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크크크크…….”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주 동왕은 마차 앞에 내려놓은 의자에 앉은 채 건너편에 나타난 사내들을 보았다.
“겨우 네 명만 나타났다는 것인가? 현 당주, 이런 경우를 보고 어이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
“그렇습니다. 화산도협이 강한 무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네 명으로는 본 산장을 이길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는 계속 웃음이 나왔다.
“크크크, 어떻게 상대를 하면 좋겠나?”
“굳이 저들과 힘들게 붙어서 싸울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우린 오백 명으로 수적 우위에 있습니다. 거리를 둔 채 강궁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본 산장의 짜릿한 강궁 맛을 보여주자고. 마무리는 단숨에 밀어붙이면 되겠군. 바로 시작하게!”
동왕은 마음에 들었다.
현 당주가 수하들 앞으로 나섰다.
“전원, 강궁을 들어라!”
* * *
고진유는 화살을 채운 뒤 활을 당기는 통화산장의 무인들을 보았다.
“활을 준비하는군요.”
“일단 강궁의 사정거리에서 피해야 하지 않을까?”
“그대로 뚫고 나갈 겁니다.”
묵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무모해. 우린 네 명밖에 안 되잖아.”
“괜찮습니다. 우리 경공 실력이라면 충분히 화살을 뚫고 적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호하면 최대한 빠르게 저들을 향해 달리세요.”
“칫, 알겠다!”
스르릉-
묵경은 연환연검을 빼 들었다.
녹림야검의 손에도 이미 녹수검이 들려 있었다.
‘이분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 또한 화살을 뚫고 달리겠다는 말이 황당했지만 고진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이이이이…….”
“…….”
쉬이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고진유가 소리쳤다.
“가자!”
타앗! 파앗! 피웅-! 휘익!!
고진유와 함께 세 명의 신형이 통화산장의 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로 날아오른 오백 개의 화살 아래를 달리는 네 명의 신형.
‘헉?!’
현하유는 종화평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눈이 커졌다.
‘빠르…… 다.’
벌써 그들과의 거리가 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는 눈동자가 흔들리며 다급해졌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향해 똑바로 쏴라!”
척척척척.
피우우우웅-!!
이번에는 직선으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고진유는 옆에서 달리던 세 사람에게 소리쳤다.
“모두 내 뒤로 바짝 붙어!”
휘익. 휙. 휙.
인양과 묵경, 그리고 녹림야검의 신형이 고진유 뒤로 일자로 붙어 섰다.
번쩍!!
고진유는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사의검을 휘둘렀다.
타다다다다당-!!
달려가는 앞으로 검막이 생기며 날아오던 화살들은 모두 튕겨냈다.
두 번째 공격도 실패로 돌아갔다.
“빨리 다음 화살을 준……!”
순간, 그들을 향해 매화 잎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이십사수매화검법 중 가장 광폭한 매화뇌강(梅花雷降)의 초식이 그들 사이에 떨어지고, 순식간에 십여 명이 쓰러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진유의 뒤에 바짝 따라오던 세 명이 그들을 가차 없이 베기 시작했다.
“으악!!”
“커어어억-”
비명 소리가 울렸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뒤로 물러나라!! 저놈들과 떨어져서 싸워라!!”
동왕은 상황을 똑바로 재정비하고자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수하들의 비명에 묻혀들었다.
‘망할……!!’
일각도 지나지 않는 시간.
“어떻게 이런 일이…….”
화살이 아니라 차라리 오백 명으로 이들을 밀어붙였어야 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수하들은 대부분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휘이익!
동왕은 앞으로 내려선 사내를 보았다.
자줏빛 외날검.
“화산…… 도협.”
“본도의 앞을 무작정 막는 것을 보니 당신들은 극일천 사람인 모양이군.”
“…….”
“하긴. 무턱대고 본도를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라면 극일천밖에 더 있겠소? 놀랍게도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당신들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이노오오옴!! 죽어라-!!!”
동왕은 쌍장을 앞으로 뻗었다.
십이성 전력을 다한 청음장(靑陰掌).
쌍장에서 뻗어 나온 푸른색의 기가 돌풍을 만들며 고진유를 덮쳤다.
하지만,
번쩍!!
돌풍을 뚫고 나온 구멍으로 백색의 빛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커어억!!”
동왕은 뒷걸음질 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찌지지직-
이번에는 청음장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청음장이…… 뚫렸다.’
동왕은 뒤로 물러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난 이자의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어…….’
