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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63화 (163/425)

163화

채경중의 시선이 철갑에 고정되었다.

마치 처음 보는 물건처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

‘철갑이다.’

순간, 그가 발바닥으로 탁자 아래 부분을 툭 건드렸다.

파앗!!

탁자 상판에 구멍이 뚫리며 철갑이 아래로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

아무리 동작이 빠르다고 해도 떨어진 철갑을 잡을 수 없었다.

묵경은 재빨리 손을 뻗으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유 아우!!”

“…….”

고진유는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미 탁자 뒤로 물러난 채경중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하하!! 화산도협, 정말로 네놈이 여기에 찾아올 줄은 몰랐다.”

“당신은 정말 그분의 제자가 맞는가?”

“제자는 무슨…… 잠시 그의 밑에서 일을 했을 뿐이지.”

“나쁜 놈이군. 주인을 배신하다니.”

“크하하하! 나쁜 놈이라 했나? 그건 아니지. 어차피 한 번 살다가 가는 세상이 아닌가. 난 편하게 배부르고 살다가 가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천공공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네놈이 철갑을 가진 순간 이곳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지. 당연히 그는 극일천에 잡혀 갔어! 본 천을 위해서 할 일이 많거든.”

“다행이군. 네놈들이 그분을 죽인 줄 알았다.”

채경중은 손가락을 앞으로 펴며 좌우로 흔들었다.

“그를 걱정하는 게 아닐 텐데. 네놈이나 목숨을 걱정하는 게 좋을 게다!”

피이이이잉-

정자 위 천장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소낙비처럼 두 사람 머리 위로 떨어졌다.

퍽퍽퍽퍽퍽-!!!

화살이 아래에 박히는 소리가 울렸다.

“크크크. 너무 간단한데. 이런 놈을 죽이지 못해 극일천에서도 애를 먹다니…….”

그는 고진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섰다.

화살에 박혀 죽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어…… 어디에?’

분명 쏟아져 내리는 화살에 맞는 모습을 본 듯했다.

하지만 정자에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휘익!

그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이놈들, 어디에 있는 거야?’

눈동자는 고정되지 않은 채 다급하게 흔들렸다.

“어디를 보는 거지?”

채경중은 뒤로 돌아섰다.

“어떻게…… 빠져나왔지?”

“이 정도는 무림인이라면 다 할 수 있다. 너무 얕잡아 보는 것 같군.”

“…….”

고진유의 뒤에 선 묵경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 상황은 심장이 덜컹거렸다.

‘누구나는 아니겠지.’

고진유가 잡아당겨 끌어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중상에 빠졌을 것이었다.

“누구나 한다고?”

채경중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

그 짧은 찰나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확신했었다.

스윽.

고진유의 신형이 흔들거리는 듯하다니 그의 불쑥 앞으로 다가섰다.

‘허억!’

채경중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목소리가 떨리면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를…… 죽……일 텐가?”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유가 있는 모양이지?”

채경중은 애써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철갑, 철갑을 찾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내가 모르고 있을 줄 알았나?”

“……?!”

고진유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방금 전 그가 빼앗은 철갑.

“설마…… 가짜라는 말인가?”

“철갑을 본 적이 없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지.”

“……네놈이…… 함정을 미리 알았다고?”

“의심되긴 했다. 내가 알기에 천공공께서는 스스로 이곳을 나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당신은 그분께서 그들을 따라 극일천으로 갔다고 했지. 그래서 당신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어.”

“…….”

“그리고 본도가 철갑을 꺼낼 때 당신 눈빛은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을 보는 듯했어. 함께 만들었다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는 없지 않을까?”

“하, 네 말이 맞다고 하자. 근데…… 그 짧은 순간에 가짜로 바꿀 수는 없다.”

“멍청한 놈. 수상한 놈에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진짜를 보여줄 거라 생각한 건가?”

“…….”

툭툭.

묵경은 어깨에 멘 보자기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하하! 그건 여기 있지.”

털썩.

