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수군 도독 장료는 노기가 치솟았다.
“감히…… 무림인이 본 장에게 손을 대다니, 뭣들 하느냐? 이자를 잡아라!!”
“잠깐. 멈춰라!”
고진유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본도가 그대들에게 경고하겠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본보기로 목숨이 끊어질 것이오.”
“……!”
고진유의 경고에 부장 장수들은 몸이 멈칫했다.
그 누구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을 죄어 오는 고진유의 기에 움직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것들이……!! 이놈을 죽이지 않고 뭣들 하느냐?! 나에게 죽고 싶은 것이더냐?!!”
장료의 악을 쓴 고함에 그들 중 세 명의 부장 장수가 검을 내리쳤다.
“경고했건만.”
고진유는 여전히 한 손으로 장료의 어깨를 잡은 채 떨어지는 세 자루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허억……!’
너무 쉽게 피하자 세 명의 부장 장수들이 당황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뭔지 아시오?”
퍽퍽퍽!
“그건 말을 하면 알아듣는다는 것이지.”
권기도 아닌 권강이 세 명의 가슴에 쏟아졌다.
“커어어억.”
“우우욱!!”
묵직한 타격 소리를 내는 동시에 세 사람의 숨이 단숨에 끊어졌다.
고진유의 손에 잡혀 있던 장료도 어떻게 수하들에게 공격을 했는지 보지 못 했다.
“또 없소?”
“…….”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나머지 일곱 명의 부장 장수들은 몸이 굳어졌다. 그들은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소문으로 듣던 화산도협의 무공을 직접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움직이면 죽는다.’
그들은 두려움에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지 못했다.
장료는 한 손에 어깨를 잡힌 채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왜…… 움직일 수 없지?’
빠져나가고자 힘을 냈지만 그때마다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밖에 대기한 일천 명의 기마군사들에게 소리를 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진유는 복건성주 문휴에게 물었다.
“성주님께 여쭈어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할 도독이 반역을 논했다면 어떻게 처리하는 게 맞습니까?”
“황제에 대한 반역. 일국에 대한 반역은 죽음으로 처리하는 맞을 듯하오.”
“성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빠지직!
고진유는 장료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악!!”
어깨, 견갑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나왔다.
고진유는 여전히 그를 잡은 채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일천 명의 기마군사들에게 잘 보이도록 장료를 끌고 앞으로 나갔다.
웅성웅성.
기마군사들 사이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본도는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한다.”
웅성웅성.
또 한 번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화산도협 고진유의 이름을 모르는 중원인은 없다.
“여기 이자는 왕부를 무시했으며 나아가 황제 폐하까지도 무시했다. 이는 당연히 반역에 해당하는 죄이다. 또한 얼마 전, 일국의 중요한 재산인 화포까지 사사로운 사익을 위해 왜구에게 팔았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자는 극형에 해당한다.”
고진유는 뒤에 나온 복건성주 문휴에게 물었다.
“성주님께 묻겠습니다. 이와 같은 죄를 진 자는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사형이오.”
“이번에는 명군왕께 묻겠습니다. 죄인의 죄는 사형이라 했습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실행할 수 있습니까?”
“본왕의 권한으로 역적의 죄를 지은 자는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일 수 있소이다.”
척!
고진유는 다시 일천 명의 기마군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잘 들었는가? 본도는 이 자리에서 죄인의 죄를 물어 집행하고자 한다. 이 자의 목을 베도 되겠소이까?”
“허락한다.”
명군왕의 명이 떨어졌다.
술렁.
기마군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우우우우웅-
고진유는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목소리에 실었다.
“모두 조용히 하라.”
“…….”
내력이 얼마나 컸는지 왕부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대들은 나라의 군사인가? 아니면 죄인의 수하인가?”
기마군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고진유는 호흡을 다시 한 뒤 소리쳤다.
“그대들이 나라의 군사이라면 왕부 밖에서 기다리고, 죄인의 수하라면 덤벼라. 본도가 모두 상대해 주겠다.”
파아앗!
고진유는 기다릴 것도 없이 사의검으로 장료의 목을 내리쳤다.
촤아아앗!!
일천 명의 기마군사들이 보는 앞으로 수군 도독 장료의 머리가 떨어졌다.
누구도 그의 머리가 잘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집행을 허락한 명군왕도 이 자리에서 벨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기마군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저자가…… 도독님을 죽였다!!”
