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82화 (182/425)

182화

마을에 들어선 뒤 골목 사이로 움직이자 막다른 골목이 나타났다.

흑귀가 한쪽 벽을 만지며 툭 쳤다.

스르르릉-

가볍게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벽 사이로 통로가 나타났다.

“들어가죠.”

그녀를 따라 네 사람이 통로로 들어섰다.

삼 장 정도 어둠을 지나자 바로 집 안에 들어선 듯 정원이 보였다.

‘음…… 이 냄새는…….’

건물 안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북소연도 코를 막으며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여기에 그자가 있습니다. 다행히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수고했어요.”

흑귀는 옆으로 물러나며 방문을 열었다.

고진유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침상에 누워 있는 중년 사내.

당하정은 눈만 뜬 채 움직이지 못했다.

당하정은 눈을 떴을 때 자신을 살려준 인물들이 지옥혈림의 흑귀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옥혈림에 왜, 어떻게 구해졌는지는 몰랐지만 당장 무림맹에 연락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몸도, 입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지금까지와 다르게 향긋한 여인의 분향이 났다.

“이분인가 보네요.”

생각대로 여인의 목소리가 맞았다.

“맞습니다.”

이번에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어디선가 들은 듯 익숙했다.

“당 숙부.”

자신을 보며 당 숙부라 하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

“고진유입니다.”

‘아…… 아…….’

청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정말로 고진유의 얼굴이 틀림없었다.

무림맹에 있을 당시 당우희의 숙부이기에 고진유도 사석에서는 숙부라 부르기로 했었다.

“괜찮으십니까?”

고진유는 대답하지 못하는 그를 보았다.

흑귀가 바로 설명을 했다.

“독성의 기가 너무 강해서 아혈을 누르고 있는 기를 뚫어낼 수 없었소이다.”

“그렇군요. 혹시 몸에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그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독기에 너무 노출이 되어 당장은 정상적인 움직임을 가질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입니다.”

“그럼 아혈과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독기를 풀어보는 게 좋겠군요.”

스윽.

고진유는 당하정의 목 뒤에 손을 밀어 넣었다.

‘음…….’

아문혈에 두꺼운 독기가 가득 뭉쳐 있었다.

고진유는 침상의 곁에 앉았다.

“당 숙부를 일으켜 앉혀줘.”

인양과 녹림야검은 곧바로 조심스럽게 누워 있던 당하정의 상체를 세웠다.

우우우웅-

고진유가 매화진기를 끌어 올려 당하정의 등에 손을 댔다.

명문혈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끌어 올렸던 진기를 척추를 따라 지양혈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지이이이익-

당하정의 몸속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아야…… 해.’

당하정은 오직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점점 독맥을 따라 올라간 매화진기는 어느덧 아문혈에 도착했다.

‘당 숙부의 진기가 허해서 억지로 뚫기는 힘들어.’

고진유는 밀어내는 방법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신 내 중단전으로 움직일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독기를 끌어당기는 게 좋겠군.’

당하정의 몸속에 있던 독기를 빨아 당기면서 중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중단전의 특이한 능력.

독소응의 살기를 받아냈던 것처럼, 독기 또한 중화시켜 순수한 내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당하정은 미세한 독기의 양이지만 꽉 막혔던 걸림돌이 빠져나간 듯 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커어억.”

순간 목에 잠겨 있던 둔탁한 기를 입 밖으로 토해냈다.

“당 숙부, 괜찮으십니까?”

“고…… 고마…… 다.”

당하정은 눈물을 흘렸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다시 조심스럽게 그를 침상에 눕혔다.

“모두…… 죽었나?”

“그렇습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당하정의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 우, 리를 죽인 놈은…… 독성체…… 남방독문에 독성체가…… 있었다.”

‘독성체…….’

녹림야검의 말이 맞았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하정은 그날을 떠올리며 그들과 대치를 한 후부터 일어난 상황들을 설명했다.

“난…… 남방독문의 독물에 대해서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독물이 극독을 지니고 있지만 어차피 나에게는 미물일 뿐이니…… 독에 면역이 되어 있다면 독물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반 무인들은 다르다. 그날……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독물들이 우리 진영 한복판에 나타났다.”

“…….”

“어떻게 되었겠느냐?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곧장 난리가 났다. 그때…… 남방독문에서 커다란 철괘를 실은 마차가 달려오더군.”

