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66화 (166/425)

166화

동영삼천군의 진영.

삼천군장 전중후명은 보고를 받았다.

“아직도 그놈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른다는 것인가?”

진강에서 삼대장 길전을 다치게 만들었다는 네 명의 중원인을 아직 찾지 못한 상황.

“죄송합니다. 곧바로 그곳 일대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방으로 그놈들을 찾기 위해 인자(忍者)를 풀었습니다. 조만간 그놈들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잘했군. 감히 동영을 건드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것을 중원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넵!”

“총군장님께 연락이 왔다고?”

“본진에서 완전히 들어오기 전까지는 현재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전갈이옵니다.”

쩝…….

전중후명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두 곳보다 그가 본토에서 가장 빠르게 중원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따로 공격할 것인데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스윽.

전중후명은 비스듬히 누운 채 옆으로 술잔을 들었다.

“하!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지. 중원에 들어온 동영천군 중 본 삼천군이 가장 빠르게 복건성을 확보할 것이다.”

“호호, 삼천군장님, 역시 세 분의 군장님들 중에서 가장 멋진 분이시군요. 당연히 가장 빠르게 복건성을 차지하셔야지요. 들어온 김에 광동성까지 들어가셔야지 않겠어요?”

“크하하하! 야호, 네 말이 맞다. 복건성만으로는 내 성에 안 차지.”

그는 술을 단번에 마셨다.

‘광동성까지 차지한다면 삼천군이 먼저 움직여도 상관없겠지.’

휘익.

그는 손에 든 술잔을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으며 끌어당겼다.

“크크크…… 오랜만에 한번 즐겨볼까?”

* * *

천주문의 천주당 수장 옥동찬이 화산도협이라 신분을 밝힌 사내 앞에 섰다.

그가 정말 화산도협이란 말을 무턱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본도의 신분은 숭의창가와 장주심가에서 알아보면 될 것 같군요.”

“화산도협께서는 그들과 친분을 지니고 있습니까?”

“동영 일 때문에 두 곳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지금 천주문에 온 이유와 같지요.”

“동영…… 때문이라고 했소이까?”

“그렇소이다. 아마 그대도 포전에 들어온 동영이 신경 쓰여 이곳에서 정찰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바로 그들 코앞에 나타난 동영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중이었다.

두 가문에서 인정했다면, 고진유의 신분은 확실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안목이 좁아서 화산도협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현 상황이 긴박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 문까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와 함께한 다른 세 명의 사내도 기세가 남달랐다.

‘역시…… 화산도협의 동료들 또한 대단하다고 한 게 거짓이 아니었군.’

천주문 문주 옥항이 정문에 나와 일행을 기다렸다.

동영이 중원으로 들어온 위급한 상황에 화산도협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 온다는 소식에, 당연히 직접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들이 화산도협이 맞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듯하다……!’

그가 무림에서 보여준 위용은 대단했다.

정문 앞에서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문주 옥항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는군.’

옥동찬의 안내에 그 뒤로 네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걸어오는 모습만으로도 그들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정문까지 전해졌다.

옥항의 걸음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정문 앞에서 짧게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접객실로 들어섰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천주문은 화산도협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여유를 지녔다.

옥동찬은 자리에 앉은 뒤 바로 말을 꺼냈다.

“문주님, 화산도협께서는 동영의 문제로 이미 장주심가와 숭의창가에 다녀오셨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무림맹에서 보내신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무림맹에서는 중원에 동영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고진유는 두 문파에 해주었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옥항과 옥동천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화산도협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중원 무림인의 한 사람으로서 천주문은 물론 복건성의 어려움을 어찌 모른 척하겠습니까.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지요.”

“고맙습니다. 화산도협님과 풍류옥협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 본 문의 제자들은 기운이 날 것입니다.”

옥항의 말처럼 천주문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화산도협이 찾아왔다는 소문은 천주문 무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었다.

천멸자.

그와 싸운 상대는 필히 멸문한다고 하지 않던가.

