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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60화 (160/425)

160화

고진유는 해적선에서 내리기 전 해적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돌아온 뒤 점혈을 풀어줄 테니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끄덕끄덕.

작은 배를 이용해 섬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녹검 씨는 저자를 태워요.”

“넵,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동영십살 산본을 끌고 비상구조선에 실었다.

휘익!

고진유가 마지막으로 배에 올라탔다.

“섬으로 갑시다.”

스윽.

스윽.

네 명이 동시에 노를 젓자 배가 빠르게 섬으로 움직였다.

해안가에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화포에 의해 섬은 모든 것이 부서져 있었다.

묵경이 전방을 살폈다.

“완전 개박살이 났네.”

섬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어 보였다.

휘익!!

인양과 녹림야검은 바로 얕은 바다에 뛰어들어 배를 뭍 위로 끌어당겼다.

고진유도 두 사람을 따라 내렸다.

“화포 이십 기가 이 정도라면…… 관군들이 가진 화포는 위력이 엄청나겠군요.”

“이래서 화포 관리를 잘해야 하는 거야.”

비록 관군 개개인은 무공이 약하다고 해도, 화포 수백 기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알았다.

섬은 조용했다.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군.’

고진유는 앞장을 서며 섬 안으로 들어섰다.

‘흠.’

주위에서 기가 출렁거리며 살기가 강하게 흘러나왔다.

“조심들 해요. 바로 나올 겁니다.”

타아앗!

고진유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전방에서 삼십여 명의 동영 무사들이 솟아올라 네 명을 포위했다.

휙휙휙.

동영 무사들은 좌우로 번갈아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피잇! 피잇! 피잇!

네 명을 향해 비검이 날아왔다.

“수련을 많이 한 건 좋은데, 너무 정직하군.”

틀에 박힌 수련에 의한 공격.

고진유는 매화산우의 초식으로 날아오는 비검을 간단하게 쳐냈다.

챙챙챙챙!

묵경과 녹림야검도 마찬가지.

연환연검과 녹수검으로 단순하게 날아오는 비검들을 가볍게 튕겨냈다.

스팟-

인양이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신법을 펼치자,

“어어……?”

갑자기 앞으로 나타난 인양을 보면서 동영 무사들은 당황했다.

퍽퍽퍽퍽!

동영무사들이 검을 펼치기 전에 화산복호권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단번에 다섯 명의 동영 무사들이 그들의 정열에서 이탈했다.

“잘하는데.”

묵경은 인양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양도 이젠 충분히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있었다.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화라라락-!!

묵경은 연화무환보를 펼치며 동영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챠르르…….

연화연검에서 펼친 신연화혼미검법의 경지는 이미 극성까지 닿아 있었다.

“커어어억……!!”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검기에 동영 무사들이 피를 쏟아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변하는 묵경의 연화연검을 막아낼 수 없었다.

쳐내고자 해도 오히려 검을 감은 채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스걱-

연화연검이 그들의 팔을 지나치며 가슴과 목을 베었다.

섬 안으로 더 들어서자 넓은 장소가 나타났다.

“와아아아아-!!”

“저놈들을 죽여라!!”

사방에서 수백 명의 동영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사사사사-

녹림야검의 발소리가 가볍게 바닥을 스쳤다.

그의 사부인 녹살형객이 전수해전 살인무경(殺人武經).

사부조차 겨우 팔 성밖에 익히지 못했던 불완전한 무공이었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도협님.”

“무슨 일이오?”

“제 무공을 한 번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좋소.”

이들에게 자신의 위치는 동료라고 부르기에 애매했다.

그런데도 고진유가 바로 허락을 할 줄 몰랐다.

용기를 얻은 그가 살인무경을 끝까지 펼쳤다.

그리고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한데 고진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펼친 게 살인무경이라 했습니까?”

“네…….”

“살수라는 사람이 그걸 가지고 제대로 일하겠소?”

“……죄송합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검을 줘보시오.”

“아…… 네에.”

고진유는 녹수검을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파앗!

‘헉……?’

녹수검에서 뻗어나온 기에 녹림야검의 몸이 송곳에 찌르는 듯 따끔거렸다.

“이게 바로 살기.”

스륵.

고진유는 다시 녹수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이건…… 뭐지? 살기도 아닌데…… 온몸이 떨리고 있어.’

“이것이 바로 살성이오.”

살기와 살성으로 겨눈 녹수검.

“잘 보시오.”

스스스스-

고진유는 살성을 끌어낸 뒤 녹림야검이 보여주었던 살인광자(殺人狂者)의 초식을 흉내 냈다.

