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76화 (176/425)

176화

고혼군장 남궁송의 죽음.

남궁세가의 사기가 단번에 꺾였다.

비록 그가 남궁삼천검은 아니었지만, 세가에서 그의 무공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남궁세가는 당황했다.

‘지금 고혼군장보다 강한 무인은…….’

남궁형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본 세가에 남아 있는 무인들은 대부분 남궁송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무공을 지녔다.

혈사천 혈귀검당의 수장, 혈귀자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없었다.

혈귀자의 비웃음이 들렸다.

“대남궁세가가 겨우 이 정도인가? 그럼 너무 실망인데? 크크크크…….”

그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다시 들렸다.

“대남궁세가는 잘 들어라!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 본인에게 도전하고 싶은 놈이 있으면 나오면 된다!”

남궁세가의 진영에서 침묵이 흘렀다.

혈귀자는 고혼군장 남궁송을 가볍게 처리했다.

그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스윽.

그때, 남궁세가의 진영 뒤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저자를 상대하겠습니다.”

“네가……?”

옆으로 다가온 청년을 본 남궁형소의 눈이 커졌다.

이공자 남궁후진.

평상시였다면 그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

겁이 나서 못 나가는 다른 인물들보다 나았다.

오히려 그가 고마웠다.

“이공자, 다칠 수 있다. 조심해라.”

“안 다칠 정도로만 하지요.”

휘익!

남궁후진은 씩 웃고는 신법을 펼쳤다.

‘흐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남궁형소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칠성신기?’

남궁후진의 신형 뒤로 일곱 개의 별이 흘렀다.

창천칠성보(蒼天七星步)를 극성으로 펼치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칠성보신기(七星步身氣)가 뒤를 이었다.

‘저 아이가……?’

“후후후…… 지금까지 우린 저 녀석들에게 속고 있었다네.”

놀란 그의 옆으로 남궁삼이 다가와 앞으로 나선 남궁후진을 가리켰다.

“일장로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후진이 태사령주패를 지니고 있더군. 저 녀석과 검황이 우리 모두를 속였던 것이지.”

“아……! 하하……!”

태사령주패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에 모든 것을 알 듯했다.

호랑이 밑에 개는 태어나지 않는다.

남궁후진의 신형이 혈귀자의 앞에 멈췄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나타났다.

“아무리 인물이 없다고 해도 아직 어린애를 보내면 안 될 텐데.”

“무공에 펼치는 데 나이가 의미는 없지 않소?”

“크크크…… 보아하니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나. 자신감에 비해 실력이 얼마나 될지 봐주마.”

파아아앗!!

남궁후진의 목을 향해 귀혈신수가 뻗어갔다.

“초장부터 심하군. 말도 없이 공격하는 법이 어디 있소?”

혈귀자의 손은 느린 듯 보였지만, 사실 정반대였다.

빠를수록 상대의 시선에는 느리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수법.

휘익!

남궁후진은 칠성보를 펼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귀혈신수의 예기가 한 치의 간격을 두고 목 앞으로 지나갔다.

혈귀자의 눈이 커졌다.

애송이가 피할 줄은 예상 못했다.

“하하! 겨우 한 수 피한 걸 가지고 놀랄 것까지는 없지 않소?”

혈귀자의 입장에서는 겨우 한 수가 아니었다.

‘우연이 아니다. 정확하게 귀수를 본 뒤 물러난 거야.’

귀혈신수의 무리(武理)가 깨졌다.

그는 목청껏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남궁후진이라 하오.”

“……남궁의 한량?”

“하하하! 맞소이다! 근데 혈사천의 인물에게까지 본인의 소문이 퍼졌소? 단번에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보니 나도 꽤 유명한가 봅니다.”

남궁후진의 기세는 절대로 한량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해보겠소?”

“…….”

혈귀수는 망설였다.

귀혈신수가 통하지 않은 이상 싸우면 불리했다.

스윽.

그때, 혈귀자 옆으로 적의 사내가 다가섰다.

눈썹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중년 사내.

“됐다. 저놈은 내가 상대하지.”

“천주님.”

혈귀자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가 이와 같이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명.

혈사천주 조탁이 남궁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할 일 없이 심심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놈이 있어서 다행이야.”

조탁은 숨을 쉴 때마다 무형살기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혈사…… 천주.’

남궁후진의 이마에 짙은 주름이 생겼다.

아버지, 남궁천문을 죽인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원수를 갚고 싶었다.

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혈사천주 조탁의 살기가 남궁후진의 호신강기를 뚫고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검황의 자식이라 다른 건가? 반항을 제법 해?”

