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77화 (177/425)

177화

남궁허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움직이고 싶지만 몸이 무겁게 느껴지면서 걸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황산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산문을 지나 다급하게 올라섰다.

남궁세가의 정문 위 현판은 예전처럼 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이군.’

청양으로 가기 전 모습 그대로, 변한 게 없었다.

정문으로 다가서자 정문 위사가 허리를 곧게 펴며 그를 맞이했다.

“군장님을 뵙습니다!”

정문 위사의 목소리 또한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별일 없었나?”

“넵, 혈사천에서 다녀갔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정문 위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조급하게 달려온 자신들이 괜히 민망할 정도였다.

“그렇군.”

“화산도협과 친협들이 세가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도 들었다. 그들은 어디에 있지?”

“이공자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알겠다. 문을 열어라.”

남궁허는 세가로 들어섰다.

우선 비상대책위로 들어선 뒤 복귀했음을 보고하기 위해 남궁형소와 남궁삼을 만났다.

남궁삼의 표정에도 여유가 느껴졌다.

“백운. 청양에 다녀온다고 고생 많았네.”

“혈사천에 제대로 속았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다행히 화산도협이 찾아와서 세가의 큰 어려움은 넘겼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가 설명을 하겠습니다.”

남궁형소가 앞으로 나섰다.

혈사천주가 쳐들어온 그날, 그때의 사건에 대해 차근히 설명했다.

화산도협은 청양으로 움직이는 혈사천을 보면서 수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미 충분히 남궁세가의 관할을 빼앗은 그들이 청양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본진을 공격하려는 미끼가 아닌 이상.

그래서 청양은 남궁세가에서 충분히 막을 거라 여기고,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본진인 황산으로 가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고맙군.’

화산도협이 없었다면 분명 큰 피해를 보았을 게 확실했다.

“그들이 호청정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를 만나볼 생각인가?”

“본 세가를 도와줬으니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게.”

남궁삼은 일어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아 참, 일공자는 어디에 있는가?”

“청양에서 오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먼저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일공자에게는 급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일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그렇군. 호청정으로 가보게.”

남궁삼은 그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만두었다.

남궁허는 밖으로 나온 뒤 호청정으로 향했다.

호청정의 문은 열려 있었다.

‘흐음.’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밖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화산도협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남궁후진이 먼저 그를 반겼다.

“숙부님, 오셨습니까?”

“혈사천을 막는다고 수고했다.”

“제가 한 건 없습니다. 혈사천주를 막아낸 건 화산도협의 도움이 컸지요.”

남궁허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진유를 보았다.

자신에게 패배의 쓰라림을 준 인물.

하지만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었다.

“화산도협, 본 세가를 도와줘서 고맙네.”

그는 허리를 숙였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후후후. 역시 자신감이 대단하군.”

남궁허는 예전과 달리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남궁무명의 일부터 고진유에게 가졌던 오해에 관한 일들은 남궁후진에게 모든 사실을 들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네.”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잊는 것이 좋지요.”

“……고맙군.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말게. 저번에는 졌지만…… 다시 도전을 할 것이네.”

“언제든지 받아드리겠습니다.”

남궁후진이 얼른 두 사람 사이에 나섰다.

“자자, 그러지 말고, 숙부님, 앉으시지요.”

남궁허는 앉으면서도 여전히 고진유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전하겠다고 했지만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 대체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지 모르겠군.’

제대로 수련을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인데도 실력이 더 늘어나 있었다.

친협이라 불린 그의 동료들조차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무공이 늘어난 게 보였다.

“후진에게 듣기로, 본 세가에 수상한 놈들이 있을 것이라 하더군. 그게 무슨 말인가?”

“극일천이란 세력입니다.”

고진유는 그에게 숨기지 않고 극일천이란 조직에 대해 정확히 밝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무림은 이미 극일천에 의해 장악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중원인들의 행동을 감시하며 그들의 편으로 끌어당기는 극일천의 능력.

남궁허는 손이 부들거리며 떨랴왔다.

