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85화 (185/425)

185화

‘뭐지?’

남방독문주 염산은 눈앞에서 백색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마에 따끔거리는 충격을 느꼈다.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마지막 희인의 눈빛.

하지만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쿠웅.

몸이 옆으로 눕혀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동안 잘 놀았다.”

희인은 떠나기 위해 돌아섰다.

하지만 바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에도 나쁜 놈이 있었구먼. 어째 극일천 놈들은 마음에 드는 짓을 하나도 안 하는지 모르겠어.”

“네놈은…… 누구냐?”

“저분들께서는 나를 멋진 녹검 씨라고 부르지.”

“…….”

“쳇. 농담에 웃지도 않는군. 무림인들에게는 녹검살협이라고 불린다.”

“…….”

파앗-!

피이잇!!

희인과 동시에 녹림야검이 움직였다.

카가강!!

백광수(白光手)와 녹수검이 서로 부딪혔다.

‘큭!’

녹림야검은 왼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예전이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거야.’

다행히 그의 공격을 비켜 맞았다.

하지만 그와 달리 희인의 가슴에는 녹수검이 박혀 있었다.

“큭. 내가 산적 놈에게 당할 줄은…….”

“뭐냐? 내가 어깨를 맞아서 더 손해잖아!”

희인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녹수검에서 빠져나왔다.

“어딜……!!”

녹림야검은 그와 신형이 벌이지는 만큼 붙어 섰다.

희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살성이 이미 그의 주위를 가두었다.

‘이…… 녀석이 이 정도로 강했나?’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 일어났다.

푹푹푹푹.

살성의 기가 폭발하며 안에서 살기를 뿜어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형의 공격.

“이건…… 대체 뭐…….”

“죽기 전에 알아둬라. 살인무경의 무형살이다.”

“망…… 할…….”

털썩!

희인의 허리가 앞으로 접히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남방독문의 운명은 독성체가 사라진 그때부터 끝이 났다.

“이겼다.”

제갈수천은 독성체의 죽음을 확인했다.

독물들은 풍류옥협에 의해 정리가 되었다.

파앗!

흑색의 기가 올라가며 힘차게 흔들렸다.

“총공격하라!! 적을 섬멸하라-!!!”

둥! 둥! 둥! 둥!

그와 동시에 북소리가 진영 전체를 울렸다.

제갈수천의 총공격에 남방독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나 호남성을 내려간 뒤 남방으로 돌아가던 그들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광서팔문의 무인들인 호남성에서 들려온 소식을 들으며 남방독문에 복수하기 위해 기다렸던 것.

그들은 겨우 일백 명만이 살아 남방독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호남사문과 청룡군 연합에 의해 남방독문이 대패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서문당소는 친협이라 불리는 묵경의 무공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었다.

예전과 달리, 연화검을 펼치는 모습에서 화려함은 보이지 않았다.

단순하게 보이는 연화검의 움직임에 독물들과 남방독문의 독인들이 쓰러졌다.

‘서문의 검과 성녀곡의 검이 섞여 있구나.’

아들이라고 하지만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친협들의 무공은 강했다.

중원에서 그들을 칭송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묵경은 서문당소와 마주 섰다.

아버지와 아들.

“수고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싫습니다.”

묵경은 단번에 거절했다.

“이……! 녀석이…….”

서문당소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했지만 꿀꺽 삼켰다.

주위에 두 부자를 보는 시선이 많았다.

여전히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다.

‘또…….’

서문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서로 아웅다웅 붙으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경 아우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놈…… 왜 싫다는 것이냐?”

“집에서 쫓아낼 때는 언제고 다시 오라고 하십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고 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지조가 있는 사내인지 아십니까?”

“잘났다.”

“이제 아셨습니까? 원래 서문의 자식들은 전부 잘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갑니다.”

묵경은 돌아서서 뒤로 물러났다.

고진유가 그 대신 앞으로 나왔다.

“가주님, 다음에 들를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앞으로도 저 녀석을 잘 부탁하겠네.”

“아닙니다. 묵경 형에게 제가 항상 도움을 받습니다.”

“그대도 항상 조심하도록 하게.”

* * *

네 사람은 다시 침주로 돌아왔다.

이번 길은 갈 때와 달리 천천히 움직였다.

소문은 이미 중원까지 퍼져 나갔다.

마을에 들어서자 북소연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여러분들께서 남방독문을 쉽게 물리칠 줄 알았어요.”

“고맙소.”