채경중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진유를 보며 울먹거리며 말을 했다.

“소인이……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그놈들이 죽인다고 협박을 해서…….”

“와우.”

묵경은 완전히 태세를 전환한 그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목숨만이라도 살려주신다면 제가 아는 것을 전부…….”

채경중의 머리가 땅에 닿은 상태에 더욱더 비굴하게 말을 했다.

‘……좀…… 더.’

그는 양손을 꼭 쥐며 움직이지 않았다.

고진유는 엎드려 있는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섰다.

‘됐다!’

휘익!!

채경중이 양손을 앞으로 뻗자 손바닥에 쥐고 있는 작은 물체에서 가느다란 비침들이 쏟아졌다.

“사람 되기는 틀렸군.”

스걱-

채경중의 양손이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그는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네놈은 죽을 가치도 없는 놈이다.”

팟팟팟-!!

사의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채경중의 발목의 인대를 잘라냈다.

“아아아악!!”

또 한 번의 비명이 숙장화원을 울렸다.

* * *

덜컹.

철문이 열리면서 정자에서 사라졌던 철갑이 나타났다.

“잘 만들었군. 이 머리를 나쁜 짓이 아니라 좋은 일에 썼으면 얼마나 좋아.”

묵경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진짜 같네.”

“솜씨가 좋아요. 이 정도로 비슷하게 만들 정도면…….”

“지옥혈림은 재주도 좋아. 안 그래?”

고진유는 저번에 그녀를 만났을 때 가짜 철갑을 부탁했다.

“그녀도 투덜거리면서 부탁은 전부 들어준단 말이지.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닌가 몰라?”

묵경은 슬쩍 고진유의 눈치를 보았다.

“원하는 게 있으니 들어주는 것이겠죠.”

“진유 아우는 아직 여인에 대해서 잘 몰라. 여인들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관심도 안 가지거든.”

“후후, 제가 관심 없습니다.”

고진유는 웃음으로 그의 말을 넘어갔다.

“자, 그럼. 저 녀석을 어떻게 하지?”

“알아서 하겠죠. 우린 그냥 가요.”

고진유와 묵경은 한쪽 구석에 앉아 축 처져 있는 채경중을 두고 숙장화원을 떠났다.

* * *

흑화전주 배조경의 인상이 굳어졌다.

천문전에서 나온 소식.

새외 무림아 중원으로 들어왔다.

“동영에서도 들어왔군.”

배조경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림은 극일천의 계획대로 평안하게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데 최근 일어난 일들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무림의 상황이 변해갔다.

‘이건…… 전부 그놈이 무림에 나타난 뒤였어.’

화산도협의 존재가 나타난 후 극일천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그를 생각하면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천문전의 그가, 왜 화산도협을 그냥 놓아두었을까?

일부러 잡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 또한 잡을 수 없었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흠…… 정말로 천문전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본 천의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적을 상대하는 것이겠군.’

수백 년 동안 중원 무림에 많은 인물들이 태어났다.

그들 중에서도 대단한 인물들은 있었지만 극일천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림에서 사라졌다.

무신 초일군조차도 가볍게 처리했다.

단 한 명도 극일천에게 어려움을 준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무공은 분명 무신 초일군의 실력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산동으로 배를 타고 넘어오는 순간 해적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바로 그를 잡았을 것이었다.

‘운이 좋은 녀석이야. 하필이면 왜구를 만나다니…….’

휘이이익-!!

그때, 배조경 앞으로 잠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전주님, 필가도에서 동영일천군 선발대가 완전히 전멸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보고하라.”

잠소는 곧바로 필가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선발대라고 하지만 동영의 일천 명이 네 명의 의해 박살이 났다.

“그들 네 명으로? 사실인가?”

“정확합니다.”

“……으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와 달리 옆에 있던 중년 사내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역시 동영 놈들은 안 되는군.”