“후우…….”

혈사천주의 살기를 밀어내는 남궁후진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혈사천주가 뿜어내는 존재감에 달려 나오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검황의 아들.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살고 싶다면 이곳을 버리고 떠나라.”

치욕적인 말이었다.

“……혈사천주. 남궁세가의 무혼을 무시하지 마라. 본 세가는 단 한 번도 외압에 굴복한 적이 없다.”

“크하하! 그럼 오늘이 처음이 되겠군! 네놈의 기개는 마음에 들지만…… 이제 실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는 녀석을 보니 후회가 되더군. 네놈은 미리 싹을 뽑아 버려주마.”

혈사천주는 오른손을 들었다.

남궁후진을 죽이기 위해 홍사장을 극성으로 올려 한 수에 쏟아내고자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피이이이잉-!!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뻗어왔다.

‘이기어검?’

“큿!”

찰나, 남궁후진을 향해 쏟아내려던 홍사장이 이기어검으로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콰아아앙!!

두 개의 기가 부딪히면서 폭발했다.

혈사천주의 몸이 휘청거렸다.

‘내가……!’

상대의 내공에 밀려났다.

‘어떤 놈이…… 내공이 얼마나 강하기에……!’

산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채 남궁세가로 다가오는 인영들.

“어이, 후진. 잘 지냈나?”

멀리서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묵경……?”

풍류옥협이 불리는 잘난 친우의 얼굴이 반가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 친구가…….’

그와 함께 다가오는 세 명의 사내 중 눈에 띄는 인물.

되돌아온 이기어검을 받아낸 사내가 바로…….

‘화산도협 고진유!’

고진유를 아는 건 남궁후진뿐만이 아니었다.

“네놈은……!”

혈사천주 조탁 또한 예전 화산파의 고독전에서 만났던 고진유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먼저 고진유가 알은척을 했다.

“혈사천주, 오랜만이외다.”

“크크크…… 많이 컸군. 본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할 정도로.”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닙니까.”

“여전히 웃긴 녀석이야. 근데 네놈이 여기에 무슨 일로 찾아왔지? 남궁세가와 네놈은 상관이 없지 않은가?”

“그건 아닌 것 같군. 중원 천지에 남궁세가와 가장 많이 상관있는 사람이 본도이지 않겠소?”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혈사천주가 말한 의미는 그 뜻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남궁세가가 망해도 네놈과는 상관이 없지 않으냐 묻는 것이었다.”

“아, 그건 신경 쓰지 마시오. 남궁세가와 본도와의 개인적인 일이고, 당신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외다.”

쉬이익!

혈사천주의 신형에서 살기가 나왔다.

“많이 건방졌어. 죽고 싶은 모양이군.”

“여전하군. 나를 보면 항상 죽이고 싶은 모양이외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싸워봐야 알 것 같은데. 누가 죽을지 모르지 않소?”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두고 볼 일입니다.”

우우우우웅-

살기에 대항하기 위해 고진유는 두 개의 단전을 단숨에 끌어 올렸다.

매화진기가 그의 살기를 단번에 지워 버렸다.

“제법이군. 소문보다 훨씬 강해졌어.”

타앗!!

혈사천주가 앞으로 다가서며 홍사장을 연이어 펼쳤다.

펑펑펑펑!

홍사장의 장력들이 폭발하며 고진유의 전신을 향해 퍼져 나갔다.

몸에 스치기만 해도 피를 뿌릴 듯한 살기를 향해 사의검이 움직였다.

스르르르륵-

홍사장의 장력들이 사의검을 따라 움직이면서 녹아들었다.

“그건…… 흡성검결?”

“매화산류라고 하죠.”

화산파에 그런 초식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겨우…… 그것으로? 믿을 수 없다.’

홍사장법의 만홍무.

극강의 살인장법을 너무 쉽게 태워 버린 무공이 매화검의 초식이라 했다.

한 초식을 펼쳐도, 고수들은 상대의 무공에 대해 모든 파악이 가능했다.

고진유의 무공은 이미 자신을 넘어서 있었다.

‘이제 이 녀석을 이기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씨익.

고진유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서로 피를 보기 전에 여기서 이만하는 게 좋지 않겠소?”

“…….”

“남궁세가를 너무 만만하게 보셨소이다. 설마 이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혈사천주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는 여전히 남궁세가는 문제가 되지 않고, 화산도협만이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다.

“이래서 사파가 안 되는군.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싸우니 결국 질 수밖에.”

남궁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존재했다.