고진유는 그에 대해 물었다.

“당 숙부께서는 어떻습니까?”

“그는 많이 좋아졌어요. 조금씩 움직이는 게 가능해요.”

“북 소저께 은혜를 입었소이다.”

“이왕이면 본 림이라고 할 수 없나요?”

“지옥혈림은 요즘도 똑같다고 하더이다. 여전히 흑귀들이 사람들을 많이 잡아가는 중이더군요.”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그래도 이젠 의뢰를 철저히 심사한 후 받고 있다고요.”

“알겠소이다.”

고진유는 북소연과 함께 안가로 들어섰다.

‘음…… 북 소저가 오늘쯤 도착한다고 했지?’

끼이이익-

곧이어 안가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고 당하정이 안으로 들어오는 고진유를 보았다.

‘오…… 화산도협.’

어제 강영에서 승전 소식이 들려왔다.

남방독문을 물리친 무림의 연합 세력.

독성체를 상대로는 화산도협이 나섰다.

독성을 참아내고 독성체의 목을 베었다.

당문인으로서 독성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를 리 없었다.

호신강기를 일으킨 뒤 호흡을 멈춘 채 앞에 선다고 해도 독성체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다.

독성은 호흡이 아닌 피부 전체로 흡수되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정말로 독성체를 이기다니, 정말 고생했네. 정말 대단해.”

“당 숙부께서 그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닐세. 독성체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한들 독성을 뚫고 들어가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는가? 오직 화산도협, 그대만이 가능했던 일이었네.”

“이제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무리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네.”

“다행입니다. 무림맹으로 올라가시는 데 마차를 준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허허. 괜한 수고를 끼쳤구먼.”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그런데…… 저들이 왜 잘해주는지 모르겠네.”

“제가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허허…… 이런…….”

당하정은 부담이 다가왔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화산도협이 지옥혈림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 것이 아닌가.

“나 때문에 혹시 좋지 않은 부탁을 받게 되면…….”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만으로 정해놓아서 부담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 고맙네.”

“…….”

고진유은 잠시 망설였다.

침주로 돌아오는 길에 사천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천 무림의 상황이 점점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 숙부, 사실 오는 길에 사천성에서 한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당하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천성에서 일어난 소문이라면 사천당문과 연관이 없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장에서 대뢰음사가 사천성으로 들어온 모양입니다.”

“바, 방금…… 대뢰음사라고 했나?”

고진유에게 묻는 그의 손이 떨렸다.

동영과 남방독문에 이어 서장의 대뢰음사까지 나타났다.

“네, 그렇습니다. 그들입니다.”

“…….”

대뢰음사의 무서움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천성에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늦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벌써 들어왔다는 것인가?”

고진유는 들은 내용 그대로 당하정에게 알려주었다.

“이런…… 청성파가 당했다면…… 바로 다음 목표가 본 문이 되겠군.”

“대뢰음사는 아미파로 내려갔던 두 문파의 무인들이 올라오기 전에 끝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허어…… 이거…… 큰일이지 않는가? 청성파가 당한 이상 사천당문 혼자서…… 그것도 정상적인 전력이 아닌 채로 대뢰음사를 상대해야 하다니…….”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천당문이 아미파에 얼마나 많은 지원 병력을 보냈는가에 달려 있었다.

고진유는 그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당 숙부,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본 문에 계시던 제 사형들과 사저들이 지금쯤이면 사천성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

화산육협을 말함이 틀림없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대뢰음사를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고진유는 화산파의 사형제들을 믿었다.

당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도협이 믿는다면 나도 믿을 수밖에.’

* * *

사천당문에 도착한 화산육협.

당천독과 송풍자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다급한 탓인지 화산육협의 무공이 과연 무림에 떠도는 소문과 같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저들이 대뢰음사의 혈동삼불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비무를 하고자 무례하게 요구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육협의 대사형 호진 우종성에게 대뢰음사와 싸울 계획부터 알려 주었다.

“화산군협, 여기가 일차 저지선인 금당소이외다. 우선 대뢰음사를 이곳에 일부 유인한 후 빠져나오지 못하게 뒤를 터뜨릴 것입니다.”

“흠, 금당소가 터지면 대뢰음사에게 피해를 크게 주겠지만, 안으로 들어온 대뢰음사의 잔여 세력들과 함께 갇히게 되겠군요.”

“……맞소이다.”

“안쪽에서 완전히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군요.”

스윽.

혁자영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사형, 여긴 본도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겠군요.”

