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81화 (181/425)

181화

무림맹에서는 남방독문을 상대하기 위해 청룡군을 재차 출정시켰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감싼 이군사 제갈양은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실수했다. 남방독문, 아니, 새외무림을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남방독문이 올라온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적룡군을 보냈다.

독물과 만일의 변수에 충분히 대비했다고 믿으면서.

‘아니었어. 그들이 약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내 의식을 지배한 거야. 그리고…….’

제갈양이 남방독문을 가볍게 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복건성과 절강성에서 동영이 손쉽게 처리됐다는 보고를 들은 후 남방독문 또한 쉬울 것이라 착각했다.

‘그 녀석이 강한 것을 잊었어. 동영이 약한 게 아니라 화산도협이 강했던 거야. 멍청하게 그것을 똑바로 파악 못 하다니.’

화산도협은 안휘성을 지나 무림맹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사이 무슨 짓을 했는지 혈사천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보고가 함께 올라왔다.

‘겨우 네 명으로 혈사천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녀석인데…… 으으, 간을 밖에 두고 다니는 모양이야.’

무림맹에는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고진유는 여전히 무림맹의 특사였다.

“휴우…… 당분간 기댈 곳은 그 녀석밖에 없겠군.”

비맹군에서 새롭게 조직한 정후조를 통해, 고진유에게 청룡군과 함께 남방독문의 상대를 부탁하는 서신을 보냈다.

‘화산도협이 나선다면 한시름 놓아도 되겠지. 그동안 나는 여우 굴에 숨어 있는 늙은 여우를 잡고.’

휘익!

제갈양은 앞에 놓여 있던 서류들을 한 곳에 던져 놓았다.

이제 비맹군을 맡기 전 서류들의 정리를 거의 마쳤다.

“징그럽게도 꼼꼼하게 해놨어.”

전대 이군사 사마추가 정리해 놓은 서류들을 모두 살폈지만, 문제가 될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새외무림에 관해서 올라온 전서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의심이 확실해지는군.’

며칠 전 맹주와 함께 태상장로가 되신 제갈문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극일천의 존재와 현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모두 들었다.

두 분은 사마추의 신분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늙은 여우를 어떻게 잡을까?’

방법은 단순했다.

여우를 잡기 위해서는 여우 굴에 가야 한다.

‘물론 함정에 빠지진 않겠지. 여우니까.’

여우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분명 재미있어할 것이다.

“후후후.”

제갈양은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도 재미있고. 누가 더 머리를 잘 굴리는지 한 번 해봅시다.”

스윽.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슬쩍 찔러볼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게 좋겠군.”

극일천이라면 누구나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

바로 고진유가 지니고 있다는 철갑의 존재였다.

“이군사가 되니 짜릿한 일들이 많아서 좋구만.”

제갈양은 비맹군을 나와 금맹군을 향해 기분 좋게 걸어갔다.

* * *

‘음. 좋지 않군.’

중년 사내는 창문가에서 뒷짐을 쥐며 무림맹을 내려다보았다.

금맹군으로 옮긴 이상 딱히 무림맹에서 할 일이 없었다.

큰 전쟁이 아니고선 대부분의 일은 비맹군에서 결정을 내리고 처리했다.

후원으로 밀린 느낌.

사마추는 인상을 쓰며 오른손으로 창문턱을 잡았다.

손에 힘을 주자 손등의 국화가 꿈틀거렸다.

‘후우…… 전쟁이 벌어졌을 시에는 일군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긴 하지. 오히려 더 잘된 건지도 모른다.’

휘이익!

그때, 사마추의 등 뒤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여긴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다.”

“일소, 어차피 주위에는 아무도 없지 않소이까?”

“삼소, 장담할 수 있는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삼소, 여긴 무림맹이오.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몰랐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지금처럼 어렴풋 눈치를 채고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할 거외다.”

“알겠소이다.”

사마추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돌아섰다.

“무슨 일이오?”

“비맹군에서 움직였소이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냈소?”

“서신으로 움직이는 탓에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소이다.”

“목적지는 어디오?”

“그게…….”

삼소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무림맹을 나선 순간 서신은 개방 걸인들을 통해 전국 팔방으로 흩어졌다.

뿔뿔이 흩어진 개방도들 중 정확히 누가 가지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쯔쯔, 미행이 붙을 줄 알고 제법 머리를 썼군. 계속 추적하여 알아보시오.”

톡톡톡.

그때, 집무실 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군사님. 방금 전 이군사께서 금맹군으로 들어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녀석이?”

첫날 외에는 금맹군에 찾아온 적이 없었다.

사마추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왜…… 왔지?’

갑자기 이군사 제갈양이 찾아온 이유에 대한 가설들이 펼쳐졌다.