멸문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날 진정한 힘.

‘설마 남궁세가에 그런 것이 있다고? 근데 정말로 있다면…….’

혈사천주는 망설였다.

하지만,

‘……기회를 놓쳤어.’

이제는 싸우고 싶어도 늦었다.

싸우고자 했다면 벌써 남궁세가를 공격했어야 했다.

‘이 녀석과는 꼭 한판 붙고 싶군.’

다만 화산도협과 싸운다면 굳이 남궁세가에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

“화산도협, 우리 한 번은 더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정도는 찾아갈 생각이었소이다.”

“본 천으로 온다면 얼마든지 환영하지. 기대하마.”

“여기서 물러가는 김에 청양에 있는 무리도 같이 물리는 게 좋지 않겠소?”

“그렇게 하지. 어차피 이곳을 치기 위한 미끼였으니깐.”

고진유는 돌아서려는 그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안휘성에서 당분간 조용히 지내면 안 되겠소이까?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었지 않았소?”

“그들 때문인가?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왜 그대가 신경을 쓰고 있지?”

“사부님의 원수이니까.”

“그렇군.”

“그러고 보니…… 당신, 극일천을 알고 있군요.”

“몇 놈들이 본 천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조사해 봤지. 그놈들을 잡아 사혼대법으로 알아봤을 뿐이야.”

휘익.

혈사천주 조탁은 더는 할 말이 없는지 신형을 돌렸다.

“혈사천은 물러난다. 가자.”

* * *

탁탁!

묵경과 남궁후진은 서로 반갑게 껴안았다.

“묵경, 오랜만이야. 잘 지냈냐?”

“내 소문은 많이 들려왔을 텐데?”

“하하하! 맞아. 이젠 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명성이 높아졌더군.”

남궁후진은 그와 떨어진 후 고진유를 보았다.

“그대가 화산도협이오?”

“묵경 형의 친우이지 않습니까? 편하게 하십시오.”

“하하, 성격이 마음에 드는군. 무명에게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자네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고 있지.”

“후후후. 그라면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어,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지?”

“걱정은 굳이 안 하는 편입니다. 그가 강해지면 내게 별일이라도 생기는 겁니까?”

“그렇지. 자네 말이 맞군.”

그들 곁으로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다가왔다.

일장로 남궁삼과 남궁형소의 시선은 고진유에게 향해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다 직접 그를 보자 왜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었는지 단번에 알았다.

“화산도협, 본 세가에 도움을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았어도 남궁세가에서는 혈사천을 물러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겠지만,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해주지 않았나.”

그는 조용히 끝나도록 한 것만으로 고진유에게 감사했다.

“혹시 급한 일이 없다면 안에 들어가서 차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 * *

청양에 도착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은혈사천이 물러났음을 알았다.

남궁허는 당황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 그러게 말입니다. 혈사천이 있던 곳에 갔습니다만 한 명도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정찰조가 사방을 찾아다녔지만 혈사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어…… 대체 뭔지 모르겠군.”

“형님, 저놈들이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친 게 아닙니까?”

남궁도도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궁영운은 그런 두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갑자기 팔팔해졌지?’

그동안 남궁허는 세가에서 죽은 송장처럼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자신의 뜻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기를 못 펴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쳇, 혈사천 놈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지?’

남궁영운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혈사천에 의해 남궁세가가 큰 피해를 봐야 했다.

휘이익!

그때, 남궁허 앞으로 제왕군의 수하가 다급히 내려섰다.

“군장님. 세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세가에 혈사천주가 올라왔다고 합습니다.”

“뭣이?!”

남궁허의 목소리가 청양을 울렸다.

모든 시선이 모여들었다.

혈사천주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세가에는 그를 막을 수 있는 무인은 없었다.

‘당했어. 저들의 계책에 완전히 당했다.’

남궁허는 단번에 기운이 빠져나갔다.

“청양은 미끼였구나! 당장 돌아가야 한다!”

분명 큰 피해를 당했을 게 확실했다.

“그, 그런데 세가에 화산도협이 나타나 혈사천주를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화산도협이 세가에 나타났다는 수하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말을 해라!”

“죄송합니다. 서신에 그 내용밖에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남궁세가에 돌아가야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나 그들이 물러났다면 다행한 일이군.’

“제왕군은 지금 바로 세가로 복귀할 것이다!”

“넵. 군장님.”

제왕군의 무인들은 예전의 그로 돌아온 남궁허를 보며 기뻐했다.

그동안 축 늘어진 채 기운이 없던 그였다.

‘됐어. 이제야 돌아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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