“제가 호중과 같이 가겠습니다.”

연자련도 손을 들었다.

“좋아. 이곳은 호중과 호화가 맡도록 해라.”

혁자영과 연자련은 고개를 짧게 숙였다.

당천독과 송풍자는 짧은 순간 이어진 육협의 대화를 들으면서 단시간에 압도되었다.

‘허어…….’

정확하게, 또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문주님,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 이차 저지선은 이곳 금수천이네. 이곳 또한 마찬가지. 일차 저지선을 지나온 혈승들을 또 한 번 자르는 걸세.”

스윽.

이번에는 장두총이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당우희가 바로 따라 들었다.

“사형, 여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저도요!”

우종성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당천독은 마지막 장소인 금장벽을 가리켰다.

“이차 저지선을 넘고 들어선 대뢰음사는 금장벽에서 뼈를 묻게 만들 생각이외다.”

“알겠습니다. 문주님의 계획대로 이곳에서 끝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계획은 세워졌다.

남은 것은 대뢰음사와의 결전뿐이었다.

* * *

대뢰음사 혈승존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사천성의 거대문파 사천당문은 무너질 것이었다.

이미 청성파는 불타올랐다.

비록 그들의 최고 전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완벽한 패배를 선사했다.

‘사천당문 또한 청성파처럼 모든 건물을 불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아미파에서 돌아오는 청성파와 사천당문을 기습하여, 사천성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둘 계획이었다.

혈씅들은 성도에 들어선 뒤 사천당문이 있는 금당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금당은 입구부터 조용했다.

선두를 맡은 인물은 혈동삼불 중 한 사람인 혈장불.

금당소에 다가서자 수백 명의 중원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 앞으로 한 도사가 걸어 나왔다.

“본도가 경고한다. 살고자 한다면 지금 물러나라. 본도의 검은 혈승들의 목을 자르는 데 주저함이 없도다.”

혈장불은 어이가 없었다.

도의를 입은 것을 봐선 도사가 맞았다.

“허! 어린 도사 놈이 말이 짧구나. 감히 누구에게 훈계를 했는지 가르쳐 주마. 당장 저놈의 목을 베라!”

타아앗!

동시에 혈장불 뒤에 있던 혈승이 뛰쳐나갔다.

앞으로 달려 나간 혈승의 허리에서 혈십륜이 빠져나왔다.

위이이이잉-

열 개의 혈륜이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그리고 혁자영의 추화검이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이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극의에 올라선 매화절검은 소리마저도 단절했다.

스걱.

열 개의 십륜이 혁자영의 눈앞에서 반으로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추화검에서 뻗어 나간 검강이 혈승의 허리를 끊고 지나갔다.

“와아아아아-!!”

혁자영의 뒤로 함성이 솟구쳤다.

혈장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혈십륜승을 한 수 만에 이길 수 있는 실력자.

“큭…… 오랜만에 좋은 적수를 만난 것 같군.”

그의 신형이 마치 화염에 휩싸인 듯 붉어졌다.

화아아아아-!!!

혁자영을 향해 그염불장이 쏟아졌다.

탓.

하지만 방금 전과 달리, 혁자형은 바로 상대하지 않고 가볍게 뒤로 물러났다.

“이놈!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도망이라. 자신 있으면 안에 들어와서 붙어보시오.”

“크큭, 보아하니 배수진을 펼칠 모양이구나. 하지만 오히려 네놈들이 더 불리할 것이다!”

혈장불이 혁자형을 쫓아 수하들과 함께 금장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려 한 순간,

두두두두-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킁킁…….

동시에 바닥에서 화약이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망할! 모두 뒤로 물러나라!!”

하지만 이미 금당소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혈승들에 막혀 앞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금당소 입구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수하들 뒤편에서 혈연(血輦)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혈승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혈장불이 가볍게 처리할 것이 여겼다.

그런데 폭발이 일어나면서 금당소로 넘어가는 길이 끊어졌다.

사천당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늪지대인 금당소가 유일한 길.

그곳이 끊어진 이상 금수천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당소 입구에서 일어난 폭발로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게다가 금당소 안에 갑자기 본진과 떨어진 일백 명 정도의 혈승들이 갇히게 되었다.

“하, 하하! 이거 좋은 계책이군.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려면 혈장불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겁날 것은 없었다.

혈장불의 실력을 믿었다.

하지만 혈승존은 모르고 있었다.

혈장불이 상대할 그들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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