“문주님께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장주심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

“본도가 두 가문 사이에 나서서 중재를 나설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 일은 두 문파의 개인적 일이라기보다는 대승적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본 문이 장주심가와 다툼이 있다고 하나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꺼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복건성의 세 분께서는 화통하십니다. 무림맹의 도움이 없다고 해도 싸우겠다고 하시더군요.”

“바다 사람들의 거친 기질이라, 한 번 맞다고 생각하면 죽는다고 해도 끝장을 봅니다.”

“맞습니다. 본도 또한 광동 출신이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고향분들을 만난 듯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저희도 화산도협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울했던 옥항은 어느새 평상시의 호탕한 성격으로 돌아왔다.

“천주문까지 결정을 내렸으니 이젠 동영 놈들을 몰아낼 차례입니다.”

“알겠습니다. 천주문 또한 화산도협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틀 후 장주심가와 숭의창가에서 도착할 것입니다. 천주문에서도 준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장에라도 출전할 준비를 마치도록 해야겠군요.”

옥동천은 포권을 한 뒤 밖으로 나갔다.

* * *

이틀 뒤, 복건성의 세 문파가 한 자리에 모일 것이다.

고진유는 한동안 지형도를 내려다보았다.

세 문파의 무인들 총인원은 일천 명을 겨우 넘어선다.

적의 수는 오천.

동영에 비해 수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그들은 기마대는 물론 화포까지 구비했다.

‘한 번에 끝장을 내기 위해서는?’

화포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슥슥-

고진유는 지형도 위에 붓으로 선을 그었다.

‘뭘 그리는 거지?’

묵경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형,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진법인가?”

“맞아요.”

유문협 아래로 초승달 모양의 곡선이 그어져 있었다.

“혹시…… 여기에서 학익진을 펼치자는 것은 아니겠지?”

“이게 학익진이라는 진법인가요?”

“엉?”

묵경은 당황했다.

학익진을 모르고 진법을 구상했다는 것인가?

“진짜 몰랐다는 거야?”

“아…… 하하.”

고진유의 미소는 모호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고진유는 지형도를 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문협 이곳에 장주심가와 천주문의 무인들이 진을 펼칠 것입니다. 그리고 형이 동영의 진영으로 가서 부딪힌 뒤 그들을 유인하는 겁니다.”

“내가? 그 위험한 곳에?”

“형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뭐…….”

“동영 무리가 유문협을 넘어 내려오면 우리는 곧바로 학익진으로 이들을 둘러싸는 거죠.”

“여기 뒤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비어 있잖아. 학익진은 완전히 둘러싸야 해.”

“숭의창가가 유문협 뒤에 돌아가면서 동영의 뒤를 칠 것입니다.”

“음…… 그래. 학익진의 계획은 좋아. 근데 한 가지 단점이 있어.”

“무엇입니까?”

“인원의 차이. 학익진은 상대보다 병력이 많아야 해. 그게 아니라면 상대가 기마대를 이용해 어린진(魚鱗陳)으로 뚫어 버린 그 순간 끝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기마대를 잡을 수 있어요.”

“어떻게?”

“형이 잡아야죠. 기마대를 유협문 입구에 유인한 후, 여기 앞을 막을 겁니다. 완벽하죠?”

“……진짜 어이없는 거 너도 알지? 하하하!”

묵경은 완벽한 계획이라는 말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싸움은 기세입니다. 인원의 많고 적음은 숫자일 뿐, 한 번 벨 것을 두 번 세 번 베면 될 뿐이죠.”

“말이 쉽지. 그게 맘대로 되냐?”

“풍류옥협 묵경. 오천의 동영인들을 몰아내다! 중원에 소문만 나면 형은 중원 여인들의 우상이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전설.”

“흐음…… 그래애애애애?”

“당연하죠.”

덜컹!

그때, 문이 열리면서 인양과 녹림야검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눈에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려 있는 묵경이 들어왔다.

“묵경 형,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아니다!”

“그래요?”

인양은 돌아선 뒤 고진유에게 흑의를 내밀었다.

“다른 건?”

“준비됐어요.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좋아. 가자.”

반각 뒤.

흑의로 바꿔 입은 고진유와 인양은 천주문 밖으로 나섰다.

* * *

스윽.