* * *

청룡군은 무림맹에서 나선 뒤 최대한 빨리 호북성으로 내려갔다.

청룡군장 황보성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남방독문을 상대하기 위해 먼저 내려갔던 적룡군이 전멸을 당했다.

두 무력군의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열화문까지 함께하고 있었으니, 무력은 청룡군보다 더 강했다.

청룡군의 책임자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급히 움직인 바람에 당문의 도움은 받을 수 없게 됐다. 남방독문은 이미 광서를 지나 호남으로 움직이고 있고…….’

호남성으로 올라오는 남방독문을 상대하기 위해 강영의 호남사문이 집결했다.

하지만, 호남오문 중 형산파가 갑자기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보냈다.

황보성은 그 이유를 알았다.

십문에 들기 위해 시도했다 실패한 것에 대해, 무림맹에서 그들을 무시한 처사라며 떠들고 다니지 않았던가.

합류를 하든 안 하든 결정은 형산파의 뜻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제, 형산파는 앞으로 무림맹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룡군이 있던 광서팔문보다 상관세가, 유성세가, 서문세가, 하후세가로 이루어진 호남사문이 대명문정파라는 것.

호남사문과 함께 연합한다면 남방독문을 상대하기에는 어렵지 않겠지만…….

‘삼천 명 모두를 전멸시켰다는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군.’

한시라도 빨리 호남사문과의 합류가 급한 상황.

무림맹에서 호남성까지 거리는 멀다.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야간에도 움직였다.

두두두두-

청룡군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호남성을 향해 무조건 달리는 것 말이다.

* * *

이군사 제갈양의 서신을 받은 네 사람은 목적지를 바꾸어 단성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림맹에서 먼저 움직인 청룡군과 호남성에서 합류할 생각이었다.

중간중간 무림맹에서 전해주는 정보를 통해 청룡군의 이동 방향을 전해 들으며, 일행은 호북을 넘어 호남성 악양에 들어섰다.

“진유 형, 청룡군이 익양으로 움직인다고 해요.”

“내가 지름길을 알고 있으니 여기서 하루 정도면 만날 수 있겠어.”

“잘됐네요.”

묵경에게 호남성은 제집의 안방처럼 길이 훤했다.

“가자. 내가 앞장을 서지.”

그때, 그들 앞에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북 소저 같은데?”

복건성에서 다급한 볼일이 있다면서 헤어졌던 북소연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인양이 물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개방에 사람을 심어 놓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누군가 우리를 따라 다녔든지.”

“도협님, 전혀 기를 못 느꼈습니다.”

“굳이 가까이서 따라 다닐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꼭 무인이 아니라도 우리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아하…….”

히이잉!

북소연이 일행 앞에 멈췄다.

“오랜만이네요.”

“급하게 갔던 일은 잘 처리가 된 모양이군요.”

“후훗, 나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인사차 한 말이외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잘 처리했으니 걱정 마세요.”

“다행입니다.”

고진유는 간단히 인사를 한 뒤 그녀를 보았다.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하긴 하오만, 정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보면 딱 오해하기 쉽겠소이다.”

“무슨 오해를 한다는 건가요? 설마 우리 둘 사이가…….”

“본도와 지옥혈림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소이다. 근데 지옥혈림의 인물과 지내는 본도를 보고 뭐라 말을 해댈지 귀찮다는 뜻이었소. 엉뚱한 생각은 마시오.”

그녀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시선에 전혀 신경 안 쓰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신경 안 씁니다.”

“그럼 문제없지 않나요?”

“괜히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싫을 뿐이외다.”

“호호호. 그건 화산도협의 문제이지 난 상관없군요. 덧붙여 오늘은 한 가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니, 귀찮게 생각 안 해도 좋을 것 같고요. 아마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걸요?”

“그게 무엇이오?”

“오, 이건 궁금한가 보네요? 알려줄 테니 다음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세요. 힘들게 달려왔는데 공짜는 안 되죠. 본 림의 영업 방향에 무료 봉사는 없거든요.”

“…….”

고진유는 북소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눈빛이었다.

“좋소. 본도도 괜히 공짜로 받다가 물리기 싫으니, 내가 가능한 것만 부탁을 들어주겠소.”

“흥, 좋아요. 철갑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을 게 아닌가요?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부탁하겠어요.”

“본도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무엇이오?”

“……설마 구두(口頭)로 약속하자는 것은 아니죠?”

“본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아버지께서 사내를 믿지 말라고 하셨어요. 흐음…… 그래도 화산도협의 위명이면 다르긴 하겠지요?”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띠며 손바닥을 펼쳤다.

“이게 뭐요?”

“약속했다는 표시로 손바닥을 비비세요.”

“…….”

슥슥.