“도독님의 원수를 갚자!!”
“원수를……!!”
검을 뽑은 뒤 십여 명이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순간ㅡ
스걱. 슥.
퍼억. 퍽.
휘이이익! 휘익!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열 명의 목이 잘리고 머리가 깨졌다.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선동자에게 동조했던 동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보지도 못했다.
휘이익!
고진유 앞으로 묵경과 인영, 그리고 녹림야검이 내려섰다.
“크크크크…… 모두 덤벼라. 화산도협님께 볼일이 있는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녹수검으로 목을 잘라주겠다!!”
녹림야검의 괴소에 기마군사들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때, 장사 소군동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모두 왕부 밖으로 물러나라!!”
장료가 죽은 이상 장사의 신분인 그가 책임자였다.
화산도협과 그의 일행의 무력이 어떠한지 뼈저리게 알았다.
오천 명의 동영 무사들과 이긴 존재들이었다.
상대는 작정이라도 한 듯 장료의 목을 너무 쉽게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수하들을 살려야 한다.’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무림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수군 도독을 베면, 그의 수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들은 특이한 존재들이다.
생김새만이 자신들과 닮았다고 여겨야 하는 종족들.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그들이 어떠할 것이라 생각하고 바라보면 안 되었다.
‘생각 자체가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무림인들과 다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기마군사들도 반역의 죄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소군동의 말을 따르며 왕부 밖으로 나갔다.
썰물이 빠지듯 기마군사들이 밖으로 나갔다.
소군동은 그들이 완전히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린 뒤, 고진유 앞에 다가서서 허리를 숙였다.
“소장은 소군동이라 합니다. 죽은 그의 부관이며 장사의 직위를 맡고 있습니다.”
“이젠 당신이 책임자란 말이오?”
“그건…….”
직분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그를 따라줄지 알 수 없었다.
명군왕과 성주가 옆으로 다가왔다.
“화산도협, 소군동 장군은 사리에 밝은 분이오.”
“또한 예를 잘 아는 분이외다.”
두 사람은 소군동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군요. 두 분께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라면 뒷일을 맡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뒷일?’
두 사람은 고진유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장료가 죽었다고 하나 수군에는 아직도 그를 따르는 장수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화산도협의 기에 눌려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들도 살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
차라리 소군동이라면 왕부와 성부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씩 장료의 최측근 세력들을 정리하면 된다.
명군왕과 성주의 생각도 같았다.
“문 성주, 본왕도 화산도협의 의견이 좋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왕야, 좋은 의견인 듯합니다.”
“성주께서도 찬성을 하니 소군동 장군에게 수군을 통제할 수 있는 임시 도독의 직책을 맡기는 게 좋겠군요.”
‘내가…… 수군을 맡는다고?’
소군동의 표정이 밝아졌다.
임시라 하나 왕부와 성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위를 준다면 대부분의 병사들이 따를 게 확실했다.
“소 장군이 현재 공석이 된 도독의 직을 대신해서 맡을 수 있도록 장계를 올리도록 하겠소이다. 그동안 임시직이지만 남방 수군을 잘 부탁하겠소.”
“부족한 소장에게 막중한 능력을 주신 듯합니다. 왕야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소 도독,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이다.”
소군동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장사에 힘들게 올랐지만 도독까지 오를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소장,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 *
스윽.
중년 사내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단한 인물이군. 무림맹에 몰래 잠입을 한 것도 모자라 맹주전까지 들어오려고 하다니.”
맹주 황보강은 숨어들어온 인물을 기다렸다.
한데, 문밖까지 다가온 인물이 예상외로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냈다.
“화산도협께서 보내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야밤의 방문자 입에서 나왔다.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흑의복면인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황보강은 침상에 걸터앉았다.
“어디서 왔는가?”
“지옥혈림에서 왔습니다.”
“하하, 지옥혈림이라면 화산도협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곳이거늘. 그 녀석, 능력도 좋군.”
황보강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뭐 자세한 사정이야 있겠지. 일단 화산도협이 그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 있습니다.”
흑의복면인은 가슴 안에서 서신을 꺼낸 뒤 내밀었다.
“화산도협이 보낸 것이오?”
“그렇습니다.”
황보강은 서신을 받은 뒤 천천히 폈다.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두려웠다.
고진유의 글씨가 확실했다.
‘이거 참…….’
황보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긴 했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사실로 드러나니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전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소이다. 안 들키게 조심하시오.”
