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61화 (161/425)

161화

해적이라 하나 그들 또한 뱃사람이긴 마찬가지.

“음…….”

묵경과 고진유는 왜구들이 한곳에 모여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끄덕끄덕.

묵경은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진유 아우, 뱃사람들이 왜 술을 잘 마시는지 알겠어.”

“그게 이유가 있어요?”

“할 일이 없잖아.”

“아. 푸훗,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기 인양과 녹검 씨처럼 고기라도 잡으면 덜 심심할 텐데.”

그 두 사람은 해적선에서 가장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 낚싯대를 만들었는지 갑판에 앉아서 고기를 잡았다.

“잡았다!”

인양은 천성적인 어복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바닷속에 낚싯바늘을 던지자마자 고기들이 낚여 올라왔다.

하지만 인양과 달리 녹림야검의 곁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하는 것은 낚시가 아니었다.

고진유가 가르쳐준 수련법이었다.

“살성을 유지한 채 살기를 지우는 방법으로 괜찮은 모양인데?”

낚싯바늘에 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고기들이 한 마리도 미끼를 물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도 완벽하게 지울 수 없는 모양이군.”

“그래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녹림야검의 낚싯대 줄이 가끔씩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흐음…….’

녹림야검은 온몸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손에 잡고 있는 낚싯대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해적선에 몸을 맡기며 멍하게 낚싯대만 잡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지나치는 무아(無我)를 느꼈다.

그때,

쿠우욱!

‘왔다!’

녹림야검이 낚싯대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어억!”

튀이잉!

재빨리 낚싯대를 옆으로 제치자, 낚싯줄을 통해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잡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고기의 손맛이 묵직했다.

휘이익!

낚싯대를 위로 힘껏 잡아당겼다.

바닷물을 뚫고 거대한 고기가 솟구쳤다.

“와아아아아-!!”

옆에서 함께 낚시하던 인양은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고기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뚝.

그리고 낚싯줄이 끊어지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고기가 다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아아…….”

“아깝다, 아까워.”

동시에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 * *

네 명을 실은 해적선은 강소를 지나 절강, 그리고 복건성 앞바다로 점점 내려갔다.

“화산도협님…….”

해적 두목이 머리를 조아린 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도착한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복건성의 먼 앞바다에 해적선이 멈췄다.

해적선은 중원 해안가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여기부터서는 작은 배에 갈아탄 뒤 육지로 들어가야 했다.

“왜구 두목, 무사히 온다고 고생이 많았소이다.”

‘참 내, 이름도 알면서 끝까지 왜구 두목으로 불러?’

해적 두목이 속으로 꿍얼거리는 사이, 고진유는 품에서 전표 한 장을 꺼냈다.

“따로 줄 건 없고, 여기까지 우리들을 데려다주느라 고생한 비용이오. 얼마 되지 않으니 알아서 사용하시오.”

“감사합니다……?”

해적 두목은 대수롭지 않게 전표를 받았다.

얼마 안 된다는 말에 기대조차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커억!!”

갑자기 목이 막힌 소리를 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전표의 금액을 다시 확인했다.

“잘못…… 주신 게…….”

“좋은 정보값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럼 우린 그만 갈 테니 다음에 만나면 인사라도 합시다.”

“……아…… 네에.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 * *

해적선에서 갈아탄 구조선이 육지 근처까지 다가갔다.

“저기까지만. 수고들 했소.”

해안가 바위까지 이십 장의 거리.

그곳까지 중간중간 겨우 설 수 있는 바위들이 수면 위로 놓여 있었다.

휘이익!

탓, 타탓!

고진유는 신형을 날리며 바위들을 밟고 해안가에 내려섰다.

그 뒤를 이어 인양과 묵경, 마지막으로 녹림야검까지 신법을 펼쳤다.

해적들은 마치 수면 위를 날듯이 움직이는 그들의 신형에 입이 다물지 못했다.

처억!

해안가에 내려서자 발바닥에서부터 땅의 감촉이 느껴졌다.

묵경은 태어나서 이번만큼 오래 배를 탄 적이 없었다.

“발밑에 묵직한 느낌이 좋을 줄은 몰랐어.”

“역시 바다보다는 땅이 편하네요.”

“크으, 좋아. 우선 객잔부터 가자!”

묵겨은 한시라도 빨리 씻었으면 했다.

“그렇게 하죠. 지금 우리 몰골이 말이 아닐 겁니다.”

해적선에서 씻었다고 하지만,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고 싶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부터 하죠.”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녹림야검아 곧장 움직이더니, 잠시 뒤 빠르게 돌아왔다.

