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질풍단주 청본의 죽음으로 질풍단의 사기는 단번에 떨어졌다.
파앙!! 파아아앙!! 팡!!
게다가 말 위를 뛰어다니며 권강을 쏟아내는 인양의 무공은 마치 권왕을 보는 듯했다.
‘허어…… 언제 권강까지?’
묵경도 권강을 펼치는 인양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하하하하! 받아라!!”
인양은 웃음은 동영 무사들에게는 광소(狂笑)를 연상케 했다.
공중에서 아래로 펼치는 권강을 그들은 막아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말들이 울었다.
“히이이잉-!!”
“히이이이잉!!”
스거걱. 스윽-
녹림야검이 살인, 아니, 살마를 펼치고 있었다.
그의 살영신법이 붉은 안개를 만들어내며 말들의 심장을 베었다.
쿵! 쿵!
쿵!
녹림야검이 지나갈 때마다 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저들은…… 대체…….’
삼인의 싸우는 모습을 본 삼문연합군의 무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화산도협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
이들 세 명의 무공도 자신들이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삼문연합군의 무인들은 그들을 보면서 평소보다 서너 배의 힘이 솟구쳤다.
“와아아아아-!! 왜놈들을 죽여라!!”
* * *
삼천군장 전중후명은 유문협의 상황을 망연자실 쳐다보았다.
“저어…… 저…… 놈들이…….”
질풍단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노기가 솟구쳤다.
“일대장, 당장 선봉을 서라! 당장 저놈들을 잡아서 사지를 잘라 버리겠다!!”
질풍단이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둥둥둥둥둥-!!
오천 명의 대군이 유문협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그들이 접근하기 시작하자마자, 방금까지만 해도 질풍단을 도륙하던 적들이 뒤로 물러났다.
“크하하하!! 이놈들이 겁을 먹었구나!!!”
전중후명은 대소를 터뜨렸다.
“저놈들을 쫓아라!!”
더 두고 볼 것도 없었다.
유문협을 단번에 빠져나가야 했다.
‘멍청한 놈들. 협곡 안에서 우리를 상대하면 더 유리한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적은 인원으로 다수의 상대와 싸울 때는 협곡이나 좁은 지역에서 싸우는 게 유리했다.
동영삼천군이 유문협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넓은 평야에 모여 있는 진영이 보였다.
많아봤자 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더도 볼 것 없이 밀어붙이면 끝이겠어.”
그때,
뿌우우우웅-
나팔 소리와 함께 모여 있던 무인들이 타원을 그리며 진형을 바꿨다.
전중후명은 학익진으로 변하는 상대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화산도협이라 했나? 무공만 강하지 이런 대규모의 싸움은 아직 햇병아리군. 학익진을 완성하려면 후방을 막아야…….”
다다다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방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두에서 해파창기가 펄럭거렸다.
‘저놈들은…… 숭의창가?’
복건성의 삼대 문파가 모두 모였다.
세 문파에 의해 만들어진 학익진에 완벽히 포위되었다.
“천군장님, 학익진에 포위가 되었습니다……!”
“학익진은 무슨! 중원 놈들은 진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군. 이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전중후명은 학익전에 대해 잘 알았다. 약점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
“학익진을 깨는 방법은 쉽지. 뒤를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야. 일대장! 저기 중앙을 향해 무조건 뚫어라!”
“넵!!”
일대장 산하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일대는 나와 함께 학인진을 뚫는다!”
“중원 놈들을 죽이자!!”
산하와 함께 그의 수하들 일천 명이 중앙으로 향해 달렸다.
‘훗. 저기 오는군.’
결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채애애앵!!
고진유는 허리에서 사의검을 뽑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자줏빛 검신이 사방을 비췄다.
“복건 무림의 형제들이여! 무기를 하늘 위로 들고 소리를 질러라!”
“와아아아아-!!”
삼문연합군의 무인들이 고진유를 따라 함성을 질렀다.
“오자께서 필사즉생 항생즉사라 하셨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저 왜구 놈들을 필히 죽일 수 있다. 무림의 영웅들이여, 본도를 따르겠는가!”
“와아아아-!! 화산도협님을 따르자!!”
“왜구 놈들을 한 놈도 살려주지 마라!!”
고진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삼문연합군의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학인진에 갇힌 동영삼천군을 향해 달렸다.
번쩍!
콰아아앙-!!
사의검을 휘두르자 달려오는 동영 무사들의 사이에서 매화검강이 폭발했다.
“으아아악!!”
“커어어어억…….”
의검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동영 무사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단 두 번의 움직임에 삼십여 명이 바닥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파아아앗!!
자줏빛의 검신에서 흐르는 자색의 검강을 보는 순간, 동영무사들은 죽음에 빠져들었다.
