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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71화 (171/425)

171화

복주에서 북소연을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는 황제의 셋째 형제인 번왕, 명군왕이 다스리는 왕부가 있었다.

고진유는 절강 태주로 올라가기 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동영의 무리들에게 나라의 화포를 밀거래한 수군 도독의 일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군 도독 장료.

그녀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남방수군의 총책임자라 했다.

“진유 형, 굳이 왕부를 찾아온 이유가 있어요? 무림과 관은 서로 상관하지 않잖아요.”

“될 수 있는 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맞아. 하지만 나라의 화포가 중원 무림에 상대로 피해를 준다면 나설 수밖에 없지.”

“명군왕을 만나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줘야지.”

“그러고요?”

“끝.”

“그게 전부인가요?”

“황제의 동생이잖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보는데. 될 수 있는 한 서로 간섭을 안 하는 게 좋잖아.”

“…….”

묵경은 멍한 표정을 짓는 인양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후후후, 진유 아우에 대해서 잘 알잖아. 저렇게 말해도 막상 일이 생기면 제일 앞에서 움직일걸?”

묵경의 말이 맞았다.

고진유는 그런 성격이었다.

처음 먼저 던지는 대답은 늘 무심했다.

하지만 정말로 고진유에 대해 아는 이라면 그가 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진유는 일행 뒤에서 따라오는 그녀를 보았다.

“따로 할 일이 없는가 봅니다.”

“그러게요. 당분간은 없을 듯해요.”

“일이 없다고 해도 찾아서 해야 하지 않소? 대주라는 높은 직책을 지닌 사람이 일도 안 하고 적과 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부에서 싫어할 것 같은데.”

“걱정해 주시는 것을 알겠지만,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 올 테니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그리고 본 림에서도 화산도협에 대해선 신경 안 쓰기로 했으니 별문제 없을 거예요.”

“누구 맘대로?”

“그거야 우리 맘이죠. 어떤 걱정도 안 해도 됩니다.”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경이 쓰여서 하는 말이오.”

“내가 옆에서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밥을 사달라고 하나, 옷을 사달라고 하나?”

“계속 뒤에서 본도를 주시하는 느낌이 드니까.”

“흥, 알겠어요. 신경 안 쓰게 해줄게요. 내가 당신을 안 보면 되는 거죠?”

북소연은 뒤로 돌아섰다.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그게 결책이오?”

“말 시키지 마세요. 모르는 사람처럼 조용히 있어야 해서 말이죠.”

“그렇게 하시오. 서로 편하게 꼭 약속 지키시오.”

고진유는 그녀를 뒤로한 채 왕부로 향해 다가섰다.

‘흥……! 무슨 사내가 한마디도 안 져.’

* * *

명군왕부의 정문으로 다가섰다.

거의 육 척의 거대한 병사들이 정문 앞을 지키고 섰다.

정문 병사는 도포를 입은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붉은빛이 도포에 연하게 비쳤다.

‘매화도의?’

도포에 비친 붉은색은 매화 문양이 분명했다.

정문 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사께서는 무슨 일이시오?”

“본도는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오. 명군왕을 뵈러 왔소이다.”

“……!”

그 또한 화산도협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유문협은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

그곳에서 동영에서 온 오천 명과 싸워 이겼다고 했다.

“그대가 정말…… 화산도협님이시오?”

“확인해 보고 싶소?”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왕야께 전언을 올리겠습니다.”

“천천히 해도 됩니다. 급하지 않으니.”

고진유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정문 병사는 다급하게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왕부전으로 들어간 뒤 반각도 지나지 않아 오사모를 쓴 중년 사내가 정문으로 다가왔다.

‘저들이 소문의 그들인가? 근데…… 왕부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일까?’

정문 앞에는 네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보였다.

사내 중 한 사내는 소문처럼 전설상의 송옥을 연상케 했다.

그의 옆으로 도포를 입은 청년이 보였다.

“화산도협이시오?”

“본도이외다.”

“무림의 젊은 영웅을 뵙게 되어서 반갑소이다. 본인은 명군왕을 모시고 있소이다.”

“본도가 어떻게 부르면 되겠소이까?”

“편하게 선생이라 부르시지요. 이름은 후영이외다.”

“후영 선생이시군요.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후영은 함께 온 일행을 가리켰다.

“동료들이신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왕야를 뵈러 왔다고 들었소이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인지 미리 알 수 없소이까?”

