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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52화 (152/425)

152화

흑화천군을 이끌고 달려온 부전주 다주경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허도의 죽음은 그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화산도협이 우리 존재를 알고 있다.’

피하지 않고 정찰을 나간 수하를 죽인 이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마든지 따라오라는 뜻이 틀림없다.

“한번 해보자는 것이군. 네놈이 원한다면 따라가 주지.”

다주경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하의 시신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묻어라.”

“네.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앞으로 나와 쓰러진 시신을 들어 올렸다.

투욱.

그때, 시신에서 둥근 물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데구루루-

“벽력탄이다!! 모두 피해라!!”

다주경이 소리치자 흑화천군의 수하들이 뒤로 몸을 날렸다.

퍼어어엉-!!!

연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바닥에서 터진 것은 벽력탄이 아니라 연막탄이었다.

“이 망할…… 놈……!!”

다주경은 전방을 가로막은 연막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반각이 지나서야 앞을 가렸던 연막이 사라졌다.

‘따라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협박인가? 그렇다고 내가 안 따라갈 줄 알고?’

녹림야검의 장난을 본 다주경은 그들이 추격을 포기하게끔 수작을 부렸다고 믿었다.

“안추, 허도 대신에 그들의 뒤를 쫓도록.”

“넵, 알겠습니다.”

흑화천군 사이에서 한 명의 사내가 전방을 향해 달렸다.

‘어라? 이것 봐라.’

녹림야검은 다시금 달려오는 인영의 기를 느꼈다.

‘꽤 도전적인데?’

바로 정찰병을 다시 보낼 줄이야.

파앗!

녹림야검은 재차 다가오는 인영의 기를 향해 움직였다.

‘얼마든지 와라. 나타나는 놈은 모두 잡아주마.’

안추는 신법을 펼치면서 사방을 살폈다.

적을 따라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중간에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허도가 당했다.

그는 동료 중 상대의 기를 찾아내는 데 가장 예민했고 신법도 빨랐다. 흑화천군 중에서 그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없을 정도였다.

’허도가 당할 정도면…… 기를 살피면서 움직이면 안 돼. 허도조차 상대의 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건 내기를 완벽하게 감췄다는 거야.’

어쩌면 주위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지 몰랐다.

안추는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언제든지 발검을 할 수 있도록 검을 잡은 채 움직였다.

휘익!

왼쪽에서 무엇인가 기척이 들렸다.

안추는 걸음을 멈춘 채 왼쪽을 향해 돌아서며 검을 뽑았다.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허. 이런 간단한 수법에도 속는다고? 대단한 놈들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는데.”

‘뒤다!’

그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재빨리 돌아섰다.

우락부락한 사내의 얼굴.

목 옆에 검상의 흔적이 보였다.

화산도협과 동행하는 일행 중 녹림출신의 인물이 있다고 했다.

“당신이 녹림야검이군.”

씨익.

녹림야검은 기분이 좋아졌다.

극일천에서 자신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그동안 열심히 했다는 증거였다.

“극일천에서 내가 누군지 아는군.”

“녹림의 인물이 왜 그와 함께하고 있지?”

“빚을 못 갚아서. 내 몸값이 조금 비싸거든. 녹림대존께서 내 몸값을 아직 내지 못했지. 그동안은 어쩔 수 없이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고.”

“지금 그냥 떠나면 되지 않소?”

“허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본인이 산적이라고 해서 의리가 없는 줄 아시오? 하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극일천 네놈들에게 의리라는 건 있을 수 없지.”

“…….”

안추의 얼굴빛이 살기에 의해 붉게 물들어갔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산적 놈에게 충고를 받을 줄이야. 네놈은 차라리 신형을 감춘 채 움직여야 했다.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난 이상 네놈이 살아날 기회는 없다.”

파아앗-!!

안추의 기습 공격이 펼쳐졌다.

앞으로 뻗은 검 끝에서 쏟아져 나온 검기가 녹림야검의 목을 향했다.

스르르-

녹림야검의 신형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어디……?’

사라진 신형은 물론 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안추는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검을 재빨리 끌어당기며 상대의 반격을 대비했다.

내력을 완전히 개방하며 주위의 모든 움직임을 살폈지만 녹림야검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과 하나가 될 정도의 실력이라고?’

안추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렸다.

‘어디에 숨어서 기습할 생각이냐!’

하지만,

‘…….’

일각이 지나도록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주위에는 어떠한 기도 느낄 수 없었다.

‘망할 놈의 산적 새끼가……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그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녹림야검은 이미 떠나고 그 자리에 없었다.