오백 명의 수하로 충분할 거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통화산장은 물러날 곳도 없었다.
동왕은 마지막으로 모든 내력을 끌어내며 고진유를 향해 달렸다.
“그대의 무공에 대해 인정한다. 하지만 나를 이겨도 본 천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건 알 수 없지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본도는 강합니다.”
쉬이이이-!!
사의검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동왕은 쌍장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스걱-
날카로운 검기가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극일천은 절대로 본도의 검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동왕은 고진유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이미 제자리에서 숨이 끊어진 채로 천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동왕의 죽음을 본 통화산장의 수하들은 싸울 의지를 잃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들 네 명은 살귀와 다름 없었다.
후다닥!!
그들 중 누군가 한 명이 달아나자 하나둘씩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휴우…… 끝났군.”
통화산장과의 싸움은 끝이 났다.
묵경은 연화검을 내려놓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흑화천군은 잠시 휴식을 위해 멈췄다.
휘익!
정찰을 나갔던 수하가 다급히 다가섰다.
“통화산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지?”
“장주 동왕이 화산도협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보고해라.”
“통화산장 오백 명이 네 명의 화산도협 일행과 싸웠지만, 동왕이 당한 뒤 모두 물러났다고 합니다.”
통화산장의 무력은 강했다.
모용세가를 견제하기 위해 준비된 세력이 아니었던가.
‘쯧,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 봤는데.’
오백 명의 인원으로도 네 명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에 짙은 인상을 썼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강한 무공을 지닌 게 확실했다.
‘육십사괘무장도 화산도협을 잡지 못했어.’
극일천에서 그들의 무공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한 편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실력을 갖춘 녀석들을 보냈다가는 괜한 손실만 생기겠군.’
화산도협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흑화천군의 일백 명은 흑화전의 최고 무인들.
개개인의 실력들은 육십사괘장의 인무괘장과 비슷했다.
‘흑화검진을 펼친다면 화산도협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다주경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 한 자신이 있었다.
“후도. 그들의 뒤를 쫓아라.”
“존명.”
* * *
일행은 통화를 지나 백산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도착한 백산의 첫 마을.
묵경은 중앙 마을에서 불이 환하게 밝은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객잔이 보이는군.”
“우선 저곳에서 하루 쉬도록 하죠.”
일행은 바로 객잔으로 들어섰다.
객잔에는 거의 자리가 찬 듯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점소이가 문 앞으로 다가오며 네 사람을 살폈다.
“방이…… 남아 있는 방이 있긴 한데…… 특관입니다만…….”
“잘됐군. 그곳으로 안내하게.”
점소이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스윽.
인양이 금전이 든 주머니를 점소이에게 슬쩍 보여 주었다.
“충분한 것 같소?”
“아…… 네에. 죄송합니다. 소인이 얼른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점소이의 허리가 그대로 접혔다.
특관은 객잔의 삼 층 전체를 사용했다.
“손님께서는 이곳에서 편히 쉬시면 됩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하시면 당장 가지고 오겠습니다.”
“고맙네.”
“…….”
점소이는 바로 내려가지 않고 좌우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수고했네.”
고진유는 은전 한 냥을 내밀었다.
‘헉…….’
그의 눈이 커졌다.
은전 한 냥은 그에게 한 달에 해당하는 월급과 비슷했다.
“아이고. 공자님. 감사합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내려가서 먹어야 하나?”
“공자님께서 원하시면 직접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닐세. 아래에 내려가서 먹겠네. 음식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알겠습니다. 본 객잔이 자랑하는 최상의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점소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우리도 내려가 볼까?”
일 층 객잔에는 여전히 손님들로 가득했다.
일행은 그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객잔의 거의 중앙에 있는 탓인지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통화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들려왔다.
“통화산장이 거의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게 맞는가?”
“나도 그 소문 들었네. 자네들 철장 형님 알지? 그 형님이 우연히 그 주위에 있다가 싸우는 현장을 봤다고 하더라고. 통화산장의 수백 명의 무사가……!”
사내는 입에 침을 튀기면서 이런저런 몸짓을 취하며 사실적으로 내뱉었다.
“근데…… 왜 그들이 화산도협님을 죽이려고 했을까?”
“그건 모르지. 여하튼 그분을 건드렸다가 제대로 남은 문파나 사람이 없다고 해서 천멸자(天滅者)라고 부르기로 했다더군!”
풋.
고진유는 물을 마시다가 뱉을 뻔했다.
“이야, 천멸자라…….”
“멋집니다.”