본 세가에 얼마나 많은 인물이 극일천에서 간자들일지 모를 일이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남궁영운의 거처에서 찾아낸 물건입니다.”

인양은 주먹만 한 목상자를 꺼낸 뒤 남궁허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한 번 열어서 보시지요.”

남궁허는 목상자를 열었다.

딸깍.

‘흐음…….’

열린 목상자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건 극일천에서 나온 신단으로 내력을 급격하게 올려주는 미약입니다.”

남궁허는 신무신단을 본 뒤 그대로 상자를 닫았다.

“숙부님, 이 모든 게 극일천의 짓들입니다. 본 세가의 힘을 약하게 한 뒤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흠…… 일공자만으로 이런 짓을 할 리가 없겠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세가에 분명 그를 뒤에서 조종한 인물이 있을 겁니다.”

남궁허는 지금까지 수많은 일을 겪어봤지만, 이번 경우처럼 화가 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화를 삭이며 눌렀다.

“화산도협, 그대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본 세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할 뻔했군. 다행히 그들의 존재를 알았으니 본 세가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당연히 남궁세가에서 잘 처리하실 것이라 봅니다.”

고진유도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다른 곳도 아닌 남궁세가였다.

충분히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음이 갔다.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우린 무림맹으로 가면 되겠군. 물론 그 전에 그분을 만나 뵐 수 있다면…….’

* * *

황산에서 내려온 후 무림맹으로 올라갈 줄 알았다.

묵경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진유 아우, 정말로 저주로 올라갈 생각이야?”

“그분을 한 번 더 만나볼까 합니다.”

“만나보는 건 좋아. 근데, 지금 우리끼리만 가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인양과 녹림야검도 슬쩍 묵경의 말에 동조했다.

“형, 혈사천주가 우리 때문에 남궁세가를 치지 못해서 화가 났을지 모르잖아요. 다음에 가도 되지 않을까요?”

“도협님, 맞습니다.”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세 사람을 보았다.

“…….”

묵경은 웃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는 고진유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왜…… 웃기만 해?”

“좋아요. 세 사람의 뜻을 따라 무림맹으로 바로 가도록 합시다.”

“……잠깐만.”

“왜요?”

“바로 무림맹으로 가겠다니 이상하잖아. 보통은 두세 번 더 말하는 게 정상인데.”

“흠…… 그랬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번엔 바로 수긍한 이유가 뭐지?”

“형하고 인양이, 그리고 녹검 씨의 의견을 수용한 건데요?”

“그럼 우리가 네 뜻과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계속 하겠다는 말이네?”

“당연하잖아요.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동료니까 당연히 존중하면서 따라야죠. 목숨이 걸린 일에 내가 함부로 세 사람의 목숨까지 걸 수 없어요.”

“……당연히 맞긴…… 하지만…….”

묵경은 망설였다.

일행의 수장은 고진유였다.

수장의 역할이란 일행이 똑바로 가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잘 이끌고 가야 한다.

그리고 일행은 항상 수장을 따르며 믿어야 했다.

지금까지 고진유를 믿고 그대로 따랐다.

“가자. 네가 가고자 하던 곳에 가자.”

“어딜요?”

“어디긴. 저주에 올라가서 그분을 만나겠다고 했잖아.”

“정말 가요?”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인양과 녹림야검을 보았다.

“두 사람의 생각은?”

“우린 무조건 따를 겁니다.”

“푸흐…… 세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라니 고맙네요.”

고진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주로 올라가서 만나보고 싶다는 인물은 혈사천에 의탁한 화산제일검 독소응이었다.

그가 혈사천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하나 고진유에게는 사숙이었다.

‘허민 사숙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천살지인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독소응.

그가 검황과 싸웠던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화산파를 떠나기 전, 그는 모든 의지를 잃은 채 살인귀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분께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하기 전에 난…… 막아야 해.’

고진유는 그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확인해야 했다.

* * *

샷샷샷샷-

주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 전부터 일행 주위에 나타난 그는 정확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녹림야검과 인양이 미행자를 잡기 위해 움직였지만 실패했다.

“신기했어요.”

