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묵경은 걱정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천공공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만능자,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절대로 스스로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 하셨거든요.”
중원에 그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없을 것이라 했다.
확실히 신비인으로 천공공이란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나이와 얼굴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또한 만능자는 그를 만나려면 자신이 준 신표 없이는 불가능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여기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빨리 만나고 오는 게 낫겠어.”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천공공을 만나면 철갑을 열 수 있겠지?”
“글쎄요…… 만능자께서도 힘들다고 하셨으니까…… 그래도 철갑을 직접 만든 분이라고 하니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좋아. 내일 당장 움직이자고.”
“아니에요. 인양과 녹검 씨가 내려오는 대로 떠나도록 하죠.”
“엥? 으아, 오늘은 야외에서 자게 생겼구만. 깨끗하게 목욕까지 했는데…….”
“나중에 다녀와서 다시 하면 되잖아요.”
“그래, 그래. 둘이 내려오면 바로 떠날 준비를 할게.”
객잔에서 동영 무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진강에서 하루를 보낸 뒤 하문으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다급하게 계획이 변했다.
인양과 녹림야검이 내려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은 동안, 고진유는 복건성의 무림에 대해 물었다.
“복건성에도 무림맹에 속한 문파가 있지 않나요?”
“서너 군데 있긴…… 하지? 근데, 다른 지역성과 다르게 복건성을 대표해 이름을 알릴 정도로 유명하거나 대문파라고 부를 정도로 큰 문파는 없어.”
“있긴 하다는 말이네요?”
“당연하지. 그래도 복건 무림도 무시할 수는 없어. 근데……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건데?”
“형이 말한 서너 문파 중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인가요?”
“안계에 가면 천주문이 있어. 여기서 빨리 움직이면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좋았어요. 그다음은요?”
묵경은 곧바로 복건성의 문파들 중 두 곳을 이어 떠올렸다.
“그리고…… 삼명에 가면 숭의창가가 있고, 장주에는 가장 세력이 강한 장주심가가 있지. 이들 문파가 복건성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릴 무력을 지니고 있어.”
복건성의 무림에서 강하다고 알려진 세 문파.
안계 천주문과 삼명 숭의창가, 그리고 장주의 장주심가.
“묵경 형, 이들 세 문파가 모인다면?”
“어느 정도 힘이 되냐고? 왜 물어보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요. 대충 그들이 힘을 알고 싶어요.”
“두 문파가 모인다면 서문세가와 충분히 겨루어도 충분히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한 건 세 문파가 모이면 호남오대명문무가 중 어느 곳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거란 정도?”
“오대명문세가와 맞먹는다라…….”
‘그 정도면 누가 와도 충분하겠는데.’
고진유의 머릿속에는 이미 모든 계획이 세워졌다.
“만일 누군가 형이 사는 집을 강탈하려 쳐들어온다면, 내어줄 건가요?”
“…….”
묵경은 대답을 잘해야 했다.
‘말을 까딱 잘못했다가는 말릴 거야.’
고진유가 다시 물었다.
“자기 집 앞마당에 도둑놈이 쳐들어 와서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자기 집은 자신의 손으로 지켜야죠.”
“뭐…… 그렇긴 하지. 당연히 남이 지켜주는 것은 아니지.”
“음! 됐어요. 계획대로 먼저 천공공을 먼저 만나도록 하죠. 그리고 장주에 들르는 겁니다.”
“장주라면…….”
장주심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냥 넘어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동영이 포전에 진영을 구축했다는 말을 들은 그때,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인양과 녹검 씨가 나오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죠.”
“그래, 그래.”
묵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올 때가 됐으니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
일각 뒤.
객잔을 나선 네 명.
하문으로는 고진유와 묵경만 따로 움직였다.
그리고 인양과 녹림야검은 동영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포전으로 향했다.
‘오 일 뒤 안계 천주문에서!’
* * *
하문.
복건성 최고의 비경은 이곳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곳이었다.
“남해 바다는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게.”
고진유와 묵경은 중원 남부 출신이었다.
둘은 곧장 하문으로 들어선 뒤 구룡강 하구를 따라 하문의 바닷가로 움직였다.
