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64화 (164/425)

164화

화산도협 고진유에 대한 중원 무림의 소문은 대단했다.

중원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천하오무의 위치까지 올라선 인물.

광동성 출신으로 화산파 제자가 된 과정까지 빠짐없이 중원에 알려져 있었다.

허영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화산도협님을 뵙습니다!!”

고진유를 보며 고개를 숙인 채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매화 향이야.’

고진유의 신형에서 강하게 흐르는 내력의 향을 알아냈다.

“본도는 장주심가의 가주님을 뵙고자 왔소이다.”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허영은 다급히 문을 열고 앞장섰다.

장주심가의 경내를 지나치자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소인이 우선 내원당주께 안내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내원당으로 향하자, 입구의 위사가 다가오는 허영과 두 사내를 발견했다.

“허 수문장님. 오셨습니까?”

“정두, 자네군.”

“함께 온 두 분은 누구입니까?”

“당장 내원당주님께 고하게. 화산도협님과 풍류옥협님께서 세가에 오셨네.”

“……!”

정두 또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굳어버렸다.

“허허, 뭐 하고 있나? 어서 안에 알리지 않고?”

“아, 알겠습니다.”

정두는 다급하게 내원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뒤, 내원당 건물에서 다급하게 내원당주 심명한이 달려 나왔다.

‘이 젊은 청년이 화산도협이고…… 옆은 딱 봐도 풍류옥협이 맞군.’

두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들의 신형에서 흐르는 내기가 거짓이 아님을 단번에 알았다.

척!

그가 포권을 먼저 했다.

“화산도협과 풍류옥협을 뵙소이다. 정주심가의 내원당을 맡은 심명한이라 합니다.”

“반갑소이다. 화산파 제자 고진유입니다.”

“묵경이라 하외다.”

* * *

장주심가에 들어선 지 일각이 지나자, 곧바로 가주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중원 최고의 인물, 화산도협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기연을 얻는 것과 같았다.

“중원 무림의 영웅이신 두 분을 뵙습니다. 심학정이라 합니다.”

“심 가주님이시군요. 고진유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묵경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고맙습니다.”

심학정은 한 걸음 앞에서 응접실로 안내를 했다.

이미 두 사람을 위해 탁자 위에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좋아하시는 것을 몰라서 해룡차를 준비했습니다.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예전에 한번 마셔보고 싶었습니다. 가주님 덕분에 좋은 경험을 마시게 되는군요.”

“화산도협께서 광동성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내원당주 심명한은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동안 가주 심학정은 나란히 앉은 고진유와 묵경을 살폈다.

그들의 신형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내기는 거대한 산 앞에 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 전국구의 무인.’

“드시지요.”

심학정은 차를 권하면서 두 사람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길 기다렸다.

고진유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내려놓았다.

“본인이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소문에 석가장과 다툼이 있었던 뒤 북해빙궁으로 갔다고 들었소이다.”

“본도가 바쁘게 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내려오게 되었지요. 혹시…… 본도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입니까? 아는 것이라면 바로 대답을 해드리겠소이다.”

“포전에 동영의 무리들이 들어온 것을 아시는지요?”

고진유의 물음에 심학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있군. 하긴 모를 리 없겠지.’

그들 또한 동영에서 무림에 들어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힘이 모자라기에 무림맹에 다급히 급보를 올린 뒤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원당주 심명한이 대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본 가에서도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무림맹에 연락을 했습니까?”

“보름 전에 급하게 보냈습니다만…… 아직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연락을 했다면 충분히 무림맹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소식을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는 건 중간에 누가 막았다는 건데.’

새외무림인 동영이 중원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듣고서도 가만히 있을 무림맹이 아니었다.

‘비맹군이군.’

중원 각지에서 대외활동을 하며 전서를 담당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 비맹군이다.

그리고 그곳의 수장이, 바로 이군사 사마추가 아니었던가.

‘외부의 정보를 중간에서 차단할 목적으로 비맹군을 맡고 있었군.’

그가 무림맹에 있는 한, 무림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맹주가 알지 못하도록 중간에 막을 것이 확실했다.

“가주님. 본도가 생각하기에 맹주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 보고를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요?”

심학정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고진유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화산도협께서는 본 가에서 올린 급보가 중간에서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분명 장주심가 외 복건성 타 문파에서도 동영에 대한 급보가 올라갔을 겁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은 무림맹에서 모르고 있기 때문이 확실합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심학정은 믿기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고진유는 무림맹에서 모든 대외 보고를 관리하는 부서가 어디인지 알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심학정도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에서 급보를 담당하는 곳은 비맹군이다.’

하지만 함부로 확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곳의 책임자는 이군사 사마추가 아닌가.

“화산도협님, 본 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무림맹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동영을 상대로 이길 수 없을 터.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이곳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장주심가는 장주를 지켜왔습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요.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 동영에게 확실히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여긴 본 가의 땅입니다.”

심학정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곳은 됐군.’

“본도가 찾아온 이유도 동영과 싸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아…… 하하……!”

심학정과 심명한의 굳었던 얼굴이 펴졌다.

화산도협이 도와준다면 사기가 올라갈 것이었다.

“화산도협님.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중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과연 무림의 영웅다우시군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중원을 위한다는 말에 두 사람은 감동받았다.