철괘를 이야기하는 당하정의 눈가에 두려움이 스쳤다.

“철괘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독성체…… 그 안에서 독성체가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단번에 주위 모든 일대가 중독되었다. 독에 면역이 있는 나조차 독성체의 극독에 당한 뒤 정신을 잃은 게 마지막 기억이구나.”

“독성체를 죽일 수는 없습니까?”

“죽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는 곁에 다가서야 한다.”

“독기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군요.”

“맞다. 독성체가 뿜어내는 독기를 밀어낼 수 있는 자여야만 해…… 그뿐만이 아니야. 안전하고 확실하게 죽이려면 불에 태워야만 한다.”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성체의 존재와 어떻게 처리하는지 방법까지 알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 숙부께서는 마음 편히 몸조리하십시오.”

“조심…… 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고진유는 그의 손을 가볍게 두드려 준 뒤 방을 나와, 북소연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이다.”

“왜 이래요? 원래 하던 그대로 해요. 적응 안 되게.”

“본도가 돌아올 때까지 저분을 부탁하겠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살아 있어야 나중에 부탁하잖아요.”

“알겠소이다. 북 소저의 부탁은 꼭 들어주겠소.”

* * *

강영에 모인 호남사문의 세가들이 하후강의 군막에 모였다.

서문세가 서문당소.

하후세가 하후강

상관세가 상관호

유성검가 동별광.

이들 네 명의 가주들 표정은 무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적룡군과 광서팔문이 그들에게 전멸을 당했음을 알기에, 호남사문의 가주들이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후강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남방독문의 독물들이 대단할 줄 몰랐소이다.”

“그러게나 말이외다. 적룡군은 당문대사와 함께했거늘.”

그들은 당문대사 당하정을 잘 알았다.

무공보다 피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당문 출신의 인물.

“난 당연히 막을 수 있다고 믿었소이다. 호남까지는 올라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하…… 본인도 마찬가지외다.”

네 가주들 모두 상황을 오산했음을 알았다.

극독의 존재는 무인에게는 부담이었다.

서문당소가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다.

“이틀 후에 남방독문이 도착할 것이라 하외다.”

“무림맹에서도 연락이 왔소이다. 내일이면 청룡군이 도착할 것이라 하더군요.”

상관호가 곧바로 대답했다.

“다행히 청룡군이 제 시간에 맞춰 왔군요.”

“하나 무림맹에서 온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상관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지금 필요한 건 무인의 수가 아니었다.

남방독문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이 아니라, 독을 품고 있는 독물(督物)들이었으니까.

하후강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허어…… 우리가 남방독문을 상대로 모일 줄은 몰랐소이다.”

유성검가주 동별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강은 단 한 번도 남방독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남방독문의 극독을 대비하기 위해 호남사문이 모여 준비를 해야 했다.

“후우…… 피독제를 최대한 많이 상비하고 독물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방호대를 긴급히 조직했지만, 이것들로 삼천을 전멸시킨 독물들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하후강은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요. 우선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일차로 막아야 할 겝니다.”

“맞습니다. 남방독문의 접근을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그 부분은 본 가의 궁수단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서문당소가 말을 받았다.

“상관세가의 궁수단은 호남제일입니다. 충분히 남방독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외다.”

“맞소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별광도 상관세가 궁수단의 위력을 잘 알았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군요. 승패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후강의 말을 끝으로 막사 안이 조용해졌다.

* * *

피이이잉-!!!

고진유는 강영을 향해 신법을 최대한 빠르게 펼쳤다.

바람을 가르며 신법을 펼치는 소리는 마치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 소리와 같았다.

“지금 움직이는 속도로 가면 남방독문보다 하루 빨리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네요. 저녁에 쉬지 않고 달리면 내일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군요?”

“아마도?”

“하루 정도 자지 않는다고 피곤하지 않잖아요.”

“좋아. 빨리 가서 쉬도록 하지. 오랜만에 밤에 달려보는 것도 좋겠군.”

“인양과 녹검 씨도 괜찮죠?”

“넵. 저는 예전부터 밤에 다니는 편이었어서 괜찮습니다.”

“진유 형, 전 며칠 안 자도 안 피곤합니다.”

타아앗!!

파아앗!!

어두운 밤하늘 위로 네 명의 신형이 네 줄기 빛을 뿌리며 가로질렀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떠오른 해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때쯤.

척!

고진유의 신형이 멈췄다.