녹림야검이 진심으로 말했다.
“…….”
화산도협에 이어 또 다른 무명.
묵경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어때?”
“뭐가요?”
“천멸자에 대한 느낌은?”
“꼭 내가 나쁜 놈 같은데요.”
“녹검 씨의 말처럼 멋있는데 왜.”
“나 참…… 하하.”
고진유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우걱우걱.
녹림야검은 거의 걸신이 들린 듯 음식을 먹었다.
야들야들한 돼지고기가 입맛에 제대로 맞은 듯했다.
점소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식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아. 상당히 맛있어.”
“저희 객잔 자랑이지만, 주방장의 솜씨가 너무 좋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랑할 만하군.”
“감사합니다.”
고진유는 그에게 다시 은전 한 냥을 손에 쥐여 주었다.
벌써 은전 두 냥을 받아냈다.
점소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표를 내지 않고자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아, 혹시 장백령이라는 장소를 아는가?”
“글쎄요. 처음 듣는 곳입니다만, 장백산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게. 우린 이곳이 초행길이라 잘 알지 못한다네.”
“알겠습니다! 제가 볼일을 마친 뒤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요.”
“잘 부탁하겠네.”
점소이는 인사를 한 후 다른 탁자들 사이를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 * *
점소이는 장백령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을 알고 있을지 모르는 인물을 찾아내어 알려주었다.
백향촌에 가면 한평생 장백산에서 약초를 캐던 노인이 지낸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이 객잔을 나온 뒤 백향촌으로 길을 움직일 때였다.
이동한 지 이각 정도 지났을 시간이었다.
‘이건…….’
어제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기가 후방에서 느껴졌다.
“묵경 형, 우리 뒤에 누군가 따라붙은 것 같은데.”
“또?”
“계속해서 붙는 걸 보니 철갑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한 것 같네요. 이젠 제대로 해보자는 것 같은데.”
고진유의 예상으로도 예전과 달리 이제 극일천에서 끊임없이 달려들 것이 확실했다.
“어떻게 할 거야?”
“지금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니 굳이 기다렸다 상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적당한 선까지 들어오면 그때 상대하는 걸로 하죠.”
“좋아. 그렇게 하지. 녹검 씨는 어떤 녀석들인지 한 번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휘이익!
녹림야검은 곧바로 지나왔던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놈들 또한 전방을 살피기 위해 정찰을 보냈을 것이었다.
‘분명 지금쯤이면 정찰하기 위해 움직였을 텐데.’
주위를 살핀 지 반각이 지나자, 전방에서 움직이는 기를 발견했다.
‘저기서 오는군.’
앞으로 달려오면서 주위를 살피는 움직임을 찾았다.
상대가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고 움직이는 차이는 분명했다.
씨익.
녹림야검은 바로 미소를 지었다.
‘정찰 간 놈이 사라지면 일행의 움직임이 들켰다는 사실을 알고 천천히 움직일 테지.’
그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스르르르-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모든 소리를 죽이며 다가섰다.
그 또한 고진유와 함께하면서 내기의 흔적을 완벽하게 감추는 신법의 운용을 새롭게 익혔다.
살수 수업을 받았던 그는 새로운 경지에 올라설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슥슥슥.
흑의 사내는 주위를 살피면서 앞을 향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휘익!
그때였다.
옆으로 뭔가 스쳐 지나가는 기척.
‘뭐지?’
흑의 사내는 그대로 멈춘 채 주위를 살폈다.
‘분명 인기척인 것 같았는데?’
“어딜 보는 거냐?”
‘뒤다!’
파앗!!
흑의 사내는 앞으로 신법을 펼치며 달렸다.
‘이 정도면 충분이 떨어졌…… 없어?’
척!
흑의 사내는 그대로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하며 방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스걱-
날카로운 예기가 흑의 사내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다가오는 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쿠욱.”
신음을 내지르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누구…… 냐?”
“네놈을 저승으로 인도할 분이시지.”
휙휙!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가 어디 있는지 볼 수 없었다.
쉬이이익-
또 한 번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
흑의 사내는 피하고자 했지만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쿠우웅!
허무하게 앞으로 쓰러지며 목숨이 끊어졌다.
“내가 봐도 네놈들은 죽어도 마땅한 놈들이야.”
그가 봐도 극일천은 중원에서 사라져야 할 세력이었다.
두두두두두-
‘벌써 왔나?’
그때, 후방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기가 느껴졌다.
“흐흐흐. 좋은 걸 선물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