“총무장님, 동영은 천문전주님의 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배 전주, 알고 있네. 하지만 난 새외 놈들이 중원에 들어와서 날뛰는 게 싫네. 겨우 네 명에게 당할 정도라면 있으나 마나 아닌가.”

“…….”

배조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판진모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네 명이 일천 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수장부터 너무…… 자만심에 빠져 있으니 지금까지 당했던 것이군. 나도 마찬가지고.’

무턱대고 마주쳐서 싸울 상대가 아니었다.

화산도협을 만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다행이다. 무작정 마주쳤다면 그에게 당했을지도.’

지금부터는 그를 천주와 같은 실력을 지닌 인물이라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휘이익!

호위대 수하가 그들 앞으로 내려섰다.

잠소가 그에게서 긴급 서신을 전해 받았다.

“전주님, 남쪽에서 급서가 날아왔습니다.”

“남쪽?”

급서 위에는 복건성을 의미하는 인장이 찍혀 있었다.

‘흐음…….’

그는 급서를 펼쳤다.

-화산도협. 복건성 하문 출현.

‘멀리도 내려갔군.’

배조경이 옆에서 고개를 내미는 판진모에게 급서를 보여주었다.

“허어…… 이놈들이 복건성의 하문에 갔다고?”

“아마 왜구들과 함께 곧장 복건성으로 간 듯합니다.”

“배 전주, 그들이 복건성까지 간 이유가 있는가?”

“아마…… 천공공을 만나기 위해 간 모양입니다.”

“천공공! 그자가 복건성 하문에 있었나?”

“화산도협이 나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냈지만, 지금은 극일천에 있을 겁니다.”

“천공공이라면 철갑을 열기 위해 찾아간 것이군. 우리도 빨리 내려가세.”

“알…… 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복건성으로 내려가야 했다.

‘동영에서 들어온 다른 곳도 복건성에 있을 텐데…….’

* * *

“복건성이라고?”

“넵. 대주님.”

수하의 보고를 받은 북소연의 얼굴에 미소가 나왔다.

‘드디어 찾았어!’

화산도협의 흔적이 복건성 하문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멀리도 내려갔네.’

왜구의 해적선을 타고 거의 남쪽 끝까지 내려간 셈이다.

“근데…… 그곳에는 왜 갔지?”

천공공에 대해 모르는 그녀는 고진유가 복건성에 내려간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수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대주님, 그리고 복건성에서 올라온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뭐지?”

“동영에서 중원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새외무림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북소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잖아.’

새외무림까지 들어온다면 무림의 상황은 한층 더 어지러울 게 확실했다.

‘이것도 분명 극일천의 짓이군.’

그녀는 극일천이 새외무림까지 이용하는 것을 보며 기분이 나빴다.

“쳇. 너무하잖아. 있는 힘을 그대로 사용해도 충분하면서.”

북소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직접 가서 만난 뒤 물어보는 게 좋겠군. 일단 빨리 출발하는 게 좋겠어.”

* * *

하문에서 서쪽 방향으로 한 시진 빠르게 움직이자 장주에 도착했다.

복건성 최고의 무가(武家)로 알려진 장주심가를 찾으러 온 것.

마을 북쪽에 위치한 장주심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장주심가의 가주 심학정은 현재 오십 대의 나이로 복건성 일대에서 인망이 높은 무인 중 일인이었다.

장주심가 수문장 허영이 멀리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음…… 행색이 특이하군.’

그들은 허리와 어깨에 가볍게 천을 둘러맨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십여 장 정도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이건……?’

두 사람 중 한 명의 신형에서 내력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 맡아보지만, 내력에 향기가 있을 정도라면 상대의 내력이 얼마나 고강한지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얼굴은 어려 보이나 무인에게 나이는 의미가 없었다.

수문장 허영의 태도는 단번에 바뀌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운 채 다가온 두 사람을 보며 절도 있게 포권을 했다.

“반갑소이다. 허영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외다.”

“헉…….”

포권을 하며 미소를 띤 청년.

허영은 화산도협이라 밝힌 고진유를 보며 눈이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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