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67화 (167/425)

167화

벌떡!

삼천군장 전중후명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냐!!”

밖을 향해 고함을 치자, 수하가 막사로 다급히 들어섰다.

“군장님, 밖에 탄환고가 모두 터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화포의 탄환들이 터졌습니다!”

“뭣이? 중원 놈들이 쳐들어왔나?!”

“그건 아직…… 탄환고만 지금 불에 타서…… 그 외에는 쳐들어온 흔적이 없습니다.”

휘익!!

전중후명은 옷을 걸치며 밖으로 나왔다.

진영 전체가 탄환의 폭발 때문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어떤 새끼가……!!”

탄환고는 완전히 불에 탄 뒤 시커멓게 연기를 내고 있었다.

휘익!

일대장 산하가 빠르게 다가왔다.

“군장님, 적은 이미 진영을 빠져나갔습니다.”

“놈들을 잡으러 갔나?”

“송구하옵니다. 워낙 빠른 놈들이라 놓쳤다고 합니다.”

전중후명은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설마 탄환고를 노리고 올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놈들…… 우리가 화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군. 그러지 않고서야 탄환만을 노리지 못했을 텐데.”

“군장님, 탄환이 없으면 화포는 소용이 없습니다.”

“쳇. 어차피 저놈들을 상대로 화포를 쓸 일은 없었다. 무림맹을 상대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구해놓았던 것이지. 복건성을 밀어붙인 뒤 탄환을 구해라.”

“알겠습니다.”

“분명 이런 짓을 할 놈은 복건성의 세 문파뿐일 터. 차라리 잘됐다. 그놈들을 칠 명분이 만들어졌어. 싸움은 중원에서 먼저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본 삼천군이 움직여도 총군장님께서 아무 말 하지 못하실 겁니다.”

“내일 당장 움직일 준비를 해라. 먼저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천주문을 칠 것이다!”

“군장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일대장 산하는 부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사방이 터져 나가는 폭발 속에서, 두 사람은 무사히 동영의 진영에서 빠져나왔다.

“휴우.”

“화려합니다.”

고진유와 인양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터진 폭발을 내려다보았다.

“이젠 화포는 사용하지 못하겠네요.”

“아마도.”

일차 목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 정도면 저들이 충분히 열받았을 테니 조금만 건드려 주면 바로 입질을 할 거야. 원래 흥분하는 사람을 잘 털기 쉽잖아, 안 그래?”

“네. 맞습니다.”

인양은 존경의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하하, 내가 대단한 건 아는데, 너무 부담스럽게 보는 거 아니냐?”

“세상에서 가장 잘난 척을 해도 전혀 잘난 척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형인 것 같아요.”

“푸흐, 무슨 대답이 그러냐? 너도 은근히 묵경 형을 닮아가는 것 같은데.”

“…….”

인양이 닮고 싶은 사람은 묵경이 아니라 고진유였다.

“그만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겠다.”

“넵! 알겠습니다!”

휘이익!

고진유와 인양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한밤중에 일어난 굉음을 포전 일대에서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이, 이보게, 어제 저녁에 그 소리들 들었는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난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네.”

“그게, 왜놈들이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하더구만?”

“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지 않나?”

“쉬이…… 목소리를 낮추게.”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가 얼른 주위를 살폈다.

“허허, 괜찮네! 이제 그놈들은 끝장이 날 거니까!”

“무슨 말인가? 혹시 뭐 소문이라도 들은 게 있는가?”

휘익.

얼굴이 길쭉한 사내가 턱수염 난 사내를 손짓하며 불렀다.

“이건 천주문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말해준 건데…….”

말을 하던 도중에도 멈추며 주위를 다시 살폈다.

“자네만 알고 있으라고. 지금 그곳에 화산도협님과 풍류옥협님께서 계시다네.”

“뭐어?!”

턱수염 사내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봐! 조용히 해! 비밀이라니깐! 어쨌든, 아마 어제 그 일도 그분께서 했을 수도 있다고.”

“오오…….”

턱수염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다,

스윽.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어디 가는가?”

“아 이제 일하러 가야지. 여기서 놀고 있으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난 그만 가네. 수고하게.”

“어어, 잘 가게나.”

턱수염 사내는 밖으로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가는 지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곁에 다가가 속삭였다.

“이보게…… 혹시 자네 어제 그 일을 들었나?”

* * *

소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동영삼천군의 진영까지 흘러갔다.

“화산도협, 그놈이 범인이었어……!!”

전중후명은 살기를 드러냈다.

“군장님, 계획을 수정해야 할 듯합니다.”

일대장 산하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가 무거울 만큼 심각했다.

하지만 전중후명의 생각은 달랐다.

