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58화 (158/425)

158화

출렁.

선측을 때리는 파도에 상선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으아이고.”

녹림야검은 똑바로 서지 못하고 몸이 흔들거렸다.

고진유와 달리 세 사람은 바다에서 배를 타본 것이 처음이었다.

특히나 한평생을 산에서 살았던 그는 더욱더 신기했다.

아무것도 없이 수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녹검 씨는 바다가 좋은가 봐?”

“네. 사람들에게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습니다.”

“후후후, 근데…… 이거 좀 재밌는걸? 녹검 씨 현직이 산적이잖아. 이번 기회에 해적으로 옮겨보는 것도 좋을 듯한데 어때?”

“묵경 님, 괜찮은 곳이 있다면 나중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캬, 녹검 씨는 생각이 열린 사람이라 좋아.”

“감사합니다.”

산동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반 정도 더 내려와야 할 지점을 지날 때였다.

배 안이 갑자기 웅성거리더니, 선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구……!!”

“해적이 온다……!”

승객들은 겁을 먹은 표정으로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해적선을 바라보았다.

선미로 뛰어갔던 인양과 녹림야검이 돌아왔다.

“해적이라고 하네요.”

“녹검 씨 말이 무섭게 해적이 나타나는군.”

묵경은 녹림야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인양에게 해적은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했다.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선 상황을 지켜보다가 움직이도록 하자.”

“네!”

쏴아아아아아-

바다 너머로 해적선이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해적선 갑판 위로 해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중원인이 아니었다.

‘왜구들이 저렇게 생겼군.’

왜구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묵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왜구들이 여기까지 올라와 있지?”

왜구의 활동 반경은 주로 중원 아래 남쪽의 바다.

보통 이렇게 멀리 북쪽까지 올라와서 해적질을 하진 않았다.

해적선에서 왜구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왜 저리 시끄러워?”

“그러게요.”

녹림야검은 유심히 다가오는 해적선을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녹검 씨, 뭘 그렇게 유심히 봐? 하하, 정말로 관심이 있는 모양이지?”

“왜구에 대해 듣긴 했지만 전부 이상하게 생긴 듯하군요. 차라리 산적이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게 생기긴 했나…… 머리는 왜 저래?”

“완전 미개인 같아 보여요.”

인양도 신기한 듯 다가오는 왜구들을 보았다.

상선이 아무리 빨리 도망가려고 해도, 해적질을 전문으로 하는 해적선에게서 도망가기는 역부족이었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면서 해적선이 옆으로 붙어 섰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해적선 갑판에 왜구들이 긴 장대 끝에 달린 갈고리를 던져 상선을 끌어당긴 뒤 도망가지 못하도록 고정을 시켰다.

‘호…… 저런 식으로 배를 포박하는 방법이 있군.’

녹림야검은 새로운 방법을 자세히 보았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많이 해본 솜씨들인데.”

묵경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행동들을 보면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진유 아우. 우린 어떻게 할까? 여기로 넘어오면 사람들이 다치잖아.”

“저놈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건너가서 손을 보도록 하죠.”

고진유의 결정에 녹림야검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녹검 씨가 맡아서 처리하세요.”

휘이익!!

왜구들이 건너오기 전, 녹림야검이 먼저 해적선으로 신형을 날렸다.

“왜구 놈들이 감히 어딜 넘보는 것이냐! 여긴 우리 구역이거늘. 네놈들의 목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내력을 끌어 올린 채 고함을 질렀다.

스거걱-

녹림야검은 해적선에 내려서면서 곁에 있는 왜구를 단숨에 베었다.

“으으으악!!”

느닷없이 녹수검에 베인 왜구는 비명을 지르며 갑판 위에 쓰러졌다.

“적이다!! 이놈을 죽여라!!”

왜구들은 갑자기 떨어져 내리더니 동료를 죽인 녹림야검 주위를 감쌌다.

녹림야검의 둘러싸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울렸다.

‘뭐라고 하는 거야?’

왜구들의 떠드는 소리를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때, 왜구 중에서 수장인 듯한 인물이 목청이 터지듯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녹림야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 검을 내리치는 왜구들.

파아아앗-!!

녹림야검은 사방에서 떨어지는 검을 가볍게 막아내며 밖으로 쳐냈다.

까아아앙!!

그의 내력에 의해 왜구들의 신형이 뒤로 밀려 나가면서 휘청거렸다.

피이이이잉-

피이이이잉-!!

이번에는 뒤에 있던 왜구들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제법인군!’

파아앗!!

녹림야검이 살영신법을 펼치며 화살을 피했다.

화살을 쏘던 왜구들이 어리둥절하더니 좌우를 살피며 사라진 녹림야검을 찾았다.

“여기 있다. 이놈들아!!”

“허어억!!”

왜구들은 바로 옆에 나타난 그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녹림 최고의 살수였던 실력에 고진유와 인양에게 신법에 대해 설명을 들어면서 살영신법을 보완했다.