* * *

녹림야검은 안추를 상대하지 않았다.

상대의 무공은 꽤 강해 보였다.

충분히 싸울 수 있었지만 만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면, 그사이 다른 인물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

굳이 무리하지 않고 일행에게 돌아온 뒤 고진유에게 보고했다.

“뒤에 오는 놈들은 극일천이 맞습니다. 인원은 일백 명 정도로 이번에는 제법 강한 놈들이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고진유는 폭음 소리를 들었다.

녹림야검은 대수롭지 않은 듯 정찰병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후후후.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네 사람을 따르는 극일천의 무리들.

이들을 뒤에 달고 장백령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진유 아우. 정리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

“그렇죠? 괜히 끌고 가서 일을 만들 필요는 없겠네요.”

“어떻게 할까?”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

묵경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유격전을 하겠다는 거야?”

“그동안 계속 당했으면서도 일백 명으로 찾아온 건 자신이 있다는 뜻 같은데, 굳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싸워줄 필요가 있을까요?”

묵경은 곰곰이 생각했다.

‘음…… 그러고 보니 난 왜 계속 불리하게 전면전만 생각했지?’

“모여들 보세요.”

고진유의 미소를 지으며 계획을 알려주었다.

“세 사람은 그들 주위를 돌면서 움직이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겁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죠.”

“무엇을 확실히 보여주려고?”

“떼거리로 달려드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의미가 없는 일인지. 사람 잃고 시간 낭비하는 것임을 확실히 가르쳐 줄 겁니다.”

고진유의 말에서 묵경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절대 고수를 상대로 인원의 우위로는 항상 이길 수 없다는 것.

방금 고진유가 말한 방법대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충분히 다수의 인원을 상대할 수 있을 터.

‘절대 고수가 체면상 하지 못하는 것도 진유 아우는 신경을 안 쓰지.’

“좋아. 진유 아우의 계획대로 하지.”

“좋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 * *

고진유의 유령 같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팟팟!

“커어어억.”

“왼쪽이다!!”

흑화천군 안에서 비명과 함께 소리가 울렸다.

“부전주님, 또 세 명이 당했습니다!!”

“……!!”

다주경은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후방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수하들을 기습하더니 그 뒤로 좌우전후를 가리지 않고 치고 빠지기를 시도했다.

이후 이각도 지나기 전, 거의 삼십 명의 수하들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거냐?!’

고진유는 흑화천군 주위를 돌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수하들이 당했다.

다주경은 어쩔 수 없이 수하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다.

“최대한 바짝 당겨 모여라!! 이번에는 꼭 잡을 것이다!!”

서로의 방어를 도와주면 고진유가 공격할 때를 노려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피우우웅-

허공을 가로지르는 소리.

쿠욱!

수하의 허벅지에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박혔다.

핑핑핑핑핑-!!

연이어 사방을 돌아가면서 허공 속에서 수십 개의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날아왔다.

“아아악!!”

“커어어억.”

흑화천군의 수하들은 나뭇가지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찾을 수 없었다.

중앙에 뭉쳐 있으니 오히려 표적이 쉽게 노출되었다.

게다가 뭉친 상태에서는 서로 몸을 부딪치게 되면서 제대로 피할 수도 없었다.

흩어져 있는 것보다 상황이 더 위험하게 변했다.

다주경은 다시 소리쳤다.

“빨리 흩어져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흑화천군의 수하들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스걱-

바깥에서부터 다시 수하들이 쓰러져 갔다.

꿀꺽.

다주경은 목이 말라왔다.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무공의 고수라는 작자가 치사하게 움직이면서 수하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비웃었다.

한데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 명씩 한 명씩 천천히 수하들을 지우고 있었다.

어느덧 그의 주위에 서 있는 수하의 수는 이십 명도 되지 않았다.

‘천멸자…… 제기랄…….’

흑화천군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던 계획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그에게 재미있는 놀이만 만들어 준 셈이었다.

“화산도협, 나오너라!! 비겁하게 숨어서 움직이지 말고 당당하게 나와 싸우자!!”

스걱-

다주경이 소리치며 말을 하는 사이에도 뒤에 있던 수하가 바닥에 쓰러졌다.

“화산도협!!”

그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화산도협의 움직임은 유령과 같았다.

멀리서 공간을 뚫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법은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아아악!!”

“으어억…….”

이번에는 사방에서 동시에 수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일백 명의 흑화천군이 모두 쓰러지고 나서야, 고진유가 끝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마지막이군.”

“……그대가 화산도협인가?”

다주경은 힘이 빠졌다.