“허억?!”

녹림야검은 순간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분명 같은 초식이었지만 기세만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었다.

“방금 내가 얼마의 내력을 사용했다고 보시오?”

“그건…….”

“그대의 내공과 같은 수위였소.”

“…….”

녹림야검은 믿을 수 없었다.

“차이가 어디서 났다고 보시오?”

“자, 잘 모르겠습니다.”

“녹검 씨는 살인무경을 이해 못 하고 있군요. 이 무공은 오직 순수한 살성만으로 끌어내야 하는 겁니다.”

“아…… 하…….”

“살기가 아닌 살성. 그것으로 무공을 펼쳐야 하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까?”

“넵, 화산도협님, 고맙습니다.”

살기(殺氣)와 살성(殺性).

녹림야검은 그날 이후 살성에 대해 고진유에게 도움을 받으며 깨우쳐야 했다.

스걱.

녹수검의 살인무경이 펼쳐지자 동영 무사들은 녹림야검의 뒤로 한 명도 남김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묵경은 그가 거의 삼십 명을 혼자서 베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허어. 녹검 씨의 살인무경이 갈수록 장난 아니군.”

“살성이 뭔지 조금씩 깨우쳐 가고 있거든요.”

고진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돌아섰다. 그러고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동영 무사들을 향해 사의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그들의 눈에는 가볍게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십 성의 내력으로 펼치는 검이었다.

“커어어억!!”

“검…… 귀…….”

그들의 눈에 고진유는 검귀였다.

녹림야검은 심지어 오로지 살인만을 즐기는 살귀와도 같아 보였다.

‘저놈들의 정체가 대체 뭐냔 말이야!’

동영일천군장 일월산종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뒤로 물러나라!!”

후다다닥!

동영 무사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그들은 완전히 질린 듯한 시선으로 두려움이 가득했다.

동영천군의 선발대인 그들은 한 달 뒤 동영에서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산동성에서 거점을 확보해야 했다.

“네…… 놈들은 누구냐?”

“중원인. 그러는 당신은?”

‘이 새끼가 장난하나?’

간단한 고진유의 답에 일월산종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동영은 왜 중원으로 들어왔지?”

“…….”

일월산종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당신들도 누군가의 명을 따르는 건 아니겠지?”

꿀꺽.

일월산종의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고진유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극일천.”

그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천천히 말을 했다.

“…….”

이번에는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맞군.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새외무림까지 손을 뻗고 있을 줄이야.”

“진유 아우, 어떻게 하지?”

“극일천의 일이라면 끝장을 볼 수밖에요.”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내며 물었다.

“본도가 물러가라고 한다고 해도 떠나지 않겠지?”

“우린 동영존의 명을 따를 뿐이다!”

“그럴 줄 알았소. 전부 덤비시오. 본도가 모두 상대해 주지.”

“저놈들을 전부 죽여라!!”

일월산종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다다다다다-

동영 무사들이 검을 잡은 채 앞으로 달려 나왔다.

우우우웅-

사의검의 자줏빛 검신이 점점 진하게 퍼져 나갔다.

파아아아앗-!!

동영 무사들이 앞을 서너 겹으로 앞을 가렸지만 고진유가 움직이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헉……!”

수하들을 뚫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고진유의 모습에 일월산종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검을 뽑기 위해 검자루를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그보다 고진유가 한발 빨랐다.

타악!!

고진유가 오른발을 들어 검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의 손을 눌렀다.

“……큭!!”

일월산종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뽑기 위해 힘을 주었다.

“본도를 원망하지 마시오.”

사의검이 그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매…… 화…… 향이…….’

사의검이 지나간 뒤로 매화가 피어올랐다.

몸이 아래로 천천히 무너졌다.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쿠우우웅.

일원산종의 죽음은 허무했다.

필가도의 혈전이 그렇게 끝이 났다.

* * *

혈향이 사방에 가득했다.

동영 무사들의 신음이 바닥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그들 옆으로 묵검과 인양, 녹림야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보았다.

“헉헉.”

“하아…….”

“젠장, 힘들어서 죽겠네. 앞으로 이런 싸움은 안 했으면 좋겠어.”

묵경은 투덜거리며 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후후, 모두 수고했어요. 그만 가죠.”

고진유는 해안가로 다시 나왔다.

점혈을 당한 채 앉아 있던 산본은 놀란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아무리 화포로 먼저 공격했다고 해도…… 네 명이서 동영일천군과 싸워 이긴다고……?’

