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75화 (175/425)

175화

남궁세가는 고요했다.

청양에서 다급하게 올라온 급보.

혈사천에서 청양으로 쳐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비상대책회의에 모인 남궁세가의 비상대책위는 거의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검황 남궁천문의 죽음과 남궁제일검 남궁파의 죽음에 의해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최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남궁삼은 주위를 보며 답답했다.

‘허허…… 대체 지금 뭣들 하자는 것인지. 한심하도다.’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궁삼은 일선에 나서지 않고 뒤를 받치고 따르고자 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번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일공자, 혈사천에서 내려오고 있네. 계획을 세워두었는가?”

“그건…….”

일공자 남궁영운은 대답을 똑바로 하지 못한 채 얼버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혈사천이 내려올 것이라고 예상을 미리 하지 않았나?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 않은가?”

“…….”

남궁삼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망할 영감…… 조금만 기다려라…….’

남궁영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일장로님.”

부가주 남궁형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일공자가 세가의 무인들을 모았습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청양으로 떠날 것입니다.”

“사실인가?”

남궁삼은 시선을 돌려 남궁영운을 향했다.

“사실입니다.”

“그곳에 가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청양으로 가서 혈사천 놈들을 당장 몰아낼 것입니다.”

“…….”

남궁삼은 더는 묻지 않았다.

전혀 계획이 없음을 알았다.

부가주 남궁형소가 말을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모두 잘 듣게. 청양이 무너진다면 황산까지는 그대로 들어온다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었는가?”

“걱정 마십시오. 사파 놈들은 절대로 청양을 넘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일공자와 함께하겠습니다.”

남궁창천검 남궁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행히 창천검과 무적검이 있긴 하지만…….’

남궁허의 모습은 여전히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남궁삼은 세가에서 가볍게 부르는 아호로 그를 불렀다.

“이보게, 백운.”

“넵. 말씀하시지요.”

목소리 또한 예전의 자신만만했던 그가 아니었다.

“……아니네.”

“…….”

남궁허의 기운을 차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를 찾아오게나.]

남궁허는 고개를 들었다.

남궁삼의 전음이 들렸다.

이들 다섯 명은 남궁세가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전음을 사용해 따로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지지부진한 가운데서도 비상대책회의가 거의 끝날 때쯤.

남궁도가 눈치를 보다가 의견을 꺼냈다.

“저……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본 세가의 가주직을 새롭게 뽑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오랫동안 비워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회의를 통해 좋은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세나.”

남궁삼도 바로 대답했다.

남궁도의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일장로님,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좋은 인물이 있는 모양이군.”

“바로 일공자가 적절한 인물입니다.”

남궁삼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일공자도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지금까지 본 세가에서는 추천에 의해 가주를 정하지 않았네. 그건 화운,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이 사람아. 그럴수록 세가의 위해서 나서는 인물이 필요한 법이지 않는가. 일공자가 능력이 안 된다는 말을 아니니 오해는 말게.”

남궁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장로님께서는 세가에 더 뛰어난 인물이 있다고 보십니까?”

“화운, 자네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

“그리고 가주직 문제는 급한 일부터 처리한 뒤 의논하기로 하세. 가문의 존폐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네.”

스윽.

남궁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공자와 남궁창천검 자네는 준비를 확실히 해서 청양으로 가게. 그럼 난 먼저 들어가겠네.”

* * *

장로전으로 돌아온 뒤 반시진 후.

스으윽.

일장로의 전각으로 남궁허가 찾아왔다.

“백운입니다.”

“들어오게나.”

남궁허는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넌…….”

“숙부님, 오셨습니까?”

이공자 남궁후진이 일장로와 함께 있었다.

“네가 여기에 무슨 일이더냐?”

“그 전에,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더냐?”

스윽.

남궁후진의 손에서 나온 물건.

특검신패가 틀림없었다.

“그, 그 신패를 네가 왜 들고 있느냐? 설마 네가 특검단주, 태상주패령이란 말이더냐?”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렇습니다.”

“……!!”

남궁후진이 어릴 적의 기억.

형님이신 남궁천문이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문득 기억이 났다.

“내가 그래도 자식 놈은 괜찮은 녀석을 두 놈이나 낳았다네.”

그때 셋째인 남궁정후는 겨우 두 살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첫째인 남궁영운과 남궁후진을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궁후진은 언제부터인가 가문의 뜻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첫째와 셋째를 말한 모양이라 생각했었다.