고진유와 인양은 동영삼천군 진영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내려앉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자.”

하늘 아래로 어둠이 짙어지기를 기다렸다.

진영의 중앙에 세운 막사 주위에 수백의 동영 무사들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흠…… 저곳에는 들어가기 힘들겠는데.’

고진유라도 수백 명이 지키고 있는 막사에 몰래 접근하기에는 힘들었다.

최소한 몸을 숨길 수 있는 은폐물도 없었다.

‘여기서 적의 수장을 베면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릴 수 있을 텐데 아쉽군.’

고진유의 시선은 한참을 막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형. 저기 보이죠?”

인양은 진영 안에서 한 장소를 가리켰다.

붉은색 기가 펄럭이는 천막.

“저기 안에 화포의 탄환들이 쌓여 있어요.”

“저곳만 없애면 되겠군.”

고진유의 말처럼 화포까지 없앨 필요는 없었다. 탄환이 없으면 어차피 화포는 소용이 없으니까.

밤이 깊어지면서 동영의 진영은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해졌다.

“난리 났군.”

진영에 긴장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서너 군데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좋지만.’

곧,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가볼까?”

인양도 곧바로 뒤를 따라 일어났다.

휘이이익!

동영의 진영으로 내려선 뒤 고진유와 인양은 신형을 숨기며 움직였다.

내력을 거두자 그들의 신형을 알아차리는 동영의 무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고진유와 인양의 목표는 탄환이 들어 있는 천막.

이십 명의 무사들이 천막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제법인데. 여긴 거의 빈틈이 없어.’

중요한 곳이라 그런지 신중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는데. 저들이 멈칫거리는 짧은 순간에 들어가는 수밖에.’

고진유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안에 들어갔다 올 테니 여기에서 망을 보고 있어.]

[알겠어요.]

스르륵-

고진유는 탄환이 들어 있는 천막으로 움직였다.

호충신법을 극성으로 펼치며 천막에 가까이 다가선 순간,

휙!

동영 무사가 하나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

“왜 그래?”

“어…… 방금 뒤로 뭔가 지나가지 않았어?”

“이봐. 졸았군?”

“그게 아니라…….”

“똑바로 경계나 서도록 해. 괜히 우리까지 피해 주지 말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 잠긴 천막으로 고개를 넣어 사방을 살폈지만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헛걸 봤나?’

그는 고개를 다시 밖으로 꺼냈다.

“안에 이상한 게 있던가?”

“없네. 내가 잘못 본 모양이야.”

스윽.

탄환이 쌓여 있는 뒤에서 고진유가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기가 예민한 인물이 있었군.’

천막 안에서 어둠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반각이 지나기 전, 천막 안이 전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탄환들.

“많군.”

해적선에 있던 탄환의 세 배 정도 양이었다.

“많이도 팔아먹었는데. 정말 심각해. 나라가 망조가 들었어.”

관의 일에 굳이 상관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무인들도 피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한꺼번에 없앨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부 폭발시키는 거지.’

고진유는 가지고 온 폭죽들을 꺼냈다.

“이게 터지면 나머지는 모두 자동으로 사라지겠지.”

폭죽을 하나로 묶은 뒤 탄환 속에 밀어 넣었다. 제대로 터지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휴유…….’

고진유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심지에 불을 붙인 뒤 터지기까지 시간은 거의 촌각밖에 걸리지 않을 터.

치지지지직-

심지에 불이 붙었다.

휘이이익!!

고진유는 곧바로 천막을 찢고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인양아, 달려라!”

천막 주위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인양도 고진유를 따라 신법을 최대한 빠르게 펼쳤다.

“저놈들은 누구냐?!”

천막을 지키던 동영 무사들은 진영을 뚫고 나가는 두 명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휘리릭!!

동영 무사 한 명의 얼굴색이 파랗게 변하면서 천막을 재빨리 열어젖히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치직, 치지지지직-

탄환 속에서 불꽃이 타고 들어가고 있었다.

‘망했……!’

순간, 불꽃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퍼어어엉!!

콰아앙앙!!!

피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앙!!

푹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백 발의 탄환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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