“수군 도독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명군왕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무림인의 이유가 뜻밖이었다.

“수군 도독이라면…… 장료 대장군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장료 수군 도독의 문제로 무림인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소이다. 본인을 따라 들어오시지요.”

* * *

고진유와 일행은 왕부의 여러 건물 중 황류전으로 안내를 받았다.

황류전에서 기다린 지 이각 정도 지났을 때 후영이 명군왕을 모시고 찾아왔다.

오 척 반 정도의 키.

넓적한 얼굴에 짙은 눈썹.

명군왕은 얼굴은 호인상(好印象)이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고진유를 반겼다.

“하하하! 왕부에 잘 오셨소이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진심이 들어 있었다.

“명군왕을 뵙습니다. 고진유라 합니다.”

“그대가 화산도협이란 무인이구려. 그리고…….”

명군왕은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과 시선을 마주친 뒤 한 명씩 반갑게 인사를 했다.

녹림야검이 뒤에서 전음을 보냈다.

[인양아, 황제의 동생이라 해서 엄청 거들먹거릴 줄 알았는데 사람 좋아 보인다.]

[그러게요. 나도 황족은 처음이라…… 형 말대로 사람은 좋아 보이네요.]

명군왕은 고진유의 손을 맞잡은 채 아래위로 계속 움직였다.

“며칠 전에 그대들의 소식을 들었소. 무림의 영웅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어서 자리에 앉도록 하시오.”

“고맙습니다.”

“아, 그렇지. 후영 선생에게 듣기로는 장료 도독의 문제로 왔다고 들었네만, 사실이오?”

“며칠 전에 동영과 싸우는 도중 그들의 진영에서 화포를 발견했습니다.”

“화포? 방금 화포라 했소?”

“그렇습니다. 동영의 진영에 있던 화포를 보니 홍이포가 확실했습니다.”

“허어…… 혹시 잘못 본 게 아니오? 왜구 놈들이 어찌 본국의 화포를 지니고 있단 말이오?”

명군왕의 목소리는 믿기지 않는 듯 들렸다.

“본도 또한 쉽게 믿지 못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허허…… 화산도협의 말을 믿겠소이다. 그럼 그들의 화포는 지금 어디에 있소?”

“화포가 어디에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화포를 몰래 그들에게 팔았는가입니다.”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이런. 본왕이 실수를 했군요.”

심각한 범죄였다.

다른 물건도 아닌 화포를 가장 악랄한 왜구에 넘겼다.

장료의 문제로 왔다면 화포를 넘긴 인물이 바로…….

“화포를 팔아넘긴 인물이 수군 도독 장료이라 하더군요.”

쿵!

명군왕은 잠시 말문이 막힐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 게 정말이오?”

“화포를 샀던 왜구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그렇구려.”

그는 옆에 선 후영에게 물었다.

“후영 선생,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소?”

“왕야, 화산도협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반역죄에 해당할 만큼 큰 죄질입니다. 당장 그를 잡아서 황성으로 압송시켜야 합니다.”

“…….”

명군왕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비록 번왕이라고 하나 병권은 이미 도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후영도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복건성부가 있다고 해도 그곳 역시 병권은 수군도독 장료가 장악한 상태였다.

“그럼, 그에 대해 알려 드렸으니 우린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명군왕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화산도협, 잠시만, 제가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후영은 곧바로 명군왕부와 복건성부의 사정에 대해 정확히 말했다.

복건성의 모든 병권은 수군 도독 장료가 지녔다는 것을 말이다.

“본도에게 그 말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반역죄를 지었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외다.”

“왕부에서 하지 못한다면, 나라에서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증거에 관한 확인조차 조사하지 않고 어찌 나라에 무작정 장계를 올릴 수 있겠소.”

“그럼 손 놓고 구경을 해야 하는 것이군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

수군 도독 장료인 그가 겁 없이 화포를 왜구에 넘긴 이유를 알 듯했다.

“화산도협께서…… 도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수군 도독을 처리하는 일은 일개 무림인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봅니다.”

“화산도협, 그대의 말이 맞소이다. 하지만 황제를 받들고 백성을 위해야 할 인물이 사사롭게 사익을 위한다면, 비록 왕부에서 힘이 없다고 하나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이다. 왕부에서 당장 그를 잡을 수 없지만, 영웅이신 화산도협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영은 고진유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전해졌다.