‘음……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군. 형님이 말씀하신 아들은 둘째인 남궁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어. 셋째는 역시 너무 어리고…… 그럼 다른 한 명은…….’

분명한 건 일공자 남궁영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숙부님, 앉으시지요.”

“알겠다.”

남궁허의 눈빛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죽은 이유는 고진유에게 패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또한 무인이기에 강자에게 질 수도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기운이 빠진 것은 화산도협의 존재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에는 화산도협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후기지수가 없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남궁세가의 영광도 저무는 듯했다.

그런데…….

“숙부님,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말해보게.”

남궁후진의 설명이 천천히 이어졌다.

시간이 얼마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남궁허가 몰랐던 사건들.

많은 일들을 모른 채 지나쳐 갔다.

하지만 그가 한 설명 중, 남궁허의 눈빛을 완전히 살아나게 만든 것이 있었다.

“방금…… 창천황신공(蒼天皇神功)이라 했는가?”

“네. 그렇습니다. 무명은 현재 십 성까지 익힌 상태입니다.”

벌떡!

남궁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십 성이라고?”

검황 남궁천문의 경지와 같았다.

“네. 맞습니다. 무명은 십이 성, 극성으로 깨우치기 위해 폐관을 하는 중입니다.”

“어디에 있느냐?”

“남궁밀동에 있습니다.”

“네가…… 그곳을 아느냐? 하하, 하긴 태상주패령이니 모를 리 없겠지!”

남궁밀동은 남궁세가의 가주가 차기 후계자에게 구문으로만 가르쳐 주는 장소였다.

갑자기 남궁천문이 죽는 바람에 남궁밀동을 완전히 잃어버린 줄 알았다.

‘다행이다. 하늘은…… 남궁세가를 버리지 않으셨다.’

“숙부님, 우린 무명이 나올 때까지 세가를 지켜야지 않겠습니까?”

“하하! 하하하하하!! 당연하다!”

남궁허는 대소를 터뜨렸다.

그가 말했던 두 명의 아들.

그건 남궁후진과 남궁무명이었다.

‘우리도 있어. 있단 말이다!’

* * *

청양으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사방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진유 형, 저기…….”

마을 입구에 걸인들이 담벽 아래에 앉아 있었다.

툭.

고진유는 지나가면서 동냥 그릇에 금전 한 냥을 던져주었다.

휘익!

방금까지만 해도 있던 금전 한 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걸인은 고개를 짧게 한 번 끄덕인 것밖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 접시 위에 올라가 있던 두루마리가 사라졌다.

누가 어떻게 가져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화산도협에 관한 세 가지 소문.

첫째, 그의 손을 조심해라.

세상의 모든 것을 아무도 모르게 훔칠 것이다.

둘째, 그의 검을 조심해라.

언제 어디서 그의 검이 그대의 목을 지나갈지 모를 것이다.

셋째, 그의 동료를 조심하라.

화산도협이 혼자라고 하여 유리하다고 확신하지 마라. 그의 동료들 또한 그와 같은 수준의 무인들이다.

화산도협과 그의 동료들 앞에서 수적 우위를 잊어라.

개방 걸인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고맙지요.”

고진유는 두루마리 서신을 풀었다.

주광걸에게 부탁했던 혈사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혈사천에서 혈사멸명당이 청양으로 움직인다고 하네요.”

“혈사멸명당이라면 혈사천에서 가장 강한 무력집단이야. 당주가 혈광검 규비인이지.”

“강한 인물인가요?”

“사파 무림의 인물들 중 거의 이십 위 안에 들지?”

“강한 자군요.”

“다른 인물은 안 적혀 있어?”

“없는데요.”

“흠?”

묵경은 의문이 들었다.

혈광검 규비인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혼자서 청양으로 내려올 수 없었다.

“아닐 거야. 분명 무언가 있어. 혈사천이 바보도 아니고 혈사멸명당만으로 남궁세가를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다른 계획이 있다는 건가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혈사천이 남궁세가를 건드리기로 한 이상 어설프게 하지 않을 거야.”

“하긴. 검황까지 죽였어요. 욕심이 상당히 많은 혈사천주라면 분명 딴 짓을 할 게 틀림없네요.”

고진유는 과연 그가 무엇을 원하는 것일지 생각에 잠겼다.

‘남궁세가의 관할을 빼앗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혈사천이 청양까지 내려올 정도라면 이미 남궁세가의 관할들을 많이 빼앗은 셈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게 관할지가 아니라면…….

