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짝짝짝!!
무림맹 인사들이 손뼉을 치며 사마추에게 축하를 건넸다.
일군사 제갈문이 사임함에 따라 금맹군 자리에 사마추를 추천했을 때, 많은 이들이 당연하다면서 일제히 찬성했다.
“사마 군사, 축하드립니다. 일군사에 오르셨소이다.”
“아…… 고맙소이다.”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어쩐지 당황한 듯한 모습.
이미 기정사실로 돼버린 분위기에 사마추는 자리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가 금맹군으로 올라서면서, 비는 비맹군의 자리는 새롭게 제갈양이 맡기로 했다.
제갈양은 비록 나이는 젊지만 제갈세가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녀 제갈문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인물이라 했다.
무림맹 인사들도 그의 뜻을 받아들여 당연히 제갈양이 비맹군 자리를 맡는 것에 찬성했다.
맹주 황보강은 축하 인사를 받는 사이에서도 표정이 좋지 않은 사마추를 지켜보았다.
‘후후, 당황하고 있군. 하긴 갑작스러운 일이니 정신이 없겠지.’
스윽.
사마추가 고개를 돌렸다.
“…….”
황보강과 시선이 마주쳤다.
척!
황보강은 바로 포권을 하며 그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사마추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보강 옆으로 새롭게 이군사로 임명된 제갈양이 다가왔다.
“맹주님.”
“이군사가 된 것을 축하하네.”
갑자기 무림대전으로 들어오라는 맹주의 명을 받았다.
그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근데 갑자기 일군사였던 제갈문이 사임을 하고 사마추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느닷없이 비맹군의 수장 이군사에 자신이 임명될 줄은 몰랐다.
비맹군의 수장 이군사가 어떠한 자리인가.
맹주를 제외하고 무림맹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가 아닌가.
툭툭.
황보강은 가볍게 제갈양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군사. 앞으로 무림맹을 위해서 잘 부탁하겠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왜 자신을 택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곁에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오늘부터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부터입니까?”
“따로 바쁜 일은 없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된 터라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후후후. 자네는 바쁜 일도 없잖은가. 이젠 무림을 위해서 일을 할 때지! 따지고 보면 그동안 많이 놀았다고 보고 있네.”
“…….”
“저기 멀리 복건성에 내려가 있는 화산도협을 보게. 무림맹의 특사로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고진유가 마치 자신이 시켜서 움직이고 있다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는 겨우 약관을 넘은 나이이지만 무림을 위한 마음은 본인보다 넓다네. 이제 그대가 이군사가 되었으니 그와 의기투합해 무림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보게나.”
“예에…….”
“그리고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이야.”
‘흠. 새 부대에 담아라?’
제갈양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맹주가 말한 것은 비맹군을 말함이었다.
“알겠습니다. 하긴, 일을 하다 보면 어차피 제가 편한 사람들과 같이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의 말이 맞네. 그렇게 하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게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양은 느낌이 왔다.
자신이 비맹군을 맡아야 하는 이유.
아니, 비맹군의 수장이었던 사마추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허허, 이제 자네가 이군사겠군.”
이후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던 사마추가 다가왔다.
“얼떨결에 이런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되어서 당황스럽습니다.”
“자네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걸세. 비맹군에는 밑에 일하는 사람들이 능력이 좋아서 충분히 이군사를 잘 보필할 것이라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일군사님께서 워낙 일을 잘하시던 분이시라 비맹군의 조직이 튼튼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모든 분이 축하를 해주시니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비맹군은 한 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롭게 꾸며볼 생각입니다.”
사마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일군사께서 이루어 놓은 토대 위로 새롭게 집을 지을 생각입니다.”
“그 말인 즉슨…….”
“맞습니다. 어차피 일군사께서도 금맹군에 들어가시면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같이 금맹군으로 가시는 게 아닙니까?”
“…….”
“제가 맹주님의 말씀처럼 지금까지 놀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후후후, 그렇게 하게. 역시 젊음은 좋군. 우리 나중에 따로 또 보세나.”
사마추는 돌아서며 다른 인물들 곁으로 갔다.