모든 기운이 빠진 채 서 있을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러나시오.”

“살려주겠다는 것인가?”

“뭐, 계속해서 본도를 따라오겠다면 말리진 않겠소.”

“…….”

“당신을 살려주는 이유는 하나요. 돌아가서 똑바로 전하시오. 본도를 상대하고자 애꿎은 사람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소.”

고진유는 그에게 더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만 가겠소. 여기에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중원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것이외다.”

휘이이익!

고진유는 분명히 뜻을 전한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아…….’

다주경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개를 숙인 수하들.

그들도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저 멍하니 자신들의 상황을 볼 뿐이었다.

‘저놈을 잡으려면 육십사괘무장의 특무괘장 이상의 무인이 나설 수밖에 없어.’

꽈아악.

다주경은 손에 힘을 주었다.

‘화산도협, 다음번에 만날 때는 오늘과는 다를 것이다.’

* * *

일행은 장백산에서 일생을 보낸 노인을 찾기 위해 백향촌으로 들어섰다.

대략 오십여 가구의 촌락.

힐끔힐끔.

외지인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마을인지 촌락에 들어선 네 명의 사내를 주민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고진유는 마을 주민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가 이상한가 보네.”

“이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올 이유가 없겠지. 신기하기도 하고 수상하기도 할 거야.”

“근데…… 다들 평안한 모습들이네요.”

백향촌에는 외지인들이 관심을 가질 물건이 없었다.

그저 농사나 짓고 사는 일반 백성들로 보였다.

“우선 여기 촌장님이나 먼저 만나는 게 좋겠어요.”

“제가 물어볼게요.”

네 사람 중 가장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은 인양이었다.

인양이 논두렁에서 괭이질하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섰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바쁘신가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여기 촌장님 댁이 어디인가요?”

“무슨 일로 촌장님을 찾는 게요?”

“우선 촌장님께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라서요.”

사내는 허리를 일으키며 인양의 뒤편에 있는 세 명을 보았다.

얼른 고개를 숙이는 고진유를 보자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그는 손으로 마을 안쪽을 가리켰다.

“저기 높이 솟은 나무가 보이오?”

“아, 네에. 보입니다.”

“그 나무가 있는 댁이 촌장님이 계시는 댁이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인양은 앞장을 서며 감나무가 있는 집 앞에 다가섰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진유 형, 열려 있는데요?”

“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고진유의 말처럼 마당에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밖에 누구시오?”

중년 여인이 양손에 마대 자루와 물통을 들고 대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촌장님을 뵙고자 왔습니다.”

“난데, 당신들은 누구요?”

“……정말입니까?”

“여자가 촌장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소?”

“그건 아닙니다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실례했습니다.”

고진유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녀는 허리에 찬 검을 보면서 일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원인이 여기에 무슨 일로 왔소?”

“촌장님께서는 중원인이 아니십니까?”

“맞소. 난 해동인이오.”

“아하…… 그래서 마을에 집들이 중원과 달랐군요. 여기 계시는 분들은 전부 해동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섞여 있소.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오.”

“고맙습니다.”

고진유와 세 사람은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오신 분들께 마땅히 대접해야 하는데…… 잠시만 앉아서 쉬고 계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손님이 왔으면 당연히 대접해야 하는 게 예의가 아니겠소.”

그녀는 재빨리 밖으로 나간 뒤 사라졌다.

“…….”

그때, 네 사람 모두 이상한 것을 본 듯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신법은…… 아닌 것 같지?”

“네. 근데 호충신법과 닮아 보였어요.”

“그렇지?”

고진유는 그녀의 보폭에서 심상치 않음을 보았다.

“진유 아우, 저 여인이 무림인인가?”

“중원인이 아니라서…… 딱히 무림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모호한데요.”

“음…… 설마 천년해동의 전설은 아니겠지?”

묵경은 뜬금없이 하나의 글귀가 떠올랐다.

“형,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고대 무림사에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천 년 전 해동의 무공이 중원을 휘젓고 간 적이 있다고 했어. 그 뒤로 가끔 해동인이 중원에 놀러왔다가 갔다고 해. 근데 꼭 그때마다 중원무림 최고인이 아프거나 폐관에 들어갔다는 거지.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해동무공이 엄청나다는 것이네요.”

“뭐…… 확인이 안 되니…….”

묵경은 말을 멈추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의 두 손에 들린 커다란 쟁반 위에는 음식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손님 대접하는데 너무 올릴 게 없소. 너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구먼.”

“…….”

그녀는 환한 미소를 띠며 음식들을 아래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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