 이놈들을 밀어내라!!”
혈인불은 목청껏 소리쳤다.
하지만 그 역시도 금수천에서 완전히 몸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목숨을 건 청성파 도사들의 기세에 혈승들은 아직도 금수천에 잠긴 채 위로 올라서지 못했다.
‘대체 저놈들은 어디에서 튀어나왔지?’
금수천의 건너편을 노려보던 혈승존은 금수천을 넘지 못한 채 막혀 있는 수하들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혈인불, 지금 장난하고 있느나? 빨리 저놈들을 밀어내지 못할까?”
멀리서 들려오는 혈승존의 호통.
‘젠…… 장…….’
무조건 올라가야 했다.
쏴아아아-
혈인불의 단전에서 혈성살불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거대한 강기가 장두총을 향해 쏟아졌다.
‘이자도 보통이 아니구만!’
장두총도 전력을 다해 태청강기공을 완전히 개방시켰다.
몸에서 솟구치며 산화되는 태청강기공의 흔적들.
류화검이 지나가는 아래로 매화 향기가 느껴졌다.
“매…… 화 향기…… 화산파?”
“맞다. 본도의 이름이 장두총이지.”
“그대가…… 화산전협…….”
혈인불은 놀랍기도 했지만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 여겼다.
극일천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골치 아픈 인물들을 대뢰음사, 특히 자신이 죽일 수 있다.
까아앙!!
끼이이이앵!!
“네놈은 내가 죽여주마!!”
혈인불은 앞으로 밀어붙이며 수하들과 함께 금수천을 넘어섰다.
금수천 앞을 확보하자 건너편에서 때를 기다리던 혈승들이 금수천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우우우우-
그때, 귀를 울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두두두두두두두두-
광야를 달리는 거친 말발굽 소리.
‘여기는 말이 달릴 수 없는 곳이거늘……?’
그리고 혈인불이 금수천의 상류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허어억, 피하라!!!”
“무…… 물이…… 급류가 내려온다!!!”
“뭣이?! 물이?”
콰아아아아아아-
금수천의 상류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으악……!!”
“사…… 람…… 살려…….”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혈승들었지만, 하늘을 덮는 듯한 급류 앞에서 그들 또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쏴아아아아--!!!
대자연 앞에 사람의 힘은 미미했다.
상류에서 쏟아져 나온 급류에 의해 금수천은 하천으로 변했다.
얼마나 많은 혈승들이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미…… 친…….”
혈승존은 당황스러웠다.
두 번이나 적의 계책에 당했다.
불어난 금수천의 물이 빠지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가 지나야 했다.
‘그사이 아미파에 원군을 나섰던 청성파와 사천당문, 그리고 아미파의 연합군이 올라온다면…….’
승패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진다.
아니면 수영을 해서 넘어가야 했다.
이제 금장벽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금장벽을 넘어서면 사천당문 앞에서 혈장불과 혈인불을 다시 만날 수 있다.
현재 그들을 막을 인물은 사천당문에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우린 금장벽으로 간다. 혈무불, 선봉에 서라!”
“혈승존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혈무불은 선봉에 나서며 금장벽으로 향했다.
혈인불은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 남아 있던 혈승들이 움직이는 광경이 보였다.
‘금장벽으로 가는군.’
불어난 금수천을 넘어올 수 없었다.
사천당문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길.
어찌 보면 결과는 잘되었을 수도 있다.
금당소와 금수천을 넘어가면 세 방향에서 사천당문을 포위할 수 있었다.
마음 편하게 이곳을 정리한 후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혈인불은 앞에 선 장두총을 보며 웃었다.
“크크, 어이없는 함정에 빠졌어. 누가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완벽했다. 축하해 주고 싶군.”
“고맙소. 나중에 그렇게 전해주겠소이다.”
장두총은 한 손을 살짝 들었다.
“크크크. 아니…… 그 말은 내가 직접 전해주지. 네놈은 여기에서 죽을 테니.”
“어라? 혹시 반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오?”
장두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로 대꾸를 했다.
혈인불이 발끈했다.
“이 새끼가…… 죽고 싶은 게냐?”
“하하하, 말장난하는 거요? 나를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가?”
혈인불은 점점 화가 솟구쳤다.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네놈은 필히 내가 죽여주마…… 나머지 도사 놈을 모두 죽여라!!”
혈승들이 앞으로 달려 나간 뒤로 혈인불이 살기를 뿜어내며 다가왔다.
“화산파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휙휙휙!!
다가오던 혈인불의 신형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다가왔다.
상대는 가만히 선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크크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군.’
가까이 다가서면서 혈인불은 인혈검을 들었다.
“허세밖에 없군.”
혈인불은 장두총의 심장을 향해 인혈검을 찔렀다.
두두두두두.
‘무슨 소리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거친 소리.
신경을 쓰지 않고자 했지만 결국 혈인불은 고개를 들었다.
번쩍.
순간, 섬광이 터지면서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혈인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대로 계속 움직였다면 내가 당했을지도. 멍청하기는.’
장두총은 죽은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