아무리 적이지만 무인의 입장에서 존경심이 들었다.

픽픽.

산본은 혈이 풀리자 몸이 축 늘어졌다.

그는 긴장한 채 고진유를 보았다.

“알아서 정리하시오.”

“……?”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진유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배 한 척이 물에 잠기지 않은 채 떠 있었다.

“저걸 수리하면 괜찮을 거요. 동영으로 돌아가든 말든 그대들이 알아서 하란 얘기요.”

“…….”

고진유는 필가도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바다에 떠 있는 해적선으로 돌아갔다.

* * *

원래 계획은 상선을 타고 산동성에 하선한 뒤 복건성으로 곧장 내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굳이 육로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해적선으로 충분히 해로를 통해 복건성 하문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묵경 형, 다행이네요. 편하게 갈 수 있잖아요.”

“음…… 난 불편해. 제대로 씻어야 하는데…….”

“그래도 저기 인양과 녹검 씨는 재미있게 놀고 있잖아요.”

묵경은 고개를 올려 돛대 사이를 뛰어다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녹검 씨야 원래 산적이라서 해적들과 공통점이 있잖아.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인양은 아무나 친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애가 사회성이 좋아.”

“천성이죠.”

스윽.

묵경은 다시 고개를 돌려 고진유를 보았다.

“근데…… 복건성에 도착하면 천공공만 만날 거지?”

“다른 데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요?”

“내가 아니라 네가 가고 싶은 데겠지.”

“하하하! 형, 내가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어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이겼을 뿐이니까. 여기에 화포가 없었다면 대충 봤다가 돌아왔겠죠.”

“사실이냐? 그럼 복건성에서 다른 일은 안 할 거야?”

“당연하죠. 뭐 혹시 가는 길이라면 슬쩍 볼 수는 있겠지만…….”

묵경은 자신이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난 오래 살고 싶다.”

“알겠어요. 형도 잘 알잖아요. 제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안 해요.”

“음…… 그랬던가?”

“그랬어요.”

“알겠다. 네가 그렇다고 하면 넘어가주지.”

묵경은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진유 아우. 혹시 지옥혈림의 북 소저에게 우리가 어디로 간다고 알려줘야 하지 않아?”

“그렇죠. 움직인다면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했거든요.”

“알려줬어?”

“산동으로 간다는 것만……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복건성으로 가는 것은 모르네요.”

“이런, 계약 위반이라고 우길 텐데?”

“우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 굳이 계약 위반이라고 하긴 애매하잖아요. 시간도 없었고. 내려서 연락을 보내죠.”

“흐음, 혹시나 산동성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본 거야.”

“설마요? 그렇게 빨리 움직인다고요?”

* * *

“이…… 사람이……!!”

북소연은 산동성의 봉래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대련 여순포에서 산동으로 넘어오기 위해 상선을 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곧장 상선의 도착지를 확인한 뒤 곧장 달려왔다.

근데…… 상선에서 내린 승객들을 살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철갑을 열고서 알려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 아냐?’

그녀는 곧장 상선에서 내린 승객을 만나 확인을 했다.

오는 도중에 왜구를 만났다고 했다.

“……왜구의 해적선에 탔다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해적들과 같이 움직이는 거야?”

그리고 해적선에 탔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왜구는 왜 여기 산동까지 기어 올라왔지?”

그녀의 촉이 발동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었다.

“한번 살펴봐야겠어.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을 어디서 찾지?”

북소연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어…… 저자들은…….’

* * *

흑화전주 배조경은 육십사괘무장 판진모와 함께 포구로 향했다.

두 사람 뒤로 호위대주 잠소가 따랐다.

상선 앞에 도착한 배조경이 손으로 가리키자,

휘이이익!

잠소가 빠르게 상선으로 올라탔다.

반각이 지나기 전 잠소는 배조경 앞으로 내려섰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간에 해적선을 탄 게 확실합니다. 왜구라 했습니다.”

“왜구?”

배조경은 왜구라는 말에 무엇인가 걸리는 게 있었다.

화산도협이 왜구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천문전에 연락이 되는 인물이 있나?”

“네. 있긴 합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무림에 동영이 나왔는가 확인을 해보게.”

“당장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소는 곧바로 배조경의 명을 확인하기 위해 사라졌다.

“허어…… 배 전주,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군.”

판진모는 그동안 육십사괘무장들을 괴롭혔던 화산도협을 만나기 위해 함께했다.

나하중의 명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화산도협의 목을 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 확인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

배조경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흠…… 일이 꼬이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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