멀뚱히 내민 손을 보던 고진유는 이내 손을 펴서 북소연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됐어요. 그럼 내가 온 이유를 말할게요. 얼마 전, 광서에서 남방독문과 무림맹이 싸운 것은 알고 있지요?”

“맞소이다.”

“본 림에서 남방독문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현장에 갔어요.”

“…….”

“수하들의 말을 빌리면, 그곳에 도착하니 사방에 독물이 가득해서 처참했다고 하더군요.”

“……알고 있소.”

“그리고 전부 죽은 줄 알았던 그곳에서, 본 림이 죽어가던 무림맹의 인물을 한 명 구했어요.”

고진유의 눈이 커졌다.

지옥혈림에서 생존자를 찾았다는 말이었다.

“독물 속에서 중독되었지만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더군요. 이왕 그를 구했으니 본 림에선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에요.”

“고맙소이다.”

“봐요. 본 림도 나쁘지는 않다고요.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귀한 영약도 많이 투입하고 있는 중이고요.”

“알겠소이다. 그 부분도 따로 보답을 하겠소.”

“큼, 생색내고자 한 게 아니라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니 그렇게 아세요. 아무튼, 그가 아직 정신을 차리진 못했지만 몸에서 신패를 찾았어요. 당하정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당문대사.”

“맞아요.”

적룡군과 함께 남방독문을 상대하기 위해 내려갔던 그였다.

“그는 어디에 있소?”

“침주에서 치료 중이에요.”

고진유는 바로 청룡군과 합류한다는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묵경 형, 당장 침주로 가야겠어요.”

“알겠다. 그렇게 하지.”

한시가 급했다.

“지금 출발할 수 있겠소?”

“그렇게 하죠.”

침주로 움직인 뒤 늦지 않게 강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파아앗!

네 명은 북소연을 따라 침주로 향해 신법을 펼쳤다.

타고 온 말이 지쳐 있어 북소연 또한 그들과 같이 신법을 펼쳤다.

휘익!!

휙!!

그녀의 신법도 느린 건 아니어서 처음에는 네 명의 뒤를 따라붙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저하게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진유 아우, 뒤에.”

고진유가 뒤를 돌아보자 힘든 기색으로 달려오는 북소연이 보였다.

“잠시 쉬고 갈까?”

“멈추지 말고 달리세요.”

“응? 그래, 그럼.”

고진유는 뒤돌아 북소연의 곁에 다가섰다.

“힘듭니까?”

“다, 당연하잖아요…… 하아…… 이렇게 무식하게 달릴 줄은 몰랐어요. 그냥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걸 그랬네. 내가 미쳤지.”

“잠시 실례하겠소.”

스윽.

고진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쏴아아아아-

무더운 여름날, 타는 목 안으로 시원한 냉수를 마신 느낌처럼 전신으로 상쾌한 기가 퍼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던 그녀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고마워요.”

북소연은 바로 그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다.

“싫겠지만 좀 더 있어야 하오.”

“그래요? 그럼 좀 더 내력이나 넣어 보세요.”

그녀는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소이다.”

고진유는 북소연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신법을 펼쳤다.

‘세상에. 하나도 힘이 안 들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기억에서 사라졌다.

“묵경 형, 손 잡고 오는데요?”

앞서 달리던 인양이 뒤따라오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냉큼 묵경을 불렀다.

“둘 표정을 봐라. 좋다 싫다 감정이 없잖아? 저건 괜찮아.”

“그런가요?”

묵경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인양도 바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뒤에도 고진유는 서너 번 북소연의 손을 잡아주었다.

처음에는 서먹거렸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모습을 봐도 별 감정이 없었다.

또 손을 잡는구나.

힘든가 보다.

그리고 거의 쉬지 않고 신법을 펼친 이틀째 되는 날, 일행은 침주에 들어섰다.

중간중간 지옥혈림을 통해 청룡군과 호남사문의 경향을 수시로 확인했다.

묵경은 어이가 없었다.

“형산파가 정말로 빠졌어.”

“그때 그 일 때문에 무림맹에 반항을 하는 모양이군요.”

“미쳤군. 누가 손해인지 모르는 모양이야. 이렇게 되면 앞으로 형산파는 무림맹에서 탈퇴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중원 문파들에게 도움을 못 받아. 수뇌부에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그건 그들이 극일천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차피 무림맹은 사라진다고 확신했으니, 같은 편인 남방독문과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혀, 형산파가 극일천이라고?”

“십중팔구 맞을 겁니다. 형산파는 나중에 따로 처리하기로 하고, 얼른 그분을 만나러 가죠.”

휘이이익!

일행 앞으로 흑귀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북소연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어디 있지?”

“소신들이 모시겠습니다.”

“안내해.”

일행은 흑귀를 따라 침주의 마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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