“왜지?”

“…….”

퉁명스러운 답에 산하는 순간 멈칫거렸다.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너무 나섰다.’

전중후명은 지금까지 수하의 말을 참고만 할 뿐 들은 적이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군장님의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일대장, 자네는 그저 내가 명을 내린 것만 그대로 하면 될 뿐이지. 특별히 이번 한 번만 봐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산하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절대적 복종.

이것을 어기는 순간 가차 없이 내쳤다. 만일 중원이 아니라 본토였다면 그의 손에 바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화산도협이라 했나? 일대장은 그가 두려운 모양이지?”

“아닙니다!”

“원래 중원 놈들은 늘 허풍이 심했지. 화산도협도 마찬가지야. 직접 만나보면 그저 그런 놈이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군장님께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후후후. 그렇지. 어차피 무림맹은 여기까지 오지 않아. 놀러가듯 밀어붙이면 끝나는 것이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천주문을 칠 것이야!”

“존명!”

산하는 큰 목소리로 복종했다.

이젠 물러날 수도 없는 일.

최선을 다해 적을 베는 수밖에 없었다.

‘우린 질 수 없어. 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도 우릴 능가하지 못해.’

오천의 대인원으로는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일 것이다.

* * *

복건성 무림의 세 문파 수장.

장주심가 심학정.

숭의창가 전유평.

마지막으로 천주문 옥항.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인 적은 오 년 전이었다.

옥항은 천주문의 대전으로 들어선 심학정과 전유평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외다.”

“반갑소이다.”

“안녕하시오.”

옥항과 심학정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고진유는 세 명의 수장들을 향해 말했다.

“세 분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지요. 심 가주님과 전 가주님께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지 않겠습니까?”

“본인도 심 가주와 같은 심정입니다. 복건성을 노리는 왜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요!”

전유평은 내력을 올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두 분도 아시겠지만 이번 싸움은 당연히 복건성 무림을 위한 싸움입니다. 다행히 화산도협께서 저들의 기세를 이미 꺾어놓았습니다.”

“역시…… 화산도협께서 하신 줄 알았습니다.”

심학정과 전유평 또한 천주문으로 오는 길에 동영의 진영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었다.

오천 명이나 되는 진영에 들어가서 화포의 탄환을 모두 날려 버렸다는 소문.

화산도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인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르르륵-

탁자 위로 지형도를 폈다.

그 위로 백색의 바둑돌을 유문협 아래에 놓았다.

“백색 돌이 복건성의 삼문연합군입니다.”

고진유는 백돌을 나란히 줄을 세워놓았다.

“화산도협님, 우리가 이곳, 유문협에서 동영과 싸우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유문협에 내려놓은 백돌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반대편에는 흑돌을 손에 가득 뒤은 뒤 내려놓았다.

“흑돌이 동영이지요. 그리고 이 앞에 있는 건 그들의 기마대입니다.”

스윽.

고진유는 열 개의 흑돌을 앞으로 세웠다.

“지금부터 우리가 싸울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유문협에는 장주심가와 천주문이 있을 것입니다.”

심학정과 옥항은 서로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지형도를 내려다보았다.

고진유는 앞에 있던 다섯 개의 백돌을 앞으로 당기며 유문협 사이로 밀어내면서 흑돌 앞에 멈췄다.

“묵경 형이 앞장서서 동영을 자극할 것입니다.”

“유인 작전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흑돌 앞으로 갔던 다섯 개의 백돌을 빠르게 물렸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흑돌들을 유문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음…….’

거기까지는 딱히 다른 작전이 보이지 않았다.

스스슥-

곧이어 고진유가 모여 있는 백돌들을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학익진…….”

심학정이 곧바로 백돌의 모양을 보며 진법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화산도협님, 학익진을 펼칠 생각이십니까?”

“맞습니다. 여기에서 끝을 볼 생각입니다.”

“죄송하지만 이건 받아들일 수 없을 듯합니다. 지금 이것만 보더라도 뒤가 비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고진유는 손에 쥐고 있던 백돌을 유문협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옮겨 뒤를 막아섰다.

“동영의 뒤를 막아내는 건 숭의창가에서 맡아줘야 할 것입니다.”

“…….”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문제가 있었다.

“저들은 오천 명의 대인원입니다. 단숨에 한 곳을 뚫어버린다면 전멸입니다!”

“뚫리지 않습니다.”

고진유의 강한 의지를 모두 느꼈다.

‘화산도협께선 또 다른 복안이 있으신 겐가?’

하지만 고진유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본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 분께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우리가 복건성으로 그냥 내려오진 않았습니다. 필가도에서 동영일천군 선발대 천 명과 싸우고 난 뒤 이곳으로 왔지요. 우린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뭐라고? 천…… 명?’