“후영 선생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인 것을 잘 알겠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본도가 수군 진영으로 가서 그를 잡아 온다면 무림에서 개입했다는 괜한 오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하니 그것보다는, 그를 왕부로 오게 만들어 우연히 함께 한자리에서 처리했다고 한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듯합니다.”

명군왕과 후영은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알겠소이다. 그를 왕부로 부르겠소이다.”

* * *

두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가 명군왕부를 향해 울렸다.

일천 기의 기마대 사이에서 움직이는 사두마차 위로 수군도독기가 펄럭거렸다.

“귀찮게…….”

명군왕의 부름이 수군 군영에 전해졌다.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라도 번왕이 부르면 갈 수밖에 없었다.

“훗. 자신의 위치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인가? 멍청한 놈. 아무리 번왕이라 하나 힘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이번에 확실히 보여줘야겠군.”

그때, 마차 가까이 장사 소군동이 다가왔다.

“도독님, 명군왕부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

“왕부 안에서는 말을…….”

“이보게, 소 장사. 상관없으니 그대로 마차를 몰아.”

“알겠습니다.”

왕부에 도착한 도독과 일천의 기마군사들이 외성의 정문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내성 위 망루에 선 고진유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왕부에는 원래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게 맞습니까?”

“왕야는 물론 황제 폐하께 대한 불충입니다.”

후영이 앞으로 나오며 설명했다.

“그의 죄가 하나 더 추가되는군요.”

“저어…… 정말 장료 도독이 군사들과 들어와도 괜찮겠소이까?”

“명군왕과 만나는 자리까지 들어오지는 않을 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만…….”

“상관없습니다.”

고진유는 웃음을 보였다.

아무리 일천이 넘는 군사를 데리고 오더라도 수장이 사라진다면 의미가 없다.

“내려가시지요.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의 계획은 간단했다.

명군왕과 만나는 자리에서 장료를 잡을 것이었다.

* * *

저벅저벅.

장료가 군장을 한 채 십여 명의 부하 장수들과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명군왕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인물들이 보였다.

“훗. 복건성주 문 대인께서도 오셨구려. 오늘 무슨 날인가 봅니다.”

“어서 오시구려. 도독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이다.”

문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왕부에 들어온 뒤 명군왕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장료를 잡을 것이라 했다.

잡을 수만 있다면.

성주 문휴 또한 도독이 하는 일이 불법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성부의 병권 또한 도독 장료의 부장들이 장악한 상태였으니까.

털썩.

장료는 두 사람이 앉기 전에 그들을 지나쳐 상석의 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으로 부장들이 위협적으로 나란히 섰다.

“그래, 왕야께서는 무슨 일 때문에 본장을 부른 것이오?”

“…….”

명군왕의 얼굴에 노기가 올라왔다.

“허허. 왕야의 표정을 보니 꼭 본장을 죽일 듯하외다. 혹시 아침에 먹은 게 잘못된 게 아니오?”

장료는 비웃으며 살기를 비쳤다.

스윽.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명군왕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때,

덜컹.

문이 열리며 후영과 함께 고진유가 들어서며 소리쳤다.

“무례하군. 일개 도독이라는 자가 일국의 명군왕에게 협박을 하다니. 당장 뒤로 물러나지 못할까?”

휘익!

장료의 부장 장수들이 앞으로 달려 나오며 고진유를 향해 검을 뽑았다.

철컥철컥.

장료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걸었다.

“보아하니 도사 놈 같군. 누구냐?”

“보시는 바와 같이 본도는 도사로,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한다.”

“……!”

고진유가 이름을 밝히자 검을 겨눈채 포위했던 부장 장수들이 움찔거렸다.

“화산…… 도협.”

부장 장수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들이 군에 있다고 하나 무공을 익혔으니 화산도협의 명성을 모를 리 없었다.

장료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화산파 도사가 여기에 무슨 일로 있소?”

“당신을 나라의 반역죄로 체포하겠소이다.”

“나를……? 반역죄로? 크하하하하!!”

장료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명군왕과 문 대인을 노려보았다.

“지금 뭣들 하는 짓이오? 본장에게 반역죄라 했소? 당장 죽고 싶소?”

“……!”

명군왕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날 듯했다.

“일국의 도독이 번왕께 협박을 드러내고 하는군. 본도가 비록 무림인이라 해도 더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휘익!

고진유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허억!’

장료뿐만 아니라 고진유를 포위했던 부장 장수들이 순간 소스라쳤다.

고진유가 언제 움직였는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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