‘……분명 당황한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게 많은걸.’
제갈양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먼저 할 일은 비맹군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흐흠흠…… 나하고 일을 할 녀석 중 누가 좋을까?’
제갈양은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 * *
절강성으로 들어섰다.
고진유는 허리에 묶은 철갑을 만졌다.
철갑을 열지는 못했지만, 역시 세상에서 이보다 중요한 물건은 없었다.
‘후후.’
도둑이었던 자신을 무림인으로 만들어준 물건.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맞았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어오자, 고진유가 하늘을 보며 한마디 했다.
“날씨 좋다.”
세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시꺼먼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진유 형…… 이건 태풍 같은데요?”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일 년에 서너 번은 태풍을 맞이했기에 어떠한지 잘 알았다.
감숙 출신의 녹림야검만이 살면서 태풍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태풍이 정말 대단합니까?”
“태풍이 처음입니까?”
“네에…….”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우리들 같은 무림인들에게는 제법 시원한 바람 정도라고 할 수 있죠. 거기다 태풍의 바람은 신법을 훈련하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그렇습니까?”
“섬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태풍을 열 번 이상을 맞았죠. 신법 수련할 때 정말 좋았습니다.”
“오오…… 그렇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묵경은 고진유가 한 말이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돌려 인양과 시선을 마주쳤다.
인양은 바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 * *
덜덜덜덜.
객잔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쉬이이이이잉-
세상에는 오직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빠지직.
멀리서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울렸다.
“허어…… 엄…… 청…… 나군요.”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죠. 아쉽게 태풍이 우리 있는 곳을 비껴가는 모양이군.”
‘이게 아쉽다고?’
녹림야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태풍의 위력을 실제 두 눈으로 겪는 중이었다.
“화산도협님, 정말로 이 바람에 신법을 수련했습니까?”
“거짓말 같은가요?”
“……그건 아니지만…… 믿기지 않아서…….”
“녹검 씨가 처음이라서 놀란 것뿐입니다. 일 년에 서너 번 이상 태풍을 맞이하다 보면 별것 없어요.”
“아…… 대단하십니다.”
“그렇긴 하죠. 이제 구경은 그만하고 여기에 와서 식사나 해요.”
“네에……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밖의 상황에서 눈을 겨우 돌린 채 탁자로 돌아왔다.
“푸훗.”
갑자기 고진유가 웃음이 터뜨렸다.
묵경이 한 숟가락을 들다가 물었다.
“왜 웃어?”
“이 정도 태풍이면 태주평은 쑥대밭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요.”
고진유가 말한 장소는 동영이천군의 진영이었다.
묵경의 입가에도 씨익 미소가 나왔다.
“흐응, 그러게. 나도 그 생각은 못 했네. 완전 난리가 났을 게 분명한데.”
“이틀 정도면 태풍이 완전히 물러갈 겁니다.”
녹림야검은 궁금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바람만 봐도 대충 어디로 지나가는지 알 수 있어요.”
“아하…… 역시…….”
고진유를 보는 그의 눈은 존경심이 가득했다.
“아, 인양아. 전부 연락했어?”
“네. 하오문을 통해 절강오문에 연락했어요. 무림맹 특사의 명으로 그들에게 태주에 모이도록 했으니 나올 겁니다.”
“수고했다.”
“흐음…… 한 곳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묵경이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한 곳도 안 나오는 게 아니라, 한 곳이라도 안 나온다면 절강성에서는 손을 뗄 것입니다. 분명히 제 뜻을 밝혔으니 알아서들 하겠죠.”
“…….”
“자기 집은 남이 지켜주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으니 생각을 하겠지요.”
“맞아.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지.”
쒸이이이잉-
그사이 거칠었던 바람 소리가 조금 약해졌다.
“여기는 반나절 정도만 지나면 태풍이 지나가겠어. 우린 바로 움직일 준비 하자.”
“넵. 알겠습니다.”
덜컹덜컹.
객잔의 모든 문이 태풍에 부서지듯 흔들거렸다.