“화산도협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큰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영을 상대로 본 가만으로는 수적인 차이가 크게 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숭의창가와 천주문이 모인다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봅니다.”

“허어…….”

심학정이 순간 곤란한 듯 머뭇거렸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천주문과 요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장주심가와 천주문의 사이에 대해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 몰랐다.

“가주님께 묻겠습니다. 천주문과 함께 싸울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냥 껄끄럽다는 것이지요. 그들과의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지요. 가주님께서는 대인이십니다.”

고진유는 포권을 했다.

그도 얼른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심학정은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부터 본 가는 화산도협의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가주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복건성의 힘을 모아 동영을 몰아낼 것입니다.”

‘이분과 함께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이 일어났다.

사람에겐 느낌이라는 게 있었다.

화산도협 고진유.

절대로 지지 않을 중원 무림의 혼이 보였다.

* * *

고진유와 묵경은 장주심가를 나온 뒤 곧장 삼명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진유 아우, 이대로 넘어갈 수 없을 거야.”

묵경이 걱정하는 건 비맹군이었다.

중원 각지에서 올라오는 모든 소식들을 비맹군에서 처리했다.

동영뿐만 아니라 다른 새외무림 또한 들어왔을 게 확실했다.

근데도 무림맹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를 빨리 쳐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싶지만…… 당장 증거가 없으니 괜히 움직였다가 우리가 당할 수 있어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우선 이번 일부터 처리한 뒤 좋은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죠.”

“하아아…….”

묵경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무림맹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세상은 혼자 잘났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군.’

무림맹주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형, 숭의창가는 어떤 곳이죠?”

“예전에는 남부 최고의 창가(槍家)라고 명성이 높았지. 혹시 해파창(海波槍)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음…… 없어요.”

“모를 줄 알았다. 이래서 속성으로 배우면 안 되는 거야. 무림사에 대해 배울 때 무림인물편도 공부했지. 당시엔 왜 외워야 하는지 몰랐는데, 아우님을 보니 조금 이해가 가는구만.”

“사부님께서도 유명한 무인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셨는데, 해파창이란 곳은 없었어요. 얼핏 북악남복이란 말만 하고 넘어갔었죠.”

묵경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북악이 뭔지 알아?”

“산동악가?”

“그럼 남복은?”

“아…… 거기가 숭의창가였군요.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기도 해요.”

“맞아. 숭의창가 최고 무공이 해파창법이야.”

“지금은요?”

“그 이후로 해파창법을 완벽하게 익힌 세가의 인물이 나오지 않은 모양인가 봐. 사실 모든 무가라면 그들과 같은 처지라고 봐야 해. 그나마 세가의 힘으로 세력을 유지하다가 똑똑한 인물이 태어나면 또 한 번 중흥기를 가지는 것이고.”

“그렇군요.”

“후후후. 그래서 화산파와 같은 구대문파들이 대단한 거야. 꼭 한 세대에 한 명씩은 특별한 인재가 나타나거든. 그게 바로 전통이고, 저력이라는 거지.”

“바로 나처럼요?”

“풋.”

묵경은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맞다. 너처럼. 화산파 입장에서는 완전히 하늘에서 복이 굴러떨어졌다고 봐야겠지. 생각지도 못하게 느닷없이 나타난 녀석이 천하오무와 견줄 수 있다니, 천복 아니냐.”

“형도 복 받은 거네요. 그런 녀석을 동생으로 뒀잖아요.”

“당연히 나도 복 받았지. 엄처어어어엉……! 고맙다!”

묵경은 고진유의 어깨를 껴안았다.

스윽.

그때, 고진유가 멈칫거리며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왜?”

“앞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어요.”

“여기서? 누가?”

고진유와 묵경은 기척이 들린 곳으로 빠르게 향했다.

샤샤샤샤샷-

열 명의 사내들이 중앙에 포위된 두 명의 사내 주위를 잔걸음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머리에 두건을 쓴 인물들.

얼마 전 객잔에서 봤던 복장과 같았다.

“동영이군요.”

“도와줘야겠어.”

묵경과 고진유는 바로 신형을 날렸다.

열 명의 동영무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검기를 쏟아냈다.

가운데 갇힌 두 명의 사내는 마지막 순간임을 깨달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이 움츠린 순간.

‘뭐지……?’

분명 그들의 검기가 자신의 몸을 베고 지나가야 했다.

사내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두 명의 사내가 그들의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괜찮소? 부상을 당했소이까?”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괘,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요. 잠시 호흡으로 진정시키세요.”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상대의 목소리에서 편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싼 그들을 노려보았다.

“동영에서 왔으면 조용히 놀다가 갈 일이지 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군.”

“쳐라!!”

동영 무사들이 동시에 고진유와 묵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휙휙-!!

날카로운 검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다가왔다.

“좋아. 한데 빠르기에만 치중했군.”

동영의 검은 화려하며, 강하고, 빠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고수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핏핏핏핏-!!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사의검을 앞으로 내밀었을 뿐인데, 매화비광의 초식이 펼쳐지면서 뻗어 나온 검기가 동영무사들의 가슴을 찔렀다.

“으으으악!!”

“아아악!!”

쿠우우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반대편에 선 묵경도 간단히 동영무사들을 제압했다.

“으으으…….”

동영 무사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라.”

고진유가 뿜어내는 살기에 동영무사들은 온몸에 기가 빠져나갔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발을 끌며 사라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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