‘저, 저…… 자가…… 화산도협…….’
일대장 산하는 몸이 떨렸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러기에 조심하자고 했거늘…….’
눈앞에서 자주색의 검신을 든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앞을 막아선 수하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며 어느덧 바로 앞에 나타났다.
“당신이…….”
“그렇소.”
산하는 그의 한마디만을 들었다.
휘이이익!!
사의검이 머뭇거리지 않고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우우욱.’
가슴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화산도협을 봤을 뿐이었다.
산하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망할…….’
일대장 산하의 죽음으로 동영삼천군의 기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삼문연합군의 기세는 한층 더 올라섰다.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의 무공은 그들이 생각했던 이상이었다.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삼천군과 싸우면서 몸으로 깨우쳤다.
필가도에서 상대했던 동영 무사들과 이들은 다르지 않았다.
이대장 전문, 사대장 길전, 오대장 지전의 목숨도 이미 세 명에 의해 끊어졌다.
삼천군장 전중후명은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는 수하들을 보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물러나지 마라!! 앞으로 나가서 저놈들을 죽여라!!”
그가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지만, 수하들은 두려움에 의해 오로지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스으윽.
전중후명은 옆으로 내려서는 인물을 보며 돌아섰다.
“당신이 동영삼천군의 수장인가?”
“네…… 놈은……?”
“중원 말을 할 줄 아는군. 중원에서는 본도를 화산도협이라 한다.”
“화산…… 도…… 협.”
“그만 끝날 때가 된 것 같소이다.”
파아아앗-!!
전중후명의 검이 한 줄기 빛처럼 뻗어나왔다.
일검필살(一劍必殺).
오직 공격만을 위한 일검.
모든 것을 일검에 목숨을 담았다.
스걱.
검날 끝으로 느껴지는 느낌.
‘이겼…… 다.’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 앞으로 흰색의 천 조각만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없…… 어……?’
천 조각과 함께 쓰러져야 할 그가 보이지 않았다.
“우욱?”
전중후명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좋은 승부…… 였다.”
쿠우웅.
전중후명의 신형이 앞으로 넘어졌다.
* * *
유문협에서의 대결전은 끝이 났다.
복건성 세 문파의 연합.
장주심가와 천주문, 그리고 숭의창가의 힘으로 동영삼천군을 복건성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중원에 들어온 동영이천군과 본토에서 본진이 들어오지 못한 동영일천군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문협의 대결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인물은 고진유와 묵경이 아니었다.
그동안 조용했던 새로운 인물들이 알려진 것이다.
인양이 보여준 권강은 인상적이었다.
중원인들은 인양을 가리켜 의제권협(義弟拳俠)이라 불렀다.
그리고 동영 무사들에게 가장 두려움을 줬던 인물, 녹림 출신의 녹림야검에게는 녹검살협(綠劍殺俠)이란 별호가 붙었다.
* * *
‘여기에 있다고?’
복주 오산.
겨우 해발 오십 간도 되지 않은 작은 동산은 숲으로 된 길을 따라 이어진 절경이 봉래선경이라 부를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답네.’
주위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걷는 여인.
오산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멀리 작은 정자가 보였다.
‘찾았다.’
발을 뻗은 채로 편안하게 앉아 있던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왔소이까?”
“…….”
북소연은 무슨 말을 할지 망설였다.
며칠 전, 산동성에서 급히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그들의 소식을 들었다.
동영삼천군과 한판 제대로 붙었다는 소문은 어딜 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혼대로 들어온 전서.
거기에는 복주 오산에서 기다리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를 만나면 하나부터 열까지 따질 생각이었다.
“먼 길을 왔을 텐데.”
“괜찮아요. 어차피 마차 타고 다녀서 편하니까. 당신은 여기서 뭘 하고 있죠?”
“보시다시피 기다리고 있지 않소.”
“…….”
북소연이 정자에 올라섰다.
“다른 분들은 어디에 갔나요?”
“마을에 술 한잔하러 갔소이다.”
“내려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저쪽 길로 내려갔을 겁니다.”
고진유가 가리키는 방향은 거의 낭떠러지와 비슷할 정도로 길이 아니었다.
“오는 길에 소문을 들었어요. 제법 큰 싸움을 했더군요. 몸은 다치지 않았나요?”
“본도의 안부를 물을 줄은 몰랐지만, 여하튼 고맙소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튼튼합니다.”
스윽.
고진유는 한편에 놓아둔 철갑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철갑입니다. 약속대로 먼저 보여주는 겁니다.”
그녀는 천을 풀었다.
여전히 닫혀 있는 철갑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만능자를 찾지 못했나요?”
“찾았소. 그분을 만나기 위해 장백산까지 갔다 왔지요.”