“화산도협님, 진강이라는 마을이랍니다.”

“하문까지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졌다고 하던가요?”

“일반인들이 걷는 데 삼사 일 정도면, 무림인들의 경우 천천히 움직여도 이틀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고했어요.”

“마을까지는 반시진이라고 했으니 이각 정도면 마을이 나올 것 같습니다.”

“우선 그곳 마을에서 쉬도록 하죠.”

네 명은 신법을 펼치지 않고 걸었지만 일반인들보다 걸음은 서너 배가 빨랐다.

이각이 지나기도 전, 예상보다 빨리 마을이 나타났다.

네 사람이 마을 초입에 다가설 때였다.

“묵경 형, 너무 조용한데.”

“그러게. 뭘까.”

녹림야검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마을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들어가죠.”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 주민들이 슬쩍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오, 확실히 뭔가 있는데?”

“그러게요. 뭔가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고진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마을의 분위기를 단번에 파악했다.

“진유 형, 제가 가서 물어볼까요?”

“이미 무언갈 두려워하고 있다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먼저 객잔으로 가보자.”

“네.”

녹림야검이 앞장을 서며 객잔을 찾았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객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쪽에 객잔이 있습니다.”

“수고했어요.”

객잔도 쥐죽은 듯 조용했다.

평상시라면 귀가 멍할 정도로 떠들썩거리며 달려오던 점소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표정에서도 두려움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방이 두 개 필요한데 있는가?”

“네…… 에…… 저어…… 그게…….”

“있다는 건가, 아니면 없다는 건가?”

“…….”

점소이는 앞으로 살짝 몸을 숙였다. 그리고 고진유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소곤거렸다.

“이, 이 마을은 위험합니다.”

“아, 그럼 있다는 말이군요. 우리가 배를 오래 타고 와서 바로 씻어야 할 것 같은데.”

스윽.

그때, 객잔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고개를 돌려 입구를 쳐다보았다.

모두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복장은 중원인들처럼 입었는데.’

하지만 고진유는 사내들이 중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신형에서 흐르는 내기는 중원인과 달랐다.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도 사내들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점소이가 쭈뼛거리며 객실로 올라갔다.

‘멍청하기는…… 분명 가르쳐 줬는데. 죽어도 난 몰라…….’

[동영 무사들이야.]

[어떻게 할까요?]

[저놈들이 움직일 때까지 지켜보도록 하지.]

[알겠어요.]

고진유는 앞서 있던 점소이의 어깨를 잡았다.

“허억! 무, 무슨 일……?!”

“이보게. 걱정 안 해도 되네.”

“……그…… 예에…….”

점소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객실로 올라갔다.

스윽.

그 순간, 객잔에 앉아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일어난 뒤 이 층으로 움직였다.

녹림야검은 계단을 오르는 도중 걸음을 멈추며 다가오는 사내를 막아섰다.

“잠깐만 걸음을 멈추는 게 어떻소? 어딜 가는 것이오?”

“……네놈들은 중원 무인인가?”

“당신이 보는 그대로.”

“이 마을에 온 이유가 있는가?”

“방금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한 것 같군. 배를 타고 왔다고 한 걸 잊었나?”

“무슨 배를 말하는 것이지?”

“그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나? 한데, 넌 목소리를 보아하니 중원인이 아닌 듯한데.”

“…….”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뒤돌아서며 일행과 시선을 마주쳤다.

파앗!!

순간, 사내가 가슴에 숨겨 놓았던 단검을 빼낸 뒤 앞으로 뻗었다.

휘이익!!

녹림야검은 사내가 뻗은 단검을 옆으로 신형을 돌리면서 가볍게 피했다.

퍼어어억!

곧바로 비어 있는 사내의 가슴을 내리쳤다.

반격을 당한 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너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객잔에 있던 무리들이 벌떡 일어났다.

“저놈들을 죽여라!!”

동영삼천군 소속의 삼대장이 소리치자, 식탁 아래에서 검을 꺼낸 무리가 계단을 향해 일직선으로 쏟아져 나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복건성에 내리면 기다리고 있는 건 동영과의 싸움이 확실했다.

“묵경 형, 저 정도는 저희들이 상대하겠습니다!”

인양이 계단 아래로 몸을 날렸다.

퍼어억!

그러고는 양쪽 무릎으로 동영 무사의 얼굴을 그대로 찍어 눌렸다.

“커어어억!”

동영 무사의 비명 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스걱-

이번에는 날카롭게 움직인 녹수검의 검기가 동영 무사들 사이로 지나갔다.

