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50화 (150/425)

150화

벌컥.

연회가 이어지는 동안 모용지는 술만 계속해서 마셨다.

‘당했어.’

철갑은 자신을 잡기 위한 미끼였다.

‘나를 왜?’

북천의적이란 이름을 알리고자 한 것 맞지만, 특별히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신민상회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갔을 때 충분히 자신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모용지는 고개를 돌려 그를 찾았다.

‘어디 있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혼자 술 마시고 있소?”

‘……!’

술을 마셨다고 하나 그가 언제 뒤로 다가왔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내게 뭘 원하는 겁니까?”

“그대의 사부.”

모용지는 몸이 경직되었다.

사부를 찾기 위해 자신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모용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분을…… 왜 찾는…… 것입니까?”

“그분께 부탁을 드릴 것이 있소.”

“…….”

‘부탁이라고?’

“굳이 지금 말하지 않아도 좋소. 본도는 신민상회에 있을 테니 생각이 있으면 오시오.”

“만일…… 내가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기한은 정확히 내일 정오까지. 오지 않는다면 안 야장을 데리고 심양 전체를 돌아다닐 생각이오. 물론 여기 모용세가도 방문해야겠지요.”

“…….”

히죽 미소를 띤 고진유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협박하는 겁니까?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소. 난 사부님을 팔 수 없습니다.”

“그건 그대가 알아서 생각하시오. 본도도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겠소. 다만 본도는 당신 사부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소이다.”

“…….”

고진유가 할 이야기를 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 두 사람 곁으로 삼 공자 모용오가 다가오더니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소리쳤다.

“연회에 비무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삼공자의 말씀이 맞소이다.”

“당연히 비무가 있어야지요!”

사람들 사이에서 취한 듯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모용오는 두 팔을 벌리며 다시 소리쳤다.

“뜻하지 않게 중원 최고의 영웅께서 본 가에 방문했소이다. 본인이 그분께 삼 초의 비무를 청하고자 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하하! 좋습니다.”

“삼공자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람을 잡듯 여기저기서 모용오의 말에 찬성을 했다.

모용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멍청하게…….’

모용오의 무공이 강하긴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니, 그는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가주 모용남도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려고 하자, 셋째 아들을 얼른 말리고자 했지만…….

그보다 먼저 고진유가 대답했다.

“당연히 비무가 빠지면 안 되겠지요. 다만 본도와 그는 실력 차이가 나니 삼공자와는 제 의제가 대신 비무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인양은 갑자기 비무를 하라는 말에 놀랐지만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스윽.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천한 무공이지만 형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삼공자께서는 앞으로 나오시지요. 제가 가볍게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모용오는 어려 보이는 인양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알리고 싶은 계획이 틀어졌다.

“하! 하하하! 좋소이다. 화산도협의 의제라고 하니 본인의 좋은 상대가 되겠군요. 근데 혹시 한 수만에 비무가 끝이 나면…….”

“그때는 본도가 나머지 두 초식을 상대해 주겠소이다.”

“알겠소이다.”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답하자, 모용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연회장은 어느덧 비무장으로 빠르게 변했다.

인양의 곁으로 묵경이 가까이 다가서며 귓속말을 했다.

“인양아. 한 방이다.”

“네?”

“한 번에 끝낼 수 있겠지?”

“……알겠어요.”

툭툭.

묵경은 인양의 어깨를 두드린 후 뒤로 물러났다.

비무가 시작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런 기분인가?’

고진유의 곁에서 비무를 본 적은 많았지만 실제 비무는 처음이었다.

몸이 살짝 긴장된 듯 굳어졌다.

[넌 실전도 겪었잖아.]

곧바로 귓가에 고진유의 전음이 들렸다.

‘앗…….’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알아차린 인양은 목을 가볍게 돌리며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그 동작을 보던 모용오는 입가에 실소를 지었다.

‘긴장했군. 오래 갈 필요 없지. 단 한 수에 끝은 내주면 되겠군.’

두우우웅-!!

비무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오늘 본인과 비무를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알겠습니다.”

인양은 내력을 천천히 끌어 올렸다.

고진유가 알려준 신법공과 성녀곡의 속가제자가 되어 익힌 연화심공.

두 개의 내공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도록 새롭게 수련하면서 하나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스르르르-

인양의 전신으로 내력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 수만에 끝을 내라고 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선제 타격밖에 없다.

타아앙!!

단번에 폭발한 호충신법에 의해 인양의 신형이 여유롭게 있던 모용오의 정면으로 달려갔다.

‘어어어……?’

공간을 뚫고 나타난 듯한 인양에 모용지는 손을 올릴 틈도, 뒤로 물러날 틈도 없었다.

퍼어어억!!

거리를 줄이며 달려온 가속도에 더한 화산복호권이 모용지의 가슴을 내리쳤다.

털썩!

무방비로 심장에 가격당한 모용지는 삼 장을 날아간 뒤 바닥에 쓰러지며 기절했다.

인양이 일권에 내력을 거두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즉사였다.

“…….”

주위가 고요해졌다.

모용세가의 무인들 중 인양의 움직임을 똑바로 본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짝짝짝!

고진유는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와우우……!!”

“역시…… 화산도협 님의 의제이시다. 하긴 아무나 동생이 되는 건 아니지!!”

주위에서 비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묵경은 멋쩍은 듯 돌아오는 인양을 안았다.

“잘했어.”

“그런가요?”

“한 방에 갔잖아.”

“헤헤헤.”

* * *

심양의 소문은 빨랐다.

모용세가의 삼공자 모용오가 한 수밖에 나가떨어졌다.

이제 화산도협의 의제 인양에 대해 하나둘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양에서 하루를 보낸 일행은 신민상회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때, 객잔으로 한 명의 인물이 찾아왔다.