인양은 마치 귀신을 본 듯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내기를 숨긴 뒤 미행자를 잡기 위해 그의 뒤로 움직였다.

그가 오 장 정도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상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오 장의 간격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는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가 보기엔 중원의 무공이 아닌 듯했습니다.”

“중원이 아니라고?”

“네, 동영의 인자술인 것 같습니다.”

“동영?”

묵경은 바로 고진유에게 시선을 돌렸다.

절강성에서 마무리가 된 줄 알았지만, 아직 끝이 아닌 듯했다.

“동영의 인자술이 뭔가요?”

“저도 직접 보잔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바로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오……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하고 싶네요. 우선 적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주변을 확실하게 살피세요.”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기감을 펼치며 주변을 살폈다.

인자술을 펼친다고 하지만 절대로 숨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인양아, 저번에 상대의 기척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가르쳐 줬지?”

“네. 잘 알고 있어요.”

인양은 일행 뒤에서 움직이면서 주위의 기감을 살폈다.

‘내 기감 안에 들어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 * *

중원에 들어갔던 동영의 형제들이 단 한 명의 인물에게 대패를 당했다.

동영존은 그를 죽이기 위해 인자왕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영존의 명에는 오로지 복종밖에 없었다.

중원에 들어선 인자왕은 금방 황산에 나타났다는 고진유를 찾아냈다.

‘화산도협, 나에게 걸린 이상 네놈의 목숨은 내 것이다.’

그를 잡기 위해서는 완벽한 장소에서 기습해야 했다.

정상적으로 그와 싸운다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무리했다가는 당할 수 있을 만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최상의 기회를 노릴 것이었다.

‘동영의 인자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마.’

* * *

이틀 후.

일행은 저주에 들어섰다.

“하하하…….”

묵경은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거 참…… 정말로 왔어.’

사파인이 정파의 본진에 가지 않듯, 정파인도 사파의 본진에 들어서는 경우가 없었다.

찌리리릿-

저주에 들어서자 주위에서 강한 사기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유 아우, 우리가 온 걸 아는군.”

“그러네요. 바로 나타나네요.”

고진유의 말처럼 십여 명의 사파인이 눈에 힘을 준 채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죽일 듯한 기세였다.

“네놈들은!!”

그들 중 한 명이 소리를 치다가 순간 멈췄다.

상대 청년의 도복에 매화 문양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사내의 얼굴.

세상에 이보다 잘난 얼굴이 없었다.

매화도의에 송옥의 얼굴.

‘화산도협과 친협들이다.’

채애애앵!!

원도역은 손에 든 검을 뽑으며 사방에서 들리도록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두두두두-

주위에 있던 수십 명의 사파인들이 달려 나왔다.

혈사천 소속의 복장을 한 그들의 수는 어느덧 백 명을 넘어섰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데.”

“…….”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림 최고의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얼마 전 남궁세가에서 천주와 상대했다고 들은 그가 저주까지 올라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소이까?”

“그대의 천주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오는 길이오. 만날 수 있겠소?”

“그, 그분과 약속이 되어 있다는 말이오?”

“한번 보자고 한 건 맞소. 따로 약속은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

그의 말이 거짓이라도 제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천주와 겨룰 정도로 강한 무공을 지닌 자다.

여기 모여 있는 이들이 동시에 싸워도 이길 수 없다.

‘천주님과 만나기로 했다면…….’

그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혈사천으로 모시겠소이다.”

‘괜히 싸우다 당장 죽을 순 없지.’

원도역은 앞장서서 혈사천으로 향했다.

마을을 지나 협곡으로 들어섰다.

혈사천은 저주협이라 불리는 협곡의 상부에 위치했다.

네 명은 저주협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폈다.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군.”

혈사천을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온다면 저주협을 지나는 순간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었다.

“나중에 이상하게 꼬여 제대로 못 나가는 건 아닌지 몰라. 우리 살아서 나올 수는 있겠지?”

묵경은 살짝 겁이 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용히 지낼 테니.”

고진유은 미소를 띠며 혈사천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는 이미 혈사천의 사파인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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