삼대장은 수하들이 당하는 광경을 보며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빨리 저놈들을 죽여라!!”

그 또한 장검을 꺼낸 뒤 녹림야검의 앞으로 다가서며 거리를 좁혔다.

번쩍!

이 장의 거리.

‘내 죽음의 공간 범위에 들어온 이상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다.’

빛이 쏟아지듯 녹림야검의 어깨로 그의 검이 날아왔다.

‘너무 단순해.’

녹림야검은 상대의 검을 보며 옆으로 가볍게 쳐냈다.

“……?!”

너무 쉽게 막아내자 삼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이걸로 놀라는 건 아니겠지?”

녹림야검은 어이없다는 투로 그를 보며 비웃었다.

“이노오옴!!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더냐?!”

“무시는 무슨…….”

위이이이잉-

그는 검을 빠르게 교차하며 휘둘렀다.

검의 움직임에 일어난 검풍에 객잔의 의자와 탁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녹림야검은 녹수검을 앞으로 겨누며 눈을 감았다.

‘살기를 지우고 살성을 일으킨다.’

조금씩 느낌이 왔다.

“죽어라!!!”

삼대장은 소리를 지르며 녹림야검을 향해 검풍을 쏟아냈다.

팟팟팟팟!!

사방에 검기에 뻗어 나가며 녹림야검의 목을 향해 다가왔다.

스윽-

녹림야검은 눈을 뜨면서 살인무경의 정수, 살성무를 추기 시작했다.

한 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검풍을 맞으며 삼대장의 검을 뚫고 나갔다.

뚝. 뚝.

녹수검의 검신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커어어억…….”

쿠웅!

삼대장은 숨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고는 그대로 몸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허리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그의 수하들이 쓰러진 삼대장을 빠르게 부축하며 물러났다.

“네…… 놈들. 여기서 기다려라. 꼭…… 복수를 할 것이다.”

타아아앗!!

동영무사들이 객잔에서 순식간에 밖으로 사라졌다.

객잔은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했다.

‘하아아아…….’

이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점소이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내가 치워야 해…….’

툭툭.

뒤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객실이 어딘가?”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에고…… 나도 모르겠다.’

점소이는 포기한 듯 객실을 안내했다.

“따라 오십시오.”

계단을 오른 뒤 맨 앞쪽에 있는 객실을 가리켰다.

“여기 붙은 두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고맙소. 지금 바로 씻을 수 있게 물을 준비해 주시오.”

“네에,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건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할 테니 걱정 말게.”

‘이건……?’

고진유의 손에 들린 금전.

“네! 알겠습니다!”

점소이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바로 목욕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탓, 타탓!

점소이는 기분 좋게 계단을 내려갔다.

* * *

고진유와 묵경은 목욕을 한 뒤 일 층으로 내려왔다.

인양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자리를 만들었다.

“진유 아우, 한바탕 몰려오겠지?”

“아마도요? 우린 그동안 식사나 하고 있죠. 녹검 씨가 그놈들 뒤를 따라 갔으니 동영의 본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휘이이익!!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녹림야검이 객잔으로 돌아왔다.

“화산도협님, 다녀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그놈들이 움직이는 게 늦어서 조금 걸렸습니다.”

“어디에 있던가요?”

“포전에 진영을 구축했습니다. 규모를 봤을 때 필가도의 서너 배에 해당했습니다.”

“그 정도면 중원에 세 곳으로 나누어 들어온 한 곳이군.”

녹림야검과 인양은 아직 씻지 않은 상태였다.

“두 사람, 이젠 씻도록 해요. 그놈들이 당장 온다고 해도 시간은 충분할 것 같으니.”

“넵.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 층으로 올라갔다.

새외무림이 들어왔다면 필히 중원 무림이 나서야 했다.

묵경이 말했다.

“무림맹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알려야죠.”

“흐음, 무림맹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걸릴 텐데…….”

묵경은 기다리자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고진유의 생각은 달랐다.

무림맹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형, 동영에서만 중원에 들어왔을까요?”

“음? 그게 무슨 말이야?”

“극일천에서 동영만 과연 불렀을까 하는 거예요.”

“네 말은…… 새외무림 전체가 무림에 들어왔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극일천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림맹에서 동영을 상대하는 즉시 다른 곳에서 중원에 침범할 것이 확실했다.

“음…… 그게 정말 극일천의 뜻이라면 복잡해지겠어. 우리 아직 그도 못 찾았잖아.”

고진유는 우선 천공공을 찾아내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