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서장의 지존, 대뢰음사가 사천성으로 들어왔다.
한때 서장의 지존이었던 포달랍궁을 거의 재기 불능의 상태로 전멸시킨 뒤 계속해서 무림을 노리던 새외의 세력이었다.
밀종의 후인이 익힌 황금불왕수가 대뢰음사의 무공인 만큼, 그들의 무력은 강했다.
새외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무림맹에서 사천무림을 향해 급히 전서를 보냈다.
청성파와 아미파, 그리고 사천당문.
그들도 서장 대뢰음사가 중원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오랜 세월 동안 천년마교를 막아낸 사천 무림이었기에, 그들은 서장 대뢰음사의 준동을 가볍게 여겼다
사천성으로 들어선 대뢰음사는 먼저 낙산의 아미산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의 첫 목표는 아미파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에 청성파와 사천당문은 초반에 끝을 내기 위해 아미파로 대연합군을 보냈다.
그리고 이천 명의 연합군이 아미파로 도착하는 순간.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청성파 불타오름.
대뢰음사의 계책에 완전히 속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은 처음부터 아미파가 아닌 청성산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미파로 가는 시늉에 세 문파의 정보망이 당했다.
아미파로 갔던 청성파와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황급히 돌아가야 했다.
대뢰음사의 다음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청성산과 사천당문과의 거리는 빠르게 움직이면 이틀.
그에 반해 아미산에서 사천당문으로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사흘 이내에 올라올 수 없었다.
청성파 장문인 송풍자는 눈물을 머금고 불에 탄 청성파의 전각들을 뒤로한 채 사천당문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뢰음사에서 올라오기 전 만일을 대비해 무공서들을 미리 대피시켜 놓았지만, 선조들의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건물들이 모두 불타올랐다.
* * *
사천당문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아미파에서 대뢰음사를 한 번에 끝내고자 했다.
이에 청성파의 무인들과 함께 아미파로 원군을 떠났고, 당문의 전력 중 칠 할이 빠져나갔다.
이천 명의 인원이 빠져나간 두 문파의 인원은 대뢰음사보다 훨씬 부족했다.
당문주 당천독과 청성파 장문인 송풍자의 표정은 마치 넋이 빠져 있는 듯했다.
대뢰음사의 다음 목표는 사천당문으로 정한 듯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천독은 실수했음을 바로 인정했다.
“우리가 대뢰음사를 너무 얕잡아 본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외다. 당문주 말씀처럼 본도도 그랬소이다.”
“하루…… 그들을 하루만 막아낼 수 있다면 아미파로 갔던 원군이 돌아올 것입니다.”
“휴우. 하루라…….”
송풍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청성산으로 쳐들어 올라오던 대뢰음사의 혈승들이 떠올랐다.
오로지 상대만을 죽이기 위해 산문을 뚫고 올라오는 혈승들의 모습들은 괴기할 정도였다.
혈승에게 죽음은 의미가 없었다.
혈승대존의 명을 따르는 것만이 그들이 살아가는 의미였다.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지요. 저들이 먼저 금당으로 들어오면 금당소(金堂沼)로 유인하여 일차 저지선을 만들 것입니다.”
“금당소라…….”
당천독의 말에 송풍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당천독의 말이 이어졌다.
“금당소에서 일차로 혈승들을 상대한 뒤, 이차 저지선 금수천(金水川)에서 또 한 번 터뜨릴 것입니다. 두 저지선을 넘어온 대뢰음사의 혈승들은 마지막으로 본 당문의 모든 벽력탄으로 이곳, 금장벽(金長壁)에서 완전히 묻어 버릴 계획입니다.”
당천독의 목소리에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당문주의 계획대로라면 대뢰음사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겠소이다. 다만…….”
그의 계획대로라면 한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었다.
“당문주께서 말씀하신 계책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장문인께서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압니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이 가장 염려가 되는 부분이외다.”
사천당문이 성도의 많은 지역 중 금당에 세워진 이유 중 하나.
당문의 최대 무기, 벽력탄을 가장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상대를 유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현재 청성파와 당문의 무인들 중에서는…… 대뢰음사를 상대로 최소한 비길 수 있을 만큼 수준의 무인이 없소이다. 대뢰음사를 완벽하게 잡아 놓을 수 있는 무인이…… 필요합니다.”
“…….”
송풍자와 당천독은 고민에 빠졌다.
대뢰음사의 혈동팔불과 견줄 수 있는 무인의 존재.
송풍자는 이미 혈동삼불 중 혈인불과 붙어보았다.
혈인불의 활불혈장에 가슴이 녹아 죽을 뻔했다.