그 뒤로 한참 지나서야 묵경, 인양, 녹림야검이 도착했다.

그들은 멀리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진유 아우, 무슨 일 있어?”

“……오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적룡군과 광서팔문의 진영에 변절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절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 숙부에게 상황을 들을 때는 독성체의 존재감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되새겨 보니 갑자기 진영에 독물이 나타난 것이 이상합니다. 극독을 가진 독물들이 들키지 않고 진영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

“음…… 없지.”

묵경도 인정했다.

그러고 보니 당하정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누군가 몰래 풀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진유 형, 어떻게 하면 되죠?”

“찾아야지. 변절자를 찾지 못한다면 적룡군처럼 당할 수 있어.”

“무작정 찾으러 다니기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삐이익-!!

순간 고진유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푸드드득!!

동시에 나뭇가지 위에 있던 새들이 날아올랐다.

“방금 이 소리를 따라 할 수 있겠어요?”

“그게 무슨 소린데?”

“초단음의 내기입니다. 원래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일부러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초단음이 뭐죠?”

고진유는 초단음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예전에 있던 괴도에는 수백 종류의 벌레들이 있었거든. 잘 때 너무 달라붙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다가 알아낸 방법이야.”

“이 소리를 내면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에겐 반응이 없지만 벌레나 동물들이 이상하게 싫어해.”

“아하…….”

묵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이 소리를 내면서 진영을 다니면 독물들이 있을 경우 밖으로 알아서 튀어나올 겁니다.”

“아주 좋아. 초단음을 어떻게 내는지 가르쳐 줘.”

내기를 순간 목청에 최대한 압축시킨 뒤 짧게 터지도록 쏟아내는 방법.

고진유에게 초단음을 배운 세 사람은 계속 달리면서 연습을 이어갔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삐익.

짧고 가느다란 초단음이 쉬지 않고 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파다다닥.

푸드드득.

그때마다 풀과 나무 사이로 벌레들과 산새들이 날아올랐다.

“어…… 진짜 되는데요?”

녹림야검은 신기한 듯 계속해서 초단음을 냈다.

살기를 뿜어내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이 오직 미물들에게만 영향을 주었다.

“오우. 괜찮은데?”

묵경도 재미있는지 연이어 초단음을 내며 돌아다녔다.

“이제 따라할 수 있네요.”

“네가 잘 가르쳐 줘서 쉽게 할 수 있었어.”

“인양하고 녹검 씨도 그 정도면 충분해. 나중에 진영에 내려가서 독물들이 있는지 찾아보자. 내 생각인데 분명 이미 진영에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진영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낼게요!”

“그럼 내려가도록 하죠.”

휘이이익!

네 사람은 호남사문이 있는 아래로 향해 내려갔다.

* * *

웅성웅성.

군막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서문세가주 서문당소는 눈살을 찌푸렸다.

곧 중요한 결전이 눈앞에 있었다.

“무슨 일로 소란스러운가?”

“아버지, 정입니다.”

군막으로 서문정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무슨 일이더냐?”

“……경 아우가 왔습니다.”

서문정은 정확히 서문이란 성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름만을 알렸다.

“경이라면…… 그놈을 말하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혼자 왔느냐?”

“화산도협과 친협들이 함께 왔습니다.”

“그렇군. 알겠다.”

서문당소가 군막 밖으로 나섰다.

눈앞에 선 네 명의 청년들.

무림최고의 인물들로 알려진 성협(聖俠)들이었다.

그들 중 아들도 끼어 있었다.

고진유가 앞서 나오며 허리를 숙였다.

“서문 가주님을 뵙습니다.”

“화산도협, 우리 오랜만이군.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갑네.”

스윽.

고진유가 뒤로 빠지면서 묵경이 앞으로 나섰다.

“평안하셨습니까?”

“평안 못 하다.”

“아…… 네에. 우짭니까?”

“이 녀석이…… 우짭니까? 그게 아버지한테 할 말이냐?”

“……아버지도 변하신 게 없으십니다. 왜 평안 못 하십니까?”

“그것도 모르느냐?”

“그래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 말인 즉, 네가 저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더냐?”

“제가 아니더라도 진유 아우가 왔으니 걱정 마십쇼.”

퉁명하게 답해도 서문당소는 이들이 온 것만으로 불안감이 어느덧 사라진 듯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성협으로 불린 네 명이 나타나는 순간, 호남사문 진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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