‘설마…… 남궁세가를 직접 노리는 건가?’

청양으로 유인한 뒤 남궁세가의 본진을 공격하려는 계획.

예전이었다면 무모할 계획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했다.

남궁세가의 본진이 당한다면 안휘성은 주도권은 당분간 혈사천이 가지게 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남궁세가는 치욕을 받을 것이 확실하고 말이다.

‘오래전 남궁세가에게 당했던 치욕에 대한 완벽한 복수…….’

혈사천주는 녹림대존에게 빼앗겼던 사파제일인의 자리를 원했다.

“형, 우린 바로 황산으로 가야겠어요.”

“여기는?”

“남궁세가에서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어.”

고진유는 인양, 녹림야검과 시선이 마주쳤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자.”

“넵.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고진유와 함께 세 사람의 신형은 황산 남궁세가로 향해 날아올랐다.

* * *

남궁세가는 청양을 지켜야 했다.

일공자 남궁영운와 남궁무적검 남궁허, 그리고 남궁창천검 남궁도는 일천 오백 명의 수하들과 청양으로 떠나갔다.

혈사파의 혈귀검당 일천 혈인들은 청양으로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크크크크…….”

황산을 오르는 일천의 무리들.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본진에 남아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었다.

혈귀검당 수장 혈귀자는 황산을 오를수록 살기가 강해졌다.

남궁세가에는 검황도 남궁삼천군도 없다.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크큭…… 이번에 제대로 복수를 해주마…….”

수십 년 동안 남궁세가에게 무작정 당한 수모를 갚아줄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모든 내력을 개방해라!!”

남궁세가의 정문과 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에 살아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베도 좋다!!”

“와아아아아-!!!”

“남궁세가를 박살 내자!!”

혈귀검당의 수하들은 함성을 지르며 정문을 향해 달렸다.

“멈춰라!!”

그때, 정문이 열리면서 우렁한 목소리와 함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크크크크…… 우리가 오는 것을 알았군…….’

혈귀자는 앞으로 나오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안녕들 하시오? 본인은 혈사천의 혈귀자라고 하오.”

“혈귀자, 본인은 남궁형소라 한다. 혈사천에서 무슨 일로 올라왔는가?”

부가주 남궁형소가 상대했다.

“부가주로군. 본인이 남궁세가에 무슨 일로 오겠는가. 오늘 남궁세가는 본 혈사천에 의해 하나도 남김없이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하! 겨우 일천 명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가? 본 세가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 같군.”

“남궁 부가주, 현재 이곳에는 남궁삼천검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대가 내 상대가 될 것 같은가?”

휘익!

남궁세가의 진영에서 중년 사내가 중앙으로 나섰다.

“본인은 고혼군장 남궁송이다. 굳이 네놈들을 상대하는 데 그분들은 필요 없을 것이다. 혈귀자, 앞으로 나서라.”

“크크크…… 난 또 누구라고? 창화검이시구려!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몸이나 풀어보는 것도 좋지.”

쉬이이익-

혈귀자의 신형도 중앙을 향해 튀어나왔다.

중앙에서 마주 선 두 명의 사내.

이미 검을 뽑은 뒤 살기를 내뿜었다.

“세상이 말세군. 언제부터 혈사천이 본 세가에 겁도 없이 기어올라올 수 있었지?”

“큭큭. 언제부터라…… 굳이 따지자면 검황이 죽은 날부터겠지.”

파앗!

혈귀자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귀혈신수 초근동수(草根動水)의 초식이 남궁송의 허리와 가슴을 향했다.

퍽퍽!

그는 분명 피하고자 했지만 그대로 맞았다.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다.

“우욱…….”

남궁송은 비명을 지르며 충격에 인상을 썼다.

재빨리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고통을 밀어내고자 했다.

그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당한 것만큼 돌려주마.’

남궁송의 검에서 고혼일검이자 초식인 고혼일검이 쏟아졌다.

슈우우우욱-!!

검의 끝에서 검강 한 줄기 혈귀자의 가슴을 뚫고자 뻗어나갔다.

스르르르-

그때, 그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검강이 허공을 지나갔다.

‘이…… 것을…… 피했어?’

절대살상력을 가진 일검을 너무 쉽게 피하자 충격을 받았다.

“크크크……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남궁송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혈귀자가 움직였다.

스걱.

날카로운 예기.

귀혈신수가 남궁송의 목을 스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