인양이 방으로 들어왔다.

“형, 모용지가 아래에 왔어요.”

“그래?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올라오라고 할까요?”

“그렇게 해.”

고진유도 잠시 떠날 준비를 멈춘 채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곧바로 모용지가 올라왔다.

“제때 맞춰왔군요. 떠날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

고진유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고맙습니다.”

모용지와 고진유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소이다.”

“무엇입니까?”

“정말 그분께 해가 되는 일이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모용지는 고진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분을 찾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며칠 전에 본도가 보여준 철갑 때문입니다.”

“아…….”

“혹시 모용 형께서는 열 수 있겠던가요?”

“……죄송합니다. 제 솜씨로는 천공공의 물건을 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있군요.”

천공공이란 이름.

철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천공공이 누구입니까?”

“그에 대해서는 저도 사부님께 들었을 뿐입니다. 제가 아는 건 사부님이 세상에서 열 수 없는 물건은 천공공이 만든 물건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음…… 그대의 사부의 성함이 만능자가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혹시 그분이시라면 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저도 확실히 대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전에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일 년을 고생하시다가 겨우 연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모용지는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화산도협이라면, 충분히 알려줘도 괜찮을 것이라 확신했다.

“장백령…… 저도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장백산 근처라는 것밖에 알지 못합니다.”

“장백령이라면 계속 동쪽으로 올라가야겠군요.”

“사부님께서 장백령으로 가시는 도중에 저와 만나게 됐습니다. 저에게 몇 가지를 알려주신 뒤 다시 그곳으로 떠나셨지요.”

“그렇군요. 모용 형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더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

모용지는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는 듯 머뭇거리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저어…….”

“안 야장은 괜찮습니다. 무사히 돌아갈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아…… 네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충고한다면, 모용 형께서는 의적은 그만하시는 게 좋을 듯하군요.”

“…….”

“그대가 혼자라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모용세가의 오 공자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의 존재가 알려졌을 경우 모용세가에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화산도협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의적이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모용지는 부끄러워졌다.

고진윤느 그동안의 자신이 한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만나도록 하죠.”

“잘 다녀오십시오.”

* * *

휘이이익-!!

두두두두두두-

일백 명의 흑의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우리의 목표는 화산도협이다! 그에게서 철갑을 꼭 찾아야 한다!”

흑화부전주 다주경은 흑화천군을 재촉하며 일백명과 함께 요녕성으로 달렸다.

며칠 전 들려온 모용세가에 화산도협이 나타났다는 소문.

흑화전주 배조경의 명이 떨어졌다.

“화산도협에게서 철갑을 회수하라.”

흑화천군은 단번에 하북성을 넘어 요녕성으로 넘어섰다.

휘익!

다주경의 앞으로 흑의인이 내려섰다.

“부전주님, 보고드립니다.”

“그놈은 어디로 움직이고 있지?”

“현재 동북으로 움직이는 듯합니다.”

“동북이라면 길림으로 넘어간다는 것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봐서는 길림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게야?”

다주경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우선 중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막을 필요는 있겠어.’

“통화에 빨리 연락해서 화산도협을 막도록 해라!”

“넵. 알겠습니다.”

* * *

파드드득-!!

통화산장으로 전서구가 내려섰다.

사내는 전서구에서 전서를 꺼낸 뒤 곧장 장주에게 달렸다.

거대한 비만의 사내.

침상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몸집이 큰 장주 동왕은 무거운 몸으로 전서를 읽었다.

“뭐라고?”

벌떡!

느릿느릿하던 그의 몸짓이 거짓말처럼 빨라졌다.

침상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오호…….”

전서를 읽은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통화산장의 목적은 모용세가의 뒤를 치기 위함.

하지만 그는 변방에 올라온 뒤 십 년을 심심하게 보내야 했다.

그런 참에 흑화부전주가 보낸 전서는 따분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크크크…… 화산도협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극일천을 괴롭히던 인물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말에 그가 실소를 지었다.

“흑화부전주께서 친히 연락을 주셨다는 건, 이번 일이 잘 풀리면 최소한 흑화전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지.”

둔한 몸과 달리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얼굴이라도 알릴 수 있도록 해야겠어.”

타악!!

그는 탁자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 당주, 지금 당장 화산도협을 잡으러 갈 것이다. 통화산장의 전 인원을 모집하도록!”

“알겠습니다.”

통화산장 동왕의 명이 떨어진 후 반시진이 되기도 전에 수백 명의 무인들이 산장 밖을 나섰다.

그들 중앙에는 마차를 탄 동왕이 앉아 있었다.

* * *

모용지가 돌아간 후, 고진유는 신민상회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상회주와 헤어진 일행은 곧바로 만능자가 있다는 장백령이란 곳으로 움직였다.

“이젠 장백령까지 올라가야 하는구나.”

“묵경 형, 그곳이 어딘지 아세요?”

“길림을 넘어 올라가다 보면 백산이라는 곳에 있는 산이야. 예로부터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산으로 불리는 곳이지.”

“아하…… 그렇군요.”

장백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정찰을 나갔던 녹림야검이 돌아왔다.

휘이익!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화산도협님. 통화에 들어서는 길목에 한 무리의 무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수는 얼마 정도인가요?”

“대략 오백 명 정도로 보였습니다.”

길림성에 오백 명의 무인을 둔 세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진유 아우, 오백 명이면 제법 많은 인원인걸.”

“정말 많긴 하군요.”

고진유는 대충 앞에 나타난 무리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여기까지 극일천 세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알면 알수록 엄청난 곳이야.’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그래도 뚫고 지나가야지 않겠어요?”

앞을 막아선 적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말이다.

세 사람을 본 고진유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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