* * *
태주에 들어서자 절강성 다섯 문파가 모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 곳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힘을 합쳐 동영과 싸우고자 한다는 내용.
절강오문 또한 복건성에서 올라온 소문을 들었다.
화산도협과 함께 싸워 동영삼천군을 이겼다고 했다.
절강성을 대표하는 다섯 문파인 철종파, 금화금문, 온주도방, 천비검가, 구주묵장이 화산도협의 전서를 받고 선강지로 모여들었다.
철종파 문주 정무는 하늘 위 태양의 위치를 살폈다.
“화산도협께서 오실 때가 된 것 같지 않소?”
이번에는 천비검가 가주 중형천이 대답을 했다.
“정 문주, 아직 일각 정도 남은 듯합니다. 기다려 보시지요.”
“만일…… 화산도협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들입니까?”
온주도방 방주 마성부가 걱정스레 물었다.
“…….”
그들 다섯 문파 수장들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맞소이다. 그는 그런 인물이 아니올시다.”
구주묵장 장주 숙태환과 정무는 확신했다.
“저 또한 두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화산도협의 소문을 들은 바에 의하면 약속에 대해서는 절대로 지킨다고 들었소이다.”
조용하게 지켜보던 금화금문 문주 금시랑이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끄덕끄덕.
그들 다섯 명은 서로 마주 보면서 고개를 움직였다.
일각이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고진유가 오기를 기다렸다.
“앗…….”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들 중 숙태환이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다.
“오고 있소이다.”
“보아하니 맞는 듯하군요. 여기까지 기세가 장난이 아니구려.”
동영인들에게 귀신이라 불리는 네 명의 사내들.
다섯 문파의 수장들 앞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신형에서 나오는 기세에 몸이 밀릴 정도였다.
‘단순하게 다가오는 것뿐인데. 소문보다 훨씬 강하다.’
저벅저벅.
철종파 문주 정무가 서너 걸음 앞으로 나가서 먼저 네 명을 맞이했다.
“본인은 철중파를 맡은 정무라 하외다. 네 분의 무림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외다.”
“정 문주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본도는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합니다.”
고진유의 인사가 끝나자 바로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과 연이어 인사를 했다.
다섯 문파가 한 곳도 빠짐없이 모였다.
선강지는 절강오문의 제자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제자를 데리고 왔군. 다섯 문파 모두 진심이야.’
고진유는 문파의 수장들 앞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다섯 문파의 수장들이신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화산도협, 아니외다. 당연히 이번 일은 본인들의 일이지 않소이까.”
“맞습니다. 여러분들의 고향이자 지켜야 할 곳입니다. 본도는 여러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복건성의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 텐데 본성의 일에 다시 도움을 주신다고 하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미 다섯 문파에서는 화산도협께서 오기기 전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절강성의 오문은 화산도협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섯 명의 수장들은 고진유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본도를 따르겠다고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도가 원하는 건 우리 모두가 서로 믿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따르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 밀어주고 서로 이끌어 주는 것이지요.”
‘오호…….’
고진유의 대답에 다섯 명의 수장들은 감동을 받았다.
함께하겠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여러분들의 뜻을 알았으니 지금 당장 태주평으로 가겠습니다.”
“지금…… 말입니까?”
마성부가 물었다.
어떻게 계획을 세운 것도, 정한 것도 없었다.
“하늘이 만들어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혹시 태주평에 정찰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스윽.
중형천이 손을 들었다.
“본 문, 천비검가에서 정찰을 나갔다 왔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저들 상황은 어떻습니까?”
“태풍의 피해를 받은 것 때문인지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다고 하더이다.”
“우리가 굳이 저들이 수습하도록 기다려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이번 기회를 놓일 이유가 없었다.
“맞습니다. 최고의 기회인 듯합니다.”
“정 문주님의 말씀대로 지금 바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중원에서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야지요!”
“화산도협의 명을 따르겠소이다.”
척!
다섯 명의 수장들이 포권을 했다.
“절강오문의 제자들은 태주평으로 향하라!”
“와아아아아-!!!”
철종파을 선두로 한 다섯 문파의 무인들이 태주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