당천독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신 또한 선뜻 나서지 못했다.
‘원독당주 당진도…… 아직은 무리야.’
두 사람은 고민에 얼굴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타타타탁!
그때, 문주원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내원당주 당경의 목소리였다.
“들어오게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경의 모습이 들떠 있었다.
“내원당주, 무슨 일이오?”
“본 가에 화산육협이 왔습니다!”
“화산육협?”
당천독이 그들이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믿기지 않기에 그를 보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우희와 함께 그의 사형제들이 도착했습니다!”
당천독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화산육협에 대한 중원의 소문이 맞다면……!
* * *
둥둥둥둥!
남방독문은 북을 치며 호남사문과 청룡군의 연합 진영으로 움직였다.
“크크크.”
독문주 염산은 상대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미 한 번 성공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믿었다.
“천독당은 앞으로 나서라!!”
두우우웅-!
북소리가 길게 나왔다.
두꺼운 가죽옷을 입은 천독당 소속의 인물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양손에는 검은 천에 가려진 상자들이 들려 있었다.
천독당주 살모강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뚜껑을 열었다.
위이이잉-
스멀스멀…….
상자 안에서 수천 마리의 시커먼 독물들이 앞으로 움직였다.
“백기를 흔들어라!!”
청룡군 연합은 독물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휘익!
제갈수천의 명에 수하가 백기를 펄럭거렸다.
척척척척척!
피이이이잉-
상관세가 궁수단이 진영 뒤에서 나와 화살을 쏘았다.
수백 발의 화살들이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독물들과 천독당의 독인들을 향해 떨어졌다.
퍽퍽퍽퍽퍽-!!
궁수단에 쏟아내는 화살의 위력은 강했다.
하지만 수천 마리가 넘는 독물들을 궁수단으로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었다.
“크하하하!! 겨우 생각해낸 것이 궁수단인가? 멍청한 놈들. 우리 독물들이 겨우 몇백 마리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지?”
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독문주 염산은 대소를 터뜨렸다.
손바닥보다 작은 독물들까지 화살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독물들은 수백 발의 화살비를 뚫고 청룡군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펄럭!
이번에는 청색의 깃발이 올라왔다.
휘이이익-
방호대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수많은 독물들이 다가오는 모습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푸쉬쉬쉬……!!
전방에서 다가오는 독물들을 향해 독물들이 싫어하는 수액을 뿌렸다.
하지만 잠시 주춤할 뿐, 뒤에서부터 밀물처럼 밀려오는 독물 떼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이런……!’
방호대주 비곡은 밀려오는 독물을 베면서 뒤로 물러났다.
사전에 제갈수천이 알려준 대로, 독물들과 부딪친 뒤 막을 수 없으면 진영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됐다!”
독문주 염산의 눈빛이 빛났다.
이제 시작될 것이다.
“아아아악!! 독물들이다!!”
전방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휘인, 저놈들을 보니 독물을 제대로 푼 모양이지?”
“네. 맞습니다. 바로 철괘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또 한 번 독성체의 무서움을 보여주도록 하자고!!”
두두두두-
철괘를 실은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 * *
방호대가 놀란 척 뒤로 물러나면서 독물들을 연합 진영 안으로 끌어당겼다.
중간중간 갑자기 진영 내부에서 독물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움직이며 남방독문을 완벽하게 속였다.
‘온다. 독성체!’
제갈수천은 철괘가 달려오는 것을 보며 원형진으로 바꾸었다.
“큭, 네놈들이 우리를 포위한다고 해서 막아낼 듯싶으냐?”
천독당주 살모강은 잠시 당황했지만 독물들과 독성체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휘이이이-
살모강이 손에 든 피리를 불자, 독물들이 사방으로 퍼지지 시작했다.
삐이익!
스스스스스스스-
삑!
한데, 분명 적을 향해 움직여야 할 독물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꿈틀거렸다.
‘뭐…… 지?’
휘리릭!
묵경이 초단음을 내며 독물들 사이를 걸어갔다.
연화무환보의 화려한 보법 속에서 펼쳐지는 연화연검.
마치 바람을 타고 흐르는 천 조각처럼 독물들 사이를 지나쳤다.
스걱.
한 번의 검무에 독물들이 우수수 반으로 갈라졌다.
묵경은 천천히 걸으며 살모강 앞으로 움직였다.
삑!
‘독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달려들어야 할 독물들이 묵경을 피해 옆으로 혼비백산 도망치고 있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그건 알 필요 없고. 이것들을 처리하려면 네놈이 가지고 있는 그것만 빼앗으면 되겠군.”
타앗!