“그럼……?”
“그분도 열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이 물건을 만든 천공공이란 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소.”
“그래서…… 복건성까지 내려온 것이군요. 천공공은 찾으셨나요?”
“아니. 본도가 철갑을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극일천에서 먼저 선수를 쳤소.”
“…….”
고진유의 말은 결국 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것을 열 방법을 찾긴 했소이다.”
“여는 방법을 안다면 바로 열면 되지 않나요?”
“열쇠가 바로 천주의 피더군요.”
북소연은 고진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그의 피를 구하지 못하면 철갑을 열지 못한다는 말이잖아요.”
“그의 피만 있으면 엽니다.”
“어떻게 피를 구해요? 차라리 그를 죽이는 게 더 빠르겠군요.”
“그렇소.”
북소연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철갑을 한동안 노려보았다.
그녀도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오늘 여기서 보자고 한 건 당신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요.”
“뭐, 의리는 있네요. 이젠 철갑을 어떻게 할 생각이죠?”
“글쎄요. 나도 그 부분에 딱히 좋은 생각이 없군요. 사부님께서 목숨을 걸고 지킨 철갑이니.”
“…….”
북소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당신에게는…… 의형의 말씀처럼 나쁜 감정은 없소이다.”
“고맙네요.”
“그렇다고 지옥혈림에 대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겠죠.”
그래도 그녀는 마음 한편으로 무거웠던 게 사라지는 듯했다.
“계속 그걸 가지고 다닐 건가요?”
“방법이 없으니까.”
“우리에게 맡기는 건 어떻겠어요?”
“북 소저도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구려.”
“…….”
“그곳에 극일천의 사람이 없다는 보장도 없소. 이건 본도가 죽을 때까지 들고 다닐 것이외다.”
“흥.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하세요. 철갑이 열릴 때까지 우리의 공조는 계속되는 걸 알고 있죠?”
“그렇게 되는 거요?”
“오늘 여기서 끝내려고 생각한 모양인데,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고진유는 북소연의 시선을 피해 한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그녀를 보며 말을 했다.
“이왕 공조한다고 하니 부탁 하나 합시다.”
“뭐예요? 설마 내게 부탁하려고 여기까지 부른 거였어요? 끝내자고 하는 말은 뻥이였고?”
“뻥은 무슨.”
고진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허, 진짜 이 사람이…… 그래, 부탁할 게 뭐예요?”
“이것을 맹주님께 직접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녀에게 봉투에 든 서신을 내밀었다.
“……벌써 준비를 다 했네요.”
“그렇게 됐소.”
휘익!
그녀는 서신을 받은 뒤 품 안에 넣었다.
“다른 건요?”
“없소.”
“서신을 내게 주는 것을 보면 무림맹으로 가는 게 아닌가 봐요?”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지요.”
“끝이라면, 동영을 말하는 건가요?”
“맞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거예요?”
“…….”
“허어…… 나 참…….”
북소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뭐, 올라가다 보면 있지 않겠소이까?”
“……절강 태주에 있어요.”
그녀는 복건성으로 내려오면서 동영의 움직임을 조사했다.
“대단하외다.”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스윽.
고진유는 다시 철갑을 챙겼다.
“어딜 가나요?”
“저번에 감사의 인사로 술 한잔 받고 싶다 했던 것 같은데.”
“…….”
“갑시다.”
“좋아요.”
“우리도 저기로 갈까요?”
고진유는 낭떠러지를 향해 가리켰다.
중간중간 밟고 내려갈 곳은 있지만 위험해 보였다.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망설였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힘들다면 그냥 편한 길을 따라 내려가죠.”
“……아니에요. 갈 수 있어요.”
북소연은 괜한 오기가 생겼다.
휘익!
그녀는 신법을 펼치며 낭떠러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
정신을 집중하며 신중하게 발을 밟았다.
푸시시식-
‘이런……!’
그녀가 밟았던 흙이 부서지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앗!”
재빨리 몸을 바로 세우고자 했지만 두 번째 밟는 바닥도 꺼지면서 몸이 옆으로 떨어졌다.
휘이익!
북소연의 뒤에서 따라 내려오던 고진유의 손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괜찮소이까?”
“…….”
스으으윽.
고진유와 북소연을 감싼 채 절벽 아래로 내려섰다.
그녀는 얼른 그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북소연은 투덜거렸다.
“설마 이렇게 하려고 여기로 내려오자고 한 건 아니겠죠?”
“난 반대인 줄 알았는데. 일부러 딛는 발에 힘을 준 게 아니었소?”
“…….”
“아니면 말고. 갑시다.”
고진유는 먼저 돌아서며 마을로 걸었다.
그 뒤를 북소연이 고개를 숙인 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