왜구들의 눈에는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쉬이이이익-

스거거거걱!!

‘저놈들을 먼저 잡는다.’

녹림야검은 녹수검을 휘두르며 활을 든 왜구들을 먼저 베기 시작했다.

“커어어억……!”

“아아아악!!”

왜구들의 비명이 해적선으로 퍼져 나갔다.

휘이이익!

녹림야검의 독무대.

왜구들은 살영신법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건너편 상선에 있는 승객들의 눈에 보인 그의 모습은 전장에 홀로 쳐들어가 싸우는 용맹한 무장 그 자체였다.

“와!!! 저분은 누구지?”

“왜구들이 꼼짝도 못 하고 있어……!”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것 같구만. 이렇게 속이 시원할 줄이야…….”

승객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녹림야검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저벅저벅.

그때, 왜구들 사이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비켜라.”

왜구들은 두려움에 잠긴 채 빠르게 물러났다.

이마에 백색의 두건을 맨 사내.

허리에는 장검과 두 자루의 단검이 매달려 있었다.

“멈춰라.”

사내가 녹림야검을 향해 중원의 말을 했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군?”

“네놈은 누구지?”

“산적이다.”

“산적?”

상대의 뜻밖의 대답에, 사내는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산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무슨 말인지 잘 몰라? 산적이라고. 바다는 해적. 산은 산적.”

“…….”

사내가 녹림야검의 모습을 아래위로 살폈다. 얼굴의 검흔을 보니 보통 일반인은 아닌 듯했다.

“산적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보통 산에 있지 않나?”

“한 번도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좋아. 산적이라고 하니 한 가지 제안을 하겠소. 우리가 하는 일에 참견 말고 가만히 있으면 여기서 나온 금액 중 삼분의 일을 주도록 하지. 어떻소?”

“시끄럽군. 헛소리 그만하고 허리에 찬 검이나 빼지?”

“큭, 비슷한 직업이라 목숨은 살려주려 했더니…… 중원 놈들은 머리가 나쁘다니까.”

슥슥.

사내는 바닥을 미끄러지듯 서너 걸음 앞으로 나왔다.

‘특이한 걸음이군.’

장검을 빼지 않고 검자루만을 잡은 그가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녹림야검의 귓가에 고진유의 전음이 들려왔다.

[상대는 일반 해적이 아니군요. 보아하니 쾌검의 자세이니 조심하시오.]

검자루를 잡고만 있는 사내의 손을 보자,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내력이 느껴졌다.

녹림야검도 바로 느꼈다.

‘이자는 해적이 아니다.’

해적이 고강한 내력을 지니고 있을 수 없다.

‘왜구가 아니라면 혹시…… 동영의 무사인가?’

정말로 그들이 확실하다면 사내가 펼치려고 하는 건 소문으로 듣던 동영의 발검술이 틀림없었다.

녹림야검도 녹수검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처음 상대해 보는 동영의 무사.

‘어떻게 하지?’

처음이라는 것에 몸이 굳어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어허. 녹검 씨. 인양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녹검 씨도 많이 강해졌어요.]

고진유의 전음이 다시 들렸다.

“휴우우우우…….”

호흡으로 긴장된 몸을 풀었다.

‘맞아. 세상에 저분보다 강한 무인이 없다는 것을 잊었다.’

고진유가 자신을 보며 강하다고 했다.

무공에 관해 그는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았다.

뚝.

다가오던 사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우리 일을 방해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라.”

“여기서 물러날 데가 어디 있느냐?”

타아아앗!!

사내는 부지불식간에 앞발을 강하게 내디디며 허리에서 장검을 뽑은 뒤 올려 쳤다.

번쩍!!

“뇌참룡.”

장검의 끝에 솟구친 검기가 녹림야검의 가슴을 향했다.

‘이 정도야…… 충분히 피할 수 있다!!’

녹림야검은 오히려 앞으로 살영신법을 펼치며 다가섰다.

스팟-!!

다가오는 검기를 피해 허리를 돌리는 동시에 녹수검으로 막아냈다.

까아아앙!!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친 신형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섰다.

“크큭…… 목을 내려놓아라!!”

사내는 재빨리 남은 한 손으로 단검을 뽑으며 녹림야검의 허리를 찌르고자 했다.

“치사한 놈. 계획적이었군!”

녹수검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남은 검으로 목숨을 베고자 한 것.

“네놈 뜻대로 안 될 것이다!”

녹림야검은 그를 앞으로 강하게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한 수가 틀어지자 인상을 썼다.

“……보통 산적이 아니군.”

“네놈도 해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체가 뭐지?”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정말로 동영에서 온 모양이군?”

“…….”

“새외무림의 동영이 여기에 있다니 수상한데?”

“시끄럽다.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중요한 것을 들킨 듯 사내가 전력을 끌어 올렸다.

얼른 녹림야검을 죽인 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네놈들은 상선으로 넘어가서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죽여라! 이놈은 내가 맡겠다.”