묵경은 신법을 펼치며 살모강을 향해 움직였다.
휘이이이-
살모강은 인상을 쓰면서 독물들을 향해 피리를 불었다.
하지만 독물들은 묵경을 막아서지 않고 반대로 물러나고 있었다.
‘왜……?’
“쳇. 하는 수 없군. 그렇다면……!”
결국 살모강을 피리를 놓고 천독장을 펼치기 위해 손을 올렸다.
하지만,
스걱.
날카롭게 잘려 나간 소리가 들리고, 살모강은 아래로 떨어진 손을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손.
곧이어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 그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언제 옆에 다가왔는지 한쪽 목 옆으로 검흔이 길게 뻗은 사내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무림을 넘보고자 했나?”
“…….”
“잘 가라. 피리 부는 사나이.”
스팟-
녹수검이 그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살수강의 죽음에 독물들이 통제를 잃은 듯 천독당의 독인들을 공격했다.
“아아악!!!”
더욱더 커진 비명 소리.
독문주 염산은 만족스러웠다.
그는 당연히 적의 비명 소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철괘에서 독성체가 나오는 즉시 끝이겠구만!’
적의 진영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를 보며 그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휘익!
그때, 상대의 진영에서 마차 앞으로 나오는 인영을 보았다.
“단신으로 막아보겠다고 나선 것인가? 저 미친놈. 크크크.”
염산은 단번에 웃음이 나왔다.
고진유는 마차를 노려보았다.
우우우우웅-
사의검을 천천히 뽑으면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멈춰라!”
고진유는 고함과 함께 마차를 향해 사의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슈가아아앙-!!
사의검에서 쏟아져 나간 사의검강이 철괘를 실은 기마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털썩!
빠르게 달려오던 기마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뒤에 실려 있던 철괘가 앞으로 쏟아졌다.
쿵콰아앙!!
거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구른 철괘에 사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저, 저, 저놈이!!!”
염산은 당황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그때, 철괘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진유는 호흡을 멈추며 독성체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터억.
흰색의 손이 먼저 나왔다.
‘저자가…… 독성체?’
이십 대 초반의 여인.
투명할 정도로 하얀 백의 자락이 떨렸다.
모습은 일반 여인과 다름이 없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그녀는 철괘가 굴러떨어진 충격에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했는지 고진유의 말을 똑바로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상대가 바로 쓰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독문주 염산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파아앗!
그녀가 두 팔을 벌리자 독성의 기가 고진유를 감쌌다.
‘욱…… 엄청나군.’
당장에라도 독기에 온몸이 썩어들어 갈 것 같았다.
몸에 파고들어온 독성의 기를 중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쓰러지지 않고 대항하는 고진유를 향해 독성의 기를 계속 뿜어냈다.
‘저자는…… 누구지?’
독성체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염산의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독성체와 싸우고 있는 사내의 복장이 도의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멀리 있기에 매화 문양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화산도협이다.’
그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독성체의 기조차 이겨낼 수 있는 내력.
극일천이 왜 그동안 그에게 곤욕을 당했는지 알았다.
고진유는 독성기를 막아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섰다.
‘울고 있어.’
그녀의 눈빛과 마주쳤다.
‘죽고 싶어도 스스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인가?’
“크윽…….”
고진유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중단전으로 들어서는 독성의 기가 몸에 무리를 주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는…… 베어야 한다.’
스걱-
사의검이 단번에 그녀의 목을 잘랐다.
“화산도협, 독성체를 한 번에 죽여야 하네. 만일 한 번에 죽이지 못하고 부상을 입힌다면…… 독성체는 그대로 폭주할 걸세.”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수백 장의 일대가 독성체의 독기에 빠져들어 수십만 명이 죽게 되는 것이네.”
독성체의 목이 잘렸다.
고진유는 독성의 기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전에 내력으로 재빨리 막아냈다.
휘익!
인양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뒤 독성체에 기름을 뿌렸다.
파앗-!!
그와 동시에 빠르게 횃불을 던지며 독성체의 몸을 태웠다.
화르르르-
독성체가 불에 타올랐다.
그사이 천독당은 물론, 그들이 뿌려 놓았던 독물들도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도검에 잘려 나갔다.
독문주 염산은 그대로 멈춘 채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독성체가……?’
뒤를 돌아 휘인을 보았다.
인상을 쓴 채로 입술을 굳게 닫고 서 있었다.
“휘인, 어…… 떻게 해야 하지?”
“뭘 어떡해? 그냥 뒈져야지.”
독성체가 죽은 이상 남방독문은 끝이었다.
희인의 손이 번쩍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