세 사람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고진유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기세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심학정이 물었다.

“바, 방금 천 명이라 했습니까?”

“맞습니다.”

그들은 일천 명을 상대로 네 명이 이겼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렸다.

고진유는 다시 진법에 대해 설명했다.

“동영은 우리의 진법을 보며 무시하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의 진법을 모르지 않겠죠. 그들은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들이라면 수적으로 우리를 능가하다고 확신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를 노려 본도가 그들의 수장을 베면 끝이 납니다.”

오천을 상대로 끝을 낼 수 있다 장담하다니…….

화산도협의 존재는 이미 세 사람의 머릿속에서 신격화되었다.

“유문협으로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화산도협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작전 회의는 끝이 났다.

이젠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 * *

두두두두두두-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이 선두에 서서 말을 몰았다.

그 뒤로 삼문엽합군 중 가장 기마술에 뛰어난 인물 오십 명이 따랐다.

“우리의 목적은 적의 기마대를 유인하는 것! 후퇴 신호를 내리면 무조건 물러나야 한다!”

“알겠습니다!”

학익진에 가장 거슬리는 적의 기마대를 처리해야 했다.

동영삼천군 또한 안계를 향해 움직였다.

삼천군장 전중후명은 급할 게 없었다.

‘그대로 몰려갔다가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한데 유문협에 가까워지자,

“아아아악!!”

“적이다!!”

진영의 전방에서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중원의 기마대가 나타났습니다.”

“적의 수는?”

“오십 필 정도입니다.”

“그 정도는 금방 처리할 수 있지 않나?”

“질풍단으로 쓸어버리겠습니다!”

일대장 산하는 곧바로 전방으로 달려 나가면서 기마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질풍단은 저놈들을 죽여라!!”

두두두두-

삼백 기의 기마대가 동영의 진영 사이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인양은 동영의 적진에서 달려 나오는 기마대를 보았다.

“묵경 형, 적의 기마대가 나타났어.”

“후퇴하라!!”

삼문연합군의 기마대가 말 머리를 돌리며 유문협을 향해 달렸다.

두두두두-

동영 질풍단 소속 말들의 속도는 빨랐다.

앞서 달리는 삼문연합군의 기마대와 점점 거리가 좁혀져 갔다.

“저곳만 들어가면 된다!”

유문협의 입구가 나타났다.

“카하하하하!! 중원 놈들아!! 어딜 도망가느냐?”

부우우웅-

동영의 무사들은 긴 장창을 휘두르며 뒤에서 소리쳤다.

‘잘 따라오고 있군.’

묵경은 뒤를 보면서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스걱.

그러고는 유문협 입구에 묶여 있는 밧줄을 잘랐다.

티이이잉-!!

바닥에 묻어놓은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바닥 위로 솟구쳤다.

퍼어어억!

히이이이잉-!!

바로 뒤에서 쫓아오던 질풍단의 기마들이 밧줄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아아아아악!!”

“함정이다-!!”

쿠다다당!!

말들이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순식간에 유문협 앞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질풍단주 청본도 발이 걸려 넘어지는 말 위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재빨리 검을 뽑은 뒤 앞으로 달렸다.

“어딜 가느냐?”

그러고는 말을 멈춘 묵경을 향해 공중으로 솟구친 뒤 월광검을 내리쳤다.

“죽어라. 중원 놈아!!”

검기가 번쩍이면서 하늘에서 떨어졌다.

휘리리리릭!!

‘욱……?!’

묵경이 연화연검으로 청본을 막아내며 그를 뒤로 밀어냈다.

청본은 손이 뒤로 튕겨 나가며 생각지도 못한 강한 반격에 몸이 멈칫거렸다.

‘고…… 수다.’

그는 묵경을 보며 긴장할 때였다.

후다다닥!!

이번에는 질풍단 후방으로 창을 든 무인들이 나타나 좁은 장소에 뭉쳐 있는 질풍단을 향해 창을 찔렀다.

팟팟팟팟!!

그리고 물러났던 오십 필의 기마대가 다시 방향을 돌리더니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함정이다!!”

양쪽으로 협공을 당한 질풍단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 그들이 수는 많았지만 서로 기마들이 부딪치자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이봐, 어딜 보는 거야? 아, 중원 말을 못하나?”

청본 앞으로 묵경이 내려서면서 연환연검을 휘둘렀다.

길게 끌고 갈 필요가 없었다.

휘리리리릭-!!

눈앞을 현혹하는 화려한 연검의 공격을 그는 막아낼 수 없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십 성의 연화연검을 쫓아갈 수 없었다.

그저 멍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스걱-

청본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