휘익.
흑의복면인의 신형이 맹주전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지옥혈림이라. 저들의 진정한 정체가 궁금하긴 하군.’
황보강은 복면인이 사라진 뒤 다시 한 번 더 서신을 읽었다.
“……이상하긴 했어.”
복건성에서 올라온 소문을 들었다.
화산도협이 동료들과 함께 복군성의 세 개 연합문파를 도와 동영과 싸워 이겼다.
이상한 것은 복건성 문파들이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협이 있어 연락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했었지만…….’
고진유가 보낸 서신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복건성의 문파들은 일찍이 연락을 보냈다고 했다.
다급하게 서신을 올렸지만 무림맹에서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맹주 황보강도 마찬가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누군가 일부러 사전에 막았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를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 그런 임무를 맡은 곳은 한 곳밖에 없다.
이군사 사마추.
중원 각지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비맹군의 수장.
문제는 복건성의 장계만 중간에서 거두었다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새외 무림에서 모두 들어왔다면 큰일인데.”
동영의 경우처럼 이미 중원에 들어섰다면 무림맹이 나서기에는 이미 늦었다.
무인들을 모집한 뒤 움직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림맹에서 당장 새외무림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건 힘들지만, 그나마 그 녀석이 있어 다행이군. 동영은 그 녀석이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남은 곳은 셋…… 화산파에서 사천으로 간다면 본 무림맹이 신경 쓸 곳은 두 군데뿐이겠구만.”
네 곳의 새외무림 중 동영과 서장을 제외하면 북해빙궁과 남방 독문이 남는다.
“북해빙궁은 내려올 가능성이 없다고 했고. 무림맹에서는 남방 독문만 상대하면 되겠군.”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직 무림맹으로 소식이 전해져 오지 않은 상태에서 남방 독문에 대항하기 위해 무인들을 보낸다고 한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군.’
마땅히 좋은 방법이 없었지만, 황보강은 바로 그 사람을 떠올렸다.
“이 문제는 날이 밝는 대로 그분께 의견을 물어봐야겠군.”
* * *
아침이 밝았다.
황보강은 사람을 보내 일군사 제갈문을 찾았다.
잠시 뒤, 맹주전으로 그가 찾아왔다.
황보강은 들어선 그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찍부터 귀찮은 걸음을 하시도록 해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맹주께서 차를 마시자고 사람을 보내지 않았소이까. 당연히 와야지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황보강은 다관을 들어 그의 앞에 차를 따랐다.
평소라면 시녀가 할 일이었다.
“맹주가 따르는 차라 향이 더 나는 듯하외다.”
“후후후. 그렇습니까?”
황보강과 제갈문은 서로 마주 보며 찻잔을 들었다.
찻잔에 가볍게 입을 대는 제갈문과 달리 황보강은 한입에 차를 들이켰다.
제갈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소이다?”
“본인이 잠시 물렸습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구려.”
“그렇습니다. 여기…….”
황보강은 어제저녁 지옥혈림의 인물에게 받은 서신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한번 읽어보십시오.”
제갈문은 서신을 펼치며 내용을 읽었다.
“흠…….”
그는 한 자도 빠짐없이 전문을 읽어내렸다.
“심각한 내용이구려.”
“정말로 새외에서 모두 중원에 들어와 있다면, 그들이 행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일 경우 늦습니다.”
“맹주께서 본인을 부른 이유를 알겠소이다. 본 맹의 눈과 귀를 막은 곳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로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습니까?”
비맹군을 무턱대고 칠 수는 없었다.
“증거도 없이 강압적으로 한다면 당연히 반항하겠지요. 서로 좋게 넘어가는 방법으로 사마 군사가 떠나도록 해야지 않겠소이까?”
“오? 제갈 군사께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허허허.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소이다.”
황보강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
“본인은 이제 나이가 많아 정신이 맑지 못한 경우가 많소이다. 무림맹의 앞날을 위해 일군사의 직책을 내려놓을 때가 온 것이지요.”
“……!”
황보강은 여기까지 들었을 때 어떠한 말을 할지 이해가 되었다.
“이군사에게 본인의 뜻을 전하고 일군사의 자리에 올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군사가 맡았던 비맹군은 제갈양, 그 아이에게 맡기면 적당하겠군요.”
“하하, 군사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당장 움직이도록 하겠소이다.”
황보강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시진 후.
무림대전으로 당주급의 인물들이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