“넵!”

사내의 명에 왜구들이 상선으로 넘어오기 위해 날아올랐다.

하지만,

풍덩!

“으아악!!”

그들은 상선을 건너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다.

“왜구들이 어딜 넘어오려고.”

묵경과 인양은 갑판에 서서 왜구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수십 명이 한 명도 넘어서지 못한 채 바다에 빠지고 있었다.

‘저놈들은 또 누구지?’

상선을 보는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하하하! 놀랐느냐? 네놈들은 진짜 운이 없군. 하필이면 저분들이 탄 배를 습격하다니!”

“대체 네놈들은…….”

“시끄럽고, 우린 마무리나 짓도록 하자고.”

녹림야검은 최후의 한 수를 펼치지 위해 녹수검을 들었다.

우우우웅-

십 성의 내력을 끌어내자 녹림야검의 주위로 녹색의 운무가 생기며 신형을 감췄다.

바닥을 흐르는 녹무가 사내의 발을 스치며 지나갔다.

“커어억.”

바로 사내의 비명이 들렸다.

털썩.

‘동영십살인…… 내가…… 중원의 산적놈에게 당하다니……!’

동영십살 산본은 다가온 녹림야검을 노려보았다.

“나를 죽여라.”

“죽고 싶소?”

“당연하다. 본국의 무사도는 싸움에 지면 죽음으로 명예를 지킨다.”

“…….”

“그대가 하지 않겠다면…….”

그는 순식간에 허리에 찬 단검을 뽑은 뒤 자결을 하고자 두 손으로 잡았다.

터어어엉!

순간, 자신의 복부를 향해 찌르던 단검이 공중을 날아 건너편에 떨어졌다.

“……!!”

산본이 멍하니 단검을 발로 찬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죽으면 안 되오. 당신에게 들을 말이 많소.”

고진유는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점혈을 했다.

* * *

해적선은 그대로 멈춘 채, 상선만이 먼저 길을 떠나갔다.

네 사람은 해적선에 남았다.

상선과 함께 떠나려고 했지만, 해적들 중 동영의 무사가 있었다.

왜구와 함께 있는 이유를 묻자 입을 다문 채 눈빛만 흔들렸다.

상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고진유가 무릎을 꿇은 사내 앞에 섰다.

“소속은?”

“…….”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결하려고 하는 인물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통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살고 싶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고진유는 목표를 다른 인물로 바꿨다.

“녹검 씨, 여기 배 주인은 어디 있나요?”

녹림야검은 바로 해적 두목의 목덜미를 잡고 앞으로 나왔다

“인양아, 오른팔 하나 올려놓고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인양은 해적 두목의 오른팔을 잡은 뒤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부터 본인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팔부터 시작해 사지가 하나씩 잘려 나갈 것이다. 한 번 봐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보면 알겠지.”

왜구 중 중원의 말을 할 줄 아는 인물이 곧바로 통역했다.

해적 두목의 얼굴이 단번에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단지 해적일 뿐이었다. 동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냥 보상을 해준다고 하기에 배를 태워줬을 뿐이었다.

“네놈들은 왜구가 맞나?”

끄덕끄덕.

“좋소. 계속 이렇게 하면 괜찮을 거요.”

고진유는 다시 물었다.

“저자도 왜구인가?”

해적 두목이 곧바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해적이 아니면, 동영의 무사인가?”

끄덕끄덕.

“왜 같이 있지?”

통역을 맡은 왜구가 해적 두목에게 들은 대로 말을 전달했다.

동영의 무사들을 중원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왜구의 해적선을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중원에 동영이 들어왔다는 것인가?”

통역한 왜구의 대답이 나왔다.

“총 세 군데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중 한 곳이 북쪽 바다로, 필가산이란 섬에 집결을 했다고…… 저자는 남해 복건성에 있던 인물인데 필가산으로 오던 도중에 상선을 만나…….”

묵경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일 그들이 바로 필가산으로 갔으면 여기서 잡히지 않았을 터.

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이 있듯, 하필이면 지나가다가 상선을 만나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

“필가산이 섬인가요?”

“요녕성에서 산동성으로 넘어가는 바다에 있는 섬이야.”

새외무림 중 한 곳.

동영이 무림에 숨어 들어오고 있었다.

“진유 아우, 설마 필가산에 가자는 말이 아니겠지? 상대는 새외무림의 한 곳이야. 우리 네 명만 상대하기에는 벅차지 않을까?”

“그렇긴 하죠. 우린 바쁜 일도 있는데…… 근데 궁금하지 않아요?”

“……아니, 안 궁금해. 바쁘다며. 우린 할 일도 많잖아. 그냥 무림맹에 연락하면 돼. 새외무림의 일이라면 당장 움직일 거야.”

“맹주님이 잘하시겠죠. 음…… 근데 우린 지옥수도 갔다 왔잖아요. 그곳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안 비슷해.”

묵경은 대답을 하면서도 결국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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