천공공은 하문의 남쪽에 위치한 고랑서의 한 장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저기가 숙장화원인가 본데요. 가보죠.”
고진유와 묵경은 숙장화원으로 천천히 걸었다.
작은 만을 감싼 위치에 지어진 화원이 특이했다.
숙장화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 사이에 죽림이 뻗어 있었다.
‘음…… 숙장…….’
화원의 대문 앞에 다가섰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똑똑.
고진유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도 전혀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한 번 밀어볼까?”
묵경은 문을 밀었지만 잠겨 있는 듯 열리지 않았다.
‘볼일이 있으면 알아서 열고 들어오라는 말이군. 만능자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이 맞구나.’
숙장화원에 가면 문이 닫혀 있을 것이라 고진유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것들이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군.’
대문을 자세히 보자, 대문 중간중간에 색이 다른 부분들이 박혀 있었다.
탁탁탁탁.
숙정화원의 글자 횟수를 하나씩 센 뒤 그 수만큼 눌렀다.
끼이이이익-
하나씩 맞힐 때마다 문 안에서 기계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르륵-
‘됐어.’
대문이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묵경은 스스로 열리는 대문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오…이런… 문에도 장치해놓았군.”
“중원에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네요.”
고진유는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것도…….’
몇 걸음 걷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숙장화원은 복도를 통해 경내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구조.
이번에는 복도 앞에 철창살이 닫혀 있었다.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는 말이군.”
철창살을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자물쇠를 열어야 했다.
고진유는 요대 안에서 가느다란 철심을 꺼낸 뒤 자물쇠 안에 밀어 넣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자물쇠는 기본적이야. 이건 쉽게 열려…….’
철컥.
고진유의 생각대로 몇 번 움직이기도 전에 자물쇠가 열렸다.
드르르르르-
철창살도 대문처럼 손을 대지 않았지만 위로 올라갔다.
“……하아.”
고진유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선 채로 복도 끝을 보았다.
“형, 내가 밟는 그대로 따라오세요.”
“이것도 기관이야?”
“그런 것 같아요.”
“알겠다.”
복도 끝까지 거리는 십 장의 짧은 거리.
복도의 폭은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로세로 한 자 간격으로 화강석이 바닥에 이어져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는 거야?”
“이건 여기 서서 봐야 해요. 바닥에 색이 다르죠?”
묵경은 고진유의 옆에 서서 복도를 보았다.
“어…… 그러네?”
“복도 전체를 하나의 자물쇠라고 보면 돼요. 색이 다른 게 걸쇠 부분이 맞는 것 같아요. 방금 철창살 앞에 있던 자물쇠의 구조를 바닥에 평평하게 설치했어요.”
“아하…… 그런가?”
“정말로 대단한 분이세요. 이렇게 평면으로 자물쇠를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난…… 네가 더 대단하다. 이걸 한 번에 보고 알아보냐.”
“그분께서 모든 문마다 잠금 장치를 해놓았을 테니 유심히 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냥 주의 깊게 본 것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것밖에 알려준 게 없잖아.”
“그냥…… 제가 너무 대단해서 이젠 무덤덤하네요.”
“역시 이래야 너답다.”
“하하하! 갑니다. 잘 따라오세요.”
휘익!
고진유는 가볍게 한 발을 뛰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톡톡 건너는 듯 나아갔다.
묵경도 곧바로 고진유가 밟는 위치를 정확히 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스으윽.
고진유와 묵경은 복도를 가볍게 통과한 뒤 내원으로 들어섰다.
“왜 이리 조용하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묵경의 말처럼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화원의 정원에 심어 놓은 꽃들과 나무들은 늘 깨끗하게 손을 보는 듯했다.
“사람이 없는 것치곤 너무 정리가 잘 되어 있어요.”
“그렇긴 한데…… 너무 조용하잖아.”
고진유와 묵경은 정원을 지나 앞에 보이는 건물 앞으로 다가섰다.
“안으로 들어가 보죠.”
고진유는 먼저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살폈다.
‘흐음…….’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만졌다.
[따뜻하네요.]
[누가 있다는 거야?]
[한 번 찾아보죠.]
고진유는 구경을 하듯 천천히 걸었다.
한쪽 벽 서랍장에 놓인 화병들을 유심히 보았다.
씨익.
높이가 낮은 화병이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형, 찾았어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묵경은 긴장하며 내력을 끌어 올릴 준비를 했다.
화병을 잡자 팽팽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이것이었군.’
화병을 힘을 주며 당기려든 순간,
‘흠…… 아냐. 이건 너무 쉬워.’
이건 너무 간단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함정이군.’
고진유는 화병에서 손을 놓았다.
[왜?]
[함정 같아요. 너무 쉬워요.]
[아하…….]
분명한 건 이곳에 누군지는 몰라도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위를 자세히 살폈지만, 숨어 있는 장소를 찾아낼 수 없었다.
‘완벽해. 못 찾겠는데…….’
하는 수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본도는 화산파 제자 화산도협이라 합니다. 만능자께서 어르신을 찾는다고 하니 이곳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진유는 포권을 한 뒤 허공을 향해 신패를 꺼내 들었다.
장백령에서 나올 때 만능자에게 받은 신패로, 천공공이 그에게 준 선물이라 했다.
그때,
우우우웅-
건물 아래에서 거대한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그리고 방 전체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어…….”
“엄청나네요.”
고진유와 묵경은 어떻게 될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덜컹!
지하로 완전히 내려왔는지 멈춰 섰다.
“저기 앞에 기척이 있어요.”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인기척을 찾았다.
앞으로 걸어가자 의자에 앉아 있는 인형이 보였다.
“사람이…… 아닌데?”
“…….”
고진유는 인형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맞아요. 안에 사람이 들어 있군요.”
“진짜?”
스으윽-
그때, 인형이 꿈틀거리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젊은 사람의 목소리?’
인형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 이십 대 중반 정도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화산도협이 맞습니까?”
“그렇소. 죄송하지만 천공공 님이 아닌 듯한데…….”
“그분은 제 사부님이십니다.”
“천공공 님의 제자라 하셨소이까?”
“채경중이라 합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
고진유와 묵경은 그의 뒤를 따랐다.
끼이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그의 뒤편 너머로 죽림이 보였다.
‘여기는…….’
숙장화원로 들어서는 입구 옆에서 본 죽림이었다.
정원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올라와서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고진유와 묵경은 정자에 앉았다.
두 사람 앞에 채경중이 앉으면서 고진유의 허리를 보았다.
“사부님을 뵈려고 온 이유가 철갑 때문이겠군요.”
“…….”
고진유는 담담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천공공이 아닌 그가 철갑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 표정이시군요. 당연히 궁금하실 겁니다. 제가 철갑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제 말이 맞지요?”
“그렇소이다. 그대가 극일천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알고 싶소.”
“사부님께서 극일천에게 철갑을 만들어주었지요. 제자가 사부님의 곁에서 물건을 만들 때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철갑을 만들 때도 함께했다는 것입니까?”
“함께 만들지는 않고, 보조만 했을 뿐입니다.”
사부인 천공공과 함께 물건을 만들었다면, 극일천을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몇 년 전 사부님을 만나기 위해 극일천에서 사람이 왔더군요. 그가 말하기를, 무림맹에서 잃어버렸던 철갑이 다시 중원에 나왔다고 하더이다. 철갑을 가진 인물이 화산도협이라면서요.”
“극일천에서 철갑이 나타난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그가 무슨 이유로 왔던 것입니까?”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열 수 없는지 재차 물어보기 위해서.”
“철갑을 열 수 없습니까?”
“당사자의 피가 아니라면 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천공공께서도 열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그때 사부님은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채경중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혹시…… 그분께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까?”
“사부님은 그를 따라 극일천으로 갔습니다.”
“……!”
천공공을 만나기 위해 복건성까지 내려왔건만 그기 극일천에 갔다니.
“그대는 여기에 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살려준 것 같았습니다.”
“허어…… 이거 참…….”
묵경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천공공이 없는 이상 철갑을 열 방법은 없었다.
“그때부터 이곳에 혼자 있었던 겁니까?”
“네. 사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혹시 제가 철갑을 잠시 볼 수 있겠습니까?”
“…….”
고진유는 허리에서 철갑을 풀어 아래로 내